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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평야를 품에 안은 모악산(母岳山) 산행기

2011년 1월23일 일요일 오전 10시37분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모악산 관광단지 입구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멀리 서쪽 방향으로 3km남짓 떨어진 모악산 정상부가 눈에 들어온다.

망원렌즈로 당겨 보니
산 정상부를 차지한 KBS모악산송신소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난 1978년 여름에 만들어진 송신소 시설 중 철탑 높이 59m인
방송용 안테나는 KBS와 MBC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시설로
전라북도 6개시 8개군 전 지역과 충남 서천군,부여군,논산군 일부 지역에
TV방송 및 FM라디오 방송을 송출한다.

오전 19시39분
전주 김씨 종중공덕비 앞을 지난다.
여기서 20여분 떨어진 거리에는 전주 김씨 시조인
문장공(文莊公) 김태서(金台瑞)의 묘가 있다.
김태서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의 7세손(世孫)이며,
또한 북한 김정일의 아버지인 김일성은 김태서의 32세손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모악산이 유명해 진 것은 김일성의 조상이라는 김태서묘 때문이다.
이 묘의 지기(地氣)가 발복하여 그 후손이 장기 집권을 하였는데
그 운이 끝나는 것이 49년만인 1994년 9월이라고 날짜까지 지적한
육관 손석우의 ‘터’의 풍수지리책이 나와 화제에 올랐었다.
그런데 예언한 날짜에서 근소한 차이로 김일성이 사망하자
모악산과 남쪽 기슭에 있는 김태서의 묘에 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누구나 처음에는 믿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전 10시44분
작은 개울을 가로 지른 자그마한 목재 다리를 지나며
본격적인 산행로로 접어 든다.
해발고도 179m 인 이곳에서 모악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약 2.8km이다.
얼어 붙은 계곡 옆으로 이어지는 눈 쌓인 산길이 운치가 있다.
영하 5도 정도의 기온이지만 지난주, 그리고 그 전 주말 눈 산행시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혹한 속의 눈산행을 한 경험 때문인지
나에게는 마치 따뜻한 봄날씨처럼 느껴진다.

오전 10시46분
'선녀폭포와 사랑바위'라는 안내 간판 앞에서 잠시 멈춘다.
선녀폭포에서 목욕하던 선녀와 눈이 맞은 나무꾼과 선녀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다 두 남녀가 굳어 돌이되었다는
사랑바위와 선녀폭포 어느 것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꽁꽁 얼어 붙은 겨울 추위를 탓하며 산행 길을 이어간다.

오전 10시58분
해발고도 250m를 넘어서자
계곡을 따라 오르는 산행길은 점차 경사가 급해지며
또한 쌓인 눈도 그 깊이를 더해간다.
하지만 강원도에 비해 비교적 포근한 기온이면서도
눈이 많은 호남지방답게 운치있는 풍경이 이어진다.
살을 에이는듯한 칼바람도 불지 않는 여유있는 눈산행이다.

오전 11시7분
해발 310m에 위치한 대원사 경내를 잠시 둘러 본다.
이곳 대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670년(신라 문무왕 10) 일승(一乘)이 심정(心正)·대원(大原) 등과 함께 창건하였다.
일승 등은 고구려 보장왕(재위: 642∼668) 때 백제에 귀화한 보덕(普德)의 제자들이다.
처음 이름은 대원사(大原寺)였으며, 한때는 대원사(大圓寺)로 표기하였으나,
현재는 대원사(大院寺)라고 한다.
동학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후 증산교를 창시한 증산 강일순이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오전 11시10분
대원사를 지나면서 산행 길은
지금까지보다 더 심한 오르막 경사길로 이어진다.
주위의 산행객들의 거친 숨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대원사를 벗어나며 등산자켓의 내피를 떼어내고 앏은 자켓만 입었음에도
온 몸에 땀이 솟아나며 더위를 느낀다.

오전 11시33분
해발 460m지점의 수왕사길쉼터에서 많은 산행객들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휴식을 취한건만 나는 그대로 걸음을 이어간다.
가빠지는 숨을 참으며 눈으로 덮인 산죽 군락과
산행로 위에까지 옆으로 멋진 가지를 뻗은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며 기운을 차린다.

오전 11시38분
수왕사 입구 삼거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해발 525m인 쉼터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눈 덮인 모악산 능선이 이름 그대로 포근한 어머니의 품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왕사를 잠시 둘러본 후 정상으로 향하는 산행길을 이어가려했으나
수왕사쪽을 왕래하는 수많은 인파에 질려 곧바로 모악산 정상을 향해
산행길을 어어간다.
좁은 쉼터의 간이매점을 이용하여 음식과 음료수,막걸리 등을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는 시골 장터를 방불케하는 모습은 눈에 무척 거슬린다.
건강을 위해 산행을 하는 것이라면 뱃속을 비운채 산행을 해야
결과가 좋을터인데...
이제 산행 시작 지점에서 2km를 왔으며,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1km이다.

오전 11시52분
해발 600m를 넘어서면서 쌓인 눈이 더욱 깊어감을 알 수 있다.
수왕사 입구 삼거리까지 비교적 붐비던 산행객들도
그 숫자가 급격히 줄었다.
비로소 인적 드문 겨울 눈산행의 맛을 느낀다.

오전 11시56분
정상으로 가는 능선길의 무제봉(舞祭峯)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해발고도 700m를 조금 넘는 이곳에서 남쪽으로 500m남짓 떨어진
모악산 정상부가 뚜렷이 보인다.
아침부터 점차 몰려오던 구름이 이제는 태양을 거의 가린 상태다.

이곳 무제봉은 옛날부터 주변 마을 사람들이 무우제(舞雨祭) 즉,
기우제(祈雨祭)를 올리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가뭄 때마다 전주감사가 산 돼지를 제물로 올리고
주민들은 농악을 울리며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낮12시3분
무제봉을 지나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아찔할 정도의 급경사 오르막이다.
눈으로 덮인 바닥은 녹은 눈이 얼어붙기를 반복하여 딱딱한 빙판이다.
등산화에 부착한 아이젠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다리에 힘을 더한다.

힘들게 오르던 중 잠시 뒤 돌아본다.
아찔한 기분이 들 정도의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는
몇몇 산행객들의 몸놀림이 무척 힘겨워 보인다.
오르막 좌측에 설치된 철제 난간이 너무 가늘어 보일 정도로
오싹하는 기분이 든다.

낮 12시6분
정상에 자리한 KBS송신소 바로 아래 두세평 남짓한 공터 바위 위에서
잠시 한 숨을 돌리는 중 새소리가 들리기에 숲 속 가지 사이로 보이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마땅한 먹이가 없어서인지 산행객들이 내버린
귤껍질을 열심히 쪼아 먹는다.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고 달아나려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바닷가에서 만나는 살기 어린 갈매기의 눈빛과 달리
눈망울에 슬픔을 담은듯하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은 올 겨울은 새들에게도 어려운 시절인가보다.

낮 12시16분
모악산 정상인 해발 793.5m 정상 표지판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특이하게도 이곳 모악산 정상은 KBS송신소 구내에 있다.
수년전까지는 이곳에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그나먀 요즈음은 낮시간에 개방을 하는고로 이 앞에 설 수가 있다.

KBS송신소 옥상에 올라 동쪽을 바라다 본다.
오전에 산행을 시작한 관광단지 주차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 멀리 얼어붙은 얼음 위에 흰 눈이 쌓인 구이저수지도 보인다.

망원렌즈로 가까이 살펴보니
오전 산행 시작시 절반 이상 비어있던 주차장에
1시간 반 남짓 지난 지금
차들이 꽉 들어차 입추의 여지가 없다.

서쪽으로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의
금산리,청도리 마을들이 드넓게 펼쳐진다.
맑은 날씨였으면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인
김제평야,만경평야의 광활한 경치를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좀더 가까운 지역을 망원렌즈로 당겨본다.
약 5km 떨어진 금산사 경내의 모습이 뷰 파인더에 가득 잡힌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구 본사인 금산사 경내의 모습이
멀리 떨어진 산 위에서 보기에도 웅장해 보인다.

이곳 모악산 정상을 떠나 하산길을 이어가야할
북서쪽 능선을 바라본다.
헬리포트가 있는 북봉 너머로 이어지는
비장골,금동계곡을 둘러 싼 완만한 능선이 아름답게 비쳐 진다.

낮 12시27분
모악산 정상을 지나 북봉으로 향하는 길은 북향길이다.
그래서인지 발밑에 밟히는 눈의 두께가 지금까지 보다 더 두껍게 느껴진다.
지나는 산행객도 급격히 줄어 인적이 거의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낮 12시32분
정상에서 500m 떨어진 해발고도 730m지점에서
모악산 정상부에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을 뒤돌아본다.
2매의 사진을 연결하여 파노라마사진으로 만든 모습이다.

예부터 엄뫼, 큰뫼로 불러온 모악산(母岳山)은 정상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쉰길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과 같아서 모악산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악산이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고려사(高麗史)』에도
‘금산(金山)’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모악산으로 불린 것은 조선시대부터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모악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낮 12시56분
모악산 정상에서 0.6km 떨어진 헬리포트가 있는 해발 730m 북봉을 지나면서
북향길에서 서향길로 바뀌어 이와같은 산죽군락으로 이어진
한적한 눈길이 20여분 이상 이어진다.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인지라 귓전에 들리는 소리는
나 자신이 눈 위를 밟고 지나는 "보드득"하는 눈 밟는 소리 뿐이다.
머리 속이 맑아짐을 느낀다.

오후 1시24분
정상에서 2.4km를 내려온 곳.해발 430m지점의
보물 제29호 '금산사 심원암 북강삼층석탑 [金山寺深源庵北崗三層石塔]'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석탑이
국가중요문화재인 '보물'임을 감안할 때
금산사 소속의 작은 암자인 심원암에서도
700m나 떨어진 북쪽 산기슭에 외로이 자리하고 있음에 불안감이 느껴진다.

오후 1시32분
해발 295m 위치에 자리한 아담한 심원암의
현판조차 없는 건물은 지붕위에 흰 눈을 고스란히 받친 모습이 힘겨워보인다.
창건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766년(혜공왕 2)에 금산사(金山寺)를 창건한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수도처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곳 심원암(深源庵).
아직 현판조차 걸리지 않았음은 최근에 건물을 지은 때문인듯하다.
이제 금산사까지 남은 거리는 1.6km이다.

오후 1시42분
심원암을 지나면서부터는 넓고 경사가 완만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영하의 겨울날씨이긴 하지만
피부에 와닿는 느낌은 이른봄 나들이를 연상시킨다.
더구나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 그림자 하나 없다.
배낭을 벗고 잠시 흰 눈 위에 큰 대자로 들어누워본다.
이곳이 모악산(母岳山)자락이어서인지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듯 마음이 편안하다.

마치 산책길과 다름없는 하산길 옆으로는 금산사게곡이라 이름 붙여진
개울물이 흐른다.
여름철이면 무척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를듯한 물줄기는
꽁꽁 얼어붙은채 그 위에 흰 눈이 덮여 있다.

그러나, 눈을 비비고 자세히 살펴보면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소리없이 맑은 물이 조금씩 흐른다.
유난히 춥고 긴 올 겨울이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하는 사이
꽁꽁 얼어붙은듯한 작은 개울물도 시나브로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음이다.
스치고 지나며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후 1시51분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이어져 한 몸이 된 연리지(連理枝)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연리지는 한 나무가 죽어도 다른 나무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살아갈 수 있다.
부부의 영원한 사랑,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배운다.
김제시 보호수로 지정된 이 나무를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산행객들이
많음이 안타깝다.
그 이유가 산행길에서 200m떨어진 이곳까지 다녀가야함이 귀찮아서라면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선 이유는 왜일까?

오후 2시1분
보물 제24호 "금산사 혜덕왕사 진응탑비 [金山寺慧德王師眞應塔碑]" 앞이다.
탑신은 대리석으로, 귀부(龜趺)는 화강석으로 되어 있다.
비문을 지은 사람과 쓴 사람은 글자가 닳아 알 수 없으나,
혜덕이 죽은 지 15년 뒤인 1111년(예종 6)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라북도 전역에서 고려시대에 세워진 비는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금산사 혜덕왕사진응탑비는 불교사적으로서 뿐만 아니라
서예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으며 내용면에서도 고려시대 승려와 문도를
성격에 따라 구분한 좋은 예를 보여주는 자료이기에 보물로 지정된듯 하다.
오전부터 구름이 많이지던 날씨가 이제 눈발을 날리기 시작한다.

오후 2시8분
산행이 끝나고 금산사 경내에 들어섰다.
천왕문을 들어서 우측에 있는 보물 제28호 "금산사 당간지주[金山寺幢竿支柱]"앞에서 잠시 멈춘다.
통일신라시대의 전성기인 8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당간지주는
지주 높이 3.55m의 화강석으로 한국에서 현저하게 발달한 당간지주 가운데서도
가장 완성된 형식을 갖춘 작품이라 한다.

'당간지주'란 요즈음의 국기게양대와 유사한 것으로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오후 2시10분
천왕문,금강문,보제루를 지나 금산사의 주불전인 대웅보전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조금씩 내리던 눈은 이제 함박눈으로 변해 소리 없이 내린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는 전라북도의 최대 사찰이다.
창건은 599년(백제 법왕 1)에 왕의 자복(自福)사찰로 세워진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곳 금산사는 유난히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웬만한 사찰에 하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보물은 한 두점이 아닐뿐더러
국보도 보유하고 있다.
대웅전 앞 뜰에도 두 점의 보물이 있다.
사진 앞쪽 좌측의 조형물은 보물 제27호인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金山寺六角多層石塔]"이고
우측 끝의 것은 보물 제23호인
"금산사 석련대 [金山寺石蓮臺]"이다.
이 석련대는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과 고려 초기의 작품 기법이
혼재된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대웅보전 좌측의 돌계단을 올라
보물 제25호인 "금산사 오층석탑 [金山寺五層石塔]"앞에서
한동안 소담스럽게 내리는 흰 눈을 온몸으로 맞아 본다.

이 탑은 금산사를 후백제의 견훤이 창건하였다는 전설에 의해
그 때에 건립한 것으로도 추측되나, 조형양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오층석탑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미륵전의 풍채가 늠름해 보인다.
국보 제62호인 이 "김제 금산사 미륵전 [金堤 金山寺 彌勒殿]" 은
1635년(인조 13)에 지은 목조건물로
겉모양이 3층으로 된 한국의 유일한 법당으로 알려져 있으며
내부는 통층(通層)구조이다.

미륵존불을 모신 법당으로 용화전·산호전·장륙전이라고도 한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그리고 3층에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호사가들이 이르기를 금산사의 봄경치인 "모악춘경(母岳春景)",
변산반도의 짙푸른 녹음의 여름 경치인 "변산하경(邊山夏景)",
내장산의 가을단풍이 아름다운 "내장추경(內藏秋景)",
그리고 백양사의 겨울 경치인 "백양설경(白陽雪景)"을
호남 4경이라 한다.
그러나 흰 눈이 소복히 쌓여가는 금산사 대웅보전 앞뜰의 경치 또한 일품이다.

오후 2시27분
금강문을 지나며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전통적 대 사찰의 경우 일주문-금강문-사천왕문-불이문으로 이어지는
4개의 문을 지나 사찰 경내로 들어서는 양식으로 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사찰의 경우 4개의 문을 모두 가진 곳이 드물다.

이곳 금산사의 경우 위 4개의 문이 모두 있으나
불이문만은 금강문,천왕문과 일직선상에 있지 않고
특이하게도 명부전에서 담밖으로 나가는 문에 '불이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곳 모악산 일대는 충남 논산시 두마면 신도안,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동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명당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모악(母岳)은 호남평야 한가운데서 보면 마치 어머니가 양팔을 벌려
사방 몇백리의 너른 들녘을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다.
또 여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구이저수지, 금평저수지, 안덕저수지를 채우고,
만경강과 동진강으로 흘러들어 호남평야를 넉넉하게 해주는 젖줄기 역할을 해주고 있다.
모악산은 오재 전부터 계룡산과 더불어 민중신앙의 텃밭으로 어깨를 겨루었던 곳이다.

흰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조용한 길. 마치 어머니 품속에 안긴듯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오후 2시33분
일주문을 지나며 금산사 경내를 완전히 벗어난다.
1975년에 다시 세운 맞배지붕 양식의 저 일주문의 현판은
'일중(一中) 김충현'의 글씨이다.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긴 일주문[一柱門]의 의미를 되새기며
따뜻한 어머니 품에서 휴일 하루를 보낸듯한 행복감으로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