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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로 유명한 팔공산을 찾아서


2009년 2월 8일 일요일 오전 8시 23분.
억센 경상도 사투리 때문은 아니겠지만 기(氣)기 세기로 유명한
그리고, 수험생 자녀들을 둔 억척 엄마들이 고득점 합격을 기원할 때 가장 많이 찾는다는
갓바위가 있는 팔공산을 향해 아침 8시경 대전을 출발해 경부고속도로의 옥천 휴게소에서 잠깐 한숨을 돌렸다.

해 뜨기 전부터 밝은 태양 빛을 가리고 있던 엷은 안개가 이제야 조금씩 걷혀 간다.
오늘 하루 화창한 초봄 날씨가 이어질 것 같다.




오전 10시 32분.
팔공산으로 오르기 위해 시골 정취를 물씬 풍기는 은해사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한적한 시골길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마치 시장 바닥처럼 사람으로 붐비는 대구시,경산시 쪽을 피해 경북 영천시 관내의 은해사 쪽으로
산행 시점을 잡은 것이 내 마음에 든다.
휴일 아침부터 사람 구경에 눈을 피로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불과 5분 남짓 걷다보니 은해사의 일주문이 눈 앞에 턱 버티고 사람을 위협하듯한다.
흡사 덩치 작고 속 좁은 일본인들 종종 터무니 없이 크게 짓는 과시용 출입문 같아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일주문 [一柱門] 이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번째 문으로써 네 기둥[四柱]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는 것이 일반이다.

그 이유는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인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게 쓸데없이 큰 돈을 낭비해 일주문을 세운다고 불심이 깊어지는건 아니다.

맞배지붕 양식으로 아담하고 검소해 보이는 법주사,수덕사 등의 일주문을 귀감으로 해야 할 것이다.
일주문의 기둥 숫자가 10여개에 팔작지붕이라니.. 쯧!쯧!쯧!




이곳 은해사의 경우 일주문에서 보화루까지 약2km의 소나무숲을 금포정(禁捕町) 이라하며 높이 10m 이상되는 300년생 소나무 숲으로 되어있다.
1714년 조선 숙종때 부근 땅을 매입하여 소나무 숲길 조성한 기록이 있으며 일체의 생명 살생을 하지 아니하므로 금포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전국적인 극심한 가뭄은 이곳이라고해서 예외는 없다.
물이 바싹 마른 개울물, 겉으로 보기에도 물기가 없어보이는 앙상한 활엽수들을 따라 10여분 정도 오르니 저 앞에 은해사가 위용을 드러낸다.
중앙부의 건물이 이곳 은해사의 천왕문 격인 보화루이다.

일별하기로도 절 터가 상당히 넓어보인다.
이곳 은해사가 전국 31본산(本山)의 하나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임을 실감하게 된다.
809년(신라 헌덕왕 1)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해안사(海眼寺)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1545년(조선 인종 1)에 소실되어 1546년(명종 1)에 천교(天敎)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그리고 법당과 비석을 세워 인종(仁宗)의 태실(胎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하였다.




터무니 없는 크기로 인해 오히려 흉물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던 일주문, 그리고 타 사찰에 비해 큰 덩치인 보화루로 인해 언짢던 내 마음이
아담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대웅전 앞에서 상당히 누르러지는 느낌이다.

더구나 오랜 연륜을 느끼게 해주는 향나무가 있어 마음 속 깊이부터 경건함이 느껴진다.




은해사의 많은 산내 암자인 운부암,백흥암,중암암,묘봉암 등을 가려면 지나쳐야 하는
자그마한 저수지인 신일지에서는 완연한 봄기운이 생생히 느껴진다.




오전 11시 43분.
삼행을 시작한지 1시간 이상 경과하니 점차 숨이 가빠오며 다리의 피로도 조금씩 느껴진다.
이럴 때 나무 숲 사이로 내비치는 따뜻하고 밝은 햇살은 최고의 피로회복제이다.
나무 사이로 스쳐 지나는 바람도 따뜻하고 상쾌하다.




오랜 기간 살을 맞대고 살아온 중년의 부부들은 걷는 모습조차 비슷해보인다.
요즘 젊은이들의 특기인 껴안듯 붙어가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걷는 그들이지만
젊음에서 느끼지 못하는 은근하고 끈기있는 사랑이 느껴짐은 내 나이 또한 자꾸 먹어감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낮 12시 16분.
신행을 시작한지 2시간 여가 지나 은해사의 8개 산내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묘봉암의 법당인 원통전(圓通殿)앞에 도착했다.
휴대한 고도계를 보니 해발 700m정도된다.

묘봉암은 833년(흥덕왕 8)에 심지(心地)왕사께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묘봉암의 가람 구조는 법당인 원통전(圓通殿)을 중심으로 왼쪽에 요사채가 있으며, 오른쪽 뒤편에는 산령각(山靈閣)이,
원통전 아래에는 염불당(念佛堂)과 부목방(負木房)이 위치해 있다.
원통전은 특이하게도 사진에서처럼 과거 석굴에서 기도를 해왔던 곳으로 석굴 위에 건물을 지었다는 것이다.




낮 12시 50분.
일명 '돌구멍 절'로 불리는 중암암에 도착했다.

이 중암암은 사진에서처럼 건물이 바위에 묻혀 있는 모습이다.
신라시대 화쟁국사 원효(元曉)스님 (617~686)께서 토굴을 짓고 정진한 곳으로 널리 전해진 곳에
신라 광덕왕 (光德王) 9년 (서기 834년)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다 한다.




중암암 뒷편 바위 사이에서부터 가지를 뻗은 만년을 살았다고들 하는 만년송이다.
특이하게도 엄청나게 큰 암반 사이로 가지를 뻗어나와 생생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무척 신기하다.
이 만년송 부근에서 김유신장군이 기를 닦은 연유로 팔공산에서 이곳이 가장 기가 센 곳이라는 얘기가 전해 오기도 한다.
중암암 경내에는 이 만년송 외에도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염원을 성취하기 위해
이곳에서 수련하면서 마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의 장군수(將軍水),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깊다는 해우소도 있다.




오후 1시 6분.
중암암 뒤편 암반 위에서 준비해 간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대신 하며 바라 본 팔공산의 북동쪽 능선도
따뜻한 햇살을 받아 봄기운이 무르익어 간다.

팔공산은 높이 1,193m의 주봉인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동·서로 20㎞에 걸쳐 능선이 이어진다.
대구광역시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지점에 솟은 대구의 진산이다.
남쪽으로 내달리던 태백산맥이 낙동강·금호강과 만나는 곳에 솟아 행정구역상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에 속하지만,
영천시·경산시·칠곡군·군위군 등 4개 시·군이 맞닿는 경계를 이룬다.




오후 1시 51분.
중암암을 떠나 팔공산 능선을 따라 남서쪽으로 향하던중.멀리 4~5km 떨어진 곳에 갓바위의 옆 모습이 선명히 보인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정월대보름 행사를 위한 장식들과 전망대에 늘어선 사람들이 빈틈없이 빼곡히 들어찬 모습이 이채롭다.




갓바위를 정면에서 본 모습이다.
팔공산의 남쪽 봉우리 관봉(冠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좌상으로서, 전체 높이는 4m에 이른다.
관봉이 곧 우리말로 '갓바위'이므로 흔히 '갓바위부처님'이라고 부른다. 또 머리에 마치 갓같은 판석(板石)이 올려져 있기에 그렇게도 부른다.
관봉은 인봉(印峰).노적봉(露積峰)과 함께 팔공산의 대표적 봉우리로서 해발 850m의 고봉(高峰)이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팔공산의 서남쪽이 모두 두루 조망(眺望)된다.
이 부처님은 화강암 한 돌로 만든 것인데, 몸뿐만 아니라 대좌도 역시 한 돌로 되어 있다.
갓바위의 정식 명칭은 "관봉 석조약사여래좌상"이다.




오후 2시 41분.
갓바위를 관리하는 사찰인 선본사의 본전인 극락전 앞은 불과 몇십미터 떨어진 주차장에서부터 갓바위에 이르는 700여m에 걸치는 인산인해를
무색케 하는듯 적막감이 감돈다.
가운데 놓인 불단에 아미타부처님이 독존(獨尊)으로 앉아 있고 그 뒤에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는 이 극락전에 들리는 분들은 겉보기에도
불심이 깊어 보인다. 그 분들의 소원 성취, 무병장수를 같이 빌어 본다.




오후 2시 47분.
이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갓바위를 오르기 위한 매표소 입구는 마치 명절 전야의 시장통 같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야단법석 [野壇法席]"이다.

‘야단(野壇)’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이고, ‘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이다.
즉,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므로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그만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석가가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할 때 최대 규모의 사람이 모인 것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로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게 된다.
이처럼 경황이 없고 시끌벅적한 상태를 가리켜 비유적으로 쓰이던 말이 일반화되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게 되었다.

어쨋든 나는 "야단법석"을 무척 싫어한다. 더구나 휴일을 맞아 산을 찾은 입장에서는...




오후 5시44분.
귀가길 휴식을 위해 잠시 멈춘 경부고속도로상의 칠곡휴게소에서 일몰을 맞았다.
정월대보름 하루 전이라 보름달이 떠오르는걸 봐야하겠지만
동쪽 하늘에 떠오른 달은 아직 빛을 내지 못하는 시간인지라 일몰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오랜 시간의 산행으로 다리는 비록 피곤하지만 기분은 무척 상쾌하다.
내일 월요일 아침의 상쾌한 기상을 기대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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