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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의 혼이 서린 한산섬 제승당과 망산 산행

2010년 1월9일 토요일 오전 10시50분.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혹한의 추위 속에서 대전을 떠나
한산도행 카페리를 타기 위해 도착한 경남 거제시 둔덕면 어구리 선착장.
마치 따뜻한 봄날을 연상시킬 정도로 햇살이 따뜻하다.
말 그대로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은 상쾌함이 느껴진다.

오전 11시4분.
11시 정각에 출항한 한산도행 카페리는 기분 좋은 엔진 소리를
귓전에 울리며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통상 한산도를 가기 위해서는 통영항에서 출항하여
한산만으로 들어가 제승당 입구의 선착장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나
이처럼 거제 어구리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제승당 동편에 위치한
소고포 선착장에 도착하기도 한다.
소요시간도 짧아서 12~3분 정도면 도착한다.

오전 11시39분.
오전 11시13분경 소고포선착장에 도착하여 차량을 이용하여
제승당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후 매표소(성인 입장료 1,000원),
대첩문,충무문을 거쳐 제승당 앞에 도착했다.

제승당(制勝堂)이라는 이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승리를 만드는 집”이라는 뜻이며 오늘날의 용어로 얘기하면
“해군작전사령관실”쯤으로 부를 수 있으리라.
이순신 장군께서 1593년 7월 15일부터 1597년 2월16일.
한양으로 붙잡혀 가시기까지 군무를 관장하던 곳이다.
총1491일분의 난중일기 중 1029일분의 일기가 여기서 쓰여졌다.
충무공이 떠난 뒤 폐허가 되었으나 1739년(영조 15년) 통제사 조경이 중건한바 있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인 1976년에 다시 세워졌다.

장군께서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되는
한산도가를 읊으신 ‘수루(戍樓)’의 모습이다.

일종의 망루 역할을 하는 이 수루에 임진왜란 당시 자주 오르셨던 장군께서는
왜적의 동태를 살피시는 외에도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하며,
그 마음을 시로 읊으시곤 하셨다.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은 후 수루에 올라서 멀리 한산만 쪽 바다를 바라 보았다.
한산만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뒷쪽에 잠시 후 산행에 나설 망산을 등지고
오른쪽은 고동산, 왼쪽은 한산대첩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문어포가 있다.

확 트인 한산만을 내려다보며 머릿속으로
학익진을 구상하여 세계4대 해전에 남을 만한 한산대첩이라는 쾌거를 이룸으로써
임진왜란 발발 후 처음으로 왜군에 대해 수군의 우위를 확보하신
충무공의 늠름한 모습이 그려 진다.

충무사 앞에는 주말을 맞아 장군의 영정에 참배하는 참배객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충무사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내부에는 종2품 통제사의 관복 차림을 한 장군의 영정이 정면에 자리하고 있다.
영정은 1978년에 사적을 정화할 때 정형모 화백이 그린 것이다.

충무사가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임을 알려 주는 홍살문이
파란 하늘과 어울려 아름답게 느껴진다.

*참고로 ‘충무사’는 이곳 한산도 외에도 우리나라에 여러 곳 있다.
내가 아는 곳은 아래와 같다.
*전남 완도군 고금면- 이순신 장군의 가묘터.
*전남 해남군 문내면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에서 데승한 공을 기려 만든곳.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이순신(李舜臣:1545∼1598), 정운(鄭運:1543∼1592), 송희립(宋希立)을 제향하고 있다.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약 100년 후 왜인의 악귀가 마을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불안해진 주민들이
1697년경 사당을 짓고 충무공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오고 있음
*고흥군 도화면
선조13년(1580) 7월 이순신 장군이 36세 때 이 곳 발포만호로 부임하여 선조 15년(1582) 1월
모함을 받아 파면되기까지 18개월간 재임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오전 11시53분.
1952년(선조25년) 7월초순의 한산대첩을 떠올리며 제승당을 떠난다.
우리 전통 건축 양식중 하나인 팔작지붕의 제승당과
그 좌측의 수루를 다시 한 번 머릿 속에 새겨둔다.

낮 12시11분.
제승당을 떠나 이곳 한산도의 주봉인 망산 산행을 시작한지 5분 남짓.
동백나무 터널을 지난다.
꽃봉오리가 점점 커져가는 나뭇잎 사이로 철 이르게 꽃망울을 터뜨린
선홍빛 동백꽃이 나를 반기는듯 하다.

한겨울 추위속에서도 머지 않아 봄이 올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듯한 선홍빛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동백꽃.
이미 전남 여수지방에는 20% 정도의 개화율을 보이고 있다한다.
이곳 한산섬에도 이달말경이면 활짝 피어난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리라.

낮 12시13분.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자마자 눈 앞에 절경이 펼쳐진다.
어머니 폼속같이 아늑함을 느끼게하는 한산만 바깥으로
무인도인 상죽도,히죽도 너머로 통영항이 보인다.

좌측으로는 한산대첩비 너머로 한국 100대명산 중 하나인
461m의 미륵산과 그 아래 해발380m 지점의 케이블카 탑승장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바로 아래가 통영운하이다.

통영운하란 길이 1,420 m. 너비 55 m, 수심 3 m. 통영반도의 남단과
미륵도(彌勒島) 사이의 좁은 수도(水道)를 말한다.
여수 ·부산 간 남해 내항로(內航路)의 요지로서 선박의 내왕이 빈번하다.

본래 이 좁은 목은 가느다란 사취(砂嘴)로 반도와 섬이 연륙되어 바다가 막혀 있었다.
한산대첩 때에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게 쫓긴 왜선들이 이 좁은 목으로 도망쳐 들어왔다가
퇴로가 막히자 땅을 파헤치고 물길을 뚫어 도망쳤다 하여 이곳을 판데목[鑿梁]이라고 부르는데,
왜군들이 도망칠 때 아군의 공격으로 무수히 죽었으므로 송장목이라고도 한다.

이 판데목에 운하가 만들어진 것은 1932년 12월로, 1
927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5년 6개월이 걸렸다.
일본인들은 운하를 파고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관명을 따다가
‘다이코호리[太閣堀]’라고 명명하였다.
이 운하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바다 목에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가 놓여 있어
인마(人馬)가 건너다니고 다리 밑으로는 작은 배가 왕래하였다.
운하와 함께 같은 시기에 해저터널도 건설되었다.

산행 초입은 이렇게 진달래,산벚나무 등등 키작은 활엽수들이 주를 이루고
간혹 자그마한 해송들이 띄엄띄엄 자라는 낙엽길이 이어진다.
마치 늦가을 육지의 산을 오르는 느낌이다.

낮 12시36분.
꽤 긴 시간동안 이처럼 울창한 상록수림이 이어진다.
편백나무,해송 등이 주를 이루어서인지
유난히 많은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는듯하여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산 높이로 치자면 동네 뒷산 정도에 불과한 야산이지만
오르고 내림을 수차례 반복하는 산행인지라 산행객들 모두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 산행을 할 때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린다.

오후 1시32분.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시작된 산행길.
자그마한 계곡 사이를 가로 놓은 예쁜 다리를 지난다.
이름하여 "망산교" . 자그마한 섬에서 만나는 다리. 느낌이 새롭다.

오후 1시58분.
산행을 시작한지 두시간 가까이 지난 시간이다.
해발 300m도 채 안되는 낮은 산이라하여
마음속으로 깔보던 사람들은 무척 고통을 느낄 시간이다.
손목시계의 고도계가 300m에 육박함으로 봐서는
망산 정상부에 거의 가까이 온듯하다.

오후 2시1분.
해발 293.5m인 망산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북쪽 바다 모습이다.
눈 아래로 오전에 카페리가 도착했던 소고포 선착장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는 좌도, 그리고 송도도 보인다.
서쪽으로 여수까지 이어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부분답게 푸른 바다와 점점이 박힌 작은 섬들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듯 하다.

남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이곳 한산도의 부속섬인
추봉도가 좌측으로 보이고
그 오른쪽 바다 너머로는 용초도와
그 옆의 작은 섬인 죽도도 눈에 들어 온다.
죽도 옆의 길다란 자생꽃섬인 장사도 너머로는
아름다운 다도해가 끝없이 펼쳐진다.

망산 정상 표지석 앞에서 멀리 미륵산 아래
통영운하쪽을 바라보는 저 산행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적의 동태를 살피던 망산(望山) 역할을 했다.
아마도 그래서 이 산 이름도 망산(望山)으로 불리게 되었으리라.

오후 2시7분.
망산 정상을 떠나 하산 하는 길.
동쪽 능선 끝 부분에 전망을 위한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이름하여 휴월정(休月亭).
아마도 뜨거운 햇님에 쫓겨
밤새 서쪽 산 너머로 걸음을 재촉하는 달님조차도
잠시 쉬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가는 곳이란 의미가 아닐까?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정도로
휴월정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아름답다.
추봉교라는 다리로 이어진 추봉도의 풍광과
작은 섬을 온통 독차지한듯한 해발 238m의
대봉산의 아름다움을 망막에 깊이 각인한다.

지난 2007년 7월에 개통된 길이 400m. 폭 13.3m의 저 추봉교로 인해
몽돌해변이 자랑거리인 봉암해수욕장과
한국전쟁 당시 공산포로 1만여명을 수용했던 포로수용소 유적,
동백.후박나무.모밀잣밤나무.팔손이나무가 우거진 난대수종 자생지,
갯바위 낚시터 등 숨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는 추봉도에 대한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되리라 한다.

오후2시17분.
가파르게 이어지는 하산길 한 모퉁이 절벽 아래로
이곳 한산도의 중심인 한산면사무소,보건지소,한산중학교 등이 있는
진두마을의 원색 지붕들이 보이고 그 뒤로 올망졸망 이어진
다랭이 논도 눈에 들어 온다.

바다 건너로는 추봉도의 중심지역인 봉암마을의 아름다움도
눈을 즐겁게한다.

오후 2시30분.
이제 산행이 거의 끝나고 큰길로 이어지는 숲길이 나온다.
몽돌 해변이 자랑거리인 봉암해수욕장과 맞닿은 봉암마을의
포구 풍경이 마치 남태평양이나 인도양의 유명 휴양지의
풍광과 견주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과 평온함으로 다가온다.

오후 4시28분.
한산도에서 망산 산행을 끝내고 귀가길
통영의 강구안항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1년 반만에 다시 동피랑을 찾았다.
동피랑이란 동쪽에 있는 언덕, 고개 라는 뜻이다.
과거 충무공 이순신장군께서 설치한 군영인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이다.

당초 통영시에서는 이 달동네를 낙후된 마을이라 철거후 공원을 만들 계획이었다 한다.
그러나 통영 시민단체(푸른통영21 추진위원회)에서 "달동네도 잘 가꾸면 아름다워진다"는 기치를 내 걸고
2007년 10월 정부 지원을 받아 미술 공모전을 열게 되고, 그 결과 전국 각지의 팀들이
통영의 달동네 마을을 이렇게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게 되었다.

어느 누군가는 이곳을 한국의 몽마르뜨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강구안항을 내려다 보는 동피랑 마을은
중앙시장 뒤 언덕에 53가구가 살고 있는 달동네이다.
이곳이 불과 몇년 사이에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하다.
주말 오후 시간을 이용해 이곳을 찾아 벽화 그리기에 열심인
저 어린 학생들이 무척 대견스러워 보인다.

오후 4시43분.
다시 바닷가로 내려와 멀리 언덕위의 동피랑 마을을 쳐다 본다.
며칠동안 이어진 강추위가 조금 풀리며
관광객들과 사진 애호가들의 행렬이 계속 이어 진다..

동피랑 주민들은 물론 저 곳을 찾은 많은 이들이
오늘 하루 내내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오후 4시46분.
유난히도 짧은 겨울 해는 이미 서산 머리까지 다가왔다.
잔잔한 겨울 바다위로 아직은 남아 있는 밝은 빛을 길게 비추며
해는 점점 기울어 간다.
하루 종일 먹이 사냥에 열중하던 갈매기도 안식처를 찾아 날개짓을 이어간다.
나 또한 추운 겨울날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보낸 행복감으로
주말 하루를 마감하며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