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삼각산(북한산) 산행기

2009년 11월28일. 토요일 오전 9시36분.
백운대,인수봉,만경대의 3봉이 구름속에 돌출하여
부용처럼 삼각을 이룬다는 삼각산 산행을 위해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에 위치한
북한산성 주차장에 주차 후 차에서 내렸다.

좌측의 원효봉(해발 509m)와 우측의 노적봉(해발716m) 사이로
멀리 백운대와 만경대가 구름 속에 어렴풋이 보인다.

오전 9시49분.
아침 7시에 대전을 떠나 오전 9시20분경 동행한 일행 4명을
약 3km떨어진 국사당 앞 숨은벽 능선 산행 들머리에 내려주고
삼각산 정상인 백운대를 향하여 시작한 나홀로 산행.

백운대 바로 아래인 해발 725m의 '위문'에서 일행을 만나
점심을 같이 하고 하산하기 위해서 걸음을 재촉한다.
이곳에도 지난주 오서산 등반시처럼
철 모르고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꽃을 만난다.

오전 9시58분.
해발 150m 지점에 위치한 대서문 앞에 당도했다.
저 문을 지나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이 대서문은 북한산 14성문 (1.수문지 2.서암문 3.북문 4.위문
5.용암문 6.대동문 7.보국문 8.대성문 9.대남문
10.청수동암문 11.부왕동암문 12.가사당암문 13 .중성문 14.대서문) 중
정문의 역할을 하는 문이다.

오전 10시1분.
대서문 안으로 들어서 북동쪽을 보니
북한산성 내의 상운사와 삼천계곡의 삼천사를 창건한
신라시대의 명승 원효대사가 수도를 한 곳으로 알려진
원효봉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원효봉 정상에는
이미 부지런한 산꾼들이 온 몸으로 행복감을 만끽하는 중이다.
저들도 지금 나처럼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던
원효대사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지나 않을까?

개연폭포를 거쳐서 내려오는 계곡에는
낙엽만 무성하고 물줄기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이맘 때처럼 올해도 심각한 가을 가뭄이
내 나라 금수강산의 고목들을 말려 죽일듯하여
마음이 착잡해 진다.

오전 10시6분.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변의 무량사 앞을 지난다.
일반에게 많이 알려진 충남 부여군 만수산의 무량사와 동명일 뿐인
이 무량사는 '법화종' 소속의 사찰이다.
'법화종'은 1946년 5월 정각(正覺) 혜일(慧日)이
고려의 대각국사(大覺國師)를 종조(宗祖)로 하여,
법화도량(法華道場)인 무량사(無量寺:서울 성북동 소재)를 짓고
창종(創宗)한 불교 종단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공식 등록된 불교 종파는 가장 많은
'조계종'외에도 수십개가 된다.
진각종.원효종.보문종.법상종.미륵종.총지종.삼론종.미타종.일붕선교종.
태고종.관음종.총화종.법화종.화엄종.천화불교.원융종.조돈종.열반종.
염불종.천태종.법화종.일승종.진언종.용화종.법륜종.본원종.여래종.대승종.정토종. 등등..

오전 10시19분.
'보리사' 바로 아래 계곡을 중심으로 수많은 음식점들이 난립해 있다.
이 음식점들은 북한산성 입구 주차장에서 산행객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한다.
차 한 잔만 팔아주어도 자신들의 승합차에 태워
내가 40여분을 걸어 올라온 이곳까지 매연을 뿜으며 왕래한다.
국립공원 관리자들은 이를 알고 있는지?
아니면 알고도 묵인하는지?
이 아름다운 계곡에서 음식점들이 완전히 사라질
그날을 애타게 고대해 본다.

오전 10시31분.
'보리사'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바위 투성이인
산길로 들어선다.
조금 전 음식점 주인 한분의 얘기에 의하면 오늘 내가 지나는
이 산행로 주변에먼 사찰이 16개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산 자락에는 일반에게 알려진
원도봉 망월사, 회룡사, 쌍용사, 대원사, 법화사, 덕천사, 석천사, 홍법사,
원효사, 천문사, 지장사, 호암사 송추 원각사, 송암사, 도성암, 석굴암,
북한산성 태고사, 진관사 원효사, 상운사, 노적사, 국녕사, 덕암사, 무량사,
선봉암, 묘법사, 대동사, 용학사, 봉성암, 중흥사, 삼천사, 백화사, 용암사,
각황사 ,보리사. 등 등 외에도 아마 100여개 이상의 작은 암자나 사찰이 있으리라..

만약 음식점과 함께 이들 암자나 사찰도 깨끗이 없어지기를 내가 바란다면
불교 신자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려나??

오전 10시48분.
아름다운 바위와 멋진 나무들의 경관에 취해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황홀함을 산산히 부숴버리는
이상야릇한 몰골이 발길을 가로 막는다.

이상야릇하게 생긴 일주문(기둥이 한 줄이니 일주문은 맞다.),
그리고 정채불명의 건축 양식과 위성 안테나..
'북한산 영취봉 대동사'라는 글귀가 보인다.
여기서 '영취봉'이란 원효봉과 잇닿은 '염초봉'의 옛 이름이다.

못 볼걸 본듯하여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오전 10시 59분.
산행을 시작하여 3.3km를 걸어 왔다.
이제 삼각산 최고봉인 백운대까지는 0.9km 가 남았다.
등줄기로 땀이 흘러 내려 등산 쟈켓을 벗고
얇은 상의 한 벌로도 추위를 느끼지 않는 포근한 날씨이다.

오전 11시7분.
우리나라 5악 중 하나라는 삼각산의 명성에 걸맞게
산행로 곳곳에 이처럼 거대한 암반들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위험구간마다 난간 등의 보호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오전 11시15분.
거대한 암반 구간을 지나면 어김없이
이처럼 온통 낙엽으로 뒤덮인 호젓한 구간도 나타난다.
낙엽을 밟을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고주파의 일종으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좋은 약이라고 한다. 낙엽 밟는 발에 힘이 들어간다.

오전 11시27분.
약수암 앞의 넓은 공터에서 잠시 한 숨을 돌리고
갈증을 시원한 물로 달랜다.
산행을 시작한지 두 시간 남짓.
무척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꽤 눈에 띈다.
평일 날 퇴근 후 매일 두시간 남짓한 운동 시간 중
한시간 이상을 빨리 걷기를 해온 덕분인지
아침보다 몸은 더 가벼워진듯 하다.

오전 11시52분.
백운대 바로 아래 위문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백운대까지 남은 거리는 400m이다.
체력이 달려 힘겨워하는 이들도 이제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전 11시55분.
해발 725m에 위치한 위문 바로 앞 바위에서는 2시간 이상 땀흘리며
올라온 산행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저 문을 들어서면 세찬 북풍이 휘몰아칠 것이므로
배낭에 넣어뒀던 쟈켓을 꺼내 입는다.

위문(衛門)은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으로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곳인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위문(衛門)이라 고쳐 불렀다니
옛 이름인 '백운봉암문'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낮 12시1분.
위문 안으로 들어서니 예상대로 강한 북풍이
갑자기 겨울로 변한듯 추위가 강하게 느껴진다.

좌측에 삼각산 최고봉인 해발 836m의 백운대가
그리고, 우측에 암벽등반의 명소로 알려진
해발 810m의 인수봉이 멋진 자태를 뽐낸다.

낮 12시44분.
위문 안 공터에서 아침에 헤어진 일행 4명을 다시 만나
점심 식사를 끝낸 후 백운대 정상을 향해
가파른 암반을 오르기 시작한다.
수많은 인파로 정체가 심하다.

멀리 태극기 휘날리는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낮 12시48분.
백운대 정상에 올라선 일행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나는 중간 지점의 암반 위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남쪽으로 해발 800m인 만경대가 눈 앞에 버티고 있다.

이곳 삼각산의 이름은 백운대,인수봉,만경대. 3봉우리가
부용처럼 삼각을 이룬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이름으로 '국망봉'이라 부르기도하는 만경대란 이름은
이 산에 오르면 만 가지 자연 풍광의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하며
'국망봉은 역사적 사실과 관계하여 생긴 이름으로
무학대사가 이태조의 명을 받아 도읍지를 찾아 만경대에 올랐다가
서남쪽의 비봉에 이르렀다 하여 국망봉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만경대 정상 부근
돌출된 바위 절벽 여러곳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친다.

북동쪽으로는 인수봉이 그 위용을 뽐내며 눈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암봉 뒤에 애를 엎은 형상의 바위가 붙어있다 해서 "부아악(負兒岳)"으로도
불리었던 인수봉(仁壽峰)은 공자가 '논어'에서 언급한
'인자요산 인자수 (仁者樂山 仁者壽)' 즉,
'어진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어진사람은 오래 산다'는 글귀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암벽 타기에 열중인
매니어들이 여럿 보인다.
아! 내가 일주일만 젊었으면???

낮 12시58분.
백운대 정상을 향해 암반을 오르기 시작한 일행 4명이
정상에 거의 도착했을듯한 시간이다.
솔개인지? 매인지? 이름 모를 새가 정상 주위를
선회한다.
깎아지를듯한 위험한 암반과 육식 조류의 날카로운
부리가 연상되어 으시시한 느낌마저 든다.

오후 1시 정각.
해발 836m 백운대 정상에 올라 선 일행 중 한 명이
휘날리는 태극기 아래에서 양팔을 흔든다.
이 사진은 초상권 보호를 위해 얼굴이 보이지 않게
축소한 사진이다.

오후 1시1분.
정상에 올라 선 일행 중 한 분이 찍은
정상석 사진이다.

저 뒷면에 새겨진 글귀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조국강산 겨레도 나라도 하나이기에
피와 사랑으로 한 덩이 되어 우리 손으로 통일을 이루오리다."이다.

오후2시7분.
백운대를 떠나 하산을 시작한지 한 시간 남짓.
이곳 삼각산의 명물 중 하나라는 개연폭포도 가뭄으로 인해
가느다란 물줄기가 겨우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오후 2시28분.
보리사 부근 평지에서 북쪽으로 원효봉이 뚜렷한 자태를 보여준다.
오전 내내 흐리던 날씨가 개이면서 파란 하늘도 보인다.
좌측 아래 산기슭에 덕암사의 모습도 보인다.

망원으로 당겨 보니 덕암사 대웅전 앞 뜰의
석조 부처상이 엄청나게 커 보인다.
이 덕암사는 원효대사께서 수련했다고 전해지는
동굴을 대웅전 법당으로 이용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 사진은 지난 2008년 9월중순
덕암사 경내에서 찍은 사진이다.

원효봉 정상에는 오후 시간이어서인지
인적이 드문 편이다.
나홀로 산행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1주일간의 정신적 피로를 푸는 최선의 방안임을
아는 멋진 분이 정상에 홀로 서 있다.

원효봉 너머로는 백운대가
그 이름에 걸맞게 흰 구름에 둘러싸여
늦가을 오후의 파란 하늘색과 어울린
멋진 자태를 뽐낸다.
이곳 삼각산은 볼수록 멋진 산임을 새삼 느낀다.

백운대 정상의 태극기 아래 둘러 선
산행객들의 모습이 일견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오후 2시38분.
오전에 지난 대서문을 나와 다시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외동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 대서문 문루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 양식 중 하나인 우진각 지붕으로
전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으로 되어 있다.
1958년에 당시 경기도 지사였던 최헌길의 주도로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오후 2시51분.
5시간 여에 걸친 산행을 마치고 북한산성 주차장에 도착했다.
하루를 마감하며
병자호란 때 김상헌(1570∼1652)이 청나라로 끌려가면서 읊었던
"가노라 삼각산아"를 입 속으로 읊어 본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