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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손길이 느껴지는 금오도 대부산 산행기

2010년 4월18일 일요일 오전 9시34분.
이른 아침 대전을 떠나 3시간여를 달린 끝에 도착한
전라남도 여수항.
잔뜩 찌푸린 날씨지만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
여객선터미널에서 금오도행 페리호에 몸을 싣는다.

오전 9시49분.
9시40분에 출항한 페리호는 길이 450 m. 너비 11.7 m인
돌산대교 아래를 통과해 남으로 향한다.
지난 1984년 12월 완공된 사장교인 돌산대교 바로 아래의
물살이 무척 거세다.
조류 속도가 초속 3m라는 얘기가 실감이 간다.

오전 9시59분.
꽃샘 추위가 오래 이어진 을씨년스런 날씨가 한동안 이어져서인지
주위 섬들의 나뭇잎들도 아직 생기를 못찾은듯하다.
여수항과 그 뒤의 구봉산이 점점 멀어져 간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배 진행 방향 좌측에 계속 이어지던
갓김치의 본고장 돌산도를 벗어나게된다.
우측은 고돌산반도라 칭하며,
현재 배가 지나는 이 바다가 이름하여 "가막만(-灣)이다.

오전 10시42분.
행정구역상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인 개도(蓋島) 선착장에
잠시 기착하여 승용차 한 두대와 몇 명의 등산객을 내려 준다.
400여세대 900여명이 사는 작은 섬인 개도는
주위의 섬을 거느린다하여 덮을 "개(蓋)"자를 써서
개도(蓋島)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난중일기에는 "개이(耳)섬"이라 표기되어 있고
인근에서 자연 지명으로 '개섬'이라 불리며
여수 방면으로 바라 보면 이 섬의 봉화산과 천제산이
개의 귀(耳) 모양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한다.

오전 10시59분.
개도 선착장을 떠나 남동 방향으로 향하던 배가 좌측 월호도를 지나며
오늘 목적지인 금오도의 좌측 절반 이상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섬의 지형이 자라를 닮았다 하여 큰 자라라는 뜻으로
금오도[金鰲:자라 오 ,島] 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른쪽 높은 봉우리 옆에 어렴풋이 정자가 보인다.

300mm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거의 암반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옆 공터에서
작고 아담한 정자가 한 시간 후에 도착할 나를
기다리고 있는듯 하다.
아마도 저곳이 375봉이리라.

오전 11시11분.
금오도의 페리호 선착장 중 한 곳인 함구미 선착장
이제막 섬에 도착한 산행객들은 산행 채비를 단단히 한다.

'함구미'라는 이름은 마을 서쪽에 대대산(大代山) 줄기 끝 부분이
용(龍)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용두(龍頭)라는 지명과 함께
해안변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아홉 골짜기의 절경을 이뤄
이를 상징하여 함구미(含九味)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쪽으로 375봉 옆의 정자가 보인다.
해수면에서 해발 375m를 오르는 길은 가파른 급경사길이 될 것 같다.

오전 11시18분.
등산로를 찾아 마을 길을 지난다.
함구미 마을이 북향인 때문일테지만
매서운 겨울철 북풍을 막기 위한 돌담이 매우 두껍게 느껴진다.
같은 배에서 내린 이 섬 중심부 옥녀봉 주위 마을 이장님도
가파른 경사 길을 오르며 가쁜 숨을 몰아 쉰다.

오전 11시24분.
산행을 시작하여 10여분 경과하자 해발 100m 고도에 이른다.
발 아래 조금 전 지나온 함구미 포구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 오는곳.
온 몸에 땀이 난다. 자켓을 벗고 반팔 차림으로 걸음을 옮긴다.

오전 11시38분.
해발고도 100m에서 200m로 이어지는 10여분간의 산행로는
마치 내륙 지방의 고산지대에서 접할 수 있는 숲길이 이어진다.
소나무를 비롯한 각종 활엽수들과 새 봄을 맞아 움트는 온갖 식물들이
진한 풀 내음을 풍긴다.

오전 11시43분.
울창한 숲길을 지나자 한동안 경사가 급한 너덜길이 이어진다.
이곳 금오도의 지층은 중생대 백악기층(中生代 白堊紀層 : cretaceous)에 속하는
중성화산암류(中性火山岩類 : kiv)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오랜 기간 지나며 암반이 수차례의 산사태를 일으킨 결과물이리라.

오전 11시59분.
해발 300m를 넘어서며 이와같은 자그마한 활엽수림을 지난다.
아마 이 나무들이 이곳 금오도에 많이 자생한다는 소사나무인듯하다.
우리나라 특산으로 주로 해안지방 산지에서 자라는 소사나무는
비교적 키우기 쉬운 분재용 나무로 인기 있는 편이다.

낮 12시3분.
375봉 정자 옆 공터에 도착하여 북서쪽으로 내려다보는
함구미 마을은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은 느낌을 준다.
잠시 빗방울을 뿌리던 찌푸린 날씨 때문인지
눈 앞의 바다 건너 월호도의 모습이 옅은 안개 속에 가려 뿌옇게 보인다.

북동쪽으로는 이제 꽃이 거의 지고 잎이 나기 시작하는
진달래꽃 너머로 대두라도,소두라도,나발도,대황간도,소황간도 등
이곳이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지역임을 실감케 하는
작은 섬들이 옅은 구름에 휩싸여 신비감을 자아낸다.

우리 전통 건물 구조 중 하나인 모임 지붕 구조의 2층 정자 주위에는
피곤한 다리를 잠시 쉬어가며 가슴이 탁 트이는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장의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고자하는
산행객들이 계속 이어진다.
팔각정이 아닌 육각정 정자를 뒤로 하고 산행을 이어 간다.

낮 12시32분.
팔각정을 지나 이곳 금오도 최고봉인 해발 382m 대부산(大付山)까지
이어지는 30여분의 능선길은 좌측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급경사의 내리막 산길이다.
이처럼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구간도 자주 나타난다.
이 때는 마치 암반 투성이인 북한산을 오를 때의 짜릿함도 느낀다.

낮 12시40분.
정상석이 없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양방향 화살표 모양의
이정표에 대부산 374m라고 표기된 정상을 지나 50여 m 떨어진 곳.
바위 능선이 차가운 북풍을 막아 주는 이곳에서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점심 식사겸 휴식을 취한다.
대부분의 자료에 대부산의 높이를 382m라고 밝힌 점을 보아서는
이정표가 잘못된듯 하다.

조금 전 잠시 빗방울을 뿌린 날씨 때문인지
아침보다 구름이 더 많아진듯하다.
날씨에 민감한 산행객들은 휴식도 없이 하산길을 재촉하기도 한다.
이곳 대부산의 이름을 여수시에서 발행한 안내 책자에서는
'매봉산'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산 이름을 공식적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을듯 하다.

오후 1시3분.
서둘러 점심을 끝낸 후 산행길을 이어간다.
멀리 남동쪽으로는 얕은 산허리를 낮게 깔린 비구름이
빠른 속도로 지나 간다.

인구 2,200여명인 이곳 금오도는 옛날에는 숲이 울창하고 사슴들이 떼지어 살아,
조선 고종 때 명성황후는 이 섬을 사슴목장으로 지정하고
출입·벌채를 금하는 봉산으로 삼기도 하였다 한다.
그 후 1885년 봉산이 해제되자 당시 관의 포수였던 박씨가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섬에 들어가 두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하산을 시작하며 내려다 본 북쪽 사면 아래로
오후에 여수로 떠나는 배를 타게될 송고항 좌측의
송고포구와 그 옆에 마련된 자그마한 자연공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여름 한철 저 시원한 바닷가에서 더위를 식히면 좋을듯한 곳이다.

오후 1시10분.
새 봄을 맞아 연록색 새순이 돋아나는 자그마한 나뭇가지 사이를 지난다.
풋풋한 나뭇잎들의 냄새가 향기롭다.
남쪽 바다의 자그마한 섬이지만 짧은 시간 동안
변화무쌍한 갖가지 모습으로 다가오는 섬산행의 참맛을 느끼는 순간이다.

오후 1시33분.
정상에서 2.1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문바위를 지난다.
이정표에는 해발고도 350m라고 표기되어 있다.

"문바위"를 사전적 의미로 직역하자면
어떤 어귀에 대문처럼 서 있는 바위. 또는 문짝 모양의 바위를 일컬음이리라.
그래서인지 내가 다녀본 산행길에서 만났던 문바위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거창 금원산의 문바위,고창 선운산의 문바위.강원도 소양호 변의 문바위, 등등..

문바위 옆 깍아지른듯한 절벽 위에 여러개의 자그마한 돌탑이 모여 있다.
많은 사람들의 정성 어린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무엇인가를 마음 속으로 기원해 본다.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치는 것이 천안함에서 전사한 장병들이다.
그들의 명복을 빌어 본다.

오후 2시2분.
칼이봉 해발 272m라고 표기된 이정표 옆에서 내려다보는 동쪽 바다.
아마 저곳이 대유마을인듯하다.
경기도 가평 운담마을 부근의 칼봉은 산의 생긴 형태가 칼처럼 높고 뾰족하다하여
북진하는 장수의 기상을 뜻한다는데...
이곳 칼이봉의 이름 유래는 알지 못했다.
언젠가는 이 궁금증을 풀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오후 2시11분.
칼이봉을 지나면서부터는 한동안 이와같은 동백숲이 이어진다.

지난 2월초 통영 앞바다의 동백섬 지심도를 찾아
봄을 재촉하듯 선홍빛 망울을 터뜨리던 동백을 맞은지
두어달이 지나 이처럼 작고 앙증맞은 예쁜 동백꽃을 바라보며
봄을 떠나 보낸다 생각하니 나 자신 일면 행복감을 느낀다.

붉은 선혈을 연상시키는 동백 꽃.
봄철에 피는 매화나 벚꽃이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피었다가
짧은 시간에 떨어지는데 비해 동백은 그렇지 않다.
또한 동백꽃이 질때는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진다.
낙화(落花)가 아닌 절화(切花)이다.
그래서 애절한 마음을 동백꽃에 비유한 시와 노래가 많다.
또한 동백이 떨어지는 모습이 사람의 머리가 뚝 떨어지는 것과 같다하여
불전에 바치거나 병문안 때 가지고 가지 않는다.

오후 2시32분.
당초 금오도로 향할 때 계획은 옥녀봉을 거쳐 검바위까지
산행을 이어 가고자했건만,
금방 비라도 내릴듯 찌푸린 날씨로 인해 조망이 불량하여
칼이봉에서 1.3km떨어진 곳.
옥녀봉까지 2.7km를 남겨준 지점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대유마을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여수행 페리호를 타게 될 송고항까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걷기 위함이다.

대유마을 뒷산의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듯 하다.

오후 2시43분.
북향한 해안도로를 따라 대유 마을을 벗어나 걸음을 이어간다.
이곳 대유마을은 개척 당시 마을 어귀에 버드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버들개"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그후 마을 호수가 점점 늘어나게 됨에 따라 지형적인 여건상 "큰 버들개"와
"작은 버들개"로 분리되어 대유(大柳)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큰 버들개"라고 부르고 있다.

오후 3시12분.
이곳 금오도 북동쪽 끝부분에 위치한 여천 마을을 지난다.

'여천'이라는 이름은 마을 뒷편에 대대산(大代山)의 줄기를 타고 대목산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산이 뻗어 내리면서 작은 봉우리 2개를 형성하고
그 모양새가 여자의 젖가슴처럼 생겼으며
그 산줄기를 따라 흐르는 계곡물이 맑고 깨끗해 여천(女泉)으로 불리우다
여천(汝泉)으로 고쳐 사용하고 있다.

오후 3시35분.
여천마을에서 송고마을로 향하는 해안도로의
우측은 정북향이다.
그리고 자그마한 어촌의 집들은 남향한 야트막한 야산 기슭을 따리 지어져 있다.
겨울철 바닷가의 북풍이 얼마나 세찬 바람인지는
처마밑까지 바짝 치켜 올려 쌓은 이 돌담 하나로 대변되고도 남음이 있다.

오후 3시57분.
송고항에 도착해서 바라보는 서쪽 송고포구의 풍경은
전형적인 한적한 어촌 풍경이다.
'송고'라는 이름의 유래는 마을 전체가 송림(松林)으로 우거져 푸른 숲을 이루며
항상 푸른 기상과 정기가 높이 치솟아 있음에
예로부터 자연과의 조화를 풍자하여 "솔고지"라 부르다가 송고(松高)라 이름 지었다 한다.

오후 4시28분.
4시20분에 송고항을 떠난 페리호는 여수쪽인 북쪽이 아니라
이곳 금오도의 함구미항이 있는 서쪽으로 향한다.
일요일 오후의 마지막 배이니만큼
육지로 나가고자하는 모든 사람을 실어 날라야 할것이다.

오후 4시39분.
함구미항에서 차량과 사람을 태운 페리호는
경쾌한 뱃고동을 울리며 금오도를 떠나 북쪽으로 뱃길을 돌린다.
멀어져 가는 함구미 마을 모습을 머릿속에 새겨 둔다.
정면의 야트막한 능선 너머는 망망대해 남해 바다이고,
오른쪽으로는 이른바 용두마을이 연결된다.

오후 4시48분.
함구미항을 떠난지 불과 10여분.
월호도와 개도 사이를 지나며 금오도는 점차 섬 사이로,
그리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불량한 시계 사이로 점차 사라져 간다.

오후 5시22분.
오전에 여수에서 금오도로 향할 때는 함구미항까지 1시간20분이 걸렸으나,
오후 여수로 돌아가는 뱃길은 무척이나 더디다.
1시간이 지났건만 이제 좌측 멀리 까마득히 백야대교가 보인다.
물론 오전에 기항하지 않았던 개도와 백야도 사이의 "제도"에 들러
자그마한 화물차 1대를 실은 때문이리라.

저 백야대교는 지난 2005년에 완공한 고돌산반도와 화정면 면소재지인
백야도를 연결한 길이 325m의 아치형 연륙교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10여개의 연륙교를 연결하여
여수에서 자동차로 바로 금오도로 들어가도록 연륙교 건설이 예정되어 있다.

오후 6시5분.
비가 내리는 가운데 2시간 가까이 달려온 페리호가
돌산대교에 가까이 다가 간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귀가길을 재촉하는 마음이 앞서
뱃머리로 몰려 나온다.
조금씩 매리는 봄비를 맞으며
휴일 하루 섬산행을 마무리 한다.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여행이 끝나는 시점에서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일주일 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