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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발한 벚꽃 터널을 지나 마이산(馬耳山)으로

2010년 4월24일 오전 10시53분.
말의 귀를 닮았다하여 그 이름을 얻게된 마이산(馬耳山) 산행에 나선
햇빛 따뜻한 주말.
마이산 북쪽인 진안읍 청소년수련관 옆의 전망대에서
멀리 남쪽으로 마이산을 바라 본다.
백제 때 진안의 옛 이름은 난진아(難珍阿)였다. 고원에 있는 고을이란 뜻이다.
조선조 때 붙여진 이 고을 이름 진안(鎭安)도 백제 유민들을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의미다.

전설에 의하면 좌측의 숫봉(동봉)은 잘못을 저지른 여신으로부터
두 아기를 빼앗아 안고 있는 모습이고,
우측의 암봉(서봉)은 죄스러움에 고개를 숙인 형상이라 한다.

오전 11시14분.
마이산 산행 기점으로 예정한 남부주차장을 향하는 30번 국도변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부근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는 마이산의 모습은
북쪽에서 본 형상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저 마이산은 마치 금강산의 경우처럼 계절별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봄에는 자욱한 안개를 뚫고 나와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전 11시42분.
마이산도립공원 남부주차장에서 시작된 산행.
산행로 입구에 자리한 금당사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2차선 도로는 하늘을 뒤덮은 벚꽃터널로 장관을 이룬다.

마이산이 자리한 이곳 진안군 마령면은 평균 해발고도가
250m대로 비교적 높은 지역인데다 낮은 기온으로 인해
벚꽃의 개화시기가 군항제로 유명한 진해보다 20여일,
훨씬 북쪽에 자리 한 서울보다도 5~6일 늦은 곳이다.
천암함 사태 등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와 변덕스런 봄날씨로 인해
금년 봄에는 만개한 벚꽃을 보지 못하고 여름을 맞을 수밖에 없으리라
체념했던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내 마음 속에 미소가 번진다.

낮12시5분.
매표소를 지나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길을 벗어나
좌측 산행로를 따라 20여분 올라 도착한 고금당.
지난 2008년 12월 마이산 산행시에는 한창 공사중이던 곳이다.

이 고금당은 굴에 문을 달아 법당처럼 만든 곳으로 고려말
고승 나옹선사(1320~1376)의 수도처로 전해오는 자연 암굴로 나옹암이라 한다.
나옹선사는 1371년 고려 공민왕의 왕사였으며 여주 신륵사에 입적한바 있다.
해발 525m인 이곳에 건물 지붕과 괴이하게 생긴 탑까지 온통
노란색으로 칠한 것은 무척 천박해 보인다.
어쩌면 나옹선사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듯하다.

멀리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좌측으로 오늘 산행경로에 포함된
나봉암 위의 전망대인 비룡대가 보인다. 저곳까지의 거리는
대략 2km남짓. 아마 1시간 정도 소요되리라.
중앙부로는 해발 540m의 봉두봉 뒤로 우뚝 솟은 암마이봉이 뚜렷리 보인다.
숫마이봉은 암마이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막강한 아내의 위세에 눌려 작고 초라해진 남편으로 전락한
요즈음의 세태를 보는듯하여 나 자신 조금은 의기소침해지는 느낌이다.

낮12시40분.
고금당을 떠나 비룡대로 향하는 능선길에서 남쪽을 바라 본다.
아래로 멀리 보이는 벚꽃길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은 벚꽃길이 눈이 부시다.
일주문 밖 주차장은 차량으로 홍수를 이룬다.

낮 12시53분.
비룡대가 눈 앞에 보이는 능선에서 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산기슭에 아담하게 자리한 고금당의 노란 지붕이 보인다.
봉우리 너머 북쪽으로는 농공단지가 있는 진안군 부귀면 마을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익산-포항간 20번고속국도가 시원스레 뻗어있다.

낮12시56분.
해발 527m 나봉암 정상에 마련된 정자인 비룡대에 오른다.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는 행복감이 묻어나는 산행객들은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이마의 땀을 식힌다.

비룡대에서 남서쪽을 내려다 본다.
큰 암반인 나봉암 능선에서 휴식을 취하는 산행객들 너머로
멀리 오전에 지나온 벚꽃길이 하얗게 빛난다.

동쪽으로 바라보는 하늘이 무척 깨끗하다.
멀리 숫 마이봉을 거의 가리고 있는 암 마이봉이 보이고,
그 왼편으로는 5개의 자그마한 봉우리로 이루어진 삿갓봉도 보인다.

오후 2시11분.
비룡대 아래 안락한 나무 아래서 점심을 겸한 휴식을 취한 후
봉두봉으로 향하는 능선에서 뒤돌아 본 비룡대가 자리한
암반의 모습이 이채롭다.

암반 전체가 마치 시멘트 콘크리트를 버무려 놓은 것 같은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때문인지 크고 작은 구멍들이 벌집같이 뚫려 있다.

오후 2시17분.
해발 540m 봉두봉으로 남서쪽으로 탑영제가 내려다 보인다.
마이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고여 이 탑영제를 이루었다.
이곳은 큰 가뭄이 들때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방생의 최적지로 꼽힌다.

오후 2시39분.
봉두봉에서 탑사쪽으로 하산을 시작하며 가까운 거리에서
동쪽의 숫마이봉을 완전히 가리고 서 있는 암마이봉(해발685m) 옆을 지난다.

암마이봉 등반로는 지난 2004년부터 10년간 자연휴식년제로 지정돼 오를 수는 없다.
마이산의 바윗덩어리는 만지면 쉽게 부스러지는 역암(礫岩)으로 이뤄져있다.
자갈 섞인 돌이란 뜻이다.
약 9천만년 전부터 1억년 전 사이 호수가 융기해 생겼다.
표면에는 동굴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타포니 지형이다.
타포니는 벌집모양의 자연동굴을 뜻하는 코르시카의 방언에서 유래했다.

오후 3시4분.
마이산을 대표하는 탑사에 도착했다.
이곳 탑사는 이갑용 처사가 쌓은 80여 개의 돌탑으로 유명하다.
이 돌탑들은 1800년대 후반 이갑용 처사가 혼자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갑용 처사는 낮에 돌을 모으고 밤에 탑을 쌓았다고 한다.
이 탑들은 이제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무리 거센 강풍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80여개의 탑에 대해 탑사 측에서는
구한말 터를 잡고 살았던 이갑룡 처사가 도력을 부려 쌓았다고 주장하지만
진안군 문화원 측의 이미 오래전부터 탑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문화원의 설명에 따르면 18세기 진안에 살았던 담락당 하립의 시에
‘속금산(마이산)에 탑이 많은데, 붉은 단풍 속에 종소리 울리네’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마이산 돌탑의 역사는 최소한 200년 이상은 될 것이라고 한다.

오후 3시23분.
탑사를 떠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마이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고여 만들어 놓은 탑영제 옆을 지난다.
탑영제 주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절경을 이룬다.
상춘객들로 가장 붐비는 아늑한 풍광과 명경지수를 자랑하는 이곳에
1984년 담락당과 삼의당 부부의 시비가 세워졌다.
두 사람은 한국 한시문학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삼의당은 조선시대 여류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과 어울리는 쪽빛 저수지 물빛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곳.
바람이 불 때마다 앙증맞은 흰 꽃잎을 흩뿌리는 벚나무 아래서
주말 오후의 행복을 즐기는 인파를 뒤로 하고 탑영제를 떠나며
따뜻하고 행복했던 마이산 산행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