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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5의 고봉(高峰;해발 1,577m) 계방산 눈산행

2010년 2월7일 오전 11시5분.
해발 1,089m지점의 운두령에서 계방산 산행 들머리로 오르는
나무 계단은 마치 출근시간 지하철 입구를 연상시킬 정도로
극심한 혼잡을 이룬다.

해발 900m지점에서부터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으로 인해
불과 몇백m 정도의 도로를 이동하는 차량이 30분 이상 걸렸으니
마치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이곳으로 몰린듯도 하다.

오전 11시6분.
나무 계단을 올라서서 조금 전 출발한 주차장쪽을 일별 후
산행을 시작한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차량과 인파에 질린 마음이
눈 앞에 펼쳐지는 눈 덮인 산줄기와 쾌청한 날씨에 조금 누그러진다.

오전 11시24분.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4~5도를 기록할 정도로 추운 지방인지라
수많은 인파가 지나다녀도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아이젠을 등산화에 단단히 부착하고 눈길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앞 사람의 뒷꼭지만 바라보며 나아갈 정도로 줄 지어 나가는 형국이다.

오전 11시27분.
물푸레나무 군락지가 시작됨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이제 1km를 걸었다.
물푸레나무는 가지를 잘라 물에 넣으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나무 껍질에 밝은색 큰 무늬들이 있어 잎이 전혀 없어도 알아볼 수 있는 물푸레나무는
한방에서 건위제(健胃劑)·소염제·수렴제(收斂劑)로 사용한다.

오전 11시42분.
출발 후 한동안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지던 눈 덮인 산길이
비교적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지며 산행객들의 발길이 느려진다.
더구나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내 몸에도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한다.

낮 12시20분.
해발 1,300m부근에서부터는 산죽 군락들이 많이 눈에 띈다.
지난해 다녀온 해발 1,500을 넘는 오대산,함백산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고산지대라 먼지가 없어서인지 오래 전 내린 눈이지만
본래의 순백색을 잃지 않고 있다.

나무가지 사이로 북쪽 방향 시야가 트인다.
아마도 소계방산과 멀리 설악산쪽 봉우리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쨌든 삭막한 도시를 떠나 이처럼 탁 트인
시원한 산 줄기들을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낮 12시36분.
아직도 1,400m가까이의 쉼터에 도착하지도 못했건만
산행 시간은 1시간 반이 넘었다.
평상시보다 1.5배 정도의 시간이 소요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눈이 내린 후이거나 습도가 높은 날이었으면 눈꽃이나,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상고대로 백색의 터널을 지나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을 이 부근의 나무들이 헐벗은게 아쉬울 뿐이다.
건조주의보가 내려질 정도의 건조한 대기가 상고대를 만들 정도의
수증기조차 제공하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낮 12시41분.
해발 1,400m부근에 위치한 비교적 넓은 공간은
온통 눈밭이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재질이 워낙 단단해서, 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Achilleus]의
창을 만든 나무도 물푸레나무라 한다.
아킬레우스는 우리 발 뒤꿈치의 '아킬레스건'의 어원을 만든 그 영웅이며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중심인물이기도 하다.

나도 일행 몇명과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하고 잠시 여장을 풀었다.
낮이 되면서 따뜻해진 날씨 때문에 내피까지 떼어 낸 홑겹 등산 자켓 속에
한 겹 입은 셔츠가 땀에 흠뻑 젖어 여벌 셔츠로 갈아 입었다.

반팔 티 셔츠 하나만 입었는데 젖은 옷을 갈아 입으니 오히려
더 따뜻하게 여겨진다.
아마 내 몸이 튼튼해서라기보다는 날씨가 따뜻해서가 아닐까?

오후 1시17분.
이처럼 마치 흰 솜털 모포를 연상시키듯한 눈밭에서의 점심을 끝내고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비록 날씨가 좀 풀렸다고는 하지만 해발 1,400m에 육박하는
고산지대인지라 점심을 먹는 동안 한동안 앉아 있었더니
한기가 느껴진다. 발걸음을 빨리해 본다.

오후 1시25분.
정상 바로 아래의 전망대로 향하는 능선 좌측으로 북서쪽
산줄기들이 보이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멋진 자태의 주목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 온다.

내가 지난 해 산행 중 주목을 만난 것은 해발 1,400이 넘는
합천 가야산, 그리고 해발 1,500 이상인 태백산,오대산,함백산.
1,600이 넘는 덕유산 등에서이다.
금년 들어 첫번 째 주목을 이곳 계방산에서 만난다.

앞 사람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눈산행은 계속 이어진다.
발 밑에서는 뽀드득하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이제 물푸레나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계방산(桂芳山)이라는 산 이름을 누군가는 계수(桂樹)나무
향기(芳)가 나는 산이라고 풀이하는 경우를 봤는데
계수나무가 현재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오후 1시38분.
해발 1,496m에(혹은 1,492m) 위치한 전망대로 향하는 능선길에서
시야가 트인 북서쪽 방면으로는 개인산,방태산 너머로
매봉산 풍력발전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북동쪽으로는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오전중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 구름이 점점 많아지는걸보니
내일은 일기예보대로 비나 눈이 내릴 모양이다.

망원렌즈도 당겨보니 전망대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서 멋진 조망을 즐기고 있다.
전망대를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마치 뱀이 꿈틀거리는듯 여겨진다.

오후 1시41분.
해발 1,496m지점의 전망대에 도착했다.
이제 계방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700m 정도가 남았다.

에베레스트산을 인류 최초로 정복한 영국의 힐러리경은
산을 왜 오르느냐는 우매한 질문에 대해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올랐노라!"는 현명한 답변을 했다 한다.
아름다운 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너그럽게 달래준다.
논어의 한 귀절인 知者樂水(지자요수), 仁者樂山(인자요산).
즉,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너그러운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는 내용을 절감한다.

2시간 이상 힘든 눈산행을 이어온 수많은 산행객들은
전망대에 삼삼오오 모여 눈 앞에 보이는 정상을 바라보며
얘기꽃을 피운다.
잠시 피로를 푸는 모두들의 얼굴에는 행복감이 충만해 있다.

오후 1시51분.
10 여분간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700m 떨어져 있는 정상을 향해
다시 발길을 힘차게 내 딛는다.
파란 하늘에 퍼진 흰 구름을 보며 눈길을 걷는 기분은
말로 형언키 어렵다.
오렌지 빛의 행글라이더가 우리를 환영하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북쪽 능선 아래로 펼쳐지는 정경이 장관이다.
날씨가 조금씩 흐려지면서 매봉산 풍력발전단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일렬로 늘어선 풍력발전기들이
흡사 가을철 시골 들녘의 허수아비 행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귓전을 때리며 울리는 겨울 바람이 마치도
저 풍력발전기 바로 아래에서 들었던 "쉭! 쉭!"하는 소리처럼 여겨진다.

고사목 사이로 조금 전 지나온 전망대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수많은 산행객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북쪽 멀리 능선 너머로 하이원 스키장의 스키 슬로프도
어렴풋이 보인다.
마치 누군가 큰 글씨를 써 놓은듯하다.

지난 여름 함백산 산행시 바로 눈 앞에 보이던
맨 흙이 드러나 누렇게 보이던 휼물스럽던 그 몰꼴이
이렇게 흰눈으로 덮인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저 스키 슬로프가 여름철에도 주위 자연경관과 어울려 보이게 할
묘책이 없을까 하는 궁리를 한참 해 본다.

오후 2시26분.
정상에 서서 주위를 둘러 본다.
내 경험으로는 이처럼 시원하게 펼쳐진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산은
아마도 태백산,함백산, 그리고 이곳 계방산인듯 하다.
아침의 혹한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달려온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정상석 앞은 사진 한 장으로 추억을 남기려는 수많은 인파로
극심한 혼잡을 이룬다.
카메라 셧터 누르는 속도가 늦는 사람은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건지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동쪽으로는 멀리 대관령 휴게소 뒷편의
선자령 풍력발전단지가 눈에 들어 온다.
지난 1월2일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어
선자령으로 향하던 기억이 새롭다.

오후 2시35분.
계방산 정상을 떠나 하산을 시작한다.
이제 눈쌓인 내리막길을 내려가야한다.
거리는 대략 5km남짓.
항상 그렇듯이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며 무릎 등 관절을 상하기 쉽다.
더구나 오늘같은 눈산행시에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가기 때문인지
비록 옅은 구름에 햇빛은 가리었지만
동쪽 방향의 시계는 너무 깨끗하다.
아마도 이곳 계방산 정상 부근에서 이처럼 맑은
시계를 보여 주는 일도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밝은 빛을 정면으로 받은 풍력발전기들이 무척 깨끗해 보인다.
저곳 선자령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2000kw발전기 49기로써
총 시설 능력은 98MW이다.
또한 개개의 풍력발전기는 중심높이가 60m이고 회전자 직경은 80m이며
강릉시 전력 수요의 절반 가까이를 충당하고 있다.

오후 3시6분.
해발 1,400m지점을 지난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하산길이다보니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무척 미끄러운 하산길이다.
이 길을 앞으로도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해발 700m 정도의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다.

오후 4시30분.
꼬박 2시간이 걸린 하산길이 끝나고 주차장에 도착한다.
산행 시작부터 5시간 반이 소요된 오늘의 산행이다.
비록 눈꽃이나 상고대는 보지 못했지만
멋진 조망과 맑은 공기 속에서 하루를 보낸 행복감으로
휴일 하루를 마감하고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