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민족의 영산((靈山) 태백산 산행기

2010년 1월23일 토요일 오전 11시4분.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가 몰아친 주말 아침.
오전 7시 대전을 출발해 태백산 산행로 기점 중 하나인
유일사 매표소를 통과해 산행을 시작한다.

어제부터 시작된 태백산 눈꽃축제 때문인지 산행기점 주차장은
차량과 사람의 홍수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할 정도이지만
산행로 옆 눈 쌓인 자연은 해발 900m를 넘는 고지대 다운
차분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오전 11시37분.
겨울 눈산행의 필수 장비인 아이젠을 등산화에 단단히 부착하고
눈 쌓인 길을 오르다보니 살을 에이는듯한 추운 날씨임에도
온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등산 파카 속에 껴 입은 옷을 한 벌 벗어 배낭에 넣으며 북쪽 하늘을 바라본다.
낙엽송,신갈나무 등등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이 보이고
멀리 이곳 태백산 정상보다 6m가 높은 함백산 정상이 보인다.

망원 렌즈로 당겨보니 좌측으로 해발 1573m인 함백산 정상부
돌 무더기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방송 송신시설도 뚜렷이 보인다.

지난해 8월23일 야생화를 보기 위해
만항재에서 출발해 함백산 정상까지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오전 11시49분.
이제 해발고도가 1,100m를 넘어 1,200에 육박한다.
곧게 뻗은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무척 맑은 오늘 날씨이다.
그러나, 고산지대의 겨울 산행에서 만날 수 있는 기쁨인 상고대가
전혀 없음을 다들 아쉬워 한다.

참고로 이 사진은 위와 같은 장소에서 지난해 1월17일
낮 12시48분에 찍은 사진이다.
오늘보다 기온이 높았던 그날은 나뭇가지 끝에 하얗게 피어난
상고대가 햇빛을 받아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장관을 연출한바 있다.

낮 12시2분.
1시간 이상을 걸어 올라오는 동안 어느덧 해발 1,300m에 가까운
유일사 쉼터 부근까지 도달했다.
산행 시작부터 마치 시장 바닥같은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인파는
변함이 없다.
또한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상고대가 나타나지 않은
겨울 산행에 대한 불만들도 계속 이어진다.


참고로 이 사진은 위 사진과 거의 같은 지점에서
지난해 1월17일 오후 1시6분에 찍은 사진이다.
산핼로 주변의 나뭇가지에는 물론 시야는 오늘보다 맑지 못하지만
멀리 보이는 산 등성이까지 온통 상고대로 뒤덮인 장관을 볼 수 있다.

낮 12시52분.
해발 1,400m를 넘는 주목군락지까지 불과 몇백m를 오르는데
40여분이 걸렸다.
시장바닥보다 더 복잡한 병목 구간의 정체 현상 때문이다.
이곳 역시 흰 눈이나 아니면 희고 두터운 상고대로 뒤덮여야 할
나뭇가지들이 앙상하게 헐벗은 상태이다.

넓게 이어지는 주목군락지의 어느 나무에도 상고대는 보이지 않는다.
상고대(hoarfrost on the tree) 란 다른 말로 나무서리(수상;樹霜 ;air hoar)라고도 한다.
겨울철 날씨가 맑은 밤에 기온이 0도 이하 일 때
대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승화되어 차가워진 물체에 붙는 것을 말한다.
아마 오늘 이곳 태백산에서 상고대를 볼 수 없는 이유는
10여일 이상 이어져 오는 이곳 강원도 지방의 건조주의보와
관련이 있을듯하다. 대기가 너무 건조하다보니
나뭇가지나 다른 물체에 얼어 붙을 수증기의 절대량이 부족했으리라.

비록 상고대로 덮이지는 않았지만 주목의 신비스러움은 눈을 즐겁게 한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속설이 있는 주목(朱木)은 고산지대에서
높이 20m, 지름 2m 정도로 자라고 몸집이 장대하고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나 자신 산행 중 멋진 주목 군락을 본 것은 해발 1,400. 1,500m가 넘는 산들인
덕유산,오대산,함백산,합천 가야산 산행 등에서이다.

참고로 이 사진은 지난해 1월17일 오후 2시23분에 찍은 같은 나무 사진이다.
상고대로 뒤덮인 모습이 흰 옷으로 갈아 입은듯하다.

오후 1시23분.
이곳 태백산 정상부인 해발 1567m지점인 장군봉에 도착했다.
5분 거리에 있는 천제단의 모양을 본뜬 이 제단은 '장군단'이라 칭한다.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 장군단 내부 모습만 급히 한 장 사진으로 담고
몸을 돌려 나오고 만다.

오후 1시27분.
장군단 앞 공터에서 남동쪽으로는 소백산맥 산줄기의 시작점이자
중국의 태산과 높이가 같다는 해발 1547m인 부쇠봉,
그리고 산봉우리의 자갈로 된 돌무더기가 눈이 쌓여 있는 것 같아
태백산이라 이름 짓게 했다는 해발 1517m인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육산인 태백산의 완만한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 진다.

오후 1시32분.
이곳 태백산을 민족의 영산((靈山)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한
천제단(天祭壇) 앞 넓은 공터에서 방금 지나온 장군봉 쪽으로는
수많은 산행객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태백산이 몸살을 앓는다는 긴급 뉴스가 저녁 시간대의 화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천제단의 모습이다.
제단을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족국가시대부터
이곳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것을 보면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일제시대까지 이곳에서 천제를 지내고
그 의식이 아직도 이어져 매년 개천절에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국가의 태평과 안정, 번영을 기원하는 동제의 장소로 이어지고 있다.

천제단 내부 모습이다.
‘5세 단군 구을(丘乙) 임술 원년에 태백산에 천제단을 축조하라 명하고
사자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환단고기),
‘일성왕 5년 10월에 왕이 친히 태백산에 올라 천제를 올렸다’(삼국사기),
‘태백산은 신라 때 북악으로, 중사(中祀)의 제를 올리던 곳’(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이 전할 정도로 이곳은 예로부터 신령스럽게 받들던 곳이다.

오후 1시36분.
수많은 인파에 떠밀리다시피 하며 천제단을 떠나 발길을 이어 간다.
이곳 천제단이 위치한 곳은 해발 1561m로 장군봉보다 6m가 낮은 곳이지만
태백산의 정상석은 이곳에 세워져 있다.

오후 1시53분.
천제단 바로 아래의 단종비각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망경사로 발길을 옮긴다.
이 단종비각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은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다.
비각 안에는 ‘조선국 태백산 단종대왕지비’라고 적힌 비석이 있다.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단종의 영혼이
백마를 타고 태백산에 와서 신선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비각은 지난 1955년 망경사 박묵암 스님이 건립한 것이며,
비문과 현판 글씨는 오대산 월정사 탄허 스님의 친필이다.

오후 1시56분.
천제단 아래 100여m떨어진 곳에 자리한 망경사는 마치 4월초파일의 유명 사찰 경내와 다름없다.
주목군락지에서 천제단으로 이어지는 정상부의 칼바람을 피해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산행객들로 거대한 임시 식당이 만들어진 양상이다.

망경사 앞에 자리한 용정(龍井)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추위와 허기에 지친 속을 달랜다.
용정(龍井)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470m)에 위치하고,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샘물로서
천제의 제사용 물로 쓰인다고 한다.

오후2시19분.
수많은 인파에 뒤섞여 선채로 준비해간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 얼음덩이를 씹는듯하지만
음식물이 뱃속으로 들어가니 다시 기운이 나는듯하다.
망경사를 떠나 본격적인 하산길에 오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인 이곳 망경사[望鏡寺]는
652년(신라 진덕여왕 6년) 자장(慈藏)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오후 3시2분.
당초 산행을 시작하며 예정했던 부쇠봉,문수봉으로 이어진 산행길을
수많은 인파로 인한 정체현상 때문에 망경사에서 해발 1,200m의 반재를 거쳐
당골로 이어지는 하산길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망경사에서 당골로 이어지는 한 시간 여의 하산길은
눈 덮인 산길과 얼음과 눈이 절경을 이루는 아름다운 풍광이 이어지는 길이다.

오후 3시19분.
4시간 여의 태백산 산행을 끝내고
제17회 태백산 눈축제 행사장 중 최대의 인파가 운집하는
태백산 도립공원에 위치한 단군성전을 둘러 본다.

단군의 영령과 영정을 모신 이곳 단군성전은 단기4326년(1993년) 개축한 곳으로
매년 10월3일 개천절에는 단군제례를 지내고 있다.

오후 3시25분.
석탄박물관 앞 넓은 공터에 마련된 눈축제장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한
각종 공연 등 행사가 한창이다.

어제인 1월22일 시작되어 1월31일까지 이어지는 제17회 태백산 눈축제는
이곳 당골에 자리한 태백산 도립공원 외에도 태백시에 자리한 황지연못 및
모투리조트와 연게하여 동시에 진행되는 행사이다.

오후 3시 28분.
귀가를 위해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당골 광장 한 모퉁이에는
분수의 물을 이용하여 얼음을 특이하게 얼린 곳이 있다.
옆으로 지나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붐비는 곳이다.

해발 980m에 조성된 당골광장의 이름은 용정에서 발원하여 다른 골짜기 물과 합쳐진 뒤
소도동으로 약 3㎞에 걸쳐 흐르는 당골계곡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며.
계곡 이름은 계곡을 따라 많은 신당(당집)이 들어서 있어서 붙여졌다 한다.

오후 3시37분.
주차장으로 향하는 태백산 도립공원 입구의 4차전 도로가 수많은 인파로 메워진 상태이다.
지나치게 많은 인파로 인해 주차장으로 차량 진입이 안되어
20분 이상을 걸어 내려가 국도변에 주차한 차량까지 피곤한 다리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 많은 인파로 짜증이 나긴했지만 한 편으로는 사람 사는 재미가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긍정적 생각으로 주말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