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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의 고향 마산 무학산(舞鶴山) 산행기

2010년 4월10일 토요일 오전 10시58분.
가곡 "가고파" 로 널리 알려진 노산 이은상 시인의 고향인
마산 무학산 산행을 위해 산행 들머리인 '만날고개'에서
무학산 산행의 첫 발을 내 딛는다.

부잣집 아들이지만 반신불수이고 벙어리인 남편을 맞아 시집간
가난한 집 큰딸이 친정식구를 만나는 전설이 전해지는 "만날고개".
표지석 아래 기단석에는 만날고개의 이름에 대한 유래가 씌여 있다.

중부 이북지방과는 달리 온 산을 수놓은 하얀 벚꽃이 만개한
산허리를 오르며 뒤돌아볼라치면 곧 비라도 내릴듯 찌푸린
하늘 아래 멀리 마산만이 내려다 보인다.
정박 중이거나 혹은 지나는 배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오전 11시33분.
시간에 쫒기지 않는 여유 있는 산행인지라
연분홍 빛을 띈 진달래 꽃잎을 한 두닢씩 따 먹으며
신선놀음을 이어간다.
얼마 후 5월이면 제 철을 만날 철쭉꽃은 먹을 수 없지만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기에 참꽃이라고도 불린다.
지금 이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오전 11시55분.
해발 516m라고 새겨진 정상석이 있는
대곡산 정상에 도착했다.
아담하게 쌓아올린 돌탑 주위로 연분홍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소박한 곳이다.

비록 나 자신 조금 여유있게 산행을 했지만
1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등산안내도에는
소요시간이 26분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전문적인 산꾼들이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만든
등산 안내도임이 분명하다.
일반인들을 위한 배려가 아쉬운 부분이다.

멀리 남서쪽으로 지난 2008년 여름 개통된
길이 1.7km의 마창대교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마산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돝섬도 보인다.

돼지를 닮아 돝섬이라 불리는 저곳은
25년 전 직장에서 영업소장으로 발령받아
이곳 마산에서 2년여 거주할 때 초등학생이던
우리 아이들과 자주 들렀던 곳이다.

낮 12시5분.
대곡산 정상을 떠나 무학산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긴다.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는 향기로운 능선길이다.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의 진달래꽃들이
수줍음을 잔뜩 머금은듯 여겨진다.

사랑의 희열,신념,청렴,절제 등의 꽃말을 지닌 진달래꽃은
소월의 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오랜 옛적부터
우리 민족의 애(哀)와 한(恨)을 담고 있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꽃이다.


낮 12시36분.
오전부터 잔뜩 찌푸리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일부 산행객들은 가랑비 수준으로 내리는 비에 호들갑을 떤다.
이유인즉슨 비를 맞으면 몸에 좋지 않아서..
지나치게 몸 생각하는 사람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 못 본 것 같다.
서쪽 내서읍 방향의 농촌 풍경이 옅은 구름속에 묻혀
일견 신비스럽게도 보인다.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다랭이논 주위의 저수지에
물이 기득하다. 올 봄에는 농부들이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듯하다.
20여년 전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 저 저수지 이름이 감천저수지였던 것 같다.

낮 12시46분.
해발 621m라는 표지석이 있는 안개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인 후 다시 걸음을 옮긴다.
약수터 옆 초가로 지붕을 이은 정자에서는
한떼의 산행객들이 점심 식사를 하느라 시끌벅적하다.

낮 12시52분.
봄철을 맞아 가지 끝에 꽃봉오리들이 맺히는
자그마한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해발 761m 무학산 정상부가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빗방울은 멈추었으나 옅은 구름으로 시계가 흐린 편이다.

망원으로 당겨 보니 무학산 정상석 주위에는
증거사진을 남기려는 인파로 북적인다.
정상부에 이처럼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은
지난 겨울 북한산 백운대 정상의 휘날리는 태극기 이후
오랫만에 보는 모습이다.

낮 12시57분.
무학산 정상 바로 아래의 암반을 오르며 지나온 730봉 쪽을 뒤돌아 보니
능선 양쪽 사면이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이달 말쯤이면 온 산이 붉게 물들것 같다.

오후 1시5분.
정상부는 바람이 무척 세차다.
많은 산행객들이 추위를 호소한다.
산행 시작지점인 만날 고개에서부터 쟈켓을 벗고
반팔 티 차람으로 산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서늘한 기운을 조금 느낀다.
그러나, 쟈켓을 꺼내 입지 않아도 견딜만 하다.

마산시를 서북쪽에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무학산.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하여
무학산(舞鶴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28년 전 79세를 일기로 타계하신 노산 이은상 선생이
자신의 고향인 이곳 마산을 생각하며 지으셨다는 "가고파".

정상석 주위에서 한동안 머물며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를
작은 소리로 흥을거려 본다.

오후 1시24분.
많은 산행객들이 정상부의 헬기장에서 점심 식사를 해결한다.
나 또한 그들 틈에 어울려 끼니를 해결한 후 산행길을 이어 간다.

오후 1시29분.
무학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여러 갈래 길 중
교방동으로 가는 서원골 쪽과 회원동으로 가는 봉화산 쪽 갈림길이
있는 정상 바로 아래의 쉼터 풍경이 너무 삭막하다.
지난해 이맘 때는 온산이 진달래꽃으로 붉게 물들었던 곳인데
꽃샘추위로 표현되는 변화무쌍한 날씨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앞에 보인 사면의 키 작은 나무 대부분이 진달래 군락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하긴 많은 지역에서 꽃이 피지 않은 상태에서 봄꽃 축제를 시작했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후 1시32분.
봉화산 방향으로 길을 잡아
목장승이 서 있는 해발 705m지점을 지나 본격적인 하산 길에 들어 선다.
비록 분홍빛 진달래꽃이 아직 피지는 않았지만
진달래나무 군락 사이로 솟은 억새 숲과
자그마한 소나무가 어우러진 모습도 나름 운치는 있다.

오후 2시12분.
무학산 정상에서 2km남짓 하산한 지점.
해발 400m이하로 내려오자 남쪽 사면은 진달래꽃의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분홍 빛 진달래꽃 사이를 지나다보니
나 자신 분홍 빛 꽃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듯한
느낌이 강렬하게 밀려든다.

정상부근에서 보지 못한 분홍빛 진달래 꽃 속에 묻힌
산행객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들의 얼굴 또한 기분 좋은 연분홍빛으로 물든다.

오후 3시1분.
무학산 정상을 지나며 계속 북쪽으로 향하던 하산길이
371봉을 지나면서는 거의 정동 방향으로 하산길이 이어진다.
해발 290m 지점에서 사방으로 조망이 트인다.

남동쪽으로 인구 50만의 마산 시내 중심지가 보이고
멀리 마창대교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 온다.

현재 진행중인 마산,창원,진해 3개시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인구 100만이 넘는 거대 도시가 재탄생하더라도
저 마창대교의 이름은 그대로 남아 먼 훗날
나의 후배가 이런 글을 쓸 때 "마창대교"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를 그가 자세히 설명해 주리라는 생각을 한다.

오후 3시14분.
높이 264m로 동네 뒷산격인 봉화산의
작은 돌로 쌓은 돌탑 주위에는 온통 진달래의 분홍빛으로 치장되어 있다.
북동쪽 동마산으로 눈길을 돌리니 마산역 주위로
25년전에는 띄엄띄엄 보이던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25년전의 여유롭고 한산하던 지방 소도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남쪽으로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북쪽인 뒷편은 야트막한 야산이 겨울 북풍을 막아 주는 산비탈 주택지.
서울의 한남동,미국의 비버리 힐즈..등등과 같이 최고의 주거환경을 가진곳.
녹색의 솔잎과 흰 벚꽃이 운치를 더해 준다.

오후 3시52분.
산행을 마치고 귀가할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이동하며
무학산 둘레를 이어주는 석전동 산복도로 횡단 육교 위에서
바라보는 회원동,교방동쪽 도로변의 벚꽃이 환상적이다.
아마 오전에 산행 시작할 때 출발한 경남대학교 뒷편
만날고개까지 이런 풍경이 이어질 것 같다.

벚꽃으로 뒤덮인 인도를 걷는 어린 딸과 엄마의
밝은 미소가 장시간 산행으로 피곤한 몸을 편하게 해 준다.
바람에 흩날려 떨어진 벚꽃 잎들을 밟으며 걷는 길.
부드럽고 아름다운 동행이다.

매년 진달래 산행이 끝남과 동시에 벚꽃길로 여행을 떠났었지만
금년에는 꽃소식이 늦어 아직 제대로 만개한 벚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벚나무 밑에 주저 앉아 잠시 한숨을 돌린다.

오후 4시 1분.
지난 3월 광양 청매실 농원에서 만난 매화보단는 향기가 덜하지만
그래도 가까이에서 맡아보는 벚꽃 향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꽃잎 끝이 완전이 둥근 매화에 비해 끝부분에 홈이 있는 벚꽃.
가지에서 바로 피는 매화에 비해 가지에서 뻗어나온 꽃자루 끝에 피는 벚꽃.
그 연유로 부드러운 바람에도 꽃자루 끝에 피어난 벚꽃이 흔들린다.
미풍에 살랑거리는 벚꽃 잎들을 보며 주말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