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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과 내설악으로 떠난 1박2일 여행(3)


10월 25일 오전 11시18분.
옥같이 맑은 물길이 암벽을 곱게 다듬어 청류를 이루다
웅덩이를 만나 잠시 멈춘 자그마한 소(沼).
이곳은 밝은 달밤 선녀들이 내려와 반석 위에 날개옷을
벗어 놓고 목욕을 하던 곳이라하여 선녀탕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가뭄으로 물이 줄어든 그곳.
선녀가 아닌 몰상식한 중년 등산객이 주저 앉아 발을 씻고 있다.
못된 인간들은 도처에서 꿈틀댄다.



오전 11시30분.
독주암 아래를 지난다.
흔히들 내설악 최고의 비경을 일컬어 천불동 계곡이라고들 하고
그 천불동 계곡의 축소판이 주전골이라 한다.
오색약수터에서 시작하여 주전골 탐방을 시작하면 초입에
그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 독주암이다.
정상부에 한 사람만 겨우 올라 앉을 수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전 11시43분.
지난주 방문시에는 1시간이 채 못걸려 오색약수터에 도착했으나
이 날은 시간 여유를 충분히 가지고 천천히 걸었다.
1시간 40분이라는 시간을 할애했다.
그 결과는 대만족이다. 느리게 걷는다는 것은 그만큼 눈을 즐겁게 한다.


낮 12시 27분.
오색지대에 도착해 맛있는 산채를 곁들인 점심을 마친 후
먼 산을 바라본다.
산허리에 걸려 있던 짙은 구름이 서서히 물러간다.
오후에는 따뜻한 햇빛이 내리 쪼일듯 하다.


낮12시38분.
주위의 온 산이 붉게 물든 오색지대 주차장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차량과 인파로 붐빈다.
서둘러 주차장을 벗어난다.


오후 1시38분.
휴일 오후의 고속도로 교통 체증을 피함과 동시에
평소 잘 다니지 않던 코스로 귀가길을 선택해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홍천군 내면 명개리로 이어지는
구룡령으로 향하는 길 또한 한계령길 못지 않은 절경이다.


오후 1시52분.
해발 1,013m 높이인 구룡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차와 음식을 팔던 휴게소 건물이 문을 닫은 탓으로
관광객들이 용변을 볼 화장실이 없어 큰 고통을 겪는다.
무사안일한 공무원들을 심하게 꾸짖고 싶은 심정이다.


이곳 구룡령은 양양군과 홍천군의 경게를 이루는 곳으로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으로서 용이 구불구불 휘저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아흔 아홉 구비를 넘어간다고 하여 구룡령이라고 부른다.
또 고개를 넘던 아홉 마리 용이 갈천리 마을에서 쉬어 갔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오후 2시53분.
구룡령을 떠나 한참을 달려 해발 1,089m높이의 운두령에 도착했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용평면의 경계인 이 운두령은
남한에서 자동차로 넘나드는 고개 중 만항재(해발 1,330m) 다음으로 높다.
항상 운무(雲霧 )가 넘나든다는 뜻에서 ‘운두령(雲頭嶺)’이란 지명이 유래하였다.
지난 8월23일 함백산 등산시 만항재를 지난바 있는 나는
두 고개를 모두 넘었으니 행운아 인가?


오후2시59분.
운두령을 떠나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에 위치한
이승복 기념관으로 향하는 길. 붉은색으로 칠해진 터널을 지나는듯하다.


오후 3시10분.
지난 1968년 12월 9일 만9세의 나이로 일가족과 함께
북한에서 침투한 무장공비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된
이승복을 추도하기 위한 이승복 기념관에 도착했다.


당시 이승복군이 다니던 그 학교 건물.
지금은 폐교된 학교 건물도 기념관의 중요 시설물 중 하나이다.


오후 3시27분.
민족 분단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지
이곳의 단풍나무는 다른 곳의 그것에 비해 유난히 붉은 느낌이 든다.
하루라도 빨리 통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승복기념관을 떠나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