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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다로 떠난 여름 가족 여행

2011년 8월6일 오전 11시40분
작은 아들 내외와 함께 가족 4명이 떠난 여름 여행.
대전 집을 출발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하행선 함양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간다.

지난 4월 결혼한 작은 아들 내외의 강요. 엄밀히 얘기하면 며느리의 강요에 의해 떠난 여행이다.
바쁜 업무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미혼의 큰 아들의 빈 자리가 조금은 허전한 느낌으로 다가 온다.

낮 12시41분
고속 도로를 벗어나 20여분 이상 국도를 달린 끝에 멀리 창선.삼천포대교가 보인다.
공식 명칭이 "창선·삼천포대교 [昌善·三千浦大橋]"인 저 다리는
경상남도 사천시 삼천포항과 남해군 창선면을 연결하는 연륙교(連陸橋)인데,
국내 최초의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지난 2003년 4월에 개통된 다리이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행 및 여행을 하는 나 자신 주말에는
항상 관광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원칙을 지키지만
오늘같은 가족여행시에는 어쩔 수 없이 직접 운전을 해야한다.
가족의 안전이 우선이다보니 1시간에 한 번씩은 반드시 휴식을 취하기로하고 길을 나섰으니
잠시 차를 멈추고 추억 남기기를 한다.

즐거워하는 며느리의 모습에 나도 즐거워 진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빨리 찍어달라며 보챈다.

185cm 를 훌쩍 넘는 아들 녀석과 같은 키 처럼 보이고 싶었던지
도로 경계석에 올라서 사진을 부탁하며 상반신만 찍어 달라고 한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건 셔터를 누르는 내 마음이다.

오후 1시7분
삼천포항 주차장에 주차 후 바닷가에 나와 선다.
이곳 삼천포항은 나 자신 1년에 10여차례씩 들리는 곳이지만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섬에서 태어나 자라 생선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아내는
싱싱한 횟감을 고르기 위해 시장 안을 비집고 다닌다.
철 없는 며느리는 처음 접하는 풍경을 디카에 담기에도 바쁘다.

오후 1시31분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의 더위 속에서도
부지런을 떨며 싱싱한 횟감을 고른 아내의 발품 덕분에
광어,농어,낙지,멍게,전어 등으로 이루어진 싱싱한 해물을
정말 배가 부르게 먹었다.
우리 4식구가 실컷 먹고도 9만원 정도 비용이니 대도시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다. 더구나 싱싱함은 그 이상이다.

점심 식사 후 어시장을 돌며 건어물을 살핀다.
멸치를 살피는 아내는 이곳에서는 품질과 가격만 알아보고
정작 멸치 구입은 나중에 남해 섬에서 죽방염 멸치로 구입했다.
며느리에게는 삼천포가 원조격인 쥐포를 안겨 준다.
여행 출발 전 여행중 무억이든 원하는건 금액이나 수량에 관계없이
모두 사주겠다고 모두에게 얘기했으니 약속을 지킨다.
비록 여행이 끝난 후 상당기간 나 자신 개인적 지출을 줄여야할지도 모르지만.

방금 경매가 끝난 엄청난 양의 멸치를 젓갈공장으로 보내는 작업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비린내가 코를 찌르지만 선창가에서만 볼 수 있는 활기찬 모습이다.

중형급 태풍이 제주도 남쪽 부근까지 접근했다지만
방파제로 둘러싸인 삼천포항 내의 물결은 잔잔하다.
다만 태풍전야인지라 출항하는 어선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태풍에 대비한 조치인듯 싶다.

오후 2시35분
점심 식사 후 잠시 바닷가를 거닐어 본다.
잠시 후 지나가야할 창선 삼천포대교가 멀리 보인다.
총 5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창선 삼천포대교 중 사진에 보이는 다리는
길이 436m로 다리 이름은 삼천포대교이다.


오후 2시53분
창선 삼천포대교를 건너는 중
첫번째 다리인 삼천포대교 초입에서 잠시 멈추고 시원한 바닷 바람을 즐긴다.
뒷쪽으로 붉은 아치형 교각을 가진 다리는
길이 202m인 초양대교이다.
저 다리 다음으로 늑도교(길이 340m), 창선대교(길이 150m), 단항교(길이 340m) 가 이어지며
총 5개의 다리가 합쳐져 "창선 삼천포대교"를 이룬다.


오후 3시17분
눈 앞으로 멀리 독일마을이 바라보이는 길가에서 잠시 멈춘다.
지난 2001년부터 조성된 40여 가구의 주택을 지을 마을부지가 있는 저곳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 남해군 산동면 물건리 1135번지이다.


1960년대에 산업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되어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독일거주 교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제공해주고,
독일의 이국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남해군에서 30여억원을 투입했던 이곳.
이제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방조어부림이 있는 물건리 바닷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이곳.
수년 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너무나 깨끗하고 조용한 마을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간혹 마당에 나와 휴식을 즐기는 푸른 눈의 외국인도 볼 수 있었다.

수년이 지난 오늘은 이처럼 수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
조금은 소란스럽고 복잡한 마을이 되어 버렸다.
남해군의 관광사업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은퇴 생활을 즐기는
교포들과 벽안의 외국인들에게는 어떤 환경일지를 생각해 본다.

오후 3시55분
독일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닷가인
물건리 바닷가에 나와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천연기념물 제 150호인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 [南海勿巾里防潮魚付林]"에 둘러싸인
몽돌해수욕장은 조용하고 깨끗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답게 바닷물이 너무 깨끗해
물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방파제가 파도를 막아주는 잔잔한 바다에는
윈드서핑 등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매니어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면적 2만 3438 평방미터인 이 숲은 바닷가를 따라 초승달 모양으로 길이 1,500 m, 너비 약 30 m로 되어 있는데,
나무의 높이는 대체로 10∼15 m이며 상층목이 약 2,000그루이다.
구성수종으로는 푸조나무 ·팽나무 ·참느릅나무 ·말채나무 ·모감주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상수리나무,
상록수종으로는 후박나무가 있다.

약 300년 전 마을사람들이 방풍과 방조를 목적으로 심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숲이 해를 입으면 마을이 망한다고 믿어 잘 보호해 왔다.
일제강점기 말엽 일본인들이 목총을 만들기 위해서 이 숲에서 7그루의 느티나무를 자르려고 했을 때
마을사람들은 총칼에 맞서 이 숲을 없애겠다면 차라리 우리를 죽여달라고 맞서 이 숲을 보호한 일도 있다.

방조어부림 숲속에는 곳곳에 나무 벤치가 마련되어
길손들에게 피로를 풀 장소도 제공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맑고 깨끗한 남해 바다가 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무척 아늑하고 편안한 곳이다.

오후 4시33분
물건리 방조어부림을 떠나 남쪽의 상주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은
우측으로 깎아지른듯한 절벽을 따라 뱀처럼 꼬불꼬불 이어지는 위험한 길이다.
그러나 좌측으로는 환상적인 바다 풍경이 끝없이 펼져지는 절경이다.

평소에 접하는 남해바다의 모습이 아닌 무척 거친 바다의 모습이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가 흰 포말을 끊임없이 일으킨다.

오후 4시53분
근래 들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상주해수욕장에는
휴가를 맞아 바다를 찾은 피서인파로 크게 붐빈다.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1136-1번지인 이곳
지난 1976년 여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길이 2km에 이르는 길고 고운 모래를 가진
반달 모양의 해수욕장에 넋을 잃었던 그 당시 조용하던 해수욕장이 그립다.

곧 닥쳐올 태풍 때문인지 해수욕장 모래밭으로 밀려드는 파도가 너무 거세다.
많은 인파와 거센 파도를 핑계삼아 눈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상주해수욕장을 떠난다.

오후 4시59분
상주해수욕장을 떠나 남해읍 방향으로 향하는 북향한 도로변에 잠시 차를 세우고
눈 앞으로 펼쳐지는 금산의 바위 능선을 구경한다.

해발고도 681m인 금산의 정상부 부근 바위 능선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정상 부근을 망원렌즈로 당겨본다.
강원도 낙산사 홍연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보리암'이 바위 틈에 위태롭게 자리하고 있다.

참고로 이 사진은 지난 2008년 12월 20일 오후 금산 산행 중
보리암 경내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후 6시13분
여행 코스를 잠시 벗어나 남해읍에서 가까운 곳인
남해군 이동면 난음리 지인의 집에서 간단한 음료로 피로를 풀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발산한다는 편백나무를 많이 써 지은 집에서
편백나무 향으로 피로를 푼다.

오후 6시45분
남해군 남면 홍현리 895 번지에 자리한 다랭이마을 도로 위에 도착해
시원한 바닷바람과 멋진 경치에 몸을 맡긴다.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암수바위 뒷편으로 북동쪽 방향에
거의 매년 한 번씩은 오르는 설흘산 정상부가 눈에 들어온다.
홀로하는 여행이었으면 저곳 봉수대까지 갔다 왔으리라.

북서쪽으로는 응봉산에서 설흘산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이 장관을 드러낸다.
지난 봄 저곳에서 내려다보던 해안선의 절경이 뚜렷이 생각난다.

아랫쪽 해안가에서는 매년 한두차례 이곳을 찾으면서도
경험하지 못한 풍경을 접한다.
마치 동해바다에서의 그것처럼 세차게 밀려드는 파도의 모습이다.
다가오는 태풍 때문이겠지만 항상 잔잔한 바다만 접하던 이곳에서의
세찬 파도와 그에 따른 흰 포말들.. 색다른 경치에 매료된다.

오후 7시2분
바닷가에서 다랭이논으로 이루어진 다랭이마을을 올려다 본다.
수년전까지만해도 주민들이 여름이면 벼농사를 열심히 한 때문인지
싱싱하게 자라는 벼 이삭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다랭이논에 잡초가 더 많은듯 싶다.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유로 농사를 접고 관광객을 상대로하는
장사에만 열을 올리는 탓이 아닌가 싶어 서글퍼진다.

참고로 이사진은 지난 2009년 2월14일 오후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저처럼 아름답던 다랭이 논의 많은 부분이 지금은 관광객들을 상대로한
음식점,매점 등으로 변했다..

해안가에서 도로변 주차장까지 오르는 몇백 미터의 급경사 오르막에서
다시 온 몸이 땀으로 젖는다.

오후 8시7분
여행 마지막 행선지인 남해대교 아래 유람선 선착장 부근에 도착했다.
일몰 후 30분후까지 운행하는 1시간 반동안의 유람선을 이용한 바다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고
싱싱한 우럭으로 맛있는 지리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배불리 먹는다.
여행의 즐거움에는 맛있는 먹거리도 중요한 한 부분이다.

밤 9시3분
저녁식사를 마친 후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더위를 달랜다.
지난 1973년 6월 개통한 왕복 2차선 길이 660m의 저 다리.
한국 최초의 현수교(懸垂橋)로 오랜 기간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은 곳이다.

카메라 셧터를 20초간 개방해 찍은 사진에 나타나는 바다가 무척 잔잔함을 알려 준다.

하동쪽으로 이어지는 다리의 다른 한쪽 부분은
30초간의 셔터 속도로 찍었다.
완만한 바닷물의 흐름을 바다 위에 비친 조명등의 그림자가 알려 준다.
바다 이쪽인 남해쪽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이고,
바다 건너쪽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이다.

다리의 모습은 15초간의 셔터 노출로..
그리고, 우리 가족의 모습은 마지막 순간 플래시를 터뜨려 찍었다.
인물을 선명히 찍기 위해서는 플래시의 촉광을 높이는 조정작업을 해야하지만..
빨리 집으로 가자는 가족들의 성화에 시간을 끌지 못한다.

이 사진 또한 30초간의 셔터 노출로 야경을 찍고
셔터가 닫히기 직전 플래시를 터뜨리는 이른바 '후막동조'로 찍은 사진이다.
좀 더 좋은 사진을 얻고 싶은데, 귀가길을 재촉하는 가족들이 조금은 얄밉다.

직장 휴가를 자신들을 위해 쓰라고 당부했건만,
굳이 서울의 신혼집을 떠나 집에 와 준 아이들이 너무 고맙고 대견스럽다.

밤 9시17분
아침 19시경 대전을 출발해 장시간 이어진 여행으로 피로하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한 하루 여행에 대한 행복감이 묻어있는 가족들 모습이다.
행복한 여행 일정을 마감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대전 집에 도착한 시간을 밤 12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총 14시간여에 걸친 여행.
600km를 운전한 힘든 여행이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항상 행복한 시간이다.

이 사진은 지난 1978년 신혼 초 아내와 이 부근 남해대교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다.
30여년 이상 시간이 흘렀음을 느끼게한다.
이제 얼마 후인 2016년 저 남해대교 조금 서쪽 옆에 왕복 4차선에
길이가 990m인 제2 남해대교가 들어서면 내 아이들이 그들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찍고
오랜 후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그 소중한 사진을 보여주며 젊은 시절을 회상하리라..

위 지도상에 표시된 구간 중
붉은색 실선은 이동거리로 대전 집에서 출발해 다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총 거리는 600km.
파란색 점으로 표시된 부분은 머물렀던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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