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합천호를 품에 안은 악견산(岳堅山) 산행기

2011년 6월18일 토요일 오전 10시36분
경남 합천군 대병면의 합천호를 에워싼듯 자리한 까닭에
황매산,금성산,허굴산과 함께 '대병5악'이라 불리우는 의룡산과 악견산 산행을 위해
경남 합천군 용주면 가호리에 위치한 용문정 앞에서 산행 준비를 한다.

팔작지붕 구조로 지어진 용문정 앞에는 '만은 유선생 유허비'가 서 있다.
통정대부 평해군수(현재의 경북 울진군)를 지내던 '만은 유수정(1484~1534)'이
1519년 일어난 기묘사화로 인해 대사헌 조광조 등 신진사류들이 화를 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용문정을 지어 현인 문객들과 교류하며 산수를 즐겼다 한다.

오전 10시55분
오늘 산행팀의 리더가 의룡산으로 오르는 산행 들머리를 찾지 못해
(산행을 다녀온 후 알아보니 많은 산행객들이 의룡산 들머리를 찾지 못해
산행 경로를 바꾸었다고 하니 산행 들머리 정비, 이정표 설치 등
합천군 당국자들의 관심이 필요한듯 싶다.)
악견산 들머리인 광미사를 향해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던 중
광미사 입구에서 일명 '붉은가시딸기'라고도 불리우는
우리나라 원산의 야생화인 곰딸기를 만난다.

머잖아 저처럼 잔털이 밀생한 틈 속에서 꽃받침보다 작은 흰빛이 나는 꽃이 핀 후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붉은색 딸기가 열매를 맺으리라.

주불전이 특이하게 '관음전'인 자그마한 '광미사(匡彌寺)' 경내를 가로질러
악견산으로 향하는 산행로가 이어진다.
관세음보살을 주불(主佛)로 모신 불전의 명칭이 관음전이지만
관음전이 그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일 때에는 관음전이라 하지 않고
'원통전(圓通殿)'이라 하는 것이 보통이건만..
아마도 이 광미사란 사찰은 조계종 등의 우리나라 불교 정통 종파에 속하는 곳은 아닌듯 싶다.

거의 모든 악견산 산행지도에는 이 절 이름이 옛 이름인 '용문사'로 표기되어 있다.
절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검은색 비석에 '악견산광미사창건공덕비'가 서 있는데,
공덕비의 '광미사'라는 세 글자는 직사각형 돌에 글씨를 새겨 비석 위에 덧대어 놓은 것을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알지 못하고 지난다.

광미사 경내를 벗어나면서 곧바로 울창한 숲길로 들어선다.
진한 풀냄새가 코 끝을 강하게 자극한다.
이제 막 산행길이 시작된 지점인데 웃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예년보다 한 달 가량 일찍 찾아온 폭염이 원망스럽다.

작은 바위틈에서 뭉쳐서 피어나는 여름 야생화인 '바위채송화'를 바라보며
땀을 닦는다.
의룡산 들머리를 못찾아 악견산으로 바로 오름으로써 오늘 산행 시간이 단축됨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오전 10시59분
큰 암반을 등지고 서 있는 미륵입상을 지나며 본격적인 오르막 산길이 시작된다.
미륵불(彌勒佛)은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 56억 7천만년이 되는 때에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화림원(華林園)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고,
3회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고 들은바 있다.
비록 믿는 종교는 없으나 오늘 산행이 안전하게 끝나기를 마음속으로 잠시 빌어 본다.

잠시 양지 바른 풀밭이 나타나며 예쁜 꽃들이 반갑게 웃는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폐결핵으로 인한 해수,불면증 등에 효과가 있다는
백합과의 야생화 '중나리'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참나리,털중나리와 너무도 흡사한 점이 많아 확신할 수는 없다.

오전 11시25분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산인지라 그 이름 또한 악견산이다.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유난히 가느다란 몸매에 키만 훌쩍 큰 소나무 숲을 지나며 발 밑으로 전해오는
솔가지의 푹신한 느낌을 음미하며 여유로운 걸음을 이어간다.

오전 11시36분
한동안 이어지던 소나무숲길이 지나면서부터 산 이름에 걸맞게 거대한 암반들이 줄을 잇는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암반들 사이를 피해 숨박꼭질하듯 지나는 길이다.
간혹 암반 틈으로 녹음 짙어가는 숲과 먼 산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

오전 11시57분
거대한 바위들이 겹겹이 쌓인 그늘진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등산지도 상에는 '조망바위'라고 표기된 곳이건만 옅은 안개로 인해 조망이 확보되지 않는다.
다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조금은 식혀 준다.
바위 끝부분이 어찌 보면 거대한 사향고래의 주둥이를 닮았다.

낮 12시14분
해발고도 100m 정도 지점에서 출발한 산행길이 이제 해발고도 500m를 넘긴듯하다.
진행방향 우측인 서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아침부터 시계를 방해하듯 끼어있던 옅은 안개가 걷히지 않으니
멀리 보이는 합천호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망원렌즈로 호수 주변을 당겨 보지만 가슴속을 시원하게 해줄 쪽빛 물빛은 보지 못한다.
다만 이미 제주지방부터 시작된 올여름 장마철을 대비하기 위함인지는 모르지만
유난히 물이 많이 빠진 합천호의 모습을 확인할 뿐이다.

낮 12시27분
악견산 정상까지 남은 거리가 360m 로 표기된 이정표를 지나면서부터
남향하던 산행로가 방향을 서향으로 바꾸며 암반으로 된 능선길이다.
등산로를 가로막는 큰 암반들을 지나기가 더 힘들어진다.
급경사 암반을 지나는 구간은 이처럼 로프에 의지해야하는 구간도
수월찮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쪽 손에는 무게 4kg에 달하는 카메라 장비를 들고 한 손으로 로프를 잡고 암반을 오른다.
암반을 올라 눈 앞에 띄는 예쁜 꽃을 보고 잠시 인사를 나눈다.
흔히들 싸리꽃이라 부르는 '꽃싸리"이다.
콩과의 식물이지만 낙엽관목이다.
가축들이 잘 먹는고로 사료로 많이 쓰이는 나무이다.

진행방향 우측인 북쪽으로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작은 강줄기가 보인다.
합천호에 고였던 물이 함천댐을 지난 후 이곳에서 대략 15km 떨어진 합천읍을 거쳐 흐르는 '황강'이다.
합천읍을 지난 후 저 황강 줄기는 진주를 지나온 남강물과 합쳐져 낙동강에 합류한다.
그리고 낙동강은 영남지방 곡창지대를 거쳐 남해 바다로 흘러든다.

낮 12시35분
금년 여름 들어 처음으로 '기린초'를 만난다.
원산지가 한국, 일본, 중국이며 산지의 바위 곁에서 주로 자라는
기린초가 함박 웃음을 짓는듯하다.

그런데, 기린초란 이름은 우리가 아는 키 큰 동물인 '기린'이 아니라
기린초의 잎이 옛날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속의 동물인
기린의 뿔을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런데, 그 상상속의 기린은 덕과 도를 쌓아 백수의 영장으로 불렸으며
신통력을 나타내는 것이 이마에 돋은 외뿔이었다한다.
몸은 사슴같고, 말같은 갈기와 발굽이 있으며 꼬리는 소같고,
5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는 그 상상속의 기린도
수컷은 "기(麒)", 암컷은 "린(麟)"이라 했다 한다.

오후 1시28분
노랗고 예쁜 기린초가 피어난 곳 바위 부근에서 점심식사와 휴식을 마친 후 이어지는 산행길
거대한 바위들이 연이어 서 있는 산행로의 연속이다.
바위 틈을 뚫고 지라는 수많은 나무들의 생명력이 놀랍다.

오후 1시33분
악견산 정상에 도착했다.
산 이름에 걸맞게 정상부는 거대한 암반들이 겹겹이 쌓인 특이한 곳이다.
정상부의 북쪽에는 이와같은 큰 암반이 가로막혀 있고,
그 앞에 악견산을 소개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10여명이 올라서면 꽉 들어찰만한 암반으로 된 정상부 남쪽의 큰 암반에 기대선 정상석.
나 또한 정상석 옆에 기대선채 잠시 다른이에게 카메라를 맡겨 정상을 밟은 증빙사진을 한 장 남긴다.
정상석에는 분명 해발 634m라고 표기되어 있건만 시중에 나도는 등산지도의 해발고도는 제각각이다.
타인을 위한 작은 배려가 아쉬운 부분이다.

무더위 속의 산행으로 인해 온몸은 땀으로 젖었지만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림처럼 펼쳐진 합천호의 장관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더위가 씻은듯 가신다.

아직도 옅은 안개가 걷히지 않아 흐릿하기는 하지만
맑은 물이 고인 호수를 바라보니 가슴 속까지 후련해진다.

오후 1시48분
악견산 정상을 떠나 합천댐 인근의 주차장으로 향하는 하산길은
진행방향 우측인 북쪽으로 합천호를 바라보며 걷는 상쾌한 길이다.
비록 걷기 힘든 바위길이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오후 2시3분
옛 산성터를 지난다.
이곳 합천악견산성[陜川嶽堅山城]은 지난 1999년에 경상남도기념물 제218호로 지정되었다.
바위를 연결하여 자연석으로 쌓은 성으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는 1439년에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전문가들은 1592년(선조 25) 무렵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성주목사(星州牧使)로 있던 곽재우(郭再祐)가
도체찰사(都體察使) 유성룡(柳成龍)의 명령을 받아 보수하고 이용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적의 흉탄을 막기 위해 여자의 초경을 모아 칠한 갑옷(홍의)을
입고 왜적을 물리쳤다는 홍의장군 곽재우.
전하는 이야기로는, 왜군이 장기전을 펴자 곽재우가 인근 금성산(錦城山) 바위에 구멍을 뚫고
악견산까지 줄을 맨 뒤 붉은 옷을 입힌 허수아비를 달밤에 띄우게 하여,
마치 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합천호[陜川湖]는 면적 25.95㎢, 만수위 176m, 저수량 7억 9000만t으로,
1988년 12월 낙동강 지류인 황강(黃江)을 막아 합천댐을 만들면서 생겨난 인공호수이다.
호수에는 붕어와 잉어·메기 등 다양한 어종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어 천혜의 낚시터로 꼽히며,
호수와 산허리를 끼고 달리는 40㎞에 이르는 호반도로는 자동차 여행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콘크리트중력식의 본댐과 중앙심벽형 석괴댐인 조정지댐으로 이루어진 합천댐은
5만kw ×2, 600kw×2기의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어 연간 2억2천만kwh의 전력을 생산한다.
부산·창원·등 낙동강 하류지역에 5억 2000만㎥의 생활 및 공업용수, 3억 2000만㎥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오후 2시22분
급경사 내리막 암반지대에 설치된 철제 계단을 이용해 한참을 내려온 후
평지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눈 아래의 밤나무단지에서 바람을 타고 전해오는 밤꽃 향기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밤꽃은 한 그루에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는데 이 중 수꽃에서 짙은 향내가 난다.
게다가 밤꽃 향이 남자의 정액 냄새와 비슷해 “남성”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예로부터 부녀자들은 밤꽃 필 때 외출을 삼가고 과부는 더욱 근신하도록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문득 세계적인 거장 ‘고흐’의 작품인 “개화한 밤나무가지(Blossoming Chestnut Branches : 1980)" 가
지난 2008년 2월 스위스의 ‘에밀 뷔릴르’ 박물관에서 무장강도들에게
탈취 당했다가 9일 후 인근주차장에서 발견되었던 사건이 머리에 떠오른다.

오후 2시39분
급경사 내리막 길이 끝나고 비교적 편한 하산길이 이어진다.
눈 아래로 임란창의기념관(壬亂倡義記念館) 앞의 큰 주차장이 보이고
우리가 타고 귀가할 차량이 주차해 있는 모습도 보인다.
피곤한 다리에 새 힘이 솟는듯 하다.

임진왜란 때의 합천 지역 의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관 전경을 망원렌즈로 살펴 본다.
입구에서부터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한 사당까지 둘러보려면 모두 4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첫 번째 계단을 오르면 전면에 ‘陜川壬亂倡義記念(합천임란창의기념탑)’이라고 적혀 있는 기념탑이 우뚝 서 있고,
두 번째 계단을 올라 숭인문(崇仁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외삼문을 통과하면
왼편으로 사적비 1기와 사주문(천례문)이, 오른편으로 연못과 또 하나의 사주문(양지문)이 있다.
세 번째 계단을 오르면 유물관과 교육공간으로 쓰이는 강당 건물인 경의당이 나온다.
유물관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투쟁사와 합천의병사에 관련된 갖가지 해설판이 설치되어 있고,
임란 당시의 유물 30여 점도 전시되어 있다.
네 번째 계단을 올라 충의문(忠義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내삼문을 통과하면
의병장 정인홍과 의병 113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 창의사(彰義祠)가 있다.

진행방향 좌측인 남쪽으로는 해발 592m 인 금성산이 우뚝 서 있다.
앞에서 악견산성을 설명하며 언급했던 금성산이 저곳이다.
저 금성산은 고려시대부터 옛 통신수단의 하나인 봉화대가 정상에 자리하고 있어
일명 봉화산이라 불리기도 했었다.

오후 3시2분
산길이 끝나고 도로에 내려서며 산사면 바위틈에서 피어나는 찔레꽃 향기를 맡는다.
산기슭이나 볕이 잘 드는 냇가, 골짜기에서 주로 서식하는
장미과의 낙엽활엽관목인 우리나라 원산의 찔레꽃은
꽃말이 "고독"이어서인지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대중가요에 종종 등장하는 꽃이다.

꽃말이 '부부의 사랑, 결혼' 등인 보리수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어간다.

석가모니가 그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보리:菩提) 고 해서 이름 붙여진
"보리수(菩提樹)"는 뽕나무과의 키가 30m까지 자라는 거대한 나무로
이 나무와는 다른 나무인데 간혹 구분을 못하는 이들도 있는듯하다.

최근들어 우리나라 전역에 급속도로 번져가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루드베키아가
이곳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뽐낸다.
흔히들 이꽃을 '원추천인국'이라고만 알고 있지만,
원추천인국,검은눈천인국,큰원추국,삼잎국화 등등은
루드베키아에서 파생된 재배종들의 이름이다.

오후 3시15분
무더위 속에서 이어진 악견산 산행은 임란창의기념관 주차장에 도착하며 끝을 맺는다.
합천군이 사업비 61억 원을 투여해 건립하여 2001년 5월 10일 개관한 이 기념관의
부지면적은 3만 4,048㎡이다.

임진왜란 때 고귀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선열들의 명복을 빌며
주말 하루 행복했던 산행을 마감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위 지도에서 청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당초 계획했던 산행구간이고,
적색으로 표시된 구간은 실제 산행을 완료한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