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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다시 찾은 동백섬 지심도

2010년 2월6일 토요일 오전 10시 34분.
입춘 추위가 며칠 째 기승을 부리다 물러서기 시작한 주말.
아침 7시 영하 7~8도에 육박하는 혹한 속에 대전을 출발하여
거제도 장승포항에서 지심도행 선박에 몸을 실었다.

100여명 남짓 탑승하는 작은 여객선은
10시반 정시에 출항하여 재빠른 몸놀림으로
장승포항 방파제를 벗어 난다.

오전 10시37분.
출항한지 7분이 경과되자
거제 본섬에서 불과 5~6km 남짓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섬 전체 면적이 약 10만평 정도이고 해안선 길이가 불과 3.7.km인
작은 섬 지심도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남쪽 지방인데다 날씨가 풀리면서 기온이 올라
장갑을 끼지 않아도 견딜 정도인지라 여행에 지장은 없을듯하다.

오전 10시50분.
지난해 3월1일 다년간 이후 거의 1년만에 다시 찾은 지심도.
지난해 느꼈던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 줄어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모 방송국에서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촬영했다한다.
이곳 지심도도 급속도로 훼손될 것같아 안타깝다.
마치 전국 곳곳의 음식점 중 "TV출연"이라는 홍보문구가 붙은
음식점들이 한결같이 장삿속에만 눈이 어두운걸 보아왔기에...

오전 10시59분.
아직은 다른 유명 관광지에 비해 훼손이 덜된 지심도
관광을 시작한다.

선착장 바로 위 언덕에서부터 이처럼 동백나무로 뒤덮인
동백 숲을 지난다. 추운 겨울을 지나며 가장 먼저
꽃소식을 전하는 동백꽃 답게 붉은 꽃망을을
본격적으로 터뜨리기 시작한다.

오전 11시2분.
가파른 경사의 비탈길 끝 부분.
천주교회 지심도공소앞의 수백년은 되었음직한
동백나무에도 붉은 동백꽃이 한창 망울을 터뜨린다.

오전 11시12분.
섬의 남쪽 끝부분의 '마끝"에 도착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멀리 수평선까지 뚜렷이 보이는 상쾌한 공기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

깎아지른듯한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진 곳.
풍광이 일품이다보니 모 방송국에서도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녹화를 한 모양이다.

절벽 아래 갯바위는
전문 낚시꾼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낚시터이기도 하다.

쾌청한 날씨 덕분에 수평선상에 길게 누운 대마도가 보인다.
한반도에서 약 50km떨어진 곳에 있는 대마도는
면적은 거제도의 두배에 조금 못 미치는 700km이지만
남북의 길이가 82km에 이르는 뱀처럼 긴 섬이다.

낮 12시8분.
민박과 식당을 겸업하는 자그마한 식당에서
주인의 맛깔스런 솜씨로 차려진 이른 점심을 마치고
마당에서 그 집 건물 중 하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 주둔하던 일본군의 관사로 쓰던 건물인데,
지붕의 기와가 우아한 곡선미를 가진 우리 전통 양식과는
구분되는 전형적인 일본식 기와 그대로이다.

낮 12시32분.
과거 일본군이 만든 탄약고 내부를 살펴 본다.
지난 1936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들이 약 15가구의 우리나라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 내고 1개 중대 병력이 해방 때까지 주둔했던 이곳 지심도.
당시 구축한 해안포 발사대가 여러 곳 남아 있고
그를 위한 포탄을 저장했던 탄약고는 관광객을 위한 전시관으로 이용된다.

회전 가능한 대포를 설치했던 이와같은 구축물이
여러 곳 남아 있다.
안내문에 적힌 내용을 보면 1912년 제작된 150mm 캐논포를 설치했던 것 같다.
포차의 중량이 20여톤에 이르며 포의 사정거리는 약 20여 km에 달했다 한다.

남쪽 바다가 훤히 바라 보이는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그 때문에 이 작은 섬에 1개 중대의 병력이 주둔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 해안포진지의 잔해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이 지심도의 가장 높은 지대에는 현재 국방과학연구소 파견소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곳 지심도의 모든 땅은 국방부 소유이다.

현재 거주중인 10여 가구 주민들은 오로지 건물에 대한 권리만 있다.
최근 지심도가 유명세를 타자 거제시는
국방부로부터 섬을 통째로 불하 받기 위해 협의 중이며
섬을 넘겨받은 후에는 대대적인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섬의 소유권이 시로 넘어가면 주민들은 강제 이주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붉은 선혈을 연상시키는 동백 꽃.
봄철에 피는 매화나 벚꽃이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피었다가
짧은 시간에 떨어지는데 비해 동백은 그렇지 않다.
또한 동백꽃이 질때는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진다.
낙화(落花)가 아닌 절화(切花)이다.
그래서 애절한 마음을 동백꽃에 비유한 시와 노래가 많다.
또한 동백이 떨어지는 모습이 사람의 머리가 뚝 떨어지는 것과 같다하여
불전에 바치거나 병문안 때 가지고 가지 않는다.

오후 1시
탄약고를 떠나 울창한 동백숲길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 걷다보면
섬의 중심부 이 섬에서 가장 넓은 평지를 만난다.
안내 표지판에는 "활주로"라 씌어 있다.

그러나 일반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폭이 불과 20~30m, 길이는 채 100m 도 안된다.
헬리콥터 착륙장으로 보인다.
동서로 바다가 보이는 이 풀밭에서,
그리고 동쪽 해안가에 마련된
아담한 벤치에서 짧은 휴식을 즐긴다.

구 일본군이 사용하던 써치라이트 보관소와 그들이 만든
방향지시석이 있는 북단쪽으로 향하다보면 한동안 이와같은
대나무 숲이 이어진다.

지금은 10여가구 주민이 모두 관광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예전에는 마늘,고구마,유자,밀감 등의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외에
홍합 부스러기 따위의 밑밥을 넣은 '반대'라고도 하는 대나무 뜰채를 사용해
학꽁치,놀래미,우럭 등을 잡았었다.

오후 1시22분.
지심도에서 가장 풍광이 뛰어난 북쪽 끝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남쪽 바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한 마디로 환상적이다.

몸을 돌려 북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햇빛을 등진 방향탓인지는 몰라도
바위 틈에 솟아난 해송의 녹색 빛깔과
한려수도의 깨끗한 쪽빛 바다,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바라 보는 이 기분..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300mm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한창 건설중인
길이 8.2km의 거가대교의 일부 모습도 보인다.
거가대교는 부산시 강서구 천성동의 가덕도에서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구간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오후 1시50분.
서쩍 해안을 따라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목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 부근에서도 가덕대교는 잘 보인다.

금년 12월 저 가덕대교가 완공되면 현재 부산에서 거제까지
140km거리를 3시간 넘게 소요되는 육상 교통이
60km거리로 단축되면서 소요시간 또한 40분으로 크게 즐어든다.

전형적인 일본식 건축 양식으로 된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의
일부 건물이 아직 남아 있다.

이곳 지심도의 전등소는 지심도 포대의 완공과 함께
1938년 1월27일 준공되었었다.
당시 전등소는 발전소,소장 사택,막사 등의 부속건물로 구성된바 있다.
전등소는 탐조등을 갖추고 있었으며,
지심도 기지에 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오후 2시.
서쪽 해안 중간부에 자리한 몽돌해수욕장에서 걸음을 멈춘다.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뺨을 간지르듯 스치는 시원한 바람을 받으며
이제 봄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손바닥만한 작은 섬에 어울리는 너무나 앙증맞도록 작고 아담한
몽돌해수욕장 공간이다.
단란한 가족끼리 찾아와 오후의 태양이 빚어 내는
은빛 바닷 물결을 바라 보며 휴식을 취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몽돌 해수욕장 해변에서 선착장으로 향하는 산책로로 이어지는
대나무 숲길. 대나무와 어울려 자라는 동백나무에서
선홍빛 동백꽃들이 떨어져 어두운 대숲을 붉게 채색해 간다.
동백꽃이 모두 지는 3~4월까지는 이런 모습이 계속 이어지리라.

오후 2시23분.
선착장 바로 위 언덕에서 마지막으로 동백꽃을 한참 바라 본다.
해풍에 시달리며 자라기에 해로운 소금기의 혼입을 막기 위해
잎에 윤기가 나는 것이라는 동백 잎,
그리고 꽃말에 대해서는 "겸손한 마음, 신중, 침착,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등등으로 얘기하는 동백꽃.
빨간 립스틱을 바른 요염한 여인을 떠올려 본다.

오후 2시54분.
1년만에 다시 찾아와 4시간여를 머물렀던 지심도를 떠난다.
아름다운 저 섬이 오래오래 자연 그대로 보존되기를 바란다.

오후 2시59분.
장승포항으로 되돌아가는 정원 100여명 안팎의 작은 배가
출항한지 10분도 채 못되어 지심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섬이다.
길이가 1.5km,폭이 500m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다시 떠오른다.

요즈음 대부분 어촌에서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어선이
조업을 마치고 돌아간다.
아마 저 배에도 으례 그렇듯이 나이 든 부부 둘이 함께
일을 하지 않을까 싶다.

경쾌한 엔진 소리를 내며 힘겹게 달려 가는 저 작은 어선의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 본다.
우럭,가자미 등으로 만선을 이룬 행복감으로
주름 깊게 패인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행복한
부부의 굳은 살 박힌 거친 손길을..

오후 4시22분.
오후 3시10분 장승포항에서 배를 내려 다시 차를 타고 통영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각.
통영항 중앙시장 뒷편 언덕위에 자리한 동피랑 마을을 향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간다.

오후 4시35분.
동피랑 마을 맨 위 공터에서는 이처럼 통영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멀리 정면으로 해발 461m인 미륵산이 보이고,
그 산 자락의 케이블카도 어렴풋이 보인다.
길이 1975m에 달하는 관광케이블카.
2008년 11월에 방문했던 기억이 새롭다.

동피랑이란 동쪽에 있는 언덕, 고개 라는 뜻이다.
과거 충무공 이순신장군께서 설치한 군영인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이다.

당초 통영시에서는 이 달동네를 낙후된 마을이라
철거후 공원을 만들 계획이었다 한다.
그러나 통영 시민단체(푸른통영21 추진위원회)에서
"달동네도 잘 가꾸면 아름다워진다"는 기치를 내 걸고
2007년 10월 정부 지원을 받아 미술 공모전을 열게 되고,
그 결과 전국 각지의 팀들이
통영의 달동네 마을을 이렇게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게 되었다.

50여가구가 살고 있는 전형적인 달동네이 이 마을을
요즘은 한국의 몽마르뜨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이 거동하기에는 너무 불편한 급경사의
좁은 길들.
저 아름답게 채색된 벽화로 가려진 주민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나아진게 없지 않을까 싶다.

오후 5시11분.
다시 통영항 바닷가로 내려와 동피랑 마을을 올려다 본다.
지난 1월9일 이곳에서 바라보던 동피랑 보다 한결 밝고 깨끗해 보인다.
아마도 그날 바닷 바람에 퇴색된 벽화를 다시 단장하던
추운 날씨에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벽화 그리기로
봉사활동을 하던 고마운 어린 학생들 덕분인 것 같다.

오후 5시30분.
짧은 겨울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며
항구에 마지막 하루 햇살을 길게 비춘다.

통영이란 명칭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다.
선조37년(1604)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지금의 통영시)로 통제영을 옮기면서
통영의 명칭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충무시(忠武市)의 본 지명은 통영군이고,
통영군에서 시로 승격되면서 충무공(忠武公)의 시호를 따서 충무시라 하였으며,
그 후 시.,군 통폐합 과정에서 다시 “통영시”라는 명칭으로 환원 된 것이다.

오후 5시36분.
늦 겨울 하루를 따뜻하게 비춰 주던 햇살이
항구를 따라 늘어선 건물 사이로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낮동안 힘든 일을 했던 작은 어선들도 대부분 제자리에 정박했고
수많은 갈매기들도 보금자리를 찾아 힘겨운 날개짓을 이어간다.

비록 하루 종일 걷느라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너무나 행복했던 휴일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