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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로 불리는 마천봉(해발 1,426m) 심설(深雪) 산행

2011년 1월15일 토요일 오전 11시56분
최근들어 '하늘길 트래킹'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백운산 마천봉 산행을 위해 막골 백운산 등산로 입구에서
산행 준비를 한다.

행정구역상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인 이곳은
해발 750m 정도 지점이다.
아침 기온이 영하 19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에
초속 7~8m로 부는 강풍이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든다.

낮 12시4분
산행 시작할 때부터 등산화에 아이젠을 단단히 부착하고
온몸을 방한복으로 감싸고 오른다.
등산로 옆 아담한 사찰인 '약수암'을 지나면서부터
눈이 발목 깊이까지 빠지기 시작한다.

낮 12시47분
강원랜드 사원 아파트로 향하는 길과 나누이는 삼거리를 지나며
등산로에 쌓인 눈은 더 깊어진다.
눈 산행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깊은 눈 속을 지나는
심설(深雪)산행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이제 겨우 1.2km를 왔건만 시간은
50분이나 경과했다.

나아가는 길은 해발 1,000m를 넘은 지점의 능선길이다.
진행 방향 오른쪽인 서쪽 방향 헐벗은 활엽수 가지 사이로
하이원 스키장의 슬로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낮 12시49분
울창한 낙엽송 사이로 난 눈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비록 울창한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그늘진 곳이기는 하지만
살을 에는듯한 찬 북서풍을 막아주니 그나마 숨을 좀 쉴 수 있다.
지난 주 태백산 산행시 시장바닥보다 더 많은 인파에 질렸던 것에 비하면
오늘은 신선놀음이다.
인적이 거의 없는 호젓한 숲길을 걷는 이 기분을 누가 알 수 있으랴!

낮 12시55분
낙엽송 숲길이 끝나고 1,084m봉을 지나면서
다시 키 작은 잡목 숲이 이어지며 바람도 거세지고 추위가 엄습한다.
쌓인 눈도 더욱 깊어져 몇 안되는 앞 사람이 지난 길을 따르지 않고
발을 헛디디면 이내 쌓인 눈에 무릎까지 푹 빠진다.
이처럼 다져지지 않은 눈길에서는 아이젠도
미끄러움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한다.

오후 1시16분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2.3km 지점 나무로 만든 아담한 전망대에서 잠시 멈춘다.
남쪽 방향으로 조망이 트인다.
저 마을 이름은 박심리로 옛날부터 성황당이 있어 성황당마을이라 불리던 곳이나
이제는 지난 2005년 개장한 이른바 스몰카지노로 불리는 하이원호텔이 흉물스럽게
명당자리에 버티고 앉아 있다.

오후 1시20분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훨씬 밑도는 추운 날씨인지라
오랫동안 한 자리에 머물면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도 움직여야한다.
그동안 남쪽을 향해 이어지던 산길이 남서 방향으로 향한다.
진행 방향 오른쪽에서 칼날같은 매서운 북서풍이 몰아친다.

강한 북서풍이 바닥에 쌓인 눈을 머금고 온 몸을 때린다.
쉴새없이 몰아치는 눈가루를 머금은 강한 바람에 숨 쉬기는 물론
걷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는
움직여야한다. 이를 악물고 힘겨운 발걸음을 하나,둘 옮긴다.

앞서 가는 중년부부는 강한 눈보라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잠시 멈춘다.
그러나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을 밟고 지나야하는 깊은 눈이 쌓인 길.
뒷사람을 위해서라도 넓은 길이 나올 때까지는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
이런 극한 상황을 같이 이겨내며 부부애는 더 깊어지리라.

오후 1시26분
거센 겨울 바람과 함께 날리는 눈가루가 노출된 얼굴의 피부를
사정없이 때린다. 안면의 감각이 사라진듯하다.
바닥에 쌓인 눈도 더 깊어간다.
그러나 이런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면 이곳까지 찾아온 보람이 없다.
감각이 없어진 손가락을 겨우 움직여 카메라 셧터를 누른다.

오후 1시47분
칼바람과의 사투를 끝내고 강한 북서풍을 막아주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잠시 한 숨을 돌린다. 따뜻한 햇살의 고마움을 느낀다.
눈 아래로는 박심 마을 한 가운데 버티고 앉은 스몰카지노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하이원 스키장 슬로프의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마운틴 탑으로 스키어와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곤도라는 쉴새없이 스몰카지노가 있는 하이원호텔과
마운틴 탑 사이를 오간다.

오후 2시3분
한동안 이와같은 비교적 경사가 심한 눈길을 오른다.
쌓인 눈은 더 깊어져 이제 발목을 지나 무릎 가까이까지 빠지는
눈에 무신경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르막을 오르며 몸에 땀이 조금씩 나면서
추위도 가시고 얼었던 얼굴과 손가락이 조금씩 풀리며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오후 2시20분
남동쪽 하이원호텔을 향하는 곤도라 아래를 수직으로 가로질러
남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을 이어간다.
산행 시작 지점에서 3.8km를 지났으니
이제 이곳 백운산 정상인 마천봉까지는 0.6km 가 남았다.
산행을 시작한지 두시간 반 가량되었지만
강추위로 인해 휴식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
그러나 정상을 향해 다시 기운을 낸다.

오후 2시23분
해발 1,330m 에 자리한 헬기장을 지나며 비교적 경사가 완만해진다.
이제 진행 방향은 거의 정서(正西) 방향이다.
기온은 영하 20도를 밑돌지만 공기에 습기가 거의 없는
너무나 건조한 날씨 탓에 상고대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간혹 잔설이 남아있는 상록수 나뭇가지들이 달래주는
아름답고 운치있는 길이 이어진다.

오후 2시32분
백운산 정상인 마천봉에 도착해 북서쪽을 바라본다.
하이원스키장의 슬로프들이 흰 줄을 쳐 놓은듯하다.
좌측 마운틴탑 뒤로는 멀리 해발 1,466m 두위봉이 보이고
우측의 마운틴허브 뒤로 멀리 억새밭으로 유명한
해발 1,117m 민둥산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인다.

잠시 후 산행길에 스쳐지나야할 하이원스키장의
핵심부인 마운틴탑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주말을 맞아 수많은 스키어들로 북적이는 모습이다.

남동쪽으로 눈을 돌려 본다.
좌측에 은대봉,금대봉, 그리고 우측으로는 해발 1,408m 장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그 중앙에 해발 1,573m함백산의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지난 2009년 8월 올랐던 함백산 정상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당시 씀바귀,궁궁이,둥근이질풀,마타리,각시취 를 비롯
짚신나물,쉬땅나무,구릿대,말나리,동자꽃 등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취했던 추억에 젖어 본다.

오후 2시35분
살을 에이는듯한 강추위에 오래 머물 수가 없어
하늘과 맞닿았다는 의미일 것으로 생각되는 해발 1,426m
마천봉(摩天峰)정상을 떠나 하산을 시작한다.

전국적으로 백운(白雲)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여러 곳이다.
전남 광양의 백운산(해발 1,218m),경기 포천과 강원 화천 사이의
백운산(해발 904m), 강원 원주와 충북 제천 사이의 백운산(해발 1,087m) 등.
더구나 이곳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동강변의 백운산(해발 883m)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낄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산이다.
그러나 나는 이름이 알려져 번잡한 곳보다 조용한 이 백운산이 마음에 든다.

오후 3시2분
백운산 정상에서 1,381 고지까지 이어지는 1.2km거리의 하산길은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알려지지 않은 산을 찾은 보람을 느낄 정도로
아름답고 고요한 눈 세상이다.
어느 누구도 발길을 들여 놓지 않은 깨끗한 곳.
마음까지 맑아지는듯 싶다.

정상에서 마운틴탑을 거쳐 강원랜드 방향으로 하산하는 산행로는
'산철쭉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북향 길이어서인지 나뭇가지의 눈도 햇빛을 못 받아서인지
녹지 않고 남아 몇 안되는 겨울 산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오후 3시8분
산철쭉길이 끝나며 잠시 하이원 스키장의 여러 슬로프 중 하나인
제우스 제2코스 옆으로 산행길이 이어진다.
이 코스는 슬로프 길이 749m 로 짧은 거리의 초급 코스이다보니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스키라는 것은 선진국 국민들이나 즐기는 것으로 알고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 가던 후진국 국민으로서의 내 젊은 시절을 생각하니
행복한 주말을 보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럽게 여겨진다.
멀리 동쪽 끝 매봉산 능선의 풍력발전기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13~4km떨어진 매봉산능선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풍력발전기들이 힘차게 돌아간다.
근래 보기드문 강추위로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고 하는데,
저 풍력발전기들이 전력 수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된듯하여
대견스럽게 여겨 진다.

이곳 하이원 스키장 슬로프 최상부에 위치한 스키 하우스인
마운틴탑 옆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산행길을 이어간다.
윗 부분의 원형 시설물은 회전식 전망 레스토랑인
‘탑 오브 더 탑 (Top of the top)이며 45분마다 한 바퀴 회전하는
시설물이다.
8인승 곤도라와 2,4,6,8인승 스키 리프트가 스키어들과 관광객들을
산 아래 여러 콘도에서 이곳까지 실어 나른다.

오후 3시39분
온통 산죽으로 군락을 이룬 눈길을 따라 하산길을 이어간다.
마운틴탑에서 도롱이연못 부근의 정자삼거리까지 이어지는
이 산행로에는 '산죽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키 작은 산죽군락이 머리만 내민채 온몸은 눈 속에 파묻혀 있다.

오후 3시47분
산죽길이 끝나고 화절령길이 시작되는
정자삼거리가 멀리 보인다.
정자삼거리부터의 하산길은 과거 이곳이
우리나라 석탄의 주산지이던 시절 석탄 운반을 위한 도로였던
운탄길이 시작된다.
귀가차량이 기다리는 강원랜드 입구의 폭포주차장까지 남은 거리는
아직도 3.9km이다.

서쪽 방향으로 150m 떨어진 곳에 아롱이연못이 있다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그러나,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 그리고 아무도 지나지 않은듯한 길.
다녀오고 싶은 유혹을 추위와 시간 제약이라는 이유로 뿌리치고 만다.
저 눈 위에 드러누우면 무척 푹신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요즈음도 차량통행이 가능한 운탄길로 이어지는 하산길이지만
무릎 높이까지 쌓인 눈의 양은 줄어들지 않고 이어진다.
아마도 눈이 쌓이지 않은 계절이라면 폐광의 흔적을 보여주는
검은색이 눈을 어지럽힐듯한 생각이 든다.

오후 4시1분
얼어붙은 얼음 위에 눈이 쌓여 연못이라는 짐작만 가능한
도롱이연못앞을 지난다.
지난 1970년대 탄광갱도의 지반침하로 생긴 연못이라는 이곳은
광부의 아내들이 연못에 사는 도롱뇽에게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했던데서
그 이름을 얻었다 한다.

화절령 길은 과거 석탄을 캐내던 광산지역으로 근래에 폐광 이후
사방공사를 진행함으로해서
키 작은 활엽수와 잡목들이 자라는 척박한 땅이지만
흰 눈이 아름다운 설경으로 정화시켜 놓았다.

화절령(花折嶺)이란 이름은 봄날 만발한 잔달래꽃을 꺾으려고
여인네들이 각처에서 모여들어 진달래꽃을 꺾었다하여
'꽃을 꺾는 고개'라는 뜻의 한자어인 이름을 얻었다 한다.

환경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물도 눈에 띈다.
'한국광해관리공단'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기관에서 설치한 저 시설은
폐광산에서 유출되는 갱내수에 포함된 금속성분을 제거하기 위한
일종의 침전조로 보인다.

과거 오랜기간 이곳이 석탄광산지대였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물질적 이익을 위해 인간들이 파헤쳐 놓은 석탄광산이
오늘날에는 도리어 인간의 생명에 큰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
훼손된 자연은 회복하는데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엄청난 시간이 소요됨을 깨달아야 하겠다.

오후 4시28분
화절령 삼거리를 지난다.
해발고도는 대략 950m 지점이다.
한쪽은 폐광 흔적을 없애기 위함인지 토목공사가 한창인가하면
한쪽은 이처럼 산림복구공사를 마무리한 곳도 있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정선군 사북면 사북리로
과거 동원탄광이 있던 지역이다.
이제 주차장까지 남은 거리는 2.4km.
다리 품을 한참 더 팔아야한다.

오후 5시1분
산행이 끝나고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행복했던 눈산행의 즐거움이 '강원랜드'라는 글자 앞에서
무참히 깨어진다.

사북 읍내 도로변에 줄지어 늘어선 수많은 전당포들.
간판은 하나같이 "00전당사"로 되어있다.
3,000여명 고용창출이라는 어줍짢은 명목하에 연매출액 1조원을 훌쩍 넘기는
도박업을 허가한 정부당국이 때려 죽이고 싶도록 미워진다.

5시간동안 행복했던 산행의 기억으로 씁쓸함을 애써 감추며
귀가 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