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전북 부안 `변산 마실길`나들이

2009년 12월26일 토요일 오전 10시3분.
수년 전부터 유행병처럼 번지기 시작한 걷기운동의
열풍이 제주 올레길,지리산길 등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전라북도 부안군의 변산반도국립공원 주위 변산반도
일대를 걷는 "변산 마실길"이 지난 6월에 만들어졌다.

대전의 아침 기온이 영하 7도 이하로 떨어진 추운 아침
대전을 출발해 변산 마실길 1단계 구간의 중간쯤인
대항리 부근에서 차를 내려 바닷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멀리 바닷가와 반대쪽인 마을 초입에 멋진 자태의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다.
최소한 수백년은 되었음직한 나무 앞에
검은 돌로 만든 작은 비석이 있는 것으로도
저 나무의 가치를 짐작할 것 같다.
다음 방문 때는 저 나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아봐야겠다.

오전 10시10분.
바닷가를 걷기 시작한지 불과 5~6분이 지나지 않았건만
매서운 찬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 든다.
영하 4도 정도로 아침에 출발한 대전보다는 몇도 높은 기온이지만
세차게 몰아치는 바닷 바람의 위력이 대단하다.
그러나 폐부 깊숙히 스며드는 공기는 무척 상쾌한 기분을 준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눈발까지 가늘게 날리는 바닷가
세차게 밀려와 해변의 바위를 때리며 흰 포말을 일으키는
거센 파도가 마치 동해안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여름철에는 좀체 보기 드문 서해안의 파도를 보는 것도 새롭다.

세차게 밀려 들어왔다 조용히 빠져나가는
바닷물 속에 금 년 한 해 동안의 나쁜 기억들을
모두 씻어가 달라고 마음 속으로 기원한다.

밀려 나갔던 바닷물은 곧이어
조금 전보다 더욱 거센 기세로 해안으로 밀려 온다.
저 거센 파도와 함께 수많은 행운이
새해에는 우리 모두에게 닥쳐 오기를 고대해 본다.

오전 10시54분.
50여분 이상 이어진 해변 길은
모래사장과 함께 이와같은 각양각색의 멋진 바위들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곳의 이런 바위들은 대부분 화강암, 편마암 등이
오랜 기간 바닷물에 의해 침식 작용을 일으킨 결과이다.

오전 11시13분.
오후에 내소사 방문 계획을 잡은 때문에 마실길 구간중
1단계 종점 부근인 변산해수욕장에서 차량을 이용해
고사포 해변으로 바로 이동했다.
바람 부는 추운 날씨임에도 갈매기들은 물고기 사냥으로 분주하다.

고사포 해변에서 고사포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바닷물이 많이 들어온 상태인지라
이와같은 바위 능선을 따라 이동하는 길이다.
7천만년 이상 바닷물과 부딪치며 기묘한 형상을 한 바위들.
세차게 밀려 드는 파도를 피해가며 바위를 건너야하는
스릴 있는 구간도 있어 추위를 느낄 겨를도 없다.

세차게 밀려드는 파도가 바위 틈에 흰 거품을 만들어 놓았다.
멀리서 보면 흰 눈이 쌓인듯한 바위 저편으로
바다 가운데 작은 바위섬이 보인다.

새우 모양을 닮았다 하여 하(鰕)섬으로 불리는 저 섬까지
매월 음력 보름이나 그믐쯤에는 이곳 사람들이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약 2km의 바닷길이 열린다.

오전 11시46분.
고사포해수욕장의 자랑거리인
약 2km에 이르는 백사장과 방풍을 위해 심어 놓은
폭 300m의 넓고 긴 송림이 장관을 이룬다.

고사포(故沙浦)의 원래 이름은 고사포(鼓絲浦)였다 한다.
동편의 옥녀봉(玉女峰)어디쯤에 변산 24명당의 하나인
옥녀탄금혈(玉女彈琴穴)이라는 명당이 있어
하늘에서 선녀(玉女)가 내려와 거문고를 탈 때 있어야 할
장구와 거문고의 실 줄에 해당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북고자의 고(鼓)와 실사자의 사(絲)의 고사(鼓絲)마을이라고
불리었던 것인데,
그 후 일제 강점기 때 간척사업으로 포구도 없어지고
행정구역도 개편하면서 쓰기 쉬운 글자를 골라서 고사(故沙)마을이라 했다 한다.

오전 11시54분.
2단계 구간 종점부인 고사포해수욕장을 벗어나
성천포구로 들어선다.
작은 개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주위에 갈매기떼가
큰 무리를 이루고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부분에 물고기가 많다는
교과서 내용을 눈으로 확인하는 대목이다.

물빠진 포구에 매어 놓은 작은 고깃배들이
머리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추위를 피하고 있다.
유난히 작은 배 크기로 보아 아마도
쭈꾸미나 낙지를 잡는 배들인 것 같다.

아직 잎이 붙어 있는 갈대 군락이 세찬 바닷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갈대 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는 《변신 이야기》에서 갈대 소리를 일컬어
당나귀 귀를 가진 미다스왕(Midas)의 비밀을 안 이발사가 구덩이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 속삭인 그 소리라 했다.
나도 오비디우스처럼 여유로운 시심을 갖고 싶어 진다.

낮 12시8분.
세찬 바닷 바람이 몰아치던 해변을 벗어나
유동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영하의 날씨임에도 포근함을 느낀다.
수일 전 내린 눈이 거의 녹아버려
흰 눈에 덮인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눈에 담을 수 없음을
못내 아쉬워한다.

무성한 대나무숲이 그늘을 만들어 놓은
응달진 길목에는 그나마 잔설이 남아 있어
발밑으로 뽀드득하는 작은 소리를 들으며
눈길을 걷는 즐거움도 맛 본다.

낮 12시45분.
종암 마을을 지나 해변가 도로에 올라서서
조금전 지나온 고사포해수욕장을 바라 본다.
오전 내내 잔뜩 흐렸던 날씨가 조금씩 맑아진다.
오후 늦게 내소사 방문시에는 따뜻한 햇살을
느낄수도 있을듯하다.

멀리 남쪽으로는 아늑하고 평화로은
격포마을 너머로 대명리조트 건물군이 이렴풋이 보이고
그 너머로 닭이봉도 눈에 들어 온다.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바로 아래에 채석강을 굽어보며
우측으로는 격포해수욕장, 좌측으로는 격포항을
굽어보는 닭이봉 정상의 팔각정이 뚜렷이 보인다.

내소사 방문 일정에 맞추기 위해
적벽강 구경을 다음으로 미루고 지름길을 택해
격포마을을 기로 질러 발길을 이어 간다.

대나무의 고장인 전남 담양이 가까운 때문인지
비교적 따뜻한 남쪽 지방답게 돌담 사이사이를
장식하듯 자라는 대나무 잎의 푸르름이
싱그럽게 여겨 진다.

오후 1시19분.
변산해수욕장 북쪽 끝 부분에 만들어 놓은
해넘이채화대에 도착했다.
채화대 아래 바위에 만들어 놓은
"노을공주"의 헐벗은 상체가 추워보인다.

시간 관계상 건너 뛴 적벽강쪽 하늘의
구름이 걷히며 파란 하늘이 짙어진다.
파도도 오전보다는 많이 약해진듯하다.

전라북도기념물 제28호인 채석강에 이어
전라북도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된 적벽강이
붉은색을 띤 바위와 절벽으로 해안이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망원렌즈로 당겨본
적벽강과 연결된 일부 바위의 모양과
그 색깔에서도 알 수 있다.

해넘이채화대와 그 아래 노을공주상 주변의
바위 지대에는 이처럼 인적이 끊길 날이 없다.
여행 후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격포해수욕장을 가로 질러 채석강으로 향한다.
닭이봉 정상의 팔각정도 보이고.
멀리 아직도 공사가 끝나지 않은 격포항 방파제 모습이 보인다.

닭이봉 바로 아래 인 이곳은
옛 수군(水軍)의 근거지이며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관하의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곳이다.

약 6억년전부터 5억4천만년전까지로 추정되는
선캠브리아기의 화강암과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약 7천만년전의 중생대 백악기 지층으로 이루어졌다는
이곳 채석강의 바위들이 볼수록 신비하게 여겨진다.

두터운 적벽은 풍파에 씻기고 부서지면서 세로형 줄무늬를 만들었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주변의 백사장,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모양의 해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흰 포말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다.

채석강은 원래 ‘살깨미’라고 불리었는데,
파도와 흐르는 물에 씻겨 마치 수 만권의 책을 쌓은 것처럼 신비로운
절벽과 바다가 이루는 절경이 마치 중국 시성 이백이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다가
강물에 뜬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 물에 뛰어들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채석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살깨미"를 나름대로 풀어보자면
"살"은 우리 옛말로 '푸르다'는 의미일 것이고,
"개"는 '물가' 또는 "포구"를 말함이며
"미"는 '메'에서 파생한 말로 추측되는바 이는
'산' 또는 '언덕'을 뜻하는게 아닐까?
"살깨미"라는 우리말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채석강'이라는 이름 대신
옛 이름이 정겨운 "살깨미"라고 부르고픈 내 심정이다.

오후3시9분.
오전 10시부터 영하의 추운 날씨와
세찬 바닷바람에 얼어붙었던 온몸을
격포항의 따뜻한 식당에서 바지락 칼국수로 녹인 후
격포항을 떠나 마지막 행선지인 내소사로 떠난다.
배부르고 따뜻하니 다시 살아난 것 같다.

오후 3시52분.
부안군 진서면에 자리한
백제 고찰 내소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하늘의 구름은 거의 걷히고
짙푸른 하늘이 나를 반겨 준다.
어쨌든 파란 하늘과 밝은 햇살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영하의 추운 날씨임에도 주차장에서부터
내소사 일주문에 이르는 길목의 식당가에는
상당수의 인파가 나름 유명 관광지임을 실감케한다.
일주문 현판의 글씨가 "능가산내소사'라고 되어 있다.

내소사는 뒷 산인 내변산의 봉우리 중 관음봉(觀音峰:433m)
바로 아래에 있는데, 관음봉을 일명 능가산이라고도 하는 까닭이다.

오후 4시2분.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약 6백여m 전나무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짙은 전나무 향을 온몸으로 맡으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숲이 인공적인 면모가
짙은데 비해 이곳 내소사 전나무 숲은 자연미가 넘친다.
그래서인지 일주문 밖에서부터 전나무향이 진하게 전해 온다.

정면3간, 측면3간의 단층 팔작지붕 구조인
이 대웅보전은 1633년(조선 인조 11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모서리 기둥에는 배흘림이, 안기둥에는 민흘림으로 적용되어
안정감이 있다는 애기들을 한다.

오후 4시22분.
633년(백제 무왕 34년)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는
내소사를 떠나며 2009년의 마지막 주말을 마감한다.

내소사의 유래에 관하여,
일설에는 중국 당(唐)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와서 세웠기 때문에
'내소(來蘇)'라 하였다고도 하나 이는 와전된 것이며,
원래는 '소래사(蘇來寺)'였음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다.

다만 '소래사'라는 이름이 언제 '내소사'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