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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까마귀가 날아들었다고 전해지는 금오산(金烏山) 산행기



2011년 8월28일 일요일 오전 9시15분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 숭오리 소재 금곡교 부근을 산행 들머리로하여
북서쪽 방향으로 금오산 산행을 시작한다.

곶감의 주산지인 상주와 가까운 때문인지 부근에 감나무 과수원이 많은 곳이다.
아직은 익지 않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사이를 지나는 길이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대략 130m 내외로 추정된다.
멀리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흰 구름이 신비감을 느끼게도 한다.





오전 9시22분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면서 한동안 오르막 경사의 포장도로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잘 가꾸어진 잔디 밭을 가진 아담한 사찰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등산지도에는 부근에 금오사,굴암사라 표기되어 있으나
사찰 이름은 알 수 없다. 다만 조금은 폐쇄적인듯한 느낌이 든다.





오전 9시26분
내 눈에는 마치 안목없는 졸부가 품위없이 가꾼 집마냥 천하게 여겨지는 석암사.
가난하더라도 품위있는 사찰을 좋아하는 나 자신 석암사의 정면 모습을 찍은 사진은
즉시 삭제하고, 석암사 경내를 재빨리 벗어나며 뒷모습을 희미하게 담았다.
아무래도 조계종 소속의 사찰은 아닌듯 싶다.





석암사의 천하게 꾸민 외양에 상한 속이 무궁화를 만나며 조금은 풀린다.
가을맞이에 바쁜 벌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무궁화꽃을 바라보며 내일이 8월29일임을 깨닫자 머릿속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101년 전인 1910년 8월29일. 왜놈들에게 우리의 주권을 빼앗겼던 날...





오전 9시37분
석암사를 벗어나며 본격적인 오르막 산길이 시작되며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소림사 앞을 지난다. 이정표 상으로는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까지
대략 2.6km 정도 거리인 것으로 되어있으나 믿어도 될지는 의문이다.
유명한 중국의 소림사가 있는 산 이름이 "숭산"인 것으로 아는데
이곳 지명도 '숭어리(숭산)'이라 표기한 것을 본적이 있다.





소림사를 지나며 이와같은 가냘프고 예쁜 야생화 무리를 만난다.
시어미에게 구박받으며 쌀밥도 변변히 먹어보지 못하고 굶어죽은 며느리.
그 며느리의 무덤 위에서 피어난 꽃.
붉은 입술 사이로 흰 밥알 두알을 꼭 물고 피어난다.
우리나라가 원산인 이 야생화의 이름은 "새며느리밥풀"이다.





오전 9시45분
거대한 암반 아래 어찌보면 위험스럽게도 여겨지는 이곳.
수많은 촛불들이 약한 바람에 일렁인다. 소림사 석굴법당이다.
기도 효험이 크다고 입소문으로 알려진 곳이다.





소림사 석굴법당을 지나자 이와같은 철계단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많은 산행객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구간이 이와같은 계단 구간이다.
사람의 인체 구조상 계단 오르 내림이 가장 고통스러운 구간이기에
그 유명한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계단 오르기 경기가 매년 개최되는지도 모른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곳 금오산 남쪽 산행로에는 이곳 외에는 계단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전 10시3분
거의 암반으로 이루어진 급경사 오르막을 10여분 이상 오르자
짙은 소나무 숲 사이로 주로 바위로 이루어진 산 능선 윤곽이 드러난다.
옅은 안개로 인해 시계가 별로 좋지 않음이 아쉬운 부분이다.







오전 10시28분
온 몸에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 남동쪽으로 조망이 트이는 작은 바위에 잠시 걸터 앉아 본다.
눈 아래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와 그 너머 북삼읍 강진리 벌판을 해발고도 230여m 정도의
자그마한 야산이 가로막아 두 마을을 구분해 놓았다.
해발고도 600m에 가까운 이곳.
날씨 변화에 민감한 일부 활엽수는 벌써 잎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다.
시나브로 가을이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작은 농촌 마을 사이 해발고도 230여m의 작은 야산은 몸통이 통째로 뚫려 터널이 만들어져 있다.
이름하여 북삼터널..
그 터널을 통과해 경부선 KTX열차가 쉴 틈도 주지 않고 지나 다닌다.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열차의 소음은 엄청나다.
저 녹음 짙은 숲을 근거지로 이루어진 생태계 파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오전 10시44분
암반이 주를 이루는 바위산이다보니 이와같은 급경사 암반에는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더운 여름날 로프의 도움으로 급경사 암반을 힘겹게 오른다.
오래 전 보았던 타잔 영화를 떠올리며 마음만은 즐거워지려 노력한다.
여성이라면 타잔의 애인 '제인'의 흉내를 내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도움이될듯 싶다.





오전 10시55분
이곳 금오산 남쪽 산행로에서 꽤 유명한 지형지물인 '부처바위'를 뒤로 하고 산행길을 이어간다.
바위 바로 앞 작은 공간에는 제단 등 기도처가 마련된 것을 보면
이곳 역시 꽤 많은 인간 군상들이 무언가를 빌기 위해 이곳을 찾는 모양이다.
바위에 붙은 노란색 경고판의 문구는
'미륵부처님 목,어깨 부위에 금이 가 위험하니 올라기지 마세요'이다.





부처바위를 지나 나무숲 사이로 아래를 보니 부처바위 목 뒤로 멀리
북삼읍 중심부 마을이 까마득히 보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 위험한 곳에까지 찾아와 빌기보다는 그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을지?





오전 11시41분
금오산 정상까지 800m 정도 남겨둔 지점. 해발고도는 900m에 가까운 곳.
옛 성곽 터가 남아 있다.
시생대(始生代)와 원생대(原生代)에 속하는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곳 금오산.
고려시대 때 자연 암벽을 이용해 만든 산성은 임진왜란 때도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지 역할을 했다고 전해 진다.





오전 11시53분
산행을 시작한 후 오랫만에 이와같은 편안한 숲길을 걷는다.
마치 도시 근교 야산 산책길을 걷는듯한 느낌이다.
해발고도 800m이상까지는 주로 암반으로 이루어진 험난한 산세이지만
정상 가까운 부분에 비교적 넓은 평원이 발달한 것은 이곳 금오산의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오전 11시56분
해발고도 906m 지점의 바위 봉우리에 올라 한동안 휴식을 취한다.
정상까지의 직선거리는 불과 200여 m.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식혀주는 곳이다.





이곳 바위 봉우리는 이곳 금오산에서 첫째가는 조망터이다.
북쪽 방향으로 눈을 돌려 금오산 정상부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약사암의 비경을 보고자 한다.
그러나 짙은 안개가 땀 흘린 산행 후의 즐거움을 시샘한다.





오전 11시59분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불과 3분여만에 짙은 안개를 서서히 몰아내며
바위 절벽에 자리 잡은 약사암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짙은 안개는 조금 걷혔으나 약사암 범종루와
범종루로 이어지는 구름다리만 어렴풋이 보여줄뿐 그 이상의 관찰은 허용치 않는다.
이곳은 맑은 날에도 이처럼 안개 끼는 날이 많다.
아마도 동쪽 산 아래 자리한 찬물샘계곡과 그 계곡에서 이어지는 작은 저수지인
'문산지'의 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낮 12시13분
금오산 정상부에 도착했다. 그러나 가장 높은 곳에는 통신시설등으로 인해
통행이 차단되어 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헬기장에서 정상부를 멍하니 바라 볼 뿐이다.





아마도 국내 어느 산 정상부를 가더라도 이처럼 넓은 공간이 마련된 곳은 없으리라.
드넓은 헬기장에서 수많은 산행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점심 식사와 휴식을 즐긴다.





헬기장 주위에는 여러 야생화들이 만발한 상태로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겨울나기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 야생화 이름은 망측스럽게도 "며느리밑씻개"이다.
꽃봉오리가 맺힌 줄기에 작은 가시가 많다.
오래 전 옛날 종이가 없던 시절 일을 본 후 뒷처리를 풀잎으로 하던 그 시절에
며느리를 미워한 심술궂은 시어너미가 며느리에게는 잔 가시가 많은 이 야생화로 뒷처리를 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며느리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었다는 달갑지 않은 유래를 가진 꽃이다.





새끼 손톱 크기 정도의 작은 꽃으로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이질풀'도 지천으로 널려 있다.
많은 양의 타닌과 케르세틴이 들어 있어 소염·지혈·수렴·살균 작용이 있는 이 야생화는
민간에서는 대장 카타르·이질·위궤양·십이지장궤양 등에 약재로 사용하고,
한방에서는 현초(玄草)라고 하며 지사제로 쓴다.





몇 송이 보이지는 않지만 노란색의 원추리도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우리나라를 비롯 동아시아 원산인 이 꽃은
어린순을 나물로 먹고, 중국에서는 꽃을 요리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며
뿌리를 이뇨·지혈·소염제로 쓴다.





낮 12시48분
점심과 휴식을 마친 후 정상부 조금 아래에 자리한 정상석 앞에서 잠시 머문다.
산 정상부와 그 주변을 차지한 각종 시설물로 인해 산행객들을 위한 정상석은 구석에 처 박혀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주한미군 통신시설인 저곳이 곧 철거될 예정이라 한다.
구미시와 주한미군 사이에 업무협의 중이라하니 빠르면 1~2년 내에
우리의 자연이 주권자인 우리 국민들에게 돌아올듯 싶다.





훗날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를 위해
나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정상석 앞을 떠난다.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태양에 산다는 황금까마귀,
즉 "금오(金烏)"가 이 산의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금오산이라 불렀다는 이곳.
정상부 해발 976m봉우리의 이름은 '현월봉(顯月峰)'이다.
휘영청 밝은 달이 걸린 봉우리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낮 12시54분
지형 지물인 거대한 두개의 암반 사이에 만들어진 약사암 일주문을 지나
약사암으로 들어선다.
약사암 일주문 현판의 글귀가 '동국제일문'이다.
이곳 금오산을 오르는 중 금오산을 일컬어 '동양의 알프스'라고 기록한 것을 보았는데,
과장 또는 허세가 좀 지나친듯 싶다.





일주문을 지나 약사암 경내로 이어지는 길은
이처럼 거대한 암반이 양쪽으로 벽을 만든 곳.
마치 천장이 뚫린 동굴을 지나는 느낌이다.





약사암이라는 작은 암자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느낌이 남해 금산의 보리암에 서 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우측의 현월봉을 가운데 두고 마주 바라다 보이는 절벽.
그 절벽 끝에는 여러개의 돌탑, 그리고 돌거북과 돌부처도 만들어져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었으면....
안개 낀 날씨가 무척 원망스럽기조차 하다.





모임지붕 구조의 범종루는 약사암 마당과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저 다리를 건너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쉽게도 통행을 못하게 막아 놓았다.





신라 때 처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이곳 약사암의 주불전은
지난 1985년에 지은 전면 4칸,측면 2칸. 팔작지붕 구조인 이 약사전이다.
내부에는 고려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으로 만든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약사암을 떠나며 조금 전 지나왔던 일주문쪽을 올려다 본다.
천연 요새와 같은 모습이다.
저 위쪽 바위 봉우리의 이름이 약사봉이다.
산 정상의 모습이 초생달을 닮아서 붙여졌다는 현월봉(顯月峰)의 모습도
저 약사봉과 어울린 모습이었을듯 싶다.





오후 1시 12분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했던 헬기장과 비슷한 규모의 또 하나의 헬기장이
정상부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먼저 약사암을 벗어난 후 동행한 일행들을 이곳에서 기다렸으나 서로 어긋나고 말았다.





일행들을 기다리는 동안 예쁘게 핀 참취꽃을 바라보며
향긋하게 입맛을 돋구는 참취나물을 생각한다.
이 야생화의 어린순을 취나물이라 부른다.





평소에도 옅게 드리우기 일쑤인 정상 부근의 안개 때문인지
물가에서 자라는 물봉선이 물기를 촉촉히 머금고 예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이렇게 물봉선이 자라는 것만 보아도 이곳 정상부가 지형적으로
안개가 상존하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오후 1시45분
헬기장에서 일행들을 기다리느라 20여분 이상 지체한 후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평탄한 하산길로 600여m 내려오다 하산길을 벗어나 우측 방향으로 '성안'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걸음을 옮겨 본다.
해발고도 790m 지점의 고산지대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의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안내 간판에 현 위치를 '금오정'이라 표기하고 "우물 정(井)' 표기를 한 것으로 보아
예전 샘터가 있던 곳인듯 싶다. 물이 풍부하니 야생화를 비롯 각종 식물이 무성하다.
야생화 중에서는 흰색으로 화사하게 피어나는 '구릿대' 군락이 유난히 많다.
산골짜기 냇가 등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이 야생화는
어린 잎은 식용하며 한방에서는 뿌리를 말려 만든 생약을 백지라 하여
발한·진정·진통·정혈·감기·두통·통경·치통에 처방한다.





아주 작은 흰꽃이 모여 피는 구릿대에는 벌과 나비가 유난히 많이 모여 든다.
나비를 가까이에서 자세히 관찰해 보면 어여쁘고 여린 날개 끝이 온통 상처 투성이다.
날개 끝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등 몰골이 말이 아니다.

문득 어린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고 입히기 위해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장날이면 장터에서 좌판을 벌여가며 억세게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들의
상처입어 갈라지고 굳은 살 박힌 험한 손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작은 곤충에게서 처절한 생존을 배운다.





조금 전 산행로의 '성안'이란 표지판의 내용은 '성의 안(城內)'라는 의미이다.
드넓은 평원 중앙부에는 이처럼 작은 오두막이 만들어져 길손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간다.
'대피소'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임진왜란 기간 7년 중 후반 4년동안 전략적 요충지로 지대한 역할을 했던
'금오산성'자리가 바로 이곳이다.
한창 때는 이곳에 주둔했던 병력만도 3,500 여명에 달했었다고 전해진다.





이 성안의 해발고도가 790m에 달함에도 맑은 물이 흐른다.
지도상에는 정상부인 현월봉 서쪽 기슭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습지가
길게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수많은 인원이 대피하며 외침을 막기 위한 적지임이 분명하다.





오후 1시56분
성안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하산길로 돌아 나와 몇 걸음 옮기는 중
등산로 옆의 특별한 광경에 걸음을 멈춘다.
크기는 자그마하지만 생김새는 영락없는 고인돌 모습이다.
지도상에 고인돌이라는 표기만 있을뿐 더 이상의 내용은 알 수 없다.
훗날을 위한 숙제로 남겨둔 채 걸음을 이어간다.





고인돌을 지나자 이처럼 운치있는 연못이 나타난다.
아마도 오래 전 성안에 많은 인원이 대피했을 당시 생존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었으리라.
오랜 시일이 지난 지금은 이 연못이 야생동물들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지난 2009년 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등구재 부근에서 본 이와 비슷한 연못에는
'동물들의 오아시스'라는 안내 간판이 붙은걸 본 적이 있다.





오후 2시
금오산 정상에서 900m를 지나온 지점에서 좁은 길목의 '성문터'를 지난다.
성문터를 지나면서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이제 산행이 끝나는 지경리까지는 2.7km가 남았다.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최적의 지형적 조건이 아닌가 싶을정도의 지형이다.

금오산은 옛부터 군사요충지로 한양과 부산을 잇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산이어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군창과 군영이 있었던 굳건한 산성과 산성마을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나 임지왜란 때 군관민이 함께 피난을 했던 금오산성은 금오산 동쪽 계곡을 막은 외성과
정상 아래 너른 분지를 에워싼 내성으로 꾸며 있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가파른 하산길은 이끼 낀 작은 돌로 이루어져 무척 미끄럽다.
더구나 금오산 북쪽 방향인 구미 쪽은 수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으로 들끓는데 반해
남쪽 방향인 이곳 칠곡군 쪽은 인적이 거의 없다.
비록 미끄러운 하산길이지만 인적 없는 적막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곳이다.






오후 2시38분
금오산 정상에서 2km를 내려왔다. 이제 산행 날머리까지는 1.6km가 남았다.
지난 6월부터 이어져온 계곡 산행에서의 습성대로 이처럼 깨끗한 물을 보면
한 모금 들이켜 물맛을 본 후 한바탕 세수로 더위를 씻는다.
그리 차지는 않지만 물맛이 꿀맛이다.





오후 3시1분
날머리까지 1km를 남겨둔 지점. 자그마한 공터에 나무 벤치가 두어개 놓여 있다.
인적이 없어서인지 저 흐르는 물이 더욱 맑아 보인다.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씻고, 등산화를 벗은 후 잠시 찬물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한다.
이 여름의 끝자락을 저 맑은 물 속에 놓아 보내는 심정으로..





나무 벤치가 있던 쉼터를 지나면서부터는 산길이 아닌 편안한 오솔길이다.
길 오른쪽 계곡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는 물소리가 무척 크게 들린다.
기분도 상쾌해진다.





오후 3시9분
인적 드문 하산길에서 처음으로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눴던 노부부와도 헤어진다.
가까운 곳에 사는 저 부부는 이곳 금오산을 여러번 올랐노라고 했었다.
나 자신 매년 비슷한 시기에 한 번씩 어김없이 찾는 곳에서도 그 느낌이
항상 색다름을 잘 알기에 그들과 동류의식을 느낀다.





오후 3시11분
제1폭포인 선녀탕 입구에서 멀리 나무숲 사이로 폭포 물줄기가 희미하게 보인다.
혼자 하는 산행이라면 시간 여유를 두고 저곳까지 천천히 다녀오겠지만,
그러지 못함이 아쉽다.





시간 관계로 그냥 지나친 제1폭포 선녀탕의 2008년 여름 비 내린 다음날 모습이다.





오후 3시14분
제2폭포인 구유소, 제3폭포인 용시소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 부근
오래 전 성을 쌓았던 자리인듯 싶다.
아마도 오래 전 축성했던 해발고도 300m정도를 따르는 외성의 일부분이 아닌가 한다.





오후 3시22분 금오동천 관광지 입구인 지경리에 도착하며 금오산 산행을 마감한다.
시간 제약으로 좀더 세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가는 여름 산행의 의미를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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