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4일 일요일 오전 8시19분.
새벽 3시 대전을 출발해 어둠 속을 달려 도착한
전라남도 완도항.
오전 10시 출항할 청산도행 여객선을 기다리는 동안
여객선 선착장 앞의 다도해 일출공원을 둘러보기로 한다.
통일신라 시대의 해상왕 장보고가 설치한 청해진으로 유명한
이곳 완도는 빙그레 웃을 완(莞)자와 섬 도(島)자를 써서,
고향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오전 8시44분.
첨탑까지 높이가 76m인 완도타워 맨 위층 전망층에서
아침 바다를 조망한 후 타워 뒤의 봉화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색깔이 쪽빛으로 빛난다.
동쪽으로 신지도 의 일부가 보이고,
멀리 생일도,금일도 등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일대의
작은 섬들을 에워싼 바다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오전 10시6분.
10시 정각에 출항한 여객선이 미처 항구의 방파제를 벗어나기도 전에
멀리 19km 남짓 떨어진 청산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오전 10시11분.
방파제를 벗어난 여객선은 청산도를 향해
남으로 내 닫기 시작한다.
2시간 전 올랐던 일출공원 전망대와 그 옆의 봉화대도 눈에 들어 온다.
파란 하늘과 잔잔한 바람이 오늘의 여정을 편안함으로 이끌어 주는듯 하다.
오전 10시55분.
청산도 도청항 방파제 안으로 들어선 여객선이
부두 정박을 위해 조용한 바다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선다.
마치 호수의 수면을 연상시키는듯한 잔잔한 바다를 한참 바라본다.
청산면 소재지인 이곳 도청항에서 부터 당리 마을을 지나
영화 '서편제'와 드라마 '봄의왈츠' 촬영장으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언덕의 색깔이 지난 2월28일 방문했을 때와는
완연히 다르다.
봄을 상징하는 연초록 빛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오전 11시11분.
지난 2월28일 방문시에는 도청항에 도착 후 곧바로 산행을 시작해
고성산,보적산으로 이어지는 4시간여의 등산으로 청산도에서의
일정을 마쳤지만,
오늘은 봄꽃 향기를 마시며 해안선을 따라 걷기 위해
유채꽃과 벚꽃 향기를 마시며 천천히 걷는 여정을 시작한다.
오전 11시22분.
과거에는 진말이라 하였으나
장보고의 부하였던 청주한씨의 군공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정월5일날 제를 지내고 있는데
이를 연유하여 마을 이름이 붙여진 당리 마을 어귀의
백목련이 반가운 얼굴로 길손을 맞는다.
여러 그루의 백목련 옆에 홀로 핀 자목련을 보면서
제주에서 출항한 배가 좌초하여 표류하던 중
1771년 정월 초 엿새에 이곳 청산도 당리에 에 도착하여 목숨을 건진
일행 중 이곳 청산도 여인과 꿈같은 며칠밤을
보내고 귀향했던 장한철의 애틋한 사랑 얘기를 떠 올려 본다.
장한철의 '표해록'에 이곳 당리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1770년 겨울 29명을 태우고 제주를 출항한 배가 표류 중
1771년 정월 초 엿새에 살아남은 8명이 청산도에 도착하여
청산도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져 귀향한다.
노란 유채꽃의 꽃말인 "쾌활, 풍요로운 나날"이라는 말이
그 살아남은 8명에게 어울리는듯하다.
오전 11시30분.
유채꽃밭 너머로 드라마 '봄의왈츠'촬영장이 보이는 곳
돌담 사이의 이 길은 아마도 이곳 청산도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곳일게다.
영화 '서편제'에서 유봉 일가 3인이 황톳길을 걸어 내려오며
진도아리랑을 구성지게 불러 제끼던 그 장면이 연출 된 곳이다.
KBS드라마 봄의왈츠가 촬영되었던 오픈 세트장 마당에는
유채꽃을 배경으로 멋진 추억을 남기려는 여행객들로 붐빈다.
유난히 젊은이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는 곳이다.
오전 11시41분.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짙은 유채꽃 향기에
새벽잠을 설친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상쾌한 기분이 충만한 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낮 12시37분.
서편제 촬영장에서 출발하여 구장리를 지나고
보적산 자락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는 진달래 군락을 지나
권덕리가 내려다 보이는 해발 150m정도의 언덕에 올라 섰다.
20여분간 이어진 오르막을 오르느라 이마에 땀이 맺힌다.
낮 12시50분.
권덕리 바닷가로 향하는 마을 어귀 돌담장 옆에서
이제 막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배꽃을 만난다.
매화꽃이 지기 시작하고 벚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망울을 터뜨리는 배꽃.
꽃 모양이 서로 비슷하지만 내 눈에는 그중
가장 청초하게 보이는 꽃이다.
점심 식사를 위해 잠시 머문 권덕리의 바닷물은
물속 깊이 까지 들여다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1740년대에 제주양씨인 철운과 암양권씨가 이주하며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범바위가 가까이 있어서 호암동으로 불렀다가
1900년에 권덕포라 하였다가 분구되어 권덕리라 하였다.
오후 1시29분.
점심을 끝낸 후 권덕리를 떠나 해안 절벽에 솟은 바위인
이른바 말탄 바위를 향해 가파른 경사길을 오른다.
깎아지른듯한 절벽으로 이어지는 해안가인지라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오지만 바다가 보인 경치가 일품인 곳이다.
오후1시38분.
말탄바위 정상에서 바라보는 동쪽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갯바위 낚시터로 유명한 이곳 해안선은 중간부분의 이름이 '장기미'이고
끝부분의 이름은 '큰기미' , 그리고 작은 바위섬의 이름은 '상도'이다.
오후 1시50분.
말탄바위를 지나 범바위로 오르는 오르막에서
조금 전 지나온 급경사 길을 뒤돌아본다.
암반지대이어서인지 큰 나무가 거의 없다.
보라빛을 띈 붓꽃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곳이다.
오후 1시55분.
범바위 앞에 도착하니 비좁은 바위틈을 비집고 피어나는 진달래가 눈길을 끈다.
청산도의 수호신 범바위는 가파른 능선에 범 한 마리가 웅크리고
적을 노려보는 듯한 모습이다.
호랑이 한 마리가 저 범바위에 올라가 포효하다,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 제 소리에 놀라 도망친 뒤
청산도에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범바위 앞에서 권덕리를 향해 북서쪽으로 내려다보는
급경사의 사면에도 붉은빛 진달래가 한창 피어나기 시작한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범바위지만
좁은 바위 틈새마다 진달래가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분홍빛으로 피어나는 진달래 꽃 자체만으로는
연약한 여인네의 모습을 연상시키지만
척박한 땅이나 바위틈에서도 자생하는 은근과 끈기를 보자면
과연 원산지가 대한민국이란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 2월28일 산행시 올랐던 보적산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바위 틈새마다 진달래꽃이 피어 난다.
해발 330m라고 새겨진 검은색 정상석과 그 옆의 돌탑도
그날의 모습 그대로이다.
오후 2시10분.
범바위 옆 전망대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오전에 출발한 도청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산을 시작한다.
전망대 너머 범바위 위에서 남쪽바다를 바라보는
산행객들의 모습이 무척 활기차게 여겨진다.
오후 2시40분.
산길을 벗어나 권덕리 해안도로가에서 범바위쪽을 바라본다.
유난히 많은 이곳 청산도의 보리밭.
따뜻한 봄 햇살을 듬뿍 받으며 보리 이삭이 영글어 간다.
오후 2시51분.
권덕리에서 다시 한번 범바위쪽 능선을 바라보며 발길을 돌린다.
아름다운 섬 느림의 섬 슬로시티로 대변되는 이곳 청산도.
그러나, 도청리 선착장까지의 거리가 5km이니
오후 4시 배를 타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이제는
빠른 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걸음을 걸은 많은 이들이 피로를 호소하며 콜택시를 부른다.
그러나, 오늘 하루 6시간 가까이 걸음을 걸어 조금 피로하긴 하지만
아름다운 섬 청산도 내에서 택시를 탈 수는 없는 일.
평소 운동으로 다져온 건강을 확신하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 딛는다.
오후 4시8분.
권덕리에서 도청리 선착장까지 5km를 50분만에 걸어 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50분. 따끈한 커피 한 잔으로 가쁜 숨을 달래고
완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은 후 방파제를 바라본다.
하루 종일 파랗던 하늘이 어느틈에 구름으로 뒤덮인다.
방파제 위를 천천히 걷는 저 일행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여유롭게 여겨진다.
지난 2007년 신안 증도, 장흥 장평·유치면, 담양 창평면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Slow City)로 인증된 청산도에서 느끼는
느림의 여유를 보는 것 같아 무척 자연스럽다.
슬로시티는 이탈리아어로 “유유자적한 도시 또는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의미인
칫따슬로(cittaslow)의 영어식 표현으로
전통보존, 지역민중심, 생태주의 등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오후 4시15분.
4시10분에 출항한 여객선이 청산도 방파제를 벗어난다.
하늘,바다,산 모두가 푸르다해서
'청산(靑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청산도.
이곳 청산도는 오래 전부터 교육열이 높았다.
"청산리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친척집 버선까지 팔 정도이다."
"청산에서는 글 자랑하지 말라."라는 말도 전해 온다.
이는 조선 말기 문신이었던 김유(1814~84)선생의 영향인듯하다.
김유 선생은 거문도에 귀양갔다 귀양을 마치고 귀향중
산세 수려하고 인심 좋은 청산도에 머물렀다.
그리고, 곳곳에 서당을 세우고 후세들을 위해 교육에 힘 쓴다.
그 후 후학들이 선생을 기리기 위해 숭모사라는 사당을 세우고
매년 3월3일 제를 올린다.
오후 4시28분.
출항한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청산도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하긴 직경이 10km정도에 불과한 원형의 자그마한 섬이기 때문일게다.
지난 1993년 4,000명을 넘던 인구가 이제는 3,000명 정도인 작은 섬
아름다운 청산도의 자연 경관이 오래 보존되기를 바라며
휴일 하루 일정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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