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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靈山) 태백산(1,567m) 눈 산행

2011년 1월9일 일요일 오전 11시1분
태백산 산행을 위해 해발 939m 어평재에서 남쪽을 향한
오르막을 오르며 산행이 시작된다.
수년 째 이맘 때 이곳 태백산을 오르면서 대부분 동쪽으로 1km남짓 떨어진
유일사 매표소를 산행 들머리로 했으나 오늘은 1km정도 거리가 더 먼
이곳 어평재를 통해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들머리 31번 국도변에 '소도파출소 어평방범초소'가 있는 이곳의
지명은 '어평리'이다.
태백산의 산신이 된 단종임금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 땅(御坪)이다"라고 해서
'어평리'라는 이름을 얻어 '어평재'이지만
산꾼들은 '화방재(花房嶺)'란 이름을 더 많이 쓴다.
봄이면 고갯마루 부근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타올라 '꽃방석'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오전 11시8분
발목까지 빠지는 눈 길을 걷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이지만 땀이 조금씩 솟아나며
추위를 잊을 즈음 사길령매표소 앞에 도착했다.해발 980m.

본래 이름은 새길령.
고려시대 새로 개척한 길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오전 11시22분
해발고도 1,000m를 훌쩍 넘어서면서 적설량이 부쩍 늘어남을 알 수 있다.
지난 해에 비해 유난히 내린 눈이 많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아이젠을 착용한 상태이나 간혹 잘 다져지지 않은
발목을 덮을 정도로 깊숙히 빠지는 눈 속에서는
미끄러짐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비교적 산행객이 많지 않은 이곳 화방재에서 유일사 삼거리로 이어지는
산행로인지라 이처럼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깨끗한 눈 세상을 볼 수 있다.

삼한시대(三韓時代)에 천신(天神)을 제사지낸 지역의 명칭이 "소도(蘇塗)"였으며
소도는 신성(神聖) 지역이었다.
이곳의 행정구역 또한 이와 무관치 않게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이다.

오전 11시30분
흔히들 산신각이라 부르는 '산령각(山靈閣)'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사길치라고도 불리는 사길령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높고 험하기로 유명했지만 가장 가까운 길인 만큼 길손의 왕래가 많았고,
특히 보부상들이 수십 혹은 수백 명씩 대열을 이루어 넘어 다녔다.
산이 험해 맹수와 산적들의 출몰이 잦았기 때문에
고갯길의 무사안전을 위해 고갯마루에 당집을 짓고 제사를 올리게 되었으며,
지금도 매년 음력 4월 15일 제를 올린다 한다.

산령각 옆 제단에는 지나는 산행객들이 약식으로 제를 올린 흔적이 보인다.
현재 태백산 사길령 산령각 계회(契會)에 보존 중인 <천금록>은
200여 년 전부터 보부상들이 이곳 태백산 산령각에서 제사를 지낸 기록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없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고 전해 진다.

오전 11시47분
해발고도 1,200m를 훌쩍 넘어서면서부터 헐벗은 나뭇가지마다
상고대가 뚜렷이 모습을 드러낸다.
눈부신 햇살을 받아 더욱 희게 보이는 상고대와 푸른 하늘색이 뚜렷한 대비를 보인다.

상고대(hoarfrost on the tree) 란 다른 말로
나무서리(수상;樹霜 ;air hoar)라고도 한다.
겨울철 날씨가 맑은 밤에 기온이 0도 이하 일 때
대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승화되어 차가워진 물체에 붙는 것을 말한다.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하얗게 쌓인 눈 속에서
온통 상고대로 하얀 옷을 입은듯한 나뭇가지들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밑도는 추운날씨이지만 계속 걷는동안
땀을 식히기 위해 등산 자켓을 벗고 티셔츠 한 장만으로 이어지는 산행길.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면 온몸이 얼어붙듯 한기가 엄습한다.
다시 땀을 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온 세상을 백색으로 물들인 상고대는 절정을 이룬다.
이곳 태백산은 그 이름만으로는 웅장하고 거칠게 느껴지지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산행을 할 수 있을 만큼 산세가 비교적 완만한 산이다.
새해 첫날 천제단에서 행하는 신년 해맞이 행사를 비롯하여 봄에는 철쭉ㆍ
겨울에는 눈꽃과 설경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낮 12시36분
태백산 정상부인 천제단까지 2.1km를 남겨 둔 유일사능선 갈림길에서부터
극심한 체증이 이어진다. 대한민국 산행객들이 한꺼번에 이곳으로 몰린듯 여겨질 정도이다.
남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울창한 나무 숲 사이로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능선부분을 망원렌즈로 자세히 살펴 본다.
주목 군락이 어어지는 능선의 키 작은 관목 숲들이
온통 상고대로 뒤덮여 있다.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태백산으로 달려온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낮 12시48분
해발 1,270m 정도인 유일사 쉼터 삼거리에서 또 한 차례 극심한 정체현상이 나타난다.
거의 멈추다시피한 사람의 행렬에 벗어두었던 쟈켓의 내피를 다시 껴 입어 보지만
추위에 몸서리친다.
북쪽으로는 이곳 태백산보다 높은 해발 1,573m 함백산이 바라 보인다.
방송 중계시설이 있는 정상부 능선도 온통 상고대로 뒤덮여
마치 흰 옷으로 갈아 입은듯 하다.

지난 2009년 8월 다녀왔던 정상석이 있는 부위를 망원렌즈로 자세히 본다.
당시 만항재에서 시작해 수많은 야생화에 심취해 행복한 마음으로 올랐던
함백산 정상부에도 수많은 산행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오후 1시
잠시 한숨을 돌리는 의미에서 유일사 쉼터 바로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태백산 백단사에서 이소선이 백일기도중에 사찰을 창건하라는 부처님의 현몽을 받고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태백지역의 유일한 비구니 사찰인
유일사(惟一寺)의 주 불전인 무량수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뒤편 상고대로 뒤덮인 나무 가지들이 무척 인상적이다.

사찰의 중심전각 이름은 아래와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곳은 대웅전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곳은 대적광전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곳은 무량수전(또는 극락전 또는 아미타전)이다.

오후 1시37분
해발 1,400m를 넘어서며 가파른 오르막이 끝나고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폭 넓은 능선길이 나타난다.
이제 국내 최대의 주목군락지라는 태백산 주목이
그 멋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치 동화나라에 온듯한 눈꽃터널을 지난다.

오후 2시5분
해발고도 1,500m를 넘어서자 산 아래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상고대로 뒤덮인 주목의 아름다움이 눈을 어지럽힌다.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보며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순간이다.
이제 태백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대략 700m정도이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속설이 있는 주목(朱木)은
고산지대에 높이 20m, 지름 2m로 자라고 꽃은 잎겨드랑이에
달리고 단성화로 4월에 피며 관상용, 재목은 가구재로 이용한다.
수령은 200∼500년으로 추정되고 상록침엽 교목으로
몸집이 장대하고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정상적인 산행의 경우 2시간 이내에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구간을
극심한 체증으로 인해 벌써 3시간 이상 경과했다.
마땅히 점심 식사할 곳을 찾지 못한 많은 산행객들이
눈밭에 둘러 앉아 점심식사들을 하는지라 반찬 냄새가 코를 찌른다.
몰아치는 겨울바람으로 인한 추위는 아름다운 경치가 반감시켜준다.

태백산에서 자라는 주목은 2,800 여 주이며 그 중 높이 11m 이상 되는 것은
50주 정도이며 지름 1m 이상 되는 나무도 15주에 이른다고 한다.
지름이 가장 큰 나무는 1.44m, 수령은 500년 이상이며,
우리나라 주목 서식지 중 가장 대단위 군락지를 이루고 있어
주목은 태백산을 대표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주목의 종의(種衣)는 식용하고, 잎은 약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산 주목씨눈에서 항암물질인 택솔을 대량 증식할 수 있음이
밝혀졌으며 씨눈과 잎, 줄기에 기생하는 곰팡이를 생물공학기법으로
증식, 택솔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상품화되었다고 한다.

주목은 한국ㆍ일본ㆍ중국 동북부ㆍ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일본산으로 원줄기가 곧게 서지 않고 밑에서 여러 개로 갈라지는 것은 눈주목(var. nana)이라 하며,
잎이 넓고 회색이 도는 것은 회솔나무(var. latifolia)라고 하여 울릉도와 북쪽에서 자란다.
원줄기가 비스듬히 자라면서 땅에 닿은 가지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은
설악눈주목(T. caespitosa)이라고 하여 설악산 대청봉 근처에서 자란다.

주목은 나무껍질과 속살이 유난히 붉어 그 이름을 얻었다.
주목은 생장이 몹시 느린 반면,
나무 중에서 수명이 가장 길 뿐 아니라 목재로서의 수명도 길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불린다.

주목은 소나무와 달리 솔방울 대신 빨간 앵두같은 열매가 달리고,
나무의 수형도 아름다워 최근에는 정원수로 많이 심고 가꾼다.
붉은빛의 목재 재질 또한 치밀하면서도 단단하고 향기로와 모든 재목 중에서
으뜸으로 여겨진다.

주목은 절에서 부처나 염주를 만들 때,
최고급의 가구재,
옛 관리들의 홀 등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그 목재로 활을 만들었는데,
주목의 속명 Taxus는 활이란 뜻의 taos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주목은 붉은색 물감을 뽑아 천연염색에도 이용했다.
민간에서는 주목의 붉은빛이 악귀를 쫓는 효력이 있다고 믿어
부적이나 노인들의 지팡이를 만들 때 사용했다.
특히 주목지팡이는 가볍고 튼튼할뿐 아니라,
지팡이의 붉은빛이 귀신을 쫓아내고 무병장수한다고 믿어
주목 지팡이를 선물하는 것을 매우 큰 효도로 여겼다 한다.

주목 열매는 물이 많고 단맛이 있어 예전에는 따먹기도 했는데,
독이 있어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염증 치료의 '비약'으로 사용했으며
우리 선조들도 민간에서 신장염, 부종, 소갈병 등의 치료에 이용해 왔다.

오후 2시26분
기기묘묘한 형태를 가진 주목들과 앙상한 나뭇가지에 자연이 가져온
아름다운 상고대의 어울림 앞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다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산행길을 이어간다.

오후 2시29분
이곳 태백산 정상부인 해발 1,567m지점인 장군봉에 도착하여
장군단 내부를 둘러본다.
5분 거리에 있는 천왕단의 모양을 본뜬 이 제단은 '장군단'이라 칭한다.
"천제단(天祭壇)"이라 함은 정상석이 위치한 능선 중앙부의 천왕단과
이 사진의 장군단, 그리고 천왕단 남쪽의 하단. 이 세 제단을 통틀어 천제단이라 부른다.

장군봉에서 태백산 정상석이 있는 천왕단으로 이어지는 약300m의 능선길에는
칼바람이 휘몰아친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이하인듯하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햇살이 내려쪼이는 한낮이건만 상고대는 전혀 녹지 않고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장군단에서 천왕단으로 이어지는 300m능선길에는 수많은 산행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수많은 저 인파들 중에는 새해를 맞아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
천제단에서 가족의 행복, 혹은 입시 합격, 혹은 병자의 완쾌 등을 기원하는
이들이 많을게다. 그들의 바램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빈다.

태백산은 우리 민족의 이름이 된 산이다.
태백산(太白山)은 '크게 밝은 산'이라는 의미이다.
'크게 밝은 산'의 순우리말은 '한밝뫼' 또는 '한밝달'이다.
'한밝달'이 '한백달', '한배달'로 전음되어
'한민족' '배달민족' 같이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이름이 된 것이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제사 지내던 산을 '밝은 산(白山)'이라고 부르며 숭앙했다.
'밝은 산' 중에서 가장 '크게 밝은 산'이 바로 태백산(太白山)인 것이다.

장군단에서 이곳 천왕단으로 향하는 인파의 행렬은 끝이 없다.
저 장군단은 남쪽에 계단이 있는 석단으로 중앙의 천왕단과 거의 비슷한데
천왕단 상부에 있는 4각 제단이나 비석 등은 장군단에는 없다.
크기 또한 천왕단보다 조금 작은 장방형으로 둘레 20m, 높이 2m이다.

천제단 내부 모습이다.
‘5세 단군 구을(丘乙) 임술 원년에 태백산에 천제단을 축조하라 명하고
사자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환단고기),
‘일성왕 5년 10월에 왕이 친히 태백산에 올라 천제를 올렸다’(삼국사기),
‘태백산은 신라 때 북악으로, 중사(中祀)의 제를 올리던 곳’(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이 전할 정도로 이곳은 예로부터 신령스럽게 받들던 곳이다.
"한배검"이란 단군을 높여 부르는 명칭이다.

천제단은 다른 이름으로 구령단(九靈壇) 또는 구령탑(九靈塔), 마고탑(麻姑塔)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 천왕단(天王檀)을 중심으로 멀리 북쪽에 장군단(將軍檀),
남쪽에는 그보다 작은 하단의 3기로 구성되었으며 적석으로 쌓아 신역(神域)을 이루고 있다.

개천절에 지내는 제사 때는 중앙에 태극기(太極旗)와 칠성기(七星旗)를 꽂고
주변에는 33천기(天旗)와 28수기[宿旗]를 세우며 9종류의 제물을 갖춘다.
이 주변의 계곡 일대에는 치성을 드리는 기도처로 사용된 크고 작은 적석탑과 석단들이 있으며
함부로 짐승을 잡거나 나무를 꺽는 일을 금하고 있다 한다.

오후 2시46분
태백산 정상을 떠나 하산길에 오른다.
이곳 천제단이 위치한 곳은 해발 1,561m로
해발 1,567m인 장군봉보다 6m가 낮은 곳이지만
태백산의 정상석은 이곳에 세워져 있다.

당초 계획은 남동쪽 능선을 타고 하산하여 소백산맥 산줄기의 시작점이자
중국의 태산과 높이가 같다는 부쇠봉(1546m),
산봉우리의 자갈로 된 돌무더기가 눈이 쌓여 있는 것 같아
태백산이라 이름 짓게 했다는 문수봉(1514m)을 거칠 예정이었으나
수많은 인파로 시간이 지체되어 망경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망경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내리막 길을 내려가기 직전
아쉬움이 남아 남쪽으로 휘돌아 동쪽으로 이어지는
부쇠봉-문수봉-소문수봉 등 백두대간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사진 좌측에 3km 떨어진 문수봉 정상부가 뚜렷이 보인다.

문수봉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온통 상고대와 주목군락으로 덮인 정상부의 돌무더기와
돌탑, 그리고 정상 주위의 산행객들이 보인다.

오후 2시53분
천제단 바로 아래의 단종비각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망경사로 발길을 옮긴다.
이 단종비각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은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다.

비각 안에는 ‘조선국 태백산 단종대왕지비’라고 적힌 비석이 있다.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단종의 영혼이
백마를 타고 태백산에 와서 신선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비각은 지난 1955년 망경사 박묵암 스님이 건립한 것이며,
비문과 현판 글씨는 오대산 월정사 탄허 스님의 친필이다.

오후 3시1분
천제단 아래 100여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망경사는
마치 4월초파일의 유명 사찰 경내와 다름없이 붐빈다.
주목군락지에서 천제단으로 이어지는 정상부의 칼바람을 피해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산행객들로 거대한 임시 식당이 만들어진 양상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인 이곳 망경사[望鏡寺]는
652년(신라 진덕여왕 6년) 자장(慈藏)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망경사 앞에 자리한 용정(龍井)이다.
지난 해 1월에는 이 용정의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추위와 허기에 지친 몸을 달랜 바 있으나
이번에는 엄청난 인파에 치어 물이 나오는지조차 확인을 못했다.
용정(龍井)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470m)에 위치하고,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샘물로서
천제의 제사용 물로 쓰인다고 한다.

오후 3시10분
망경사를 떠나 이어지는 하산길은 이처럼 비교적 넓은 산행길이다.
푹신푹신한 눈이 두텁게 쌓인 내리막 경사길이
흡사 눈썰매장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간혹 눈썰매를 타기 위해 비료 푸대를 지참한 이들도 있으나
엄청난 인파로 인해 눈썰매를 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오후 3시37분
북쪽 백단사매표소와의 갈림길인 해발 1,205m 지점인 반재에 도착했다.
음료수,간식 등을 판매하는 매점에는 추위와 피로에 지친 산행객들로 초만원이다.
가장 인기있는 품목은 단연 뜨거운 국물과 함께하는 오뎅이다.
잠시 휴식을 위하며 몸을 추스른다.
이제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당골까지는 대략 2.2km 남았다.

오후 3시49분
천제단에서부터 2.7km가까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마치 스키 슬로프를 연상시킬 정도로 미끄럽던 급경사 내리막길이
비로소 끝나며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눈길이 시작된다.
이제 산행길이 끝나는 당골광장까지는 대략 1.7km 의 거리이다.
해발 980m에 조성된 당골광장의 이름은 용정에서 발원하여 다른 골짜기 물과 합쳐진 뒤
소도동으로 약 3㎞에 걸쳐 흐르는 당골계곡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며.
계곡 이름은 계곡을 따라 많은 신당(당집)이 들어서 있어서 붙여졌다 한다.

오후 3시52분
온통 얼어붙어 물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당골을 좌측으로 끼고 걷는 하산길.
개울 너머 멋진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의 이름은 장군바위이다.

높이 50여m의 이 암벽은 그 모양이 흡사 장군이 칼을 차고 서 있는 것 같은 형상이라
장군바위라 하며 태백 산악인들의 기초 암벽등반 연습장으로도 사용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내 눈으로는 장군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바위 모양이 특이하게 생긴것 만은 분명하다.

오후4시11분
4시간 여의 태백산 산행을 끝내고
태백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단군성전을 둘러 본다.
단군의 영령과 영정을 모신 이곳 단군성전은
단기4326년(1993년) 개축한 곳으로
매년 10월3일 개천절에는 단군제례를 지내고 있다.

오후 4시14분
해발 870m에 위치한 당골광장에 도착하며 산행을 마감한다.
현재 기온은 영하6도. 산행이 끝나며 걸음을 멈추자 추위가 엄습한다.
석탄박물관 앞 넒은 광장에서는 오는 1월21일부터 열흘간 이어질
태백산 눈꽃축제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태백산 도립공원 입구의 4차전 도로가 수많은 인파로 메워진 상태이다.
지나치게 많은 인파로 인해 주차장으로 차량 진입이 안되어
10분 이상을 걸어 내려가 맨 아래인 제4주차장까지 피곤한 다리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 많은 인파로 짜증이 나긴했지만 한 편으로는 사람 사는 재미가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긍정적 생각으로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