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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보석같은 섬 무의도(舞衣島)

2009년 12월19일 토요일 오전 10시 17분.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강추위를
여행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녹이며 대전을 출발한지
두 시간 반 남짓 지난 시각.
총연장 21km가 넘는 인천대교 초입에 차량이 들어섰다.

지난해 8월 말 주탑 사이의 상판 공사가 한장일 때,
그리고 금년 3월말 주탑 사이의 상판 공사가 완료된 후
배를 타고 바다 위에서 바라 보던 그 모습과는 또 다른 감흥을 느낀다.

오전 10시20분.
고속으로 한참을 달려온 것 같은데 아직도
길이가 800m인 주탑 사이의 주경간에 들어서지도 못했을 정도이니
인천대교의 규모를 짐작할만도 하다.

해수면에서의 높이 74m정도인 이곳에서 바라보는
주탑의 높이가 한참을 올려다 볼 정도이니
230m가 넘는다는 주탑의 높이가 아찔하게 느껴진다.

오전 11시14분.
인천대교를 지나 인천국제공항 남단의 해안도로를 따라
숨가쁘게 달려온 차량에서 내린 곳은
무의도행 카페리가 정박하는 잠진 선착장.

영하 7도를 가리키는 살을 에일듯한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건너편 무의도를 바라본다.
선착장까지는 불과 500여m 거리.
멀리 국사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호룡곡산도 눈에 들어 온다.

오전 10시18분.
무의도행 카페리가 방향을 돌린다.
인접한 인천공항 활주로를 향해 착륙하는
대형 여객기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 진다.

저토록 거대한 비행기가 거의 같은 속도와
각도를 유지하며 2~3분 간격으로 쉴새없이
착륙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긴장감을 느끼며 손 바닥에 진땀이 솟는다.

오전 11시28분.
무의도 선착장에 내려서서 산행을 위해 채비를 시작한다.
무척 추운 날씨이건만 행락객들을 태운 승용차 십여대,
대형버스 한 두대가 내리는가하면 또 타기도 한다.

오전 11시32분.
실미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는
실미고개쪽으로 향한 산행로를 따라 산길로 들어섰다.

사철 푸르름을 간직하는 소나무도 거의 보이지 않고,
겨울의 정취를 느낄 흰 눈도 없는 삭막한 겨울 산.
꽃이 거의 다 져버린 억새 군락을 스치는 겨울 바람 소리가
을시년스러움을 더해 준다.

덧붙여 음악을 크게 틀고 산행을 하는 몰상식한 산꾼 때문에
내 심기가 더 불편해 진다.
제발 산행 중에는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 주었으면..
산행 중에는 오직 바람 소리,새소리,낙엽 밟는 소리만 듣고 싶다.

오전 11시34분.
뒤를 돌아다보니
방금 내가 타고 온 카페리가 건너편 잠진 선착장을 향해
뱃머리를 돌리는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서 군데군데 보면 칠이 벗겨지고
또한 녹이 슬어 있던 어찌보면 못생겨 보이던
저 철선도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니 색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세상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좀 더 멀리서 바라 보면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음을 새삼 깨우친다.

온도계의 눈금이 영하 4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지만
가파른 경사를 지나 능선을 타는 길은
자그마한 소나무들이 북풍을 막아주어서인지
따사로운 겨울 햇살과 함께 온기도 느껴진다.

오전 11시46분.
서쪽으로 실미도가 내려다보이기 시작하는 곳.
아마 봄부터 가을까지는 이곳이 휴식장소로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온통 활엽수로만 뒤덮인 이 아늑한 공간에
이제는 차가운 북서풍이 휘몰아치며 낙엽만이 굴러 다닌다.

7만 5870평의 면적에 둘레 6㎞인 무인도
실미도 [實尾島]가 눈 아래 들어 온다.
북한이 저지른 1968년 1.21 사태에 대한 보복을 위해
중앙정보부가 창설한 북파부대원 31명이 3년 4개월 동안 지옥훈련을 했던
가슴 아픈 장소이기도 하다.
2003년 12월 개봉한 영화 '실미도'가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33년간 가려 있던 실미도의 베일이 벗겨진 역사의 현장이다.

하루 한 두차례 간조 때 바닷물이 빠지면
걸어서 실미도를 왕래할 수 있는데,
지금도 물이 빠진 시간이라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이
다수 눈에 띈다.

저들도 지금 나처럼 40여년전 저곳 실미도에서
목숨을 걸고 3년4개월간 훈련했던
31명의 이름 모를 우리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저 백사장을 걷고 있을까?

낮 12시18분.
1968년 4월에 창설되었다하여
일명"684부대"로도 불리어진 그 젊은이들을
넋을 놓고 생각하다 황량한 나무숲 사이로
비쳐드는 한 줄기 햇살에 정신을 차려
다시 걸음을 옮긴다.

1971년 8월23일 그날.
31명으로 출발한 대원중 3년4개월의 훈련기간중
7명이 목숨을 잃고 남은 24명.
그날 이들에 의해 살해당한 기간병 18명과
오후 늦은 시간 대방동 유한양행 앞
버스 안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한 20여명의
684부대원들,
그리고, 1972년 3월10일 사형 집행된 나머지 부대원
4명.. 이 모든 젊음들의 명복을 빈다.
그들이 살아 있다면 나와 비슷한 연배일 것이기에
가슴 속으로 진한 슬픔이 밀려 든다.

이곳 무의도의 최고봉이 호룡곡산 정상인 240여m로
산이라기보다는 야트막한 동산으로 이루어진
산책 코스이지만
아기자기한 숲길을 지나고, 조망이 뛰어난
해안을 지나는가하면 또 이와같은
멋진 바윗길을 지나기도한다.
일주일간의 일상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재충전의 장소로 최적인듯 하다.

낮 12시35분.
해발 230m인 국사봉 아래 전망대에서
북서쪽으로 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섬의 형태가 장군복을 입고 춤을 추는 것같다 하여
무의도(舞衣島)라는 이름을 얻은 이곳.
아마도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한
저 멀리 실미도 부근 바다에서는
기막힌 절경이 펼쳐지리라는 상상을 해 본다.

낮 12시44분.
해발 230m인 국사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하나개해수욕장' 주변 경관이 일품이다.

해수욕장으로는 드물게 개펄을 개방하기 때문에
조개류 등을 잡으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이곳.
‘큰 개펄’이라는 뜻을 가진 "하나개"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침 썰물 때인지라 백사장 바깥으로 개펄이 넓게 드러난다.

sbs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세트장이 있다하여
최근 휴일 가족 나들이객들이 유난히 늘어난 해수욕장
한 편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간이 승마장도 보인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오전에 배를 타고 건너온 무의도 선착장과 그 맞은편의
잠진도 선착장.
그리고, 그 너머로 광활한 면적을 가진
인천공항의 모습도 보인다.

오후 1시2분.
국사봉을 떠나 남쪽으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 하산하며
국사봉쪽을 돌아보니 해발 200여 m에 불과한
야산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멋진 풍광이다.

옛날부터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마다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내려오며
1950년대 말 이곳 정상에서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수백점의 토우들이 출토되었다는 국사봉.
"알프스라 칭할만큼 기암절벽의 비경과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는
홍보 문구가 머리를 스친다.

좌측의 국사봉과 우측의 호룡곡산 사이로 난
아늑한 계곡 사이에 자리 잡은
이곳 무의도의 중심부 정경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저 아래의 아담한 건물들 중에
보건소,파출소 등이 자리하며
600여 주민들과 보석같은 아름다운 섬
무의도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봉사 한다.

오후 1시56분.
억새밭이 비교적 넓게 펼쳐진 남향한
아늑한 숲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발걸음을 옮긴다.
하루 중 제일 따뜻해야할 시간임에도
온도계의 눈금은 영하 4도를 밑돈다.
잠시만 한 곳에 머물러도 입술이 파래질 정도의
강추위가 이어진다.

오후 1시59분.
구름다리 앞에 당도했다.
저 다리를 지나 곧장 가면 호랑이와 용이
싸웠다는 전설 때문에 '호룡곡산(虎龍谷山)'이라는
이름을 얻은 무의도의 최고봉인 해발 244m 지점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나는 해안 산책로를 택해 구름다리 아래로 지난다.

이곳을 찾았던 어느 사람은 관광안내 책자에 표기된
"구름다리"를 찾으려고 애썼으나 못 찾았다고 했다.
아마 그 사람은 너무 거창한 다리를 찾았던듯하다.
우리가 항상 찾고자 노력하는 행복이
내 주위의 작은 행복이 모여서 큰 행복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크고 보기만 좋은 대상을 찾는
그런 허황된 꿈은 잊는 것이 좋지 않을까?

건물 구조가 순수한 우리 전통 양식도 아닌
시쳇말로 "퓨젼"이라 불릴만한 어설픈 외양이지만
뭔가 꾸며 보려 애쓴 집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게 느껴지며 내 얼굴에 잠시 미소가
머물다 간다.

오후 2시35분.
산행이 끝나고 오전에 출발한 큰무리선착장을 향해
해안 길을 걷는다.
간만의 교차가 심하다는 얘기를 교과서에서만 배운 이들은
지금 이처럼 바닷물이 빠져 나간 후
수많은 S자를 그린 드넓은 갯펄을 바라 보며
자연의 신비함을 절감하리라.

삼한사온이라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로
10 여일 째 이어진 한파로 인해
조금씩 고인 바닷물까지 얼어 붙을 정도의
이 강추위가 물러간 뒤 저 작은 고깃배들마다
만선을 이룬채 함박 웃음을 머금을 우리네
이웃들의 얼굴을 떠 올려 본다.

인천공항으로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가
기나긴 인천대교를 옆에 두고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인
사렴도 위를 스치듯 지나간다.


오후 2시45분.
큰무리 선착장과 이어진 큰무리 마을은
인적이 거의 없이 세찬 바닷 바람만 휘몰아 친다.

부근에 실미도(實尾島)·소무의도·해리도(海里島)·
상엽도(桑葉島) 등 부속도서가 산재하여
이곳 주민들이 보통 '큰 무리섬'이라고 불러 온 때문에
이곳 이름이 큰무리 마을, 그리고 큰무리선착장이 된 것이다.

멀리 바다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인천대교의 사장교 부분의 중심을 이루는
주탑이 마치 벌거벗고 추위에 떨고 있는듯
느껴질 정도의 강추위이다.
해안가 구멍가게에 들어가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마셔 보았지만 그 때 뿐이다.

여기서 남동쪽으로 6~7km떨어진
1903년 6월에 대한민국 최초의 등대가 설치된
팔미도 상공에서 랜딩 기어를 내린 비행기들이
인천공항으로 착륙하는 모습이 보인다.

1일 평균 600여대의 비행기가
이착륙을 하는 인천공항이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라는
사실이 실감날 정도로
대형 비행기의 착륙 행렬은 끊임 없이 이어 진다.

돌아갈 배를 기다리는 동안
착륙하는 비행기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볼 수 있었다.
하늘에도 길이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쉴새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비행기의
착륙 궤적과 그 속도가 거의 일정하다.
마치 판박이를 보는듯 하다.

오후 3시8분.
선착장에서 카페리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겨울바다
불현듯 오래 전 20대 초반에 즐겨 부르던
'박인희'의 노랫 가사가 생각난다.

"물새도 가버린 겨울 바다에 옛 모습 그리면서 홀로 왔어라
그날의 진실마저 털어 버리고 굳어진 얼굴 위에 꿈은 사라져 가고
떠날 수 없는 겨울 바다여
바람은 차갑게 몰아쳐 와도 추억은 내 가슴에 불을 피우네..."

오후 3시37분.
4시간여를 머물렀던 무의도를 떠나
오전에 출발한 잠진 선착장으로 뱃버리를 돌린다.

저 무의도에는 제발 다리를 놓지 말고,
현재 2만여원에 불과한 승용차 도선료를 10배쯤 올려
자동차 매연으로 인한 환경 훼손을 막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오후 5시19분.
귀가길에 잠시 연안부두에서 발길을 멈춘다.
오후 늦게부터 하늘을 뒤덮은 구름 때문에
멋진 낙조를 보지는 못했지만..
지난 1980년대 초반 내가 가정을 꾸린 후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했던 곳이 인천이어서인지
항상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곳 인천이다.

세찬 바람과 강추위 때문인지 출어를 나간 배가
거의 없는듯 강풍에 대비해 단단히 묶인 배들이
가지런히 떠 있다.

오래 전인 1883년에 개항하여 126년의 역사를 간직한 연안부두.
이곳 연안부두를 출발하여 13시간이 걸려 제주에 도착하는
유명한 오하마나호도 저곳에서 출항한다.
조명을 밝히고 서서히 움직이는 저 배는
아마도 중국을 오가는 페리 보트인 것 같다.

오후 5시40분.
멀리 월미도 관광지의 불빛들이 하나 둘
밝혀지는 모습을 보며 토요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섬의 생김새가 반달의 꼬리처럼 휘어져 있다 해서
'월미도'라 불리운 섬.
그러나 지난 1920년대 초 돌축대를 쌓아 내륙과 연결되면서
이제는 섬이 아니지만 그 이름만은 유지되고 있는곳.

오래 전인 1904년 2월 9일 소월미도 앞바다에서
러시아 전함이 일본 전함과 부딪쳐 침몰하면서
러일전쟁의 발단이 되기도 했던 역사의 현장 월미도를
뒤돌아 보며 따뜻한 내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