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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에 찾은 월정사 전나무숲과 봉평 마을


2009년 9월12일 토요일 오전 11시46분.
오대산 월정사 경내 적광전 앞에서 바라보는
가을 하늘이 무척 높아 보인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慈藏)이
이곳에서 초가집을 짓고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태백산 정암사에서 입적하였다.

6.25동란중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앞에 보이는
국보 제48호 팔각구층석탑만이 아픈 역사를 가슴에 품고 서 있다.
신라,백제시대의 석탑이 대부분 3~5층의 저층 탑인데 반해
9층이라는 고층인 이 탑은 고려 전기에 만든 것이다.


낮 12시 8분.
월정사 경애늘 벗어나 천왕문앞 금강교에서 일주문 사이
약 8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을 걸어 본다.
편백나무나 삼나무 보다는 피톤치트 방출량이 적지만
비교적 많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온 몸에 받으며 지나는 길은
진한 전나무 향이 코 끝을 간지른다.


다람쥐도 전나무향을 맡으며 점심 식사에 여념이 없다.
이제 이처럼 숲속에서 다람쥐를 만날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다람쥐는 평균기온이 8∼10℃가 되면 터널 속으로 들어가
겨울잠을 자기 시작하는데,
겨울잠은 진정한 동면이 아닌 가수면 상태이다.


지난 2006년 한국환경생태학회에서 조사한바에 의하면
이곳의 전나무는 약 1,000 여수였으며 수령은 41년에서 135년이었다.
이 나무는 지난 200년에 쓰려진 이곳 전나무숲 최고령 전나무이다.
공해에 약한 전나무가 더 이상 쓰러지는 일이나 없었으면한다.


이곳 월정사 전마무숲길은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유달리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은 편이다.
또한 최근들어서는 이처럼 젊은이들의 추억만들기 현장으로도
인기를 끄는 추세인듯하다.


낮 12시22분.
일주문을 벗어나면서 진한 향의 전나무숲길은 끝난다.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門)이다.
문의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는 데서 유래한 명칭으로,
한 곳으로 마음을 모으는 일심(一心)을 뜻한다.

사찰의 입구에 일주문을 세운 것은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세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어내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向)하라는 뜻에서이다.


오후 4시10분.
오대산 월정사를 떠나 강릉시내의
강릉중앙시장을 둘러보고 그곳에서 토속음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제11회 효석문화제가 열리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축제장을 찾았다.

마침 주말을 맞아 수많은 인파가 이곳을 찾아
해발 700고지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가을 정취를 만끽한다.


지난 9월4일 시작해 이틀 후인 9월14일 끝나는
11회 효석문화제.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주제인 만큼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만개한 메밀꽃을 보러 온다.
그러나, 아쉽게도 금년에는 예상보다 일찍 피어버린
메밀꽃이 거의 지고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비록 소설 속 허생원이 달빛이 밝은 밤 봉평장을 떠나
제천으로 향하는 중 마치 소금을 뿌려 놓은듯하다고 느낀
그 백색의 천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흰 메밀꽃 속에서
당나귀가 모는 마차를 타는 것도 축제를 찾은이들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넓은 축제장의 드넓은 메밀밭인지라
아직은 소금을 뿌린듯한 흰 자태를 뽐내며 핀 곳을 찾아
사람들의 이동이 분주하다.
예븐 모습으르 뽐내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아릿따운 젊은 아가씨들을 보고 있으려니
허생원의 젊은 시절 물레방아간에서 마주친
봉평 제일가는 일색이던 성서방네 처녀의
아릿따운 자태가 아마도 저정도였으려니 싶다.


오후 4시49분.
축제장을 둘러본 후 마침 12일 오늘이 장날인
2,7장의 봉평장터로 향하는 개울위 섶다리에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소설 속에서 곰보에 왼손잡이인 허생원은
저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지고
그를 들쳐 업은 젊은 동이가 왼손잡이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조·피·기장·고구마·감자 등과 함께
대표적 구황작물 [救荒作物]인 메밀.
과거 흉년이나 들어야 사람들이 쳐다보던
천대받던 이 식품들이 이제는 웰빙식품이란
이름하에 귀하게 대접받는다.

구황작물이란 가뭄이나 장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걸지 않은 땅에서도 가꿀 수 있으며 특히 생육기간이 짧아
흉년등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되던 식품이다.


희게 핀 메밀꽃을 한참 바라보면 그 희빛에 현기증을 느낄듯하다.
아마도 소설속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를 물레방아간에 버려두고
달아났던 옛날 생각을 하며 징검다리를 헛디딘 것도
메밀꽃의 흰 빛을 바라보며 현기증을 느낀 때문일게다.


메밀을 ‘오방지영물’이라 부르는 이유는 메밀이 가진
5가지 색깔 때문이다.
그 다섯가지 색깔이란 다름 아닌
하얀꽃, 붉은 줄기,, 녹색 잎, 검은 열매,
노란 뿌리의 오색을 말함이다.

요즈음은 필수아미노산과 일반 곡물에는 없는
비타민P(루틴)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껍질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다고 한다.


오후 5시25분.
이제 귀가를 위해 메밀밭을 떠난다.
소설 속 허생원도 개울물에 빠져 몸은 추웠으나,
제천에서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애비를 모르는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 동이를 생각하고,
고향 봉평에서 애비없는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쫓겨났던
동이 어미를 생각하며 제천으로 갈 것을 작정한 후 마음은
두둥실 가벼워진다.

나 또한 주말 하루의 상쾌함을 안고
가벼운 마음으로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