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무창포 겨울바다와 오서산 억새산행


2009년 11월21일 토요일 오전 11시46분.
매월 한 차례씩 등산 모임을 갖는 고교 동기생들과
서해안 여행 및 산행을 위해 대전에서 출발 해미읍성 앞에 도착했다.

고교 2학년 때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이래
41년만의 숙박 여행이다.
철없던 학창시절의 악동들 30여명이 이제는 중년을 훌쩍 넘긴
60을 바라 보는 나이에 일부는 부부동반으로
서울에서 버스를 대절해 오고 있다.


낮 12시24분.
반가운 친구들과 합류하여 해미읍성 내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고려말의 국정 혼란기를 틈 타 극심하던 왜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사대인 1491년(성종 22년)에 축조된 것으로,
당시 둘레 1,800 m, 성 높이 5 m 이었던 곳.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성 안의 건물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해미초등학교와 우체국 ·민가 등이 들어서는 등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나,
1973년부터 읍성의 복원사업을 실시하여 복원이 진행 중이다.


오후 2시42분.
해미읍성을 떠나 무창포해수욕장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 후
초겨울 바다의 시원함을 느끼며 해변 산책길에 나섰다.

약1.5km길이의 해수욕장 남단에 위치한 비체팰리스와
이어지는 흑섬, 그리고 석대도를 잇는 해안선이
평화스럽게 누워 있다.


오후 3시13분.
짧은 초겨울 해는 빠르게 서쪽으로 달음질 친다.
잔잔한 바다 위에 내리 쬐는 태양에 눈이 부시다.


북쪽으로 10여km떨어진 서해안 최대의 해수욕장인
대천해수욕장의 바닷물이 진흙빛을 머금은 누런색에 가까운 반면
이곳 무창포해수욕장의 바다는 동해안에서보는
바다색에 가까운 깨끗한 파란 빛을 띈다.


오후 5시11분.
이제 하루 동안 대지를 따뜻하게 데워 주던 태양이
바다 밑으로 자취를 감춘다.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을 향해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원한다.
우리 친구들이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이어가기를..


저녁 7시54분.
저녁 식사 후 해변으로 나와 불꽃 놀이를 잠시 즐긴다.
불꽃놀이는 바닷가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음력 초닷새의 초승달도 수줍음 때문인듯
함초롬히 얼굴 일부분만 내 밀고 불꽃놀이에 동참한다.


저녁 8시58분.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무창포해수욕장의 밤이 깊어간다.
북쪽 방파제 부근의 무창포수산물시장의 불빛 만이
잔잔한 밤 바다를 비춰 준다.

'무창포(武昌浦)'는 조선시대 세미(稅米) 창고가 있던 갯가의
포구였기에 얻은 이름이다.


2009년 11월22일 오전 7시22분.
일출시각이 지났건만 수평선,지평선에 드리운 짙은 구름 때문에
햇빛은 비치지 않고, 서쪽 하늘의 구름만이 붉은 기운을 드리운다.


오전 7시53분.
수산물시장 부근 포구의 자그마한 어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늘 낮의 조업을 위한 밤 동안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이제 출어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등대까지 이어지는 방파제 위의 아침 바람은 무척 차다.
군데군데 고인물에는 살얼음이 얼어 있다.
방파제 위에서 쭈꾸미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이 추위 때문인지 파랗게 질려 있다.


오전 8시49분.
깨끗하고 아름다운 무창포해수욕장에서의 밤을 보내고
다음 행선지인 오서산을 향해 떠난다.
소나무로 뒤덮인 자그마한 흑섬과 바다 가운데
편안히 드러 누운듯한 석대도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배웅해 준다.

석대도(石臺島)는 옛날 구전에 따르면
아기장군이 죽었을 때 황새가 떼지어 나타나서 슬프게 울었다는 섬으로
돌로 座台(좌대)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오전 9시49분.
충남 홍성군 광천읍 상담마을 입구에서 정암사쪽으로 향하는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당근밭의 녹색 당근 잎이 얼핏 이른 봄날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포근한 날씨이다.


오전 10시3분.
해발 300m정도 높이에 자리한 사찰인 정암사까지 이르는
산행길은 이처럼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한동안 이어졌던 이상 난동의 여파이겠지만
철 모르고 피어난 개나리꽃이 초겨울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난다.
지난 11월초 부산 기장궁의 달음산 산행시 맞닥뜨린
철 모르고 핀 철쭉처럼 이 개나리도 곧 닥쳐올 언동설한에
얼어버릴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오전 10시18분.
본격적으로 험난한 등산길이 시작되는 초입의 정암사를 둘러 본다.
정암사는 고려 때 대운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백제 무왕 때 무렴국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이곳 정암사의 주불전인 극락전 모습이다,
전면 3칸,측면 2칸인 작은 건물 지붕 구조가
'팔작지붕'인 점이 부조화스럽다.
차라리 단순한 '맞배지붕'이었으면 보기가 좋으련만..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다.
극락보전·무량수전·무량전·보광명전(普光明殿)·
아미타전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대웅전(또는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그리고, '적광전(또는 대적광전)' 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다.


오전 10시46분.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 남짓 지나자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히며 북쪽으로 탁트인 전망장소에 다다른다.
부드럽게 뻗은 능선을 따라 아래로 광천읍내가 보이고
멀리로는 서해바다가 눈에 들어 온다.


오전 11시13분.
전망장소에서 이른바 처녀바위로 불리는
주능선 북단까지 오르는 오르막 경사가 오서산 상행의 난코스이다.
엊그제 내린 눈이 바닥에 얼어 붙어 미끄럽기까지 한다.
산행객들의 숨 고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귓전에 들려 온다.


세찬 북풍을 타고 몰아친 눈보라의 흔적이
소나무 가지에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 놓았다.
햇빛이 비치는 남쪽은 눈보라의 흔적도 없음을 보며
태양빛의 소중함을 마음속으로 새겨본다.


오전 11시34분.
험난한 오르막길을 다 오른 후 바위 능선에 올라서니
이곳 오서산 산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오서정과 연이은 억새 능선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비록 억새꽃이 만개한 시기가 조금 지나
꽃이 많이 떨어지긴했으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이어지며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군락이 산행의 피로를 씻어준다.


오전 11시45분.
오서정을 향해 억새군락을 헤치며 지나는 산행객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워 보인다.
온몸으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걷는길은 행복 그 자체이다.


오서정 주위에서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휴식을 취한다.
오서산(烏:까마귀 오,棲:살 서,山)이라는 이름은
예전에 까마귀와 까치가 많이 살았던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생물 중 가장 독종인 사람들이 붐비자
까마귀마저 도망을 간듯 이제 까마귀를 볼 수 없다.


물가에서 자라는 갈대가 조금은 거칠어 보이는 남성적인 면모라면
주로 산지에서 자라는(물론 물억새도 있지만) 억새는
갈대에 비해 훨씬 부드럽다.
바람에 날리는 억새꽃을 바라보면 마치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인네를 연상하게 된다.


오전 11시49분.
해발791m라는 글귀가 새겨진 정상석 앞은
기면사진을 찍는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이 정상석은 홍성군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멀리 보이는 북쪽 능선을 따라 1km 정도를 가면
또 하나의 정상석이 나온다.
그곳은 행정구역상 보령시 청소면인고로
보령시에서 또 하나의 정상석을 만들어 놓았다.


낮 12시5분.
북쪽으로 조금 전 지나온 아름다운 바위로 이루어진 곳이
일명 처녀바위이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능선을 힘들여 올라온 산행객들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휴식을 취하며
서해바다까지 보이는 멋진 경치에 감탄한다.


낮 12시26분.
내가 산행을 시작한 북쪽 홍성군 광천읍과는 반대쪽인
남쪽 보령시 청소면에서 산행을 시작한 일행들과
정상석 앞에서 합류하여 일행들이 타고 갈 버스가 기다리는
광천읍 상담마을쪽으로 오서정을 거쳐 하산을 시작한다.


오후 1시
오전중 오서산 정상을 향할 때 올랐던 미끄러운 급경사길.
내려가는 길이 더 위험하고 조심스럽다.
간혹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서로서로 손을 잡아 주고 이끌어주는 등
상대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아름다운 산행객들의 모습에
내 마음이 푸근해 진다.


오후 2시10분.
오서산 산행을 끝내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제 얼마 후면 1박2일간 동행했던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

가까운 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한 후 덕산 온천에서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서울로 향하는 친구들과
헤어지기가 아쉬워 덕산온천까지 동행해
인사를 나누고 홀로 대전으로 돌아왔지만..
무척 즐겁고 행복했던 1박2일간의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