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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일출에서 정동진 석양으로 이어진 겨울 바다 여행

2010년 1월17일 일요일 아침 7시9분.
새벽 1시 대전을 출발해 새벽을 달려온 차량이
낙산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5시가 좀 넘은 시각.

뜨거운 떡국으로 추위에 움츠러든 몸을 달랜 후
일출을 맞기 위해 낙산사 의상대 옆 절벽 위 난간에 섰다.
오전 7시40분인 일출 시각을 30여분 앞두고
멀리 수평선이 붉은 빛을 띄기 시작한다.

오전 7시11분.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이른바 시민박명 시간이 되자 주위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 온다.
수평선을 따라 짙게 드리운 짙은 구름이 야속하게 여겨진다.

오전 7시42분.
일출 시각인 7시40분에서 2분이 지났건만
짙은 구름에 가려 보고 싶은 붉은 태양은
아직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오전 7시47분.
일출 시각에서 7분이 지나자
이제 짙은 구름 위로 붉은 태양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추위에 언 몸을 움츠린채 수평선을 바라보던
주위 사람들 입에서 자그마한 탄성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금년 1월1일 아침 부산 광안리에서
새해 첫 일출을 맞으며 나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이미 빌었던 기억이 있기에
이번에는 저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를 아는 모든이들이 금년 한 해
행복한 삶을 이어가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한다.

오전 7시49분.
이제 붉게 솟아 오른 태양이
수평선에 드리운 짙은 구름을 박차고 올라
둥근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38만km의 거리를 둔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에비해
그 400배인 1억5천2백만km떨어진 태양이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기 위해 떠올랐다.

오전 7시53분.
지름이 139만km로 그 크기가 지구의 130만배에 달하는
저 거대한 태양이 중심온도 약 130만˚C의 열을 내뿜는다.
그에 따라 표면 온도 약 5,600˚C의 뜨거운 열기를
이곳 낙산사 의상대 앞 해안까지 보내온다.

오전 7시55분.
밝게 떠오른 태양은 이제 온천지에 따뜻함을 보내 온다.

기둥 교체 등 보수공사가 진행중인 의상대 옆으로
저 멀리 바닷가 절벽 위에 경남 남해 보리암,
강화도의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중 하나인
홍련암에도 태양 빛은 고루 비추인다.

오전 8시4분.
언덕 위의 해수관음보살상과
그 아래의 원통 보전도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오늘 하루 이곳을 찾을 참배객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아마도 내가 다음번 이곳을 찾을 때는 저 흰 눈들이
초록 풀빛으로 바뀌었을 때쯤 되리라.

오전 10시10분.
낙산사를 떠나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위치한
환선굴을 찾아 장소를 옮겼다.
환선굴과 대금굴 관람객을 맞는 문 너머로 멀리
덕항산 줄기의 눈에 덮인 능선이 하얗게 빛난다.

오전 10시25분.
지난 2007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를 시작한 대금굴은
2년전 관람을 했지만 환선굴은 나 자신 처음이다.
환선굴의 전설과 관련된 촛대바위 바로 아래에서부터는
환선굴 탐방객의 편의를 위한 모노레일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오전 10시41분.
평소 등산을 즐기지 않는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상당히 힘겹게 여겨질 정도의 가파른 오르막과
급경사의 철계단을 30여분 걸어 오른 후
해발 500m에 위치한 환선굴 입구에 도착했다.
남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동굴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입구부터 그 규모가 웅장하다.

지난 1997년 10월부터 일반에 공개된 이 환선굴은
주굴의 총길이가 약 6.5km에 달한다고 한다.
초입에서부터 이와같은 멋진 자연의 신비를 보여 준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진 용액이 마치 고드름을 거꾸로 세운듯하다.
얼핏 보면 얼음인듯 하지만 얼음은 아니다.
내부 온도가 10 ~ 15℃로 영상의 기온이다.

미녀상(美女像) ;유석(流石)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곳이다.
백색의 유석이 자란 후에 황색의 유석이 그 위를
덮으면서 자란 때문이라 한다.
자세히 보니 유난히 각선미가 좋은 미인으로 보인다.

머리를 숙이고 겨우 지나가야할 좁은 부분이 있는가하면
이처럼 넓고 높은 지하 광장 같은 곳도 있다.
천장의 유석은 지금도 아주 느린 속도로 떨어진다.

동굴 속에 또 작은 동굴들이 있고
그곳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모여 작은 연못을 이루고
그 물이 흘러 자그마한 폭포를 이루며 아래로 흘러 내린다.

동굴벽과 천장의 형태와 색깔이 천차만별이다.
철계단과 난간으로 이루어진 관람로를 따라
조금만 천장 가까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
카메라 렌즈가 김에 서려 뿌옇게 될 정도로
습기가 심한 곳도 종종 만나게 된다.

동굴속을 흐르는 물줄기가 만들어 내는 정경 중
간혹 이처럼 세차게 흘러 내린 물이 멋진 폭포를
만드는 곳에서는 물줄기의 시원함을 눈으로 보는 외에
귀로도 시원한 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랑의 맹세"라는 안내문이 붙은 곳이다.
동굴이 확장되기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용식지형이
천장 가까이에 하트 모양으로 발달한 곳이다.

"이곳에서 우정과 사랑을 맹세하게 되면
영원히 변치 않게 됩니다...'라는 안내문 문구 때문인지
디카로 추억만들기에 열중인 커플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곳이다.

'옥좌대(기형휴석)[玉座臺 :奇形畦石]'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곳이다.
동굴천장으로부터 많은 물이 떨어지면서
특이한 형태의 휴석이 형성된 것이라 한다.

이 생성물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생성물의 형태를 보여주는
환선굴만의 자랑거리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잔잔한 물에 비친 동굴 내부의 모습과
조명을 밝힌 자그마한 다리 풍경이
마치 멋진 다리의 야경 모습을 연상 시킨다.

오전 11시43분.
주굴 길이 6.5km중 1.6km에 불과한
개방 구간을 관람하는데만 꼬박 1시간이 걸렸다.
천장 높이가 100m에 달하는 곳도 있을 정도의
웅장한 동굴의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오래 보전 되기를 바란다.

낮12시3분.
환선굴을 나와 주차장 부근의 눈 쌓인 계곡가를 지난다.
환선굴에서 흘러 나온 물은 아마 추운 날씨에도 얼지 않고
흘러 내리는듯 하다.
2년전 가을 가뭄이 심할 때도 이 계곡을 이처럼
맑은 물이 흘렀던 기억이 난다.

오후 1시4분.
환선굴을 떠나 강원도 동해시 북평동의
추암해수욕장 한켠의 능파대 위에서 바라 보는 촛대바위는
수년 전부터 보아오는 것이지만 볼 때마다 그 모습이 새롭다.

조선 世祖 임오년 (壬午年) (1462년) 이곳을 찾은
한명회 (韓明澮)는 능파대기 (凌波臺記) 에서

" 삼척군 동쪽으로 십리쯤 가면 한 곳에 경치 좋은 곳이 있는데
혹은 불끈 솟아 오르고 혹은 구렁이 나고 절벽을 이룬 것이 바다 가운데 있다.
그 위는 매우 넓어 수십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고 기암괴석이 좌우로 늘어 서
흡사 사람이 눕기도 하고 비스듬이 서 있기도 하는 것 같고
또는 호랑이가 꿇어 앉은 것 같기도 하고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이 천태만상을 이루었으며
소나무가 우거져서 그 사이로 비치니 참으로 조물주의 작품이라 하겠다.

강릉 경포대와 통천 총석정과는 그 경치가 난형난제이며
기이한 점은 이곳이 더 좋다 하겠다.
속되게 "추암" 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고.
이제나마 자년에 대하여 부끄럼이 없게 "능파대" 라고 그 이름을 고치노라."

라고 했다.

오후 1시22분.
이곳의 경치중 촛대바위보다는 이 형제바위를
더 좋아하는 나 자신이기에 길이 150m에 불과한 자그마한
추암해수욕장 모래 위에서 형제바위를 바라 본다.
마음이 차분해 진다.

참고로 이 사진은 위의 형제바위를
지난 2008년 1월20일 새벽 5시51분에 찍은 사진이다.
다만 불빛이 거의 없는 깜깜한 밤인지라
카메라 셧터 노출시간이 5분40초에 달하는
초 장노출로 찍은 사진이다.

오후 1시25분.
내 마음 같아서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저 형제바위를 보며 하염없이 앉아 있고픈 심정이건만
혼자만 떠난 여행이 아니기에 일행과의 합류를 위해
갈매기의 배웅을 받으며 추암을 떠난다.

오후 3시5분.
추암을 떠나 정동진으로 향하는 길
묵호항 북쪽 300m지점에 있는 까막바위 앞 음식점에서
생선회와 매운탕을 곁들인 맛깔스런 늦은 점심을 마치고
문어상(像) 앞에서 까막바위를 바라 본다.

까마귀가 바위에 새끼를 쳤다 하여 ‘까막바위’라 부르는데,
국보 1호 숭례문의 정동(正東) 방향에 있다고 한다.

까막바위 앞의 작은 바위에 부딪쳐 포말을 일으키는 흰 파도를 보니
마치 이 작은 바위가 까막바위를 파도로부터 지키려는듯도 하다.

조선시대 중엽, 망상현(지금의 묵호동)의 의로운 호장(戶長; 지금의 통·이장)이
문어로 환생해 왜구를 물리쳤고, 그 영혼이 까막바위 아래의 굴에 살고 있다는
전설 때문에 이곳에 문어상을 만든 것처럼.....

오후 4시9분.
늦은 휴일 오후 정동진 바닷가를 찾은 이들은
한결같이 흰 포말을 일으키며 쉴새없이
밀려드는 동해 바다의 상쾌한 경치에 넋을 잃는다.

멀리 정동항 방파제 끝에는 최근 강릉시와 주민들 사이에
해돋이조망권 문제로 다툼을 벌이는 문제의
28억짜리 돛단배 조형물도 보인다.
서로간의 다툼이 원만히 해결되기 바란다.

오후 4시17분.
모래가 아래로 떨어지는 데 1년이 걸리는 지름 8m, 폭 3m, 무게 40톤,
모래 무게 8톤인 준공 당시 세계 최대였던(현재는 잘 모름)
"모래시계"서쪽 너머로 석양이 기울어 간다.
해변가에 자리 잡은 모래시계 공원을 떠난다.

오후 4시23분.
모래시계 공원을 떠나 꽁꽁언 얼음위에서
썰매를 즐기는 관광객들을 뒤로 하고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지난다.

4~5년전까지만해도 호황을 누리던 이곳 정동진이
이제는 영세 민박업주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관광객 급감에 음식점의 폐업이 속출한다는 이곳 정동진.
새로운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지 않으면 아마
수년 후에는 드라마 모래시계 이전의 한적한 어촌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정동진이 수년전의 명성을 되찾기를 바라며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