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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수도의 보물 소매물도

2010년 5월15일 토요일 오전 10시44분.
주말 아침 일찍 대전을 출발해 3시간 이상을 달려온 시간
완만한 경사길을 내려가는 차창밖으로
거제 남부 최고봉인 가라산의 줄기가 서쪽으로 뻗은
능선 아래 서쪽을 정면으로 바라 보는
경남 거제시 남부면 '저구항[猪仇港]'이 눈에 들어 온다.

오전 10시 47분.
주차장에서 소매물도행 선박이 기다리는 선착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내해 수심은 13~15m이고 외해 수심은 22m인
저구항 바다는 마치 백조가 노니는 호수의 수면 마냥 잔잔하다.
항구의 남쪽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명사해수욕장이 펼쳐지는
이곳 저구항은 한국전쟁 당시에는 친공포로수용소가 자리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오전 10시56분.
총톤수 29톤으로 여객 정원이 96명인 작은 배가 나를 기다린다.
최근들어 남,서 해안으로 섬 여행이나
유람선 탑승 경험을 가진 여행객들은 너무나 작고 앙증맞은 배의 크기에 놀란다.
청산도,욕지도,한산도 등을 오가며 차량까지 실어 나르는
비교적 규모가 큰 '페리'에 비하면 초라한 외형이지만
차라리 바다를 지나는 동안 풍광을 즐기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오전 11시13분.
11시에 저구항을 떠난 배가 10여분 지나며 저구항이 점점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그와 동시에 좌측 끝으로 '가라산' , 그리고 우측 끝으로는 '망산'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 온다.

높이 585m인 가라산[加羅山]은 거제도의 최고봉으로 주봉은 가래봉이다.
특히 가라산과 연계산행을 하는 노자산의 천연기념물인 학동의 동백림은
세계적인 팔색조(八色鳥) 번식지로 잘 알려져 있다.

오전 11시 28분.
본섬인 매물도 우측으로 500여m 떨어진 바다 위에 자리한
소매물도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면적 0.51㎢, 해안선길이 3.8㎞에 불과한 작은 섬이라는게
실감 나는 순간이다.

오전 11시38분.
소매물도 선착장에 들어서며 속도를 줄이는 배 위에서 바라보는
선착장의 번잡한 정경에 조금 못마땅한 느낌이 든다.
2년 전인 2008년 6월14일의 모습에 비해
너무나 훼손된 자연 경관에 조금 실망감이 든다.

오전 11시42분.
2년 전 통영항에서 출발한 배가 비진도를 거쳐
1시간 20분만에 도착했던 것에 비해
절반의 시간인 40분만에 도착한 환상의 섬 소매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파, 그리고 온통 누더기처럼
얼기설기 엮인 콘크리트 구축물들...
마치 내가 자연 훼손 현장을 확인키 위해 이곳을 찾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오전 11시51분.
이곳 소매물도의 절경인 등대섬과 그 주위 풍광을 보기 위해
급 경사 오르막길을 오르며 북쪽인 선착장 쪽을 뒤돌아 본다.
바다 한 가운데 작은 바위섬인 남매섬이 변함없이 솟아 있고,
그 뒤 멀리로 용초도,장사도,대덕도,가왕도 등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2년 전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빽빽한 숲길이던 이 길도
이처럼 붉은 흙이 다 드러날 정도의 허허벌판을 만들어 버린
행정 당국자의 행위가 조금은 괘씸해 진다.

낮 12시 1분.
소매물도 최고봉인 망태봉 바로 아래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 본다.
북서쪽으로는 이곳 소매물도와 500여m 떨어진 매물도가 보이고,
가운데 부분에는 조금 전 그 앞을 지나 온 소매물도 분교장터가 보인다.
매물도초등학교 소매물도 분교는
1961년 4월29일 개교하여 졸업생 131명을 배출하고 1996년 3월1일 폐교되었다.

낮 12시2분.
해발 152m의 망태봉 정상에 올라섰다.
이 콘크리트 시설물은 세관 매물도 감시서 옛터이다.
1979년 4월19일 대통령령 제 9096호에 의거 마산세관 매물도감시서로 설치된 후
1987년 4월1일 장승포세관 매물도감시서 폐지로 인해 지금은 버려진 곳이다.

이곳은 70~80년대 남해안에서 성행하던 특공대밀수(소형 어선 등을 이용한 밀수)를
단속하던 곳이다.
당시 레이더와 망원경 등을 이용하여 2~3명의 세관 직원이 상주하며
관세국경선을 지켰던 세관역사의 일부분이다.

낮 12시8분.
망태봉 위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남서쪽 망망대해를 바라 보는 여행객의 모습이 무척 평온해 보인다.
푸르디 푸른 바다 위를 지나는 유람선 뒤의 흰 포말..
저 배가 지난 뒤의 흰 포말은 이미,,추억(追憶)이 되며,
또한 지난 역사(歷史)가 된다.

낮 12시11분.
망태봉 정상에서 남쪽 아래로 등대섬을 내려다본다.
이곳 소매물도와 70 여미터 떨어진 거리인 등대섬과 사이의
열목개 자갈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오늘 물길이 열리는 시간이 낮12시반부터
오후 6시반까지라는 예보에 맞춰 이곳 소매물도를 찾았기 때문에
잠시 후면 저곳을 지나 등대섬으로 향하게 된다.

눈이 부시게도 파랗고 맑은 바닷물을 내려다보니
이곳까지 오르느라 30여분간 흘린 땀이 일시에 씻겨 내린다.
가슴속까지 서늘해지는듯한 쪽빛 바다를 한동안 바라 본다.

300mm 망원렌즈로 가까이 당겨 본다.
아직 바닷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은 몽돌로 된 자갈길을
성급한 여행객들이 지나간다.
신발을 벗어 들고 바지를 걷어올린 저들의 모습에
웬지 내 종아리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낮12시53분.
망태봉 아래 해안가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나무 그늘 아래서
동행한 일행들과 점심 식사와 달콤한 휴식을 즐긴 후
20여 가구가 사는 이곳 소매물도 주민들이 '열목개'라 부르는
몽돌길을 지나 눈 앞의 등대섬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직 바닷물이 다 빠진 상태는 아니지만 사람이 지나다니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바닷길은 열려 있다.

오전중 구름이 많던 하늘은 이제 푸른 빛을 더 많이 띈다.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한고로 바위들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운 이곳.
파란 동쪽 하늘과 위대한 예술가가 빚어 놓은듯한
해변의 암반이 무척 잘 어울린다.

맑고 깨끗한 한려수도 바닷물이 빚어 놓은 부드러운 곡선의
수많은 몽돌. 그 표면을 밀려 나는 썰물이 계속 두드려댄다.
마치 풀무질로 비지땀을 훌리면서도 쉴새없이
벌겋게 단 쇠를 망치로 두드려 단련시키며 도구를 만들어 내는
대장장이의 손길을 느낀다.

낮 12시59분.
등대섬에서 방금 지나온 소매물도를 바라 본다.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소매물도의 완만한 능선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는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식물들의 생존력이 놀랍다.
구름이 잔뜩 낀 서쪽 하늘 아래 바닷물이 쪽빛으로 보인다.
마치 지난 초 봄 매화꽃 만발한 섬진강가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의 쪽빛 물 빛을 닮았다.

구름 낀 서쪽 하늘 아래의 바닷물 색깔과
이처럼 파란 하늘 아래의 동쪽 바다 색깔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쪽빛 바닷물이 정적인 느낌이라면 이와같은 짙푸른 바다는
마음 속에 역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오후 1시3분.
저 하얗게 우뚝 솟은 등대를 향해 목재 데크로 만들어 놓은 나무 계단을 한참 오른다.
이 등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서 1917년 무인등대로 건립되었으나,
1940년 유인등대로 전환되었다 한다.
등대의 등탑은 콘크리트 구조이며 높이는 16m이며,
프리즘 렌즈를 사용한 대형 등명기를 이용해 약 48km거리까지 불빛을 비출 수 있다 한다.

등대섬의 본래 이름은 해금도(海金島)이지만
등대와 어우러진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등대섬으로 불리워졌는데,
2002년 "등대도"로 확정되었다 한다.

등대섬 남쪽 끝에서는 바다 멀리 스쿠버 다이빙 명소로 잘 알려진
굴비도가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다.
이곳 해안 끝에는 옛날 중국 진(秦)나라의 시황제의 신하가 불로초를 구하러 가던 중
그 아름다움에 반해 '서불과차(徐市過此)'라고 새겨놓았다는 글씽이굴이 있다.
그런데, 이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 귀는 제주도 정방폭포,
경남 남해 상주리에도 있다고들 하는데 모두 내가 확인한바는 없다.

이곳 등대섬 남쪽 끝에서 북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소매물도는 물론 본섬인 매물도도 한 눈에 들어 온다.
본 섬인 대매물도의 형상이 "매물" 즉 "메밀"처럼 생겨서 '매물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등대섬의 동쪽 해안은 기암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명한 낚시 포인트인 '갈매기똥여'를 거쳐 '검둥여' 부근으로
자그마한 어선이 희 포말을 남기고 지난다.
저 어선의 만선을 빌어 본다.

오후 1시27분.
등대 주변을 배경으로 추억 남기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환희에 찬 모습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이곳 소매물도는 쿠크다스라는 과자 CF외에도
2005년에는 송혜교,차태현 주연의 '파랑 주의보'라는 영화에도 등장한다.

녹색 지붕으로 칠해진 "마산지방해양항만청 소매물도항로표지관리소"건물 지붕의
색깔이 너무 튀는듯 하다.
2008년 6월14일 그날의 연한 주황색 지붕 색깔이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마음에 든다.

오후 1시50분.
약 1시간동안 머물렀던 등대섬을 떠나 다시 소매물도로 발길을 돌린다.
물이 가장 많이 빠질 때는 폭이 80m에 이른다는 몽돌길이
1시간 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5월중순의 따뜻한 햇살은 물 빠진 열목개 바닷길의
에쁜 몽돌들을 금방 말려 버린다.
수많은 여행사들이 관광객 모객을 위해
모세의 기적'이라는 홍보문구를 곧잘 인용하는 몽돌 자갈길을 조심스레 지난다.

오후 2시21분.
낮 12시11분에 내려다 보았던 등대섬을 2시간 10분 후에 다시 내려다 본다.
2시간여 전보다 열목개 자갈길이 월등히 넓어졌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처럼 이곳 소매물도를 여행할 때는 사전에 물때 시간을 알고 와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등대섬으로 건너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오후 2시32분.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오전과 달리
동쪽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동백나무 숲길을 택해 걸음을 옮겼다.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행객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행복감이 가득한듯 하다.

오후 2시46분.
선착장 동쪽 해안으로 이어지는 산책길로 걸음을 옮긴다.
이곳 소매물도 북쪽 해안가를 잇는 이 길은
세물치를 거쳐 남대바위로 이어지는 해안 풍경이 시원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오후 3시21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동안 넋을 잃고
멀리 다도해를 이루는 작은 섬들과 시시각각 그 모습을 달리하는
구름들을 바라보며 달콤한 휴식에 빠져든다.

오후 3시39분.
주말 여행을 마감하며 귀가하는 인파로 선착장은 몸살을 앓는다.
수많은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여객선이 줄지어
자그마한 소매물도 선착장으로 들어선다.
통영항까지는 1시간20분, 거제 저구항까지는 40분이 걸린다.

오후 3시49분.
저구항으로 태워다 줄 여객선이 선착장 동쪽에서 물살을 가르며 달려 온다.
발달한 해식애로 절경을 이루는 바위 절벽 위 산책길에도 수많은 여행객들이
선착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오후 4시7분.
선착장에서 여객선에 오르기 전 북서쪽 바다를 바라 본다.
구름 사이로 약하게 내비치는 햇살을 받은 바다가
은빛으로 빛난다.
오후가 되면서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 주위로 옅은 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오후 4시29분.
소매물도 선착장을 떠난 배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소매물도 전체의 모습이 카메라 뷰 파인더에 가득 들어 온다.
내가 다녀본 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인 저 소매물도의
자연 경관이 오래 보전되기를 빌어 본다.

짙은 구름이 몰려 오는 서쪽 하늘이 어둡다.
구름 사이로 삐져 나오는 햇살이 빗살처럼 바다 위를 비춘다.

오후 4시43분.
이제 여객선의 종착지인 거제 저구항까지는 20분이 채 못남은 시간이다.
왼쪽에 길게 누운 매물도와 그 오른쪽의 작은 섬인 소매물도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환상의 섬 소매물도와 작별을 고하며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