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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지나 순천만 갈대밭으로 떠난 여행


2009년 11월14일 오전 10시42분.
한동안 예년보다 따뜻하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한 주말 아침
대전을 떠나 담양 10경 중 한곳이라는 전남 담양군의
이른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에서 주말 여행의 첫 발을 내 디뎠다.
쌀쌀한 날씨이건만 그 명성에 걸맞게 벌써 많은 인파로 붐빈다.
수년 전부터 1년에 한두차례씩 꼭 찾는 곳이건만
계절에 관계없이 항상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는 곳이다.


약 8.5 km에 이르는 지금은 이용하지 않는 국도변 양쪽에 자리 잡은
10~20m에 이르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사철 다른 색의 옷으로 갈이 입으며
가지를 뻗치고 있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묶어둔다.
가히 '꿈의 드라이브코스’라 불릴만하다.

담양의 이 메타세콰이어나무들은 지난 1972년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시
내무부의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때문에 3~4년생 묘목을 가져다 심게되었고,
좋은 토양과 알맞은 기후 아래 매년 1m씩 자라나서 불과 30 여년 후
오늘과 같은 즐거움을 우리 국민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1940년대까지는 화석으로만 존재하던 메타세콰이어(Metasequoia) 나무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 1945년 중국 사천성 양자강 유역
마도계(磨刀溪)에서였다.
그리고, 이 나무가 미국으로 건너가 개량이 되었고,
미국에서는 가을이면 단풍이 들어 잎을 떨어뜨리는 이 메타세콰이어와 달리
사철 녹색 잎을 자랑하는 '세콰이어'도 많이 볼 수 있다.


낮 12시45분.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의 아름다움으로 1주일간 마음속에 앉은 도시의 공해를 씻은 후
태고종찰 선암사와 승보종찰 송광사를 품은 성산(聖山)으로 알려진
전남 순천시의 조계산 산행을 위해 순천시 낙안면 장안마을에 도착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 소리까지 시원한 아름다운 시골이다.


가지 끝에 하나 둘씩 머리를 맞대고 붙은 빨간 감을 바라보며
까치를 비롯해 봄부터 가을까지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준
새들이 배고파하지 않게 먹이를 남겨두고 감을 따는 것이
농부의 넉넉한 인심이었던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우리 조상들의 마음 씀씀이에 머리가 숙여 진다.


낮 12시57분.
쌀쌀한 날씨이긴 하지만 오르막길인 임도를 십여분 이상 걷다보니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가을 걷이,겨울 준비 등으로 바쁜 주인이 출타한 집 앞에서
등산용 재킷을 잠시 벗어 배낭에 넣기 위해 걸음을 멈춘다.
노란색,갈색, 혹은 붉은색으로 물든 낙엽들이
바닥을 뒹굴며 주인 없는 빈 집을 지킨다.


몇 가구되지 않는 자그마한 시골의 전형적인 풍광이다.
따뜻한 남쪽 지방인데다 해발 고도 300m 남짓한 산골마을인지라
이제 본격적으로 야산의 나무들이 원색의 옷으로 갈아 입기 시작한다.


오후 1시5분.
산행 들머리에서부터 20여분 이상을 계속 이어지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이긴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단풍과 더불어 싱싱한 녹색의
소나무숲이 이어지는 산길의 공기는 너무 맑고 상쾌하다.


간간히 이처럼 유난히 밝은 원색의 단풍나무들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최대의 단풍나무 군락지인 내장사를 2주 전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단풍잎들이 공해에 찌들어 퇴색한 추한 모습을
보였던데 비해 이곳의 공기가 그만큼 깨끗함을 뜻하리라.


무조건 빠른 속도로 앞만 보고 내달리는 주마간산(走馬看山)식의
산행 보다는 이처럼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걷는 이들은
멀리서 쳐다 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 속에 여유를 준다.


오후 1시34분.
이곳 조계산 산행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곳 중 하나인 보리밥집에 도착했다.
이곳은 흔히들 아래 보리밥집이라 부르는 곳이다.
해발 500m정도인 이 부근에 최근 보리밥집이 몇개 더 생겼다 한다.
그 때문에 조계산 산행객들은 대부분 점심을 별도로 준비하지 않고
보리밥을 사 먹는 것을 조계산 산행의 즐거움 중 하나로 여긴다.


오후 2시2분.
보리밥집에서 점심 식사 및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해발 500m를 넘어서면서는 유난히 조릿대 군락지가 많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댓잎의 싱그러움을 느끼며 걷는 길.
발밑으로는 갈참나무 등 일찍 떨어진 낙엽들이 바스락 거린다.


계곡을 사이에 둔 윗보리밥집 뒷뜰에 널린 배추잎을 뜯은 우거지와
무청을 엮어 말리는 시래기들이
신선한 늦가을 바람 속에서 누렇게 제 색깔을 내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처럼 우거지와 시래기를 즐겨 먹는 이유는
배추의 속잎보다 겉잎에, 그리고 무우보다 무청에 카로틴 등
영양성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조계산 산행 중 여러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보리밥집 안내 팻말이다.
물론 산림관리당국의 허가 없이 함부로 설치된 것일게다.
지나친 상업주의는 뭇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보리밥집이 여러곳으로 늘어나면서 경쟁도
심해진듯하다.
음식찌꺼기,페수 등의 처리 문제,위생문제,
더 나아가서는 세금 납부 등등 당국의 규제가 절실한
지경에까지 이른듯하다.


오후2시15분.
조계산 최고봉인 해발887m의 장군봉과 선암사쪽으로 이어지는
갈래길인 굴목재로 향하는 해발 600m부근의 막바지 오르막길에는
이처럼 소나무나 조릿대 등의 상록수가 전혀 없이
거의 참나무 종류로만 이어지는 길이 잠깐 이어진다.
바쁜 도시생활에 찌든 마음에 가을의 공허함과 자연을 느끼게 해준다.


해발 620m의 굴목재가 머리 위로 보인다.
끝도 없이 이어질듯하던 수없이 많은 나무계단이
이제 끝나간다.
등줄기가 땀으로 축축해진다.


오후 2시56분.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까지 오른 후 선암사 주차장으로 향하게되면
일몰 전에 순천만 갈대밭까지 갈 시간이 안되기에 장군봉 산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굴목재에서 방향을 돌려
단풍나무 군락지로 알려진 선암사골을 따라
하산길을 택하여 내려오는 30여분간은 온통 단풍나무가 지천이다.
단풍의 절정기는 조금 지났지만 단풍잎늘 밟으며 지나는 길도
그 나름의 운치가 있다.


오후 3시6분
선암사측의 홍보자료에 의하면 그들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편백나무숲을 지난다.
일본이 원산지이며 그들이 "히노끼"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편백 [扁柏] 나무는 우리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발생되는 나무이다.


오후3시16분.
선암사를 좌측으로 끼고 계곡을 따라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하산길의 경치가 일품이다.
심한 가을 가뭄속에서도 게곡을 따라 흐르는 물 소리를 들으며
원색으로 붉게 물든 단풍잎을 바라보며 걷는길.
선암(仙巖)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신선들이 거닐만한 곳이다.


길 한쪽으로는 억새 군락지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많은 사람들이 억새와 갈대를 구분하지 못한다.
억새는 들과 산에 살면서 은빛 머리칼을 바람에 휘날리며
갈대는 물가에 살면서 갈색 머리카락을 나풀거린다.
물론 물가에 사는 물억새도 있지만,
흔히 남자에 비유하는 갈대에 비해 여자에 비유하는
억새가 훨씬 부드럽고 운치가 있고 긴 머리칼이 부드럽다.


오후 3시33분.
3시간여에 걸친 조계산 산행을 마치고 선암사 경내를 벗어난다.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한 선암사.
현재는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이다.


오후 4시51분.
선암사 주차장을 출발한 차량이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일몰을 30여분 남짓 남겨 놓은 시간이다.
철새서식지와 순천만을 조망할 수 있는 용산전망대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갈대밭 주위를 둘러 보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감할 수 밖에 없다.


일몰 시각이 가까워지며 철새들이 무리를 비어 비행한다.
'여자만 장어'라는 상호를 잉태한 장본인인 '여자만'으로 불리기도하는
순천만일대의 철새는 양보다 질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염습지 식물의 일종이며 새들의 먹이가 되는 칠면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기에
국제보호조인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가 세계 전개체의 약 1%이상이
서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재두루미가 발견되고 있다.
그 외에도 저어새, 황새의 발견기록이 있으며 혹부리오리가 세계 전개체의
약 18%가 서식하고 있으며 민물도요는 세계 전개체의 약 7%가 서식하고 있다 한다.


1964년 발표된 소설가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 " 을 통해
처음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순천만,
물론 소설속의 무대는 순천만의 일부인 대대포구 부근이긴 하지만 ..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
작가는 소설속에서 이곳의 안개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 이후로 대대포구의 아침안개는 유명해졌고,
더불어 순천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갯벌과 갈대밭,
포구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

추게 되었다.


이곳 약 30만평의 갈대군락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갈대 군락은 적조를 막는 정화 기능이 뛰어나
순천만의 천연 하수 종말 처리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홍수조절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한다.
또한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주고 안정감을 주어, 물고기들의 보금자리가 되며,
다시 이들을 먹이로 하는 수서 조류들이 찾아오게 된다.
순천만이 희귀 조류의 서식지가 된데에는 바로 갈대군락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한다.


오후 5시16분.
유난히 짧은 초겨울 해는 오늘도 어김없이 붉은 빛을 띄며 서산 너머로 돌아간다.
그에 따라 멀리 떠나온 길손들도 아쉬움을 남긴 채 귀가길을 재촉한다.

주말 하루를 행복하게 보낸데 대해 잠시나마 자연에게 감사를 드리며 나 또한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