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통일신라 문무대왕의 혼이 살아 있는 울산 대왕암을 찾아..


2010년 1월31일 일요일 낮 12시12분.
대왕암을 거쳐 일산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해안 산책을 위해
아침 일찍 대전을 출발하여 첫 발을 내 민 방어진항에는
흐린 날씨지만 봄기운이 완연하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 끝으로 온풍이 느껴질 정도의 날씨 탓인지
겨우내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듯 봄의 전령사인 동백꽃이
요염한 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방어진항 남단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 326-14번지에 자리한
과거 일본인들이 섬기던 신사(神祠)였던 용왕사 좁은 앞 뜰을
독차지한 수령 8~900년 된 노송은 옛 모습 그대로인듯 하다.

8~9백년전 바닷가 우물 근처에 살던 용이
여의주를 옥황상제에게 물어다 주고,
이를 기특히 여긴 옥항상제가 용이 승천한 자리에 소나무를 심게했다는
전설로 전해 오는 키 2m, 둘레 4.2m,
가지길이 동서 10m, 남북 20m의 거대한 이 소나무는 최근
울산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는 소식도 전해 온다.

낮 12시36분.
용왕사에서 다시 되돌아 본격적으로 해안 산책을 시작한다.
멀리 남동쪽으로 방어진항 방파제와 그 너머로 슬도의 모습이 보인다.

방어진이란 이름은 "방어"라는 등 푸른 생선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 진다.
최소한 조선 초기부터 불리던 이름인듯하다.
세종 시절 집현전 학자이던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
삽입된 '염포지도'에서 "방어진목장"이라는 문구를 찾을 수 있다.

오후 1시47분.
영상 10도에 육박하는 따뜻한 날씨인지라
방어진 방파제에서 바닷바람을 느끼며 점심 식사와 휴식을 끝내고
'성끝마을' 남단에서 슬도(瑟島)로 이어지는 방파제로 들어선다.

'성끝마을'은 일명 "꽃밭등"이란 이름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울기등대 부근까지 조선시대에는 목장이었다 한다.
목장의 울타리를 마성 (馬城)이라 했으며, 그 끝 부분을‘성끝’이라 불렀다.
그리고, 울기등대로 오르는 동남쪽 기슭을‘꽃밭등’이라고도 했다.
당시 이 일대는 말의 분뇨로 비옥해진 땅에서 봄이 되면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동부 지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된다.
그리하여 이것을‘마성방초(馬城芳草)’라 하였으며
오늘날 ‘방어진 12경’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오후 2시3분.
전체 면적 3083㎡의 슬도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등대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성끝마을 남단에서 길이 43m, 폭 6m의 방파제로 연결되어
이제는 걸어서 지나는 무인도였던 섬 아닌 섬인 슬도.
휴일 한낮의 이런 여유로움도 1년여 후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질 것 같다.
2011년 2월 준공 예정으로 이곳 슬도를 관광위락단지로
개발하기 위한 공사 기공식이 이미 거행되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이 작은 무인도 전체가 다공질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동해의 거센 파도가 다공질 바위에 부딪칠 때 마다
바위에 뚤린 수많은 구멍들이 내는 소리가 마치 거문고 소리같다하여
'슬(瑟 :거문고 슬)도'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를
이 지역 시우회원(詩友會員)들이 방어진 12경을 읊으면서
"슬도명파(瑟島鳴波)"라는 문구를 쓴 것으로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슬도 등대 앞에서 멀리 복동쪽을 300mm 망원렌즈로 당겨본다.
'배미돌'너머로 대왕암과 대왕암을 공원과 연결해 주는
대왕교가 손에 잡힐듯하다.
이제 저곳까지는 한 시간 이상 걸어야 도착할 것이다.

오후 2시20분.
대왕암을 향해 해안산책로를 따라 북동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뒷편으로 보이는 슬도 주변 바닷가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아마도 동해안답지 않게 유난히 잔잔한 파도 때문이리라.

오후 2시24분.
이 바위의 현재 이름은 "배미돌"이다.
원래 이름은 방어진 동쪽 해안에 자리한 때문에
'동쪽의 바위'라는 뜻의 "샛돌"이었다.

그 이름이 세월이 흐르면서 "새"라는 발음이 "사"로 전이되고,
어느결엔가 "사"를 "뱀 사(蛇)"로 오인하게 되고
더 나아가 '뱀"을 뜻하는 지방 사투리인 '배미'로 변하면서
이 돌의 이름이 "배미돌"이 된 것이다.

배미돌을 지나면서 뒤돌아보니
배미돌 위에 올라 선 사람들 많은 사람들 중
여자들이 대부분인듯 보인다.

이브가 뱀의 유혹을 받아 아담에게 선악과를 건넨 이후로
뱀은 여자를 상징하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쓸데 없는 생각을 해 본다.
그만큼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평화롭다는 의미일게다.

오후 2시45분.
근 30 여분을 바닷가 자갈을 밟으며 파도 소리를 귓전으로 느끼며 걷는 길.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해안 산책을 하며 조개를 캐는 사람,미역 줄기를 걷는 사람 등등..

20 여년 전 이곳 울산에서 2년 여를 거주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삶의 풍요로움을 보며 삶의 질이 어떤 의미인가를 되새긴다.

오후 3시
대왕암공원 바로 아래에서 공원 입구로 올라 서며
고동섬 옆을 지난다.
바닷가의 작은 바위섬 두개로 원래 이름은 "수리바우"였다 한다.
'수리'라는 발음이 세월이 흐르며 "소라"로 변하고
소라의 사투리인 "고동"으로 변한 섬이라 한다.

좌측의 작은 고동섬은 "뱅어돔", 우측의 큰 고동섬은 "감성돔"
포인트로 바다낚시꾼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이곳이다.
작은 고동섬 밑에 큰 굴이 형성되어 있어
물고기의 서식처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라 한다.

오후 3시12분.
대왕암과 울기등대가 있는 대왕암공원 입구에서부터
대왕암쪽으로 산책 길을 이어 간다.

이른 봄철에는 좌측의 동백나무 의 요염한 붉은 빛에 취하고
봄이 무르 익으면 우측의 벚나무에 피어나는
흰 벚꽃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길이 이곳이다.

엄동설한 속에서도 움을 틔워 꽃을 피운다는
매화 꽃 보다 더 빨리 꽃 소식을 알려 주는 동백꽃이
이제 막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동백꽃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
지난 해 3월1일 거제 장승포 앞바다의 지심도로
동백꽃을 보러 떠났던 기억을 떠 올리다 다시 현실로 돌아 온다.

오후 3시17분.
울기등대 앞을 지난다.
동해에 가장 돌출한 곳에 세워진 이곳.
선 고종 43년, 광무 10년(1906) 노일전쟁때 건설한 등대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세 번째로 세워진 등대이다.

정문에 붙은 현판 글씨는
"울산지방해양항만청 울기 항로표지관리소"이다.

오후 3시20분.
울기등대에서 동쪽으로 대왕암 너머 푸른 바다가
한 눈에 펼쳐 진다.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에 말문이 막힐 뿐이다.

우리나라 동남해안에서 해금강 다음으로 아름다운 절경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대왕암을 이어 주는 대왕교 위에는
휴일을 맞은 행락객들이 부지런히 왕래한다.
지난 1995년 현대중공업이 만들어 울산시에 기증한 대왕교는
최근 들어 야간 조명을 밝히며 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오후 3시28분.
남쪽 먼 바다로 조금 전 지나쳐온 해안산책로 너머로
슬도 한복판의 등대도 눈에 들어 온다.
유난히 짧은 겨울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가며
잔잔한 겨울 바다의 색깔을 은빛으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대왕암"이라 하면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의 사적 제158호인
신라 문무대왕의 수중릉을 말한다.

경주 대왕암이 문무왕의 무덤이라면 이곳 대왕암은
문무대와비와 관련 지어야 한다.
문무왕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 왕비가 역시 문무왕처럼
한 마리 커다란 동해 호국룡이 돼 하늘을 날다 이곳 바위에 묻혀 용신이 됐다는
전설에 의거 이곳을 '대왕바위' 또는 줄여서 '댕바위'로 부르게 된 것이다.

오후 3시42분.
대왕암공원을 뒤로 하고 오늘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일산해수욕장을 향해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걸음을 이어 간다.

경주시 양북면 앞바다에 무덥을 둔 문무대왕의 뒤를 이어
왕비께서도 돌아가신 후 호국의 염원으로
이 나라를 지킨다는 이곳 울산 대왕암.
저 바위 밑에는 해초도 자라지 않는다는 얘기들을 하기도 한다.

대왕암 북편 바다 위에 크고 작은 5개의 바위섬들이 흩어져 있다.
오래 전 이곳 바위에서 사금을 채취한 일이 있어
"사금바위"라 불리우던 곳이나
오랜 세월이 지나며 말이 변하여 "사근방"이라는
이름으로 변한 곳이다.

오후 3시57분.
기암괴석과 멋진 자태의 소나무 사이로
바다 한 가운데에 묘하게 생긴 작은 바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이름바 "탕건암'이다.
이 부근 바다의 이름이 넙대기 앞바다이며
바위의 모습이 마치 갓 속에 쓰는 탕건을 닮았기 때문이라 한다.

탕건암이라는 이름을 떠 올리며 다시 오던 길을 뒤돌아
전망 좋은 곳에서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탕건을 닮은듯도 하다.
원래 갈색이던 바위 색깔이 갈매기똥으로 뒤덮여
윗 부분이 온통 흰색으로 변해 있을 뿐이다.

오후 4시
노한 용왕님이 못된 청룡을 이 굴안에 가두고
큰 바위로 입구를 막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용굴 옆 절벽
이른바 희망봉이라 불리우는 절벽 위의 두 그루 소나무.

부부의 백년해로를 상징하는 저 '부부 소나무'는
최근 연인들의 사랑을 한 몸, 아니 두 몸으로 받고 있는 중이다.

오후 4시12분.
대왕암 공원을 벗어나 일산해수욕장으로 향하는 들머리.
한동안 이어지는 소나무 숲을 지난다.
소나무 사이로 비쳐 드는 석양을 받아 억새 잎이 밝게 빛난다.
넓게 펼쳐진 소나무 숲을 뒤덮은 억새 군락이
빚어 내는 풍경이 무척 이채로운 곳이다.

오후 4시23분.
대왕암공원의 울창한 송림을 벗어나자마자
이처럼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다.
동쪽을 향해 반달 모양으로 형성된 길이 약 600m의 아담한
일산해수욕장이다.
구름이 많던 오전과 달리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청명하다.

이곳 일산해수욕장도 우리나라 동해안에 많이 발달한 사질해안이다.
사질해안(Sandy Coast)이란 해안에 작용하는 파도에 의해서 전면에 모래가 쳐 올려지고,
올려진 모래가 해안선에 평행으로 달리는 낮은 사구(砂丘)를 형성한다.

오후4시30분.
동해안 바닷가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잔잔한 파도이건만
이따금 흰 포말을 일으키며 작은 파도가 밀려 온다.
서해안 해변의 파도가 바닥의 흙을 뿜어 올려 누런 빛을 띄는데 반해
이곳의 파도는 백옥같이 흰색이다.

2010년 경인년의 첫 달을 보내고 2월을 맞으며
저 파도같이 맑고 깨끗한 일만 이어지기를 바라며
봄날같은 휴일 하루를 행복한 마음으로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