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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연산의 슬픔을 간직한 취적봉을 거쳐 덕산기계곡으로

2011년 7월2일 토요일 오전 10시54분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덕우리에 소재한 석공예단지 주차장에 도착한 차량에서 내린다.
이곳 석공예단지는 정선읍 귤암리에서만 나는 '목문석(木紋石)'과
'칠보석(七寶石)'을 사용하여 석공예를 하는 곳이다.
목문석은 갈아내면 노란색의 나무 무늬가 나타나는 돌이며,
칠보석은 빨강,파랑,노랑 등 여러 색깔의 무늬가 표면으로 돌출되는 귀한 돌이다.

석공예단지 뒤 북동쪽으로 잠시 후 오르게될 취적봉이 눈에 들어 온다.

취적봉 정상 부근을 자세히 살펴 보면 그 앞에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사모바위가 보인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덕우리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모자처럼 생겨 그 이름을 얻었고,
저 바위에 바위그림자가 없어지면 정각 12시가 된다고 알려져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저 바위가 정오를 알려주어 시계바우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얘기다.

오전 10시56분
동쪽 멀리 정선군 화암면 백전리에서 발원하여 흘러 내려오는 '어천(漁川)을 가로지르는
폭 6m, 길이 74m의 '하돌목교'를 지나며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난다.

상류쪽인 석문교를 지나면 '돌목'이란 지명이 있고 그보다 더 상류쪽에 '상돌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의 지명은 '하돌목'인것 같다.
'돌목'이란 물이 반원을 그리며 흘러가는 '물목'에 돌이 많을 경우 붙이는 이름이리라.

하돌목교를 지나며 내려다보는 물 색깔이 가슴 속을 뻥 뚫리게 한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물을 보기위해 아침 일찍 대전을 떠나
4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달려온 것일지도 모른다.

오전 11시1분
진한 풀냄새가 진동하는 숲으로 들어선다.
이곳이 해발 400m를 조금 넘는 지점이니 700m 가 넘는 취적봉까지 오르려면
비교적 경사가 급한 길을 올라야할듯 하다.
이미 굵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쉬임없이 흘러 내린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우수리강·헤이룽강 등지의 산에서 자생하는
야생화 '으아리'를 금년 들어 산행 중 처음으로 만난다.
선인초(仙人草)·마음가리나물 등으로도 불리는 덩굴성 다년초인 '으아리'는
어린 잎은 식용하고 뿌리는 이뇨·진통·통풍·류머티즘·신경통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옆에는 '큰까치수염도' 예쁘고 작은 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한국,중국,일본의 산지에서 자생하는 야생화인 이 식물은
어린순을 나물로 먹으며,
한방에서는 식물체 전체를 진주채(珍珠菜)라는 약재로 쓰는데,
생리불순·백대하·이질·인후염·유방염·타박상·신경통에 효과가 있다.

오전 11시28분
나무숲 울창한 산을 오르며 온 몸이 땀으로 젖어 더위를 심히 느낄 무렵
나무 숲을 헤치고 눈 아래로 하돌목 부근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람이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며 흘린 땀을 조금 씻어준다.

자그마한 수중보 주위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코발트 빛을 띈 물 색깔과 수중보를 거치며 흰 거품을 일으키는 맑은 물에
더위가 일순 사라지는듯 싶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수줍은듯 피어 있는 '중나리'옆에 나란히 앉아
한숨 돌린다.
백합과의 다년초인 이 중나리의 비늘줄기와 어린순은 식용하며,
한방에서는 비늘줄기를 약재로 쓰는데, 폐결핵으로 인한 해수에 효과가 있고, 불면증과 부종에 사용한다.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적막하기조차한 산길이다.
등산로의 흔적이 거의 없는 훼손되지 않은 깨끗한 숲길.
마음이 편안해지는 산길이다.

오전 11시35분
또 다시 숲 사이로 조망이 터지며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 주는 곳.
아래로 덕우리 마을 전경이 펼쳐진다.
덕우리(德雨里)의 자연부락으로는 대촌(大村), 유천(柳川), 백오담(白烏潭),
덕산기(德山基), 거어리 등의 부락이 있는데, 눈 아래 보이는 저곳이 유천마을인듯 하다.

유천 마을은 그곳에 큰 연못이 있어 못 주위에 버드나무가 울창했다 하여 이름 지어졌고,
그 못가에서 흰 까마귀가 날아와 놀던 골이라 하여 백오담(白五潭)으로 변하여 불리었다.
덕우리의 이름은 산행 후 도착하게 될 덕산기계곡과 백오담에서 글자를 빌어 지어졌다 한다.

오전 11시39분
산행 시작 전 아래에서 보았던 사모바위 앞에 도착했다.
'사모(紗帽)'를 닮아 붙여졌다는 이름으로
'사모(紗帽)'란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에 쓰던 모자로
지금은 전통혼례식에서 신랑이 쓴다.

북한산을 비롯하여, 충북 단양군, 경남 거창군 등 전국 곳곳에서
사모바위라는 이름을 발견한다는 것은 가난했던 우리 조상들의 가장 큰 꿈이
벼슬아치가 되어 배불리 먹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모바위를 우회하여 오르는 길은 겨우내 눈속에 묻혔던 낙엽이
썩지 않은 채 고스람히 쌓여 있는 급경사 오르막이다.
더구나 장마철인 요즈음 잦은 비로 인해 물기를 머금은 낙엽이 무척 미끄럽다.

오전 11시51분
습기 많은 나무 숲 사이에 '우산나물'이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원산지인 이 야생화는 잎이 나올 때
그 모양이 우산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봉오리만 맺힌 모습이 무척 예쁘게 여겨진다.
어린 순은 나물로 해 먹으며,
한방에서는 관절동통,타박상 등의 치료에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낮 12시6분
해발 700m 에 가까운 곳의 조망터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다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봄,가을이면 산 정상까지 오를 때 2시간 정도는 쉬지 않고 오르던 습관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운 여름에는 지킬 수가 없다.
40여분 전 나무숲에 가려 일부분만 보이던 하돌목 부근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이다.

낮 12시19분
작년 여름까지 나뭇가지에 종이로 써서 취적봉 정상임을 알려주던 곳.
나무 그늘에서 동행한 일행들과 어울려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다.

우리나라 특산의 야생화인 '노랑갈퀴'가 봉오리를 맺는 모습이 탐스럽다.

낮 12시46분
점심식사와 휴식을 마친 후
지난해 여름 수원에 거주하는 강원산악회 회원들이 정성들여 만들어둔
취적봉 정상석을 둘러본다.
정상석에는 봉우리 높이인 728.2m라고 새겨져 있다.

취적봉[(吹:불 취.笛:피리 적 峯:봉우리 봉)]이라는 이름은
연산군의 네명의 아들(세자)이 이곳 버드내(유천마을)에 유배되어 감자로 목숨을 연명하고,
풀 피리를 불며 고향생각을 달래다가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온통 높은 산으로 둘러 싸인 모습이다.
해 뜨자 해 넘어가는 두메산골 정선이
영월,평창과 함께 산다삼읍(山多三邑)으로 불리던 곳임을 실감한다.

1506년 음력 9월2일 중종반정에 의해 폐위되어 왕의 신분에서 군(君)으로 강등된 후
이복동생인 조선 11대왕 중종에 의해 강화도의 부속섬인 작은 섬 교동도로 유배를 떠났던
조선조 10대 왕이었던 폭군 연산을 생각한다.

어린 동생들인 세명의 손 아래 왕자들을 거느리고 풀피리를 불며 고향을 그리워하던
폐세자 '이황'은 폐세자가된지 23일만이고, 유배 길에 오른지 19일만인 1506년
음력 9월24일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 때 '폐세자 '이황'의 나이는 9세였다.
같은 날 나이 어린 세명의 어린 왕자는 물론 세자와 길례조차 올리지 못한채
세자빈으로 간택만 되었던 나이 어린 정씨까지 중종의 사약을 받고 세상을 하직한다.

멀리 유배지에서 이 소식을 들은 연산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쳐진다.
그 해가 가기 전 유배지 강화 교동도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연산의 나이는 31세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오후 1시26분
취적봉을 떠나 하산 지점인 백평마을로 향하는 길은 북향이다.
재위 13년 동안 수많은 폭정을 일삼았던 폭군 연산이지만,
나이 어린 자식들의 죽음 앞에서는 똑같은 아비의 심정이었으리라.
무거운 마음을 감싸주듯 이어지는 하산길은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한 숲길이다.

오후 1시27분
비좁은 바위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하산길.
좌측으로 멋진 경관이 펼쳐지며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맑은 물이 흐르는 어천이 뱀처럼 구비구비 사행천을 일루는 곳.
마치 밥주걱 마냥 생긴 아담한 천변의 밭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멀리 바위벽을 따라 구비쳐 흐르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보인다.
빨리 저곳으로 달려가 땀에 절은 몸을 담그고 싶어진다.
발걸음이 빨라 진다.

바위 능선 양편으로 옹기종기 모여 자라는 소나무들도
잔가지를 물가인 서쪽으로 뻗은채 자란다.
마치 어린 나이에 사약을 받은 연산의 네 왕자들이 아비가 유배된 강화도를 그리듯
서쪽 방향으로 가지를 뻗으며 자란다.

오후 1시30분
물가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는 물 색깔은 더욱 진하다.
매년 이른 봄 매화꽃을 맞기 위해 찾는 섬진강가의 쫓비산에서 내려다보던
섬진강의 물빛을 쪽빛이라 했지만, 섬진강의 그것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토록 맑은 물 색깔은 표현이 힘들 지경이다.

맑은 물을 거슬러 걸어가는 저들이
현재 내가 생각하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마치 별천지에 온듯 싶다.

구불구불 휘돌아 흐르는 어천과
덕산기계곡을 흘러 내려 낙모암 앞을 지난 작은 물줄기가 합쳐지는 저곳.
저곳을 누군가 '삼합수(三合水)'라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물이 합쳐지는 그곳을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작은 여울이 이는 곳.
조금전까지 연산을 생각하며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오후 1시37분
물가로 내려서기 전 북쪽 끝 마지막 바위 언덕에서
10여분 전 바라보았던 밥주걱 모양의 물목 부분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담는다.

지나온 바위 능선을 뒤돌아보니 멋진 바위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지도상에 표기된 '제월대'가 저곳인듯 싶다.

진행 방향인 눈 앞으로는 거대한 암반으로 된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덕우8경 중 하나인 '낙모암'의 모습이다.
덕산기계곡에서 천렵을 마친 후 저녁 낙조를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잇는 곳이라하여
이름 붙여졌다 한다.

세 방향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눈으로 보기위해
3매의 사진을 찍어 파노라마 사진으로 만들어 보았다.
제월대에서 낙모암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오후 1시46분
물가에 도착해 배낭을 벗어 놓고 입은 옷 그대로 물 속으로 뛰어 든다.
1분 이상 물 속에 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물이 차다.
3시간 가까운 산행으로 흘린 땀이 일시에 씻겨 내린다.

동쪽 방향인 저곳 상류로 계속 7~8km를 오르면
큰도사곡골, 도쇄골 등을 거쳐 덕산기까지 이르게된다.
그곳까지를 이른바 덕산기계곡이라 부른다.

서쪽인 하류로 향하는 물은 눈 앞으로 보이는 낙모암을 휘돌아나가
삼합수로 연결되고, 그런 연후에 어천과 합류하여
신월리,애산리를 거쳐 정선 읍내로 흘러간다.

주로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자갈밭을 맑은 물은 쉴새없이 흐른다.
바닥이 작은 돌로 이루어진 하천인지라 갈수기가되면 바닥이 거의 말라버리는 이곳,
물이 많이 흐르는 부분의 돌은 둥근 모양인 반면 물이 적게 흐르는
가장자리의 돌은 모난 돌이 많다.

오후 3시4분
당초 산행 시작시 계획은 산행이 끝난 후 상류쪽으로 물속을 걸어 더위를 식히고자 했으나
하산 지점의 물이 너무 맑고 깨끗한 때문에
그냥 하산 지점에서 물놀이를 한 시간 이상 즐기며 퍼져 앉아 버렸다.
간혹 이런 게으름도 정신건강에는 도움이될듯도 싶다.

물놀이를 끝내고 젖은 옷 그대로 귀가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30여분 걷는 동안 젖은 옷이 다 마른다는 것은 수년간의 계곡산행 경험으로 우리는 잘 안다.

누군가 이곳 덕산기계곡을 '엘도라도'라고 표현한 것을 본적이 있다.
'엘도라도(El Dorado)'란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변에 있다고 상상된 황금향(黃金鄕)을 이름인데
뒤돌아본 게곡의 풍경으로 그 별명에 수긍이 간다.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억둔마을 부근 월통교까지 가는 시골길이 무척 정겹다.
해발고도 400m이상인 시골길을 걷다보니
해 뜨자 해 넘어가는 두메산골 정선이라는 말과
영월,평창과 함께 산다삼읍(山多三邑)으로 불리던 곳임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길가에 연이어 붙어있는 밭에는 유난히 감자가 많이 자란다.
맑은 공기와 뜨거운 햇살을 듬뿍 머금은 감자밭에는
감자꽃이 한창 만개한 상태이다.

동네 어귀 작은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레몬 농사가 한창이다.
요즈음 생선,육류요리에 꼭 사용되는 레몬은
일반인들이 열대 과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히말라야가 원산지인 레몬은 시원하고 기후의 변화가 없는 곳에서 잘 자라는 탓에
지중해 연안에서 생산된 것이 품질이 가장 좋다고 한다.
해발고도 400m 이상인 이곳의 기후도 괜찮을듯 싶다.

관심을 갖는 나에게 젊은 농부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이 꽃은 수꽃이다.
수꽃이어서 씨방이 없다.

수꽃 아래쪽에 암꽃이 보인다.
이미 수정이 끝난 상태인지라 벌어졌던 꽃잎을 오르리기 시작한다.
꽃과 연결된 씨방이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향긋한 레몬향과 새콤달콤한 맛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 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시골길 가장자리로 길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도랑에는 유난히 무당개구리가 많다.
그만큼 오염이 덜된 청정지역이기 때문이리라.
개구리를 보지 못한 도시 어린이들이 무당개구리를 맨손으로 잡은 후에는
손을 반드시 씻을 필요가 있다.
무당개구리는 등 부분에서 독소가 나오기 때문이다.

오후 3시32분
지난 6월 지리산 자락 밤나무단지를 지나면서는 지나친 밤꽃 향기가
역겨웠었지만,
철 늦게 만개한 몇 그루 되지 않는 밤나무에서 전해지는 밤꽃 향기는 은은함 때문인지
그리 싫게 여겨지지가 않는다.
이 정도 은은한 향기뿐이라면 남성의 정액 냄새와 흡사하다하여
아녀자들의 바깥 출입을 막는 일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듯 싶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을 길 한켠에 뱀 한 마리가 꼼짝 않고 있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을 않는다.
죽은 것은 아닌데 병이 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에 흔한 '구렁이'인듯 싶다.
구렁이도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이라는 얘기를 들은바 있다.
뱀을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멀찌감치 피해서 지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오후 3시37분
마을 길을 지나 한동안 이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어천'을 좌측으로 끼고 이어지는 길이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강원도 오지의 산골 마을이지만
한적하고 깨끗한 곳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가족단위의 피서를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일듯한 장소로 여겨진다.

오후 3시45분
귀 차량이 기다리는 월통교가 멀리 보인다.
천변 둔치에 하얗게 핀 꽃들이 마치 매년 9월이면 찾아가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 마을의 메밀밭을 멀리서 보는듯 하다.
흰 소금을 흩뿌려 놓은듯 펼쳐진 하얀 꽃들이 마름답다.

자세히 살펴보니 끝없이 피어나는 흰 꽃들은 개망초이다.
매년 이맘 때쯤이면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을 뒤덮다시피 피어나는 국화과의 꽃.
아메리카 원산의 귀화 식물인 이꽃은 1910년 일제에 의해
우리 강산이 침략당하던 그 무렵부터 퍼지기 시작한 꽃인고로
망할 '망(亡)'자를 붙여 '망초'가 되었고,
거기다 강한 번식력으로 인해 버려진 공터마다 피어나는고로 '개'를 덧붙여
'개망초'가 되었다. 어찌 보면 불쌍한 운명의 꽃이다.

오후 3시 51분
'어천'을 가로지르는 월통교를 건너며 주말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저 맑게 흐르는 '어천'은 서쪽으로 흘러 정선 읍내를 휘감아도는
'조양강'의 품으로 스며들게 되고,
정선읍을 구비구비 감싸고 돌아 흘러 내린 '조양강'은
정선읍을 지나며 '동강'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남서쪽으로 흘러간다.
그 연후에 동강은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下松里)에서 서강(西江)과 만나
남한강 상류로 흘러들게 된다.

위 지도상에서 적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