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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대로 뒤덮인 가야산(해발1,433m) 산행기


2009년 11월15일 일요일 오전 10시 13분.
중부지방을 비롯한 내륙지방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갑자기 추워진 휴일 아침.
지난 1972년 10월13일 9번 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가야산국립공원 백운지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이다.
소백산맥의 지맥다운 바위 능선이 장관이다.


오전 10시22분.
정상까지 오르는 산행로 중 '심원골'은 입산 통제 상태이므로
우측의 '용기골'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멀리 4km이상 떨어진 정상부가 눈에 들어온다.
온통 상고대로 뒤덮인 정상부를 구름이 스치듯 지나친다.


오전 10시40분.
해발 고도 500여m 지점에서 출발한 산행인지라 정상까지는
높이 900m이상을 올라야하는 만만찮은 산행길이다.
용기골이라는 계곡가를 따르는 산행이다 보니
이와같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여러곳 지나야한다.
제2백운교를 지난다.


오전 11시8분.
산행 들머리에서부터 1.9km를 북쪽을 향해 쉬지 않고 올라
동성재에서 한숨 돌린 후 이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서성재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
정상인 칠불봉까지는 아직도 2.5km가 남았다.
산행로가 좁아지며 수많은 인파로 인해
정체 현상마저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전 11시39분.
서성재를 지나면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오르막 경사가 심해진다.

이제 정상까지는 1.2km가 남았다.
헐벗은 나무가지 사이로 정상부 바위 능선이 눈에 들어 온다.


조급한 마음에 300mm 망원렌즈로 정상 부근을 당겨 본다.
온통 상고대로 하얗게 뒤덮인 정상부근에는
이미 많은 산행객들이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낮12시6분.
정상인 칠불봉까지 남은 거리가 아직 800m가 남은 지점이다.
서성재를 지나면서부터 온통 암반인 급경사인데다
등산로가 비좁아 극심한 체증을 빚다보니
400m남짓한 거리를 오르는데 30분 가까이 걸렸다.
간혹 새치기를 하는 못된 인간들도 있으나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며 발길을 옮긴다.


낮 12시21분.
정상으로 오르는 막바지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듯한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을 끊임없이 오르는 고행길이다.
살을 에이는듯한 칼바람이 몰아친다.
남동쪽 아래로 상비계곡 너머로 노동저수지,
그리고 그 너머로 가을 걷이가 끝난
가륜리 마을의 논들이 보인다.


낮 12시33분.
너무 많은 인파로 인해 정체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그나마 주위의 바위틈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 가지마다 핀
하얀 상고대가 눈을 즐겁게하니 기다림이 덜 지루하다.


북쪽으로 정상부가 손에 잡힐듯 가까이 보인다.
그러나, 정상으로 향하는 깎아지른 절벽에 설치된
가파른 철계단을 한 줄로 이어 오르는
산행객들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오후 1시1분.
드디어 정상부로 향하는 마지막 철계단을 오른다.
마지막 800m를 오르는데 1시간여가 걸렸다.
세차가 몰아치는 강풍은 뺨을 얼어붙게 하고
철계단 난간을 붙잡은 장갑 낀 손이 얼어 감각이
없을 정도로 추위를 느낀다.


오후 1시4분.
드디어 정상 부근의 바위 위에 발을 내 디뎠다.
추위로 입술이 얼어 새파랗게 변한 와중에도
산행객들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이다.


멀리 북쪽으로는 성주군 가천면 마을들이 평화롭게 쉬고 있다.
구름이 강풍을 맞으며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해발 1,400m가 넘는 고산 지대에서 이처럼 맑은
시계를 보이는 날씨도 흔치 않으리라.


눈 앞에 이곳 가야산 최고봉인 해발 1,433m의
칠불봉이 상고대로 뒤덮인채 그 자태를 뽐낸다.


칠불봉 정상석 앞에 선 산행객들은
강한 바람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인지라
정상석을 안간힘을 다해 붙잡은채이다.

오랫동안 이곳 가야산 정상을 서쪽으로 250m 떨어진
상왕봉(우두봉)으로 통칭해 왔다.
상왕봉은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합천군이지만
이 칠불봉의 위치는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성주군이다.
성주군의 노력 결과 지난 1999년 국립지리원에서
가야산 최고봉은 칠불봉임을 공식 발표했다 한다.


250m 떨어진 저 앞의 상왕봉(우두봉)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칼날같은 거대한 암반이 상고대에 뒤덮인채 버티고 있다.
산행객들은 암반을 우회하여 상왕봉쪽으로 향한다.


오랫동안 이곳 가야산의 정상으로 군림해 온 우두봉 정상석에는
'합천군'이라는 글귀도 보인다.
칠불봉 정상석에는 '가야산 정상 1,433m'로 표기되어 있는데 비해
이곳 우두봉 정상석에는 해발 1,430m로 표기되어 있다.
우두봉(牛頭峰)이란 이름은 소의 머리를 닮은 때문이라 한다.


가야산은 가야국 창조의 정견모주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명산이다.
우두산, 상왕산, 운산이라고도 불리며, '개산'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가야산은 소백산맥의 한 지맥으로 조선 7대 세조대왕은 은 '천하명산이며
생불주처(生佛住處)'라고도 극찬했다.


칠불봉과 우두봉을 잇는 정상 부위는 온통 상고대로 뒤덮여 있다.
상고대(hoarfrost on the tree) 란 다른 말로
나무서리(수상;樹霜 ;air hoar)라고도 한다.
겨울철 날씨가 맑은 밤에 기온이 0도 이하 일 때
대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승화되어 차가워진 물체에 붙는 것을 말한다.


오후 1시18분.
가야산 주봉인 우두봉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최고봉인 칠불봉은 이제는 우두봉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너무 춥고 배도 고프다.


오전 산행시와 반대쪽인 남서쪽 해인사 주차장으로 향하는 하산 길이다.
비교적 넓은 공터가 있는 헬기장까지는 가파른 내리막 길이다.
겨울 산행시에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하산해야하는 위험 구간이기도 하다.


비록 날씨는 춥고 배도 고프지만
뜻하지 않게 일찍 찾아 온 한파 덕분에
올 가을 들어 처음으로 상고대의 아름다움을 만끽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늘진 곳은 눈과 얼음이 덮인 미끄러운 암반 사이를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산행객들이 줄을 잇는다.
가야산의 아름다운 자태를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 속 깊이 담아 본다.


오후 1시30분.
하산길도 인파로 붐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보다는 덜하지만 간혹 나타나는 빙판길,
그리고 눈을 현혹하는 아름다운 상고대 때문에 하산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갑자기 찾아온 이른 한파에 미처 인체가 적응을 못한 탓이겠지만
산행객들의 입술은 추위로 파랗게 변해 있고,
또한 허기로 지친듯하다.
그러나,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암벽 사면 어디에도 바람을 피해
식사를 할만한 곳은 없다. 빨리 하산하는 방법외에는..


오후 1시49분.
하산길에 나선지 30여분이 지났건만 아직도 해발고도는
1,300m이상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저 멀리 아래쪽에 건물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울긋불긋한 단풍 사이로
사찰 건물이 보인다. 아마도 해인사 주변의 홍제암이나
용탑선원쯤 되리라.
기운이 솟는다. 해인사까지는 대략 3.6km정도 남았다.


오후 2시18분.
비교적 넓은 공터가 있고, 남향인 헬기장에서 바람을 피하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지친 몸을 추스른 후 다시 하산길을
이어 간다.
뱃속이 든든해지니 추위도 가시고 다리에 힘이 솟는다.


오후 2시22분.
토신골갈림길 부근을 지나면서부터 한동안
조릿대 군락을 지난다.
이제 해인사까지 남은 거리는 2.6km남짓.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거리며 속삭이는
댓잎 소리를 귓전으로 느낌며 걷는 하산길은 너무 상쾌하기만 하다.


오후 2시41분.
토신골갈림길에서 마애불갈림길까지 이어지는 2km남짓한
이른바 토신골 구간은 아직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단풍들로 인해 아름다움을 느끼며 걷는 길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지난해에 이어 올 가을도
심한 가뭄으로 인해 계곡을 흐르는 물이 거의 메마른 점이다.


오후 3시3분.
토신골 계곡이 거의 끝나는 마애불 갈림길 부근에는
이처럼 낙엽이 수북히 쌓인 고이 자주 눈에 띈다.

옛 선현들이 이곳 가야산을 말할 때 '산형(山形)은
천하에 이보다 더할 것 없고,
지덕(地德)은 해동에 제일이라' 하였 듯이 이 낙엽들이 쌓여
토지를 비옥하게 하는 것일게다.


오후 3시18분.
해인사 서쪽 담장 너머 개울을 사이에 두고 자리한
용탑선원앞을 지난다. 이제 산길은 끝나는 지점이다.

해인사의 말사 중 하나인 이 용탑선원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용성스님의 사리탑을
수호하기 위해 1945년에 창건되었다 한다.


오후 3시26분.
해인사의 모든 건물 중 한 가운데 자리 잡은 구광루 앞에는
항상 그렇듯이 많은 참배객들이 탑돌이를 하며 각자의 소원을
빌고 있다.

구광루(九光樓)라는 이름은 화엄경의 내용에서 따온 것인데,
화엄경에는 부처님께서 아홉 곳에서 설법하시면서 그 때마다
설법하시기 전에 백호에서 광명을 놓으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다.


오후 3시30분.
이곳 해인사의 주불전인 대적광전 앞은 다른 사찰과 달리
시끌벅적거린다.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불도를 수행하는 사찰인지? 영리를 추구하는 시장 바닥인지 헷갈린다.

해인사는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으므로
대적광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대웅전을 찾아 헤매는 어떤 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대웅전이라는 이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실 때
쓰는 이름이라고...


오후 3시37분.
일주문을 벗어나며 해인사를 떠나 주차장으로 향한다.
이곳 해인사는 주차장,식당가 등이 있는곳까지 가려면
일주문에서 30여분을 걸어야한다.

일주문은 사찰의 경내로 들어가는 첫번 째 문이다.
기둥을 한 줄로 세워 짓는 건축 구조에서 일주문(一柱門)이라는
이름이 유래 한다.
이곳 해인사의 일주문은 '홍하문'이라는 별칭까지 붙어 있다.


오후 3시50분.
가야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해인사까지 이르는 4km의
홍류동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이 귀를 즐겁게 한다.
홍송이 울창한 홍류동계곡은 10여리에 걸쳐
수석과 송림이 이어진 절경으로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물이 붉게 보인다고 홍류동계곡이라 한다.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던 상고대와
붉게 물든 단풍을 만난 행복한 하루를 마감하는
나의 발걸음이 무척 가볍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