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원불교 영산 성지가 자리한 구수산[九岫山] 산행기


2010년 3월21일 오전 9시43분.
아홉 개의 산봉우리로 이루어졌다해서 이름 붙여진 구수산[九岫山]
산행을 위해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원불교 영산 성지 입구 주차장에서
잠시 후 시작될 산행 준비를 하며 잠시 휴식을 위한다.

토요일인 어제 밤만 해도 사상 최악의 황사가 월요일까지
전국을 뒤덮을 것이라는 기상대의 예보를 비웃듯
우측 끝 봉우리가 뾰족한 옥녀봉 위로
맑고 푸른 하늘이 나를 반긴다.

해발 152m인 옥녀봉을 이루는 암반에는
원불교의 상징인 일원상(一圓相)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원불교란 1916년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개창한 민족종교로써
우주의 근본원리인 일원상(一圓相, 즉 O의 모양)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종교로,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세계를 실현시키려는 이상을 내세우고 있다.

오전 9시54분.
옥녀봉으로 오르는 산행 들머리에서 제명바위를 만난다.

제명바위는 원불교 최초 금석문이라 한다.
1919년 4월 26일 (음 3월 26일) 길룡리 방조제 축조공사를 준공하고
옥녀봉 기슭3m 정도 높이의 자연석바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방언공사 기간과 실시원 이름을 金成燮(八山 金光旋1879-1939)의 글씨로
오른쪽에서부터 종서로 음각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 바위에 발랐던 시멘트가 떨어질 위기에 처해
제명바위 밑에 모형비를 세워놓았다.
1990년에 제작된 모형비는 李空田(凡山 1927~ )이 비문을 짓고
명제는 朴正薰(裡山 1934~ )의 글씨로 예서체이고 본문은 국·한문 혼용이다.

오전 10시11분.
옥녀봉 정상에서 남쪽을 내려다보면
영산선학대학교와 영산성지고교를 아우르는 원불교 영산성지,
그리고 소태산 박중빈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대각지 등이 내려다 보인다.
그 옆으로 완만한 곡선이 아름다운 와탄천이 뚜렷이 보인다.

구수산을 이루는 아홉 봉우리는 옥녀봉, 마촌앞산봉, 촛대봉, 장다리봉,
대파리봉, 공동묘지봉, 밤나무골봉, 설레바위봉, 중앙봉이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의 아홉 제자가 이 아홉 봉우리 위에 각각 올라 기도를 드렸다고 하여
원불교에서는 구수산을 신성시하고 있다.
첫 째 봉우리인 옥녀봉은 언젠가 성인이 오기를 기다리며
법성포를 바라보고 있다 하여 망성봉(望聖峰)이라고도 부른다.

오전 10시31분.
옥녀봉을 지나 코끼리를 닮았다해서 이름을 얻은 '상여(象如)'봉에서
북동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그 옛날 소태산이 남긴 족적이 뚜렷하다.

와탄천 물줄기와 그 주변의 널찍한 간척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소태산은 대각을 이룬 후 교리를 펴는 방책의 하나로 '방언공사(防偃工事)'를 벌였는데,
와탄천 주변의 방조제가 바로 1918년 당시 쌓은 것이며,
이로써 얻은 농지를 정관평(貞觀坪) 이라 한다.

넓은 들 가운데 도드라져 있는 소드랑섬도 눈에 들어 온다.
소드랑섬이란 소드랑, 곧 솥뚜껑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오전 10시50분.
설레바위봉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무척 맑다.
더구나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무척 상쾌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 설레바위봉은 소태산의 아홉 제자 중
일산 이재철이 기도를 했던 곳으로 어홉 봉우리 중
북서쪽 즉, 건방(乾方)에 속하는 곳이다.

오전 11시2분.
삼밭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325m봉을 향해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삼밭재 바로 아래에는 원불교 신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기도실이 있다.
삼밭재는 다른 말로 마전령(痲田嶺), 혹은 삼령(參嶺)이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이나 옛 지도에는 삼전(參田)으로 표기되어 있다.

오전 11시21분.
삼밭재에서 500m 거리의 구수산 정상에 도착해 잠시 걸음을 멈춘다.
대부분의 산에서 대하는 돌로 만든 정상석이 아닌
나무 판에 페인트로 쓴 글씨가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곳 구수산[九岫山]을 풍수지리상으로는
마을을 아홉마리 호랑이가 둘러싸고 노리는 형국인 구호산(九虎山)이라고도 한다.

오전 11시42분.
나무 숲으로 인해 조망이 시원치 않은 구수산 정상을 떠나
절골을 거쳐 길룡저수지로 향하는 갈림길이 있는
불복재를 거쳐 봉화령으로 이어지는 숲길에서
예쁘게 피어나는 춘란을 만난다.

근 2시간여가 지난 오늘 산행중
수많은 춘란들이 내 분에 띄었었지만 대부분 봉오리만 맺힌 상태였는데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그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든다.

춘란 바로 옆에 피어있는 일명 까치무릇으로도 불리는
산자고[山慈姑] 또한 예쁜 자태를 뽐낸다.

산자고는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며
포기 전체를 식용하고 한방에선 비늘줄기를 종기를 치료하는 약재로 쓴다.

낮 12시4분.
봉화령 못미친 안부의 평평한 나무숲에서 일행들과 같이
잠시 점심식사와 휴식을 즐긴다.

서쪽 가자봉과 뱀골봉쪽으로 보이는 대신저수지 주변의 풍광이
너무 아름답다.

대신저수지 주변부를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물색깔이 일품이다.
지난 주 섬진강의 쪽빛 물빛을 보기 위해
광양 매화축제장의 쫓비산을 찾았을 때 불순한 날씨로 보지 못한
쪽빛 물색의 참 맛을 이곳에서 보게되니 무척 흐붓한 기분이다.

낮 12시48분.
점심식사와 이어진 달콤한 휴식을 끝낸 후 봉화령을 향해
비교적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산행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익히 경험 한 것이겠지만
점심 식사 후 오르막을 오르는 것은 무척 힘들다.
아마 뱃속에 든 음식 때문에 몸이 무거워진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조릿대의 속삭임을 귓전으로 느끼며 걷는 길이어서인지
발걸음이 한결 가볍게 여겨진다.

낮 12시58분.
오늘 산행 구간중 최고봉인 해발 374m고도인 봉화령에서
서쪽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이 시원하다.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지점임에도 "봉(峰)" 이 아닌
"령(嶺)"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가 궁금하기만 하다.

아마 저 염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연한 봄이 찾아와
따스한 햇살이 내리 쬐기 시작할 때면
백설같이 흰 소금을 만들어 우리 식탁까지
보내 줄 것이다.

오후 1시33분.
봉화령을 지나면서 한동안 남쪽으로 이어지던 산행로가
서쪽 방향으로 바뀐 후 백암리 야동마을로 이어지는
삼거리인 봉우재 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는
다시 산길은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좌측으 서해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르게 된다.

30분 전 지나온 '봉화령'이라는 이름의 어원을 입증하는
봉화대 유적을 지난다.
아마도 '영광군지'에 기록된
고도도(古道島) 봉수(263m)가 이곳일게다.

오후 1시25분.
해발 261m 높이인 가자봉에서 바라보는
앝은 갯벌 위의 바닷물살이 무척 거세게 느껴진다.
남쪽 바다 섬으로 여행을 떠난 대부분 여행객들의 발이 묶였단 얘기가
실감이 날 정도로 서해바다 답지 않은 거센 파도가 느껴진다.
봉화령에서 2.2km를 왔으니 다음에 만날 뱀골봉까지는
약 1.1km가 남았다.

오후2시5분.
가자봉을 지나 뱀골봉으로 향하는 능선 아래로 한국의 아름다운 도로 중
몇 손가락에 꼽힌다는 백수해안도로변에 만들어진 해상공원의 절경이 눈에 들어 온다.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드넓은 갯벌 위를 덮은 얕은 바닷물이
강한 바람에 휘말리며 은빛으로 빛난다.
자연스레 내 가슴도 뻥 뚫리는 느낌이다.

오후2시26분.
한동안 이어지던 활엽수림이 끝나고
소나무 숲이 시작되는 어귀에서 수줍은듯한
연분홍 꽃망울을 터뜨리는 진달래를 만난다.

다음 주말 산행지로 예정된 여수 영취산에서 만나게될
진달래꽃이 기대된다.
그 날은 바닥을 뒤덮은 진달래를 살며시 즈려 밟고 지날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오후 2시29분.
뱀골봉으로 향하는 완만한 하강 능선길은
한동안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
편백나무,삼나무,전나무에 이어 피톤치드가 비교적 많이
방출되는 소나무숲길인지라 천천히 걸으며
온몸으로 솔향기를 느껴 본다.

오후 2시30분.
해발 229m 높이인 뱀골봉에서 바다를 내려다 본다.
어제 보다 10도 이상 기온이 떨어진 꽃샘추위 때문인지
북서쪽에서 몰아치는 바닷바람이 무척 차게 느껴진다.

작은 바위섬에 몰아치는 파도 또한 무척 거세다.
마치 겨울이 되며 물새도 떠나 버린,
아직 그 물새가 돌아오지도 못한 저 바위섬을 삼켜버리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제 오늘 산행 종점인 덕산마을까지는 1km 가 남았다.

오후 2시53분.
산행이 끝나고 백수해안도로 변 바닷가인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818-3
영광 정유재란열부순절지[靈光丁酉再亂烈婦殉節地]앞에 도착했다.

정유재란 때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 거주하던
동래정씨(東萊鄭氏)·진주정씨(晋州鄭氏) 문중의 9명의 부인들이
왜란을 피해 지금의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묵방포(墨防浦)까지 피신하다가
왜적들에게 잡히자 대마도를 향해 항해하던 도중
굴욕을 당하기보다는 의롭게 죽을 것을 결심하고 모두 남해 앞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그를 기리기 위한 기념물이다.

오후 3시7분.
정유재란열부순절지 옆 칠산 앞바다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인 칠산정(七山亭)앞의 선홍빛 동백꽃을 감상한 후
영광굴비의 본산인 법성포로 이동한다.

오후 4시5분.
영광 법성포 해안에 자리한 백제불교최초도래지 내의
간다라지역 불교를 재현시킨 탑원(塔園)앞에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기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 인도의 마라난타 존자가
처음으로 백제에 불교를 전한다.
이 탑원은 간다라 지역 사원 유구(遺構)가운데 가장 잘 남아 있는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본떠서 조성한 탑원으로서,
마라난타 존자의 출신지역인 간다라사원 양식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양식이다.

사면대불 아래 팔작지붕 양식인 부용루가 자리하고 있다.

사면대불(大佛)은 화강암으로 조성 되었으며, 높이는 23.7m 이고,
아미타불(東面)을 주존불로 모시고 , 북면(北面)에 관음보살상,
남면(南面)에 대세지보살상, 서면(西面)에 마라난타 존자가
아미타불상을 가슴에 안고 서있는 모습을 조각하엮다.
이 사면대불의 모습은 약식 석굴사원의 독특한 형식을 띄고 있다.

부용루는 참배 및 서해 조망용 2층 누각으로
1층의 벽에는 간다라 양식의 불상 조각이 화강암 통돌로 조각된 작품이
31면에 걸쳐 부처님의 전생 인연담과 일대기가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지금의 법성포를 백제 시대에는 아무포(阿無浦)라 하였는데
이는 마라난타 스님이 상륙할떼에 가슴 앞에 아미타불을 받들어 모시고 왔기로
"아미타"가 전음되어 아무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현재의 법성포(法聖浦)라는 지명은 불법(佛法)이 성(聖)스럽게 전해진 포구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이곳 백제불교최초도래지를 떠나며 바라보는 법성포 포구위 갯벌이
은색이었다가,
햇살이 서편으로 기울어지며 점차 황금빛으로 변해 간다.
비록 나 자신 믿는 종교는 없으나 마음 속으로 경건함이 느껴진다.

오후 4시20분.
귀가 길. 법성포 포구에서 굴비 쇼핑을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춘다.

명태를 말린 것을 북어라 부르듯 조기를 말린 것을 굴비라 부른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자면 산란을 위해
3월 중순 영광 법성포 칠산 앞바다를 지나는 참조기를 쓴 굴비를 영광굴비라 한다.
고려 17대 인종 때, 난을 일으킨 이자겸이 정주(지금의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가
해풍에 말린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이 뛰어나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한다.
그는 말린 조기를 보내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屈) 않겠다(非)'는 의미의 '굴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부터 영광굴비는 수라상에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오후 4시49분.
요즘 어느 지역을 가나 포구 근처의 게으른 갈매기들을 흔히 보게 된다.
바닷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사냥함이 자신들의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어선 주위를 맴돌며 어부가 잡아 온 물고기를 도둑질하려는
도둑 갈매기가 어선 주위를 맴돈다.

제비.참새 등 사람 주위에 사는 인가성(人家性) 조류와 달리
육식을 하는 갈매기는 가까이서 눈을 보면 살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휴일 하루를 마감하는 지금은 갈매기의
살기어린 눈길보다 하얗고 고운 털빛을 보며
부드러운 느낌으로 행복했던 휴일 하루를 마감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