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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를 품에 안은 토함산과 문무대왕릉


2009년 9월13일 일요일 오전 10시32분.
토함산 산행을 위해 불국사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산행에 앞서 불국사 관람을 위해 일주문을 들어선다.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세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어내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向)하라는 뜻에서 만들어 놓은
기둥을 한 줄로 세워 일주문인 의미를 마음 속으로 새겨 본다.


자하문이 올려다 보이는 청운교 앞의 인파는
지난해 5월에 왔을 때와 별반 다를바 없다.
단체 여행객들에게 설명을 해 주는 문화해설사들의
열띈 목소리도 사방에서 들려 온다. 무척 소란스럽다.
문득 이 아늑한 공간이 좀 더 조용해질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곳 불국사의 주 법당인 대웅전 앞에도
휴일을 맞아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
좌측의 석가탑은 이 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석가탑과 마주 보며 동쪽에 서 있는 높이가 10.4m로 똑같은
다보탑은 현재 난간부 및 상륜부 해체수리. 균열과 박리 부위 접착,
강화를 위해 보수 중이다.

현재의 부처 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

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라 만들었다는
석가탑의 본 이름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의
의미를 반추해 본다.


이곳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의 두 곳이 있다. 사진에서 오른쪽이 청운교와 백운교이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다.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체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33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아직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서른세 가지의 단계를 의미한다.


오전 11시43분.
불국사 경내를 떠나 30여분간 땀을 흘리며 걸어 올라 도착한
석굴암 일주문 앞이다.

751년(신라 경덕왕 10년)에 김대성(金大城)이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면서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만든 석굴암.
불국사의 부속 암자로 당시의 이름은 석불사였던 곳.
지금은 국보임은 물론 불국사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된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오전 11시57분.
석굴암 일주문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토함산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이처럼 각종 활엽수들의
진한 나무 내음을 온 몸으로 받으며 오르는 편안한 길이다.
바위가 거의 없는 육산인지라 편안한 산행이 이어진다.


낮 12시.
많은 산행객들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성화채화지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다.

국내에서 치러지는 전국적인 중요행사에서는
대부분 강화도의 마니산에서 성화를 채화하지만
경상북도를 비롯한 영남지방의 지역행사에서는
대부분 이곳 토함산 성화채화지에서 행사가 치뤄진다.


낮 12시11분.
울창한 활엽수림이 걷히고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하는
억새밭을 헤치고 하늘을 올려다 보니
멀리 눈 앞에 토함산 정상이 보인다.
파란 하늘의 흰 구름을 보니
가을이 무르익어감을 절감하게 된다.


해발 754m토함산 정상에서 느끼는 가을 바람이 무척 시원하다.
북쪽 멀리 함월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함월산 기슭에는 "신라 31대 신문왕이 동해에서 화룡의 선왕인
문무왕으로부터 만파식적이란 피리를 얻어가지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림사 부근에서 잠시 쉬어 갔다."
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된 바로 그 기림사가 있다.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지난 4월18일 다녀왔던
경주 남산의 고위봉(494m)과 금오봉(468m) 도 보인다.

국보20호 다보탑을 위시하여 석가탑,석굴암석굴,성덕대왕신종등 국보 31점,
보물 제 61호 불국사 사리탑, 석빙고 등을 비롯한 보물 77점,
사적1호인 포석정지 를 비롯 사적 74점,
명승제1호인 불국사 경내.명승제2호 내물왕릉 계림 월성지대,
천연기념물 제89호인 오류리의 등나무 등 3점의 천연기념물,
중요무형문화재 제86호인 경주교동법주(향토술담기) 등 무형문화재 2종,
중요민속자료 제23호인 월성손동만씨가옥등 민속자료 16 종...
가히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문화재를 머릿속으로 떠 올리며
경주를 내려다 본다.


오후 2시4분.
산행을 끝내고 불국사 반대쪽인 황룡동으로 내려오니
이제 고개를 숙이고 노랗게 물들어 가는
벼 이삭이 지친 몸의 피로를 덜어준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자급자족을
이어가야할 우리의 주식인 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본다.


오후 2시58분.
산행 후 영양 보충을 위해 들린 감포 해수욕장.
이곳이 행정구역상 감포읍 나정리 인지라
나정해수욕장이라고도 불린다.
동해 바다의 푸른 바다는 항상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우리 나라 동해안 해변의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이 곳 감포도 예전과 해안선 모양이 많이 변한듯하다.
파도에 씻겨 나가는 모래를 보호하기 위한 방책들을 세우고
그 위에 부표를 길게 띄워 놓았다.


부표 위에 줄지어 앉아 사냥 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갈매기떼들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물고기 중 가장 도약력이 뛰어난 종류 중 하나인
숭어가 쉴 새없이 뛰어 오른다.

꼬리로 수면을 치면 거의 수직으로 뛰어오르며
내려올 때는 몸을 한 번 돌려 머리를 아래로 하고 떨어지는
최대 몸 길이 120cm까지 자라는 숭어의 도약을
지켜 보는 것도 흥미롭다.


오후 4시58분.
귀가길에 잠시 머문
경주시 양북면(陽北面) 봉길리(奉吉里) 앞바다에 있는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水中陵). 바닷가로 흰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가 계속 밀려 든다.

문무왕(文武王, 626년 ~ 681년, 재위: 661년 ~ 681년)은 신라 제30대 왕이다.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맏아들로서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계림도독부를 설치하려는 당나라군을 격퇴하여 676년 삼국을

최초로 통일한 군주이다.


오후 5시 5분.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文武王)은 통일 후
불안정안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護國大龍)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 일

대에 뿌리고 대석(大石)에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은 왕의 유언을 믿어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바닷가에서 200m떨어진 저 대왕암을 바라보며
정성들여 소원을 비는 저 사람들의 기원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휴일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