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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산수유를 찾아 떠난 남도 봄꽃 여행

 

2015년 3월22일 일요일 오전 10시44분
매년 이맘 때쯤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꽃 소식을 전하는 전남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의 중심부에 자리 한 청매실 농원 입구.
축제 마지막날을 맞아 활짝 핀 매화꽃 향기를 맞으러 나들이 나온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인다.

 

 

 

 

 

수년년 전부터 매년 이맘 때면 마치 연례행사처럼  이곳을 찾는 일이 당연시 되다시피 한 나의 주말여행이지만
오늘처럼 따뜻한 날씨 속에서 만개한 매화 향에 취하는 행운도 흔치는 않은 일이다.
지난주 급작스레 몰아친 꽃샘추위가 조금 게으름을 피운 나에게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청매실농원 입구에는 각종 봄나물과 매화 묘목을 팔고 사는 인파로 붐빈다.
수많은 인파와 차량의 홍수로 인해 휴일 나들이에 대한 짜증을 잠시나마 느꼈던 상춘객들도
한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고 이른 봄철 꽃의 향연을 벌이는 매화 향기에 취해 짜증을 모두 던져 버린다.

설중매(雪中梅)라는 말로 우리 귀에 친숙한 매화.
겨울이 다가기 전 아직 잔설이 난분분한 시절에 피기 시작하는 매화는 우리에게 친숙한 꽃이다.
기원전 1,000년경부터 중국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매화.
이제는 우리에게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꽃이 되었다.

 

 

 

 

 

한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고 이른 봄철 꽃의 향연을 벌이는 매화 향기에 취해 주말의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불리고 난초, 국화, 대나무와 짝을 이루어 사군자라 해서
 귀한 꽃으로 대접 받는 매화에 둘러 싸여 지낸 이곳에서의 기억은 오랫동안 간직될 것이다.

 

 

 

 

 

이곳 매화마을에서도 가장 큰 매화 재배지이자 운치 좋은 곳이 청매실농원이다.
청매실농원은 고(故) 김오천 선생이 1931년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밤나무와 매화나무 묘목을 가지고 들어와
 산자락 45만 평에 이르는 임야에 처음 심었고, 그의 며느리 홍쌍리여사가 대를 이어 매화농사를 짓고 있다.
홍쌍리여사는 매화나무 재배와 매실 식품 상용화에도 힘을 기울여
섬진마을 일원이 오늘날 매화마을로 정착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매실 가공식품류를 숙성,보관하는 수많은 장독의 모습도 이곳의 큰 구경거리 중 하나이다.
청매실농원의 매실식품은 매실 농축액과 원액, 매실청, 된장, 고추장, 장아찌, 절임, 젤리 등이 있는데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농원 앞마당에 빼곡한 2,500여 개의 전통옹기에서 숙성되고 있다.
수년 전까지는 장독의 갯수가 2,500 여개라고 들었는데,
최근 언론 보도에서는 3,000여개라고 한다. 그새 갯수가 늘었는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날씨 때문인지 청매실농원과 섬진강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처인
전망대에 오르는 인파가 줄을 잇는다.
온통 흰 매화꽃 속에 파묻혀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여겨진다.

 

 

 

 

 

전망대에 올라 눈 아래로 청매실농원 주위로 펼쳐지는 흰 매화꽃의 향연과 어우러지는
 섬진강의 쪽빛 물빛을 바라본다.

이곳 청매실농원을 둘러싼 뒷산은 해발 536.5m 인 쫓비산이다.
쫓비산이라는 이름의 유래 중 하나는 산 정상부가 뾰족한 모습인데,
지방사투리인 '쪼삣하다'가 변해서 된 이름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쫓비산에 올라 바라 본 섬진강의 맑고 고운 물 색깔이
쪽빛(남색)을 띠고 있어서 유래한 산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오늘은 중부지방의 황사현상 여파로 이곳 남쪽 지방도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
제대로 된 섬진강의 쪽빛 물빛을 보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쫓비산 자락의 품에 안겨 섬진강을 끼고 자리 한 아늑한 매화마을은 매화꽃에 묻혀있다.
원래 이 마을 이름은 섬진마을이었으나 청매실농원을 중심으로 매화나무가 번창하며
 이제는 마을 이름까지도 매화마을로 바뀌었다.

 

 

 

 

 

최근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드론이 이곳에서도 목격된다.
아마도 지금 이곳에서 개최되는 사진 촬영대회와 관련된 풍경 촬영용 드론이 아닌가 싶다.
주말 사진 여행을 다니는 나 또한 드론을 활용한 사진 촬영에 대해 목하 연구중인데
조만간 나에게 맞는 드론을 구해 활용해야할듯 싶기도 하다.

 

 

 

 

 

꽃말이 "고결한 마음, 인내"인 매화나무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옛날 중국 산동 지방에 '용래'라는 청년의 약혼녀가 약혼식 3일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약혼녀 무덤에서 울던 용래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나무가 한 그루 돋아난다.
용래는 그 나무를 집에 옮겨 심고 약혼녀의 넋으로 여긴 그 나무를 바라보다 일생을 마친다.

 

 

 

 

 

그리고 용래가 늙어 죽어서는 한 마리 새가 되어 그 나무를 떠나지 않았다.
후세에 사람들은 용래의 약혼녀 무덤에서 핀 나무를 '매화나무'라 하였고,
그 매화나무 곁을 떠나지 않고 늘 곁에 가까이 있던 새를 '휘파람새'라 불렀다.

 

 

 

 

 

고결한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매화에는 퇴계 이황 선생에 얽힌 얘기도 전해 온다.
퇴계 선생이 단양 현감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를 몹시 사모하던 한 기생이
 선생께 사랑의 정표로 숱한 선물을 건넸으나 모두 물리치면서도
 매화나무 한 가지만은 선물로 받아 동헌 뜰에 심고 그를 즐기셨다 한다.

 

 

 

 

 

그리고, 도산으로 돌아 가실 때 그 매화나무를 도산서원으로 옯겨 심었는데,
오늘날 도산서원의 매화나무는
 그 기생이 선물한 매화나무의 후손이라는 얘기가 전해진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의 매화꽃은 이미 꽃이 지기 시작한다.
이 아름다운 흰 꽃이 모두 질 무렵이면 꽃샘추위,황사 등으로 심술을 부리던 변덕스런 봄날은
 추운 겨울을 지낸 후 맞은 봄의 기분을 느끼기도 전에 부리나케 물러나며
 더운 여름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게 될게다.
머잖아 떠나갈 봄을 아쉬워하며 한동안 풀밭에 앉아 매화삼매경에 빠져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화와 벚꽃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물론 시기적으로 매화 꽃이 지기 시작하면서 벚꽃이 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쉽게 구분하는 방법 몇 가지는
 우선 매화는 꽃잎 가장자리가 둥글고, 벚꽃은 꽃잎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을 이룬다.
개화 시기를 보면 매화는 2~3월, 벚꽃은 3~4월이다.
  위 사진의 매화꽃을 자세히 보면 꽃잎 가장자리가 매끈한 원형이다.

 

 

 

 

 

(* 이 사진은 2010년 4월10일 마산 무학산 자락에서 찍은 벚꽃 사진이다.)

벚꽃은 위 사진에서처럼 꽃잎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이 있다.
또한 나뭇가지에서 대여섯개의 꽃자루가 길게 나와 꽃을 피운다.
그러나 매화꽃은 가지에 바로 붙어서 하나 또는 두 송이 정도의 꽃을 피울 뿐이다.
따라서 바람에 하늘거리는건 벚꽃이지 매화가 아니다.
또한 향기가 약한 벚꽃에 비해 매화는 향기가 진하게 나는 특징이 있다.

 

 

 

 

 

오전 11시58분
청매실농원을 벗어나 다음 행선지인 구례군 산동면의 산수유 축제장으로 떠날 채비를 하며
섬진강 강변에 앉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옛부터 모래가 고와 다사강(多沙江), 대사강(帶沙강), 사천(沙川) 등으로 불리었으나
 고려시대 왜구의 침입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를 내쫓았다하여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을 써서 섬진강이 되었다 한다.

 

 

 

 

 

오후 2시14분
청매실농원을 떠나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온천관광단지 일원에서
하루 전인 3월21일무터 시작된 산수유축제장으로 향하는 길은 정체가 심하다.
50km 남짓 되는 거리를 2시간 이상 차를 타고 왔지만 주차장까지 2.5km 남짓 남은 지점에서는
거의 움직이지 못한다.
차에서 내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 편을 택한다.

 

 

 

 

 

이곳 지리산온천관광단지 일원의 도로변 가로수는 모두 산수유 나무만 심어 놓았다.
공해에 약하지만 내한성이 강하고 이식력이 좋아
진달래나 개나리, 벚꽃보다 먼저 개화하는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꽃은
시원한 느낌을 주는 수형과 아름다운 열매로 조경수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
20~30개의 작은 꽃들이 뭉쳐 퍼지며 핀다.

 

 

 

 

 

농촌 일손 부족 현상 때문인지 수확을 못하고 해를 넘겨 말라 버린 산수유 열매가 안쓰럽다.
산수유 열매는 8월부터 녹색의 핵과가 형성되어 10월이면 진한 붉은색으로 익은 아름다운 산수유 열매를 볼 수 있다.
10월 중순의 상강(霜降) 이후 서리가 내린 다음에 수확하는데
 육질과 씨앗을 분리하여 육질은 술과 차 및 한약의 재료로 사용한다.
씨에는 렉틴(Lectins)이 들어 있어 인체에 유해하므로 반드시 씨를 제거토록 해야 한다.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과 함께 비교적 일반에게 잘 알려진 한약 중 하나인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에 산수유를 비롯한 여섯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오후 3시2분
대형 주차장을 지나 계속 걸어온 거리가 4km 남짓 되는 지점에서
인파로 북적이는 축제장 부근을 벗어나 반대쪽인 북쪽 반곡마을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반곡마을은 마을 전체가 샛노란 산수유꽃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마을이다.

 

 

 

 

 

한국, 중국이 원산지인 산수유나무는 특히 토심이 깊고 비옥한 곳에서 잘 성장하고
 햇볕을 좋아하나 음지에서도 개화 결실하며
 각종 공해에는 약한 편이나 내한성이 강하고 이식력이 좋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기지역인 이천시 백사면에서도 재배하지만 주로 남부의 산지에서 자생한다.
  우리 나라 산수유(열매) 생산량의 60%가 이 부근인 전남 구례군에서 생산된다.

 

 

 

 

 

산수유가 이곳 구례군 산동면의 지방특산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200년 전쯤이었다고 한다.
지리산 험한 준봉에 둘러싸여 있어 논이 적고 밭이 척박하였기에
 산수유 나무를 곳곳에 심어 생계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그 덕분에 요즈음은 산수유 꽃 하나만으로 전국 각지의 행락객들을 불러모으는
 효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이다.

 

 

 

 

 

산수유마을로 불리우는 구례군 산동면은 우리나라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다.
지리산 자락의 상위마을, 하위마을, 월계마을, 반곡마을, 대평마을, 상관마을을 비롯해 계척마을, 현천마을 등.
1000여년 전 중국 산동(山洞)에서 시집온 처녀가 산수유나무를 가져다 심으면서
 마을 이름이 산동으로 바뀐 이곳은
 여순사태 당시 지리산 공비잔당 토벌로 숱한 민간학살이 행해진 비극의 역사 현장이다.

 

 

 

 

 

매년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에 걸쳐 우리 나라에서 산수유 꽃 축제를 개최하는 곳은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경북 의성군 사곡면 등이 있으나
 올해로 제16회 째를 맞는 이곳 구례 산동면의 산수유 꽃 축제에 비하면
 다른 지역의 경우 역사나 그 규모가 이곳에 미치지 못한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북쪽 2km 남짓 거리의 상위 마을에 들러 그곳의
 산유정이라는 이름의 정자에 올라 샛노랗게 물든 아담한 산수유마을과 지리산 만복대에서 부터
 뻗어 내린 산 자락에 터를 잡은 다랭이논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
그 옆으로 나란히 선 대숲 등이 뒤엉킨 한 폭의 산수화를 보고자 했으나,
시간 제약으로 그러지 못하는 대신 이곳 반곡마을 물가에서 봄을 즐긴다.

 

 

 

 

 

산수유 그늘 아래 큰 암반 사이를 흐르는 얼음 녹은 물.
아직은 뼈가 시릴 정도로 차디찬 물이지만 조그맣게 소리를 내며 흐르는 맑은 물에
 샛노란 산수유꽃이 비친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축제장 부근 대로변에서 10분 이상 걸어 올라온 이곳 반곡마을.
그 덕분에 인적이 얼마 없는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다.
햇빛 잘 드는 큰 암반 위에 편하게 앉아 봄을 즐긴다.
지금 이 순간만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러울 이 없다.

 

 

 

 

 

지리산 만복대 남동쪽의 위안리 비리바위골 부근에서 시작되어 흐르는 작은 물줄기는
 상위마을에서 시작된 또 다른 물줄기와 합쳐 서시천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
 계속 남서쪽으로 흘러내린다.
그리고 머잖아 구례읍을 지나면서 섬진강 품속으로 스며든다.

 

 

 

 

 

반곡마을을 떠나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되돌아가는 길.
큰 도로변에 위치한 원좌마을 산수유문화관 뒤편 동산에는
산수유사랑공원이란 이름이 붙은 자그마한 공원이 있다.
노란색 산수유 조형물, 그리고 아담한 정자가 있는 곳.
정자에 오른 많은 관광객들은 사방으로 눈을 돌려도 온통 샛노란 산수유로 뒤덮인 황홀경에 취해
자리를 뜰줄 모른다.

 

 

 

 

 

오후 4시6분
산수유축제장을 벗어나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이곳에 온천이 있음을 알리듯 자그마한 온천수 족욕장이 마련되어 있다.
평일날 매일 출근하는 사무실이 있는 유성. 유성온천지궁에도 족욕장이 있어 익숙한 편인지라
하루 종일 힘들어했을 내  두발을 온천수에 잠시 담궈본다.

희망, 여유로움, 따스함을 준다는 노란색.
그로 인해 피로가 조금은 회복되었으리라 자위하며 산수유축제장을 떠나 귀가길에 오른다.
 머릿 속으로는 곽재구 시인의 "산수유 꽃 필 무렵"이라는 싯귀를 다시 떠올려 본다.
 

--산수유 꽃 필 무렵--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길은 삼십 리
 
그리워서
 눈 감으면
 
산수유 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