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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을 넘어 동해안 낙산해수욕장으로


2009년 10월10일 낮 12시54분
다음날인 10월11일 일요일에
조금은 힘든 산행 일정이 잡혀 있기에
동해안 쪽으로 가벼운 여행을 나선 길.

점심 식사를 위해 잠시 머문 강원도 인제의
내설악 휴게소에서 바라 본 미시령쪽 산 등성이는
가을을 재촉하듯 붉은 빛으로 조금씩 물들어 간다.


오후 1시37분
진부령을 넘어 화암사로 향하는 길
탑승한 차 안에서 내다보는 경치가 장관이다.
해발 700m가 넘는 이곳은 이미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마음 속까지 붉게 타 들어가는듯하다.


동쪽으로 따뜻하게 내리 쬐는 햇살을 받으며
울산바위가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울산에 있던 큰 바위가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으나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느림보 걸음걸이다 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모두 다 만들어진 후라서
이 바위는 금강산에 가보지도 못하고
현재의 위치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 울산 바위.
지금 내가 지나는 곳을 흔히 내설악이라 부르며
울산 바위 너머 동쪽은 외설악이된다.


오후 2시11분.
행정구역상 고성군 토성면인 화암사(禾巖寺)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약 300m정도 거리에 있는
이 왕관모양의 바위로 빼어날 수(秀)자를 써서 수암(秀巖)이라 불린다.
진표율사를 비롯한 역대 고승들이 이 바위 위에서 좌선수도 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스님, 신도들이 찾는 기도처로 잘 알려져 있다.


아담한 화암사 대웅전 앞 뜰에서는 단체 탐방객을 대상으로 한
어느 스님의 설법이 한창 이어지고 있다.
화암사가 창건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천 2백여년 전인 769년(신라 혜공왕 5),
우리나라에 참회 불교를 정착시킨 법상종의 개조 진표율사에 의해서라고 한다.
또한 '금강산 화암사'로 표기되는 것은 화암사가
금강산의 남쪽 줄기에 닿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이다.


우리는 흔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하고 혼잡스러운 것을 두고
"야단법석"이라고 곧잘 표현한다.
원래 이 "야단법석 [野壇法席]"이라는 말은
《불교대사전》에 나오는 말로써 풀이하자면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王舍城:현재의 비하르주 라지기르)
주위에 있는 산인 영취산 [ 靈鷲山 ]에서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는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고 전해질 정도이니 소란스럽기는 했으리라.
그러나, 이날 이곳의 분위기는 무척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설법 도중 간혹 신도들이 앞에 나와 포크송을 선창하여 같이 부르는 등
시간 여유가 있다면 동참하고 싶을 정도로 부러움을 느꼈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화암사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멀리 동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 고성군 간성읍인지?
아니면 속초시인지는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 시간 여유가 나면 이곳에서
하룻밤 쯤 묵으며 산사의 밤을 즐기고픈 심정이다.


오후 3시16분.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이며,
또한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한 낙산사에 도착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2005년에 일어난 대화재로 인한
상흔을 치유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으나
복구공사가 끝나서인지 안정감이 느껴진다.
참고로 3대 관음기도도량은 이곳 낙산사의 홍련암 외에
강화도 낙가산의 보문사와 남해 금산의 보리암이다.


지난해 방문시 주위의 나무들이 3년전의 화재로 인해
볼썽 사나웠던 해수관음보살상 주위도 깨끗이 단장되어 안정감을 준다.

이 해수관음상은 우리나라 최고 품질의 화강암 산지로 알려진
전라북도 익산에서 약700여톤의 석재를 가져와
지난 1977년에 조성한 것으로 높이는 약 16m에 이른다.


의상대 옆 난간에 기대어 오래 전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경한 자리에 세웠다는 홍련암쪽으로 바라보는
풍광이 마음 속을 뻥 뚫리게한다.
거센 파도가 바위를 때릴 때마다 흰 포말이 일으키는
작은 물방울이 얼굴을 간지른다.


홍련암쪽에서 의상대사의 좌선(坐禪) 수행처라고 전해지는
의상대를 바라 본다.
그리고, 조선시대 취미수초(翠微守初)선사(1590~1668)의
시귀가 떠 오른다.

의상대(義湘臺)

의벽천년수(倚壁千年樹)
절벽에 기대인 저 천 년의 나무
능허백척대(凌虛百尺臺)
허공에 우뚝 솟은 저 백 척의 대여.
신승거무적(神僧去無跡)
신승은 가고 없으니
운외학배회(雲外鶴徘徊)
구름 밖에서 학이 배회하네


오후 4시51분.
귀가길 동해 바다의 싱싱한 생선회로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잠시 머문 낙산해수욕장.
석양을 등진 해변의 소나무들이 긴 그림자를
백사장에 드리우는 여유로운 주말 오후 풍경이다.


엊그제 일본열도를 관통한 제18호 태풍 멜로드의 여파로
평소보다 거센 파도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남해안이나 서해안과 달리 동해안 바닷가에서는
항상 밀려드는 흰 파도를 볼 수 있어 좋은 곳이다.
그러나 이렇게 맑고 화창한 날에
이처럼 거센 파도를 일으키는 장관을 접하기가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고보면 오늘 같은날
바닷가를 찾은 것도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듯하다.


카메라를 고정할 삼각대를 지참하지 않은고로
무릎을 세우고 앉아 무릎에 의탁하여
1/5초의 저속으로 파도를 찍어본다.
파도가 일으키는 희 포말의 연속이 마치
지난 겨울 태백산 눈산행에서 보았던 설원을 연상케 한다.


푸른 바다에 흰 포말을 일으키며
쉴새없이 밀려드는 파도 속에서
주말 여행의 추억을 사진으로 담는 행락객들의
분주한 몸놀림에서 생기가 느껴진다.
자그맣게 보이는 갈매기도 어쩐지 활기차게 느껴지는 주말 오후이다.



오후 17시5분.
상쾌하고 싱그러운 가을 바람을 맞으며
넋을 잃고 한 없이 바라보던 바다.
내 마음만 같으면 그대로 서서 밤까지 바라보고 싶지만
내일의 여정을 위해 발길을 돌린다.
붉은 단풍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함께 볼 수 있어
행복한 주말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