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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을 마치고 죽음으로 이르는 길


수채라는 이름의 유충으로 물속에서 아가미로 호흡하며 작은 동물들을 먹고 사는 잠자리의 유충은 물 속에서 1년 또는 수년을 살며 10~15회의 탈바꿈 끝에 잠자리로 태어나지만 막상 잠자리로 살아가는 기간은 1개월~6개월입니다. 암컷 잠자리가 이제 수컷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름까지는 암수 구분이 되지 않던 고추잠자리가 9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수컷의 경우 진한 빨간색으로 수컷의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고추잠자리라는 이름이 붙은 모양입니다. 수컷의 성징이 강해질수록 색깔은 점점 진해집니다.


드디어 고추잠자리 암수가 만나 신방을 차렸습니다. 짧은 생애의 유일한 목표인 종족 번식을 위한 엄숙한 행사가 이루어지는겁니다.


꿀맛같은 신방에서의 합방을 끝낸 잠자리 부부의 결혼 자축 비행입니다. 알을 낳기 좋은 장소를 찾아 물위를 비행합니다. 좋은 장소의 선택은 자손 번창의 최대 관건이지요.


알 낳기 좋은 장소를 선택하면 암컷은 꼬리 부분을 물에 담군 상태로 알을 낳습니다. 저공비행을 하며 수분간에 걸쳐 수초 근처에 몸속의 알을 전부 낳습니다. 낳은 알들은 물속에서 부화해 아가미로 호흡하며 물속의 작은 동물들을 먹이로 1년에서 길게는 몇년간 수채라는 이름의 유충으로 생활해 나갑니다. 알을 다 낳은 잠자리 부부는 따로 떨어진 후 잠자리라는 명칭으로 살아온 1개월~6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잡자리만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꽃도 짧은 생을 이렇게 마감하며 점차 시들고 씨를 남겨 종족을 보존하게됩니다. 짧지만 보람있는 생을 마치고 서서히 죽음으로 이르게됩니다.


잠자리의 신방 가까운 곳에서 배설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메뚜기, 이들도 배설과정에서 우리 인간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 이 메뚜기도 머잖아 종족 번식을 위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죽음의 길을 가게되겠지요.


곤충과 꽃의 짧은 생을 생각하던 나의 발길은 어느새 가까운 화장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화장장으로 가는 길목 빈터에 낙엽과 어울려 나뒹구는 버려진 폐차의 모습이 쓸쓸한 가을 아침의 을씨년스러움을 더해줍니다.


화장장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초입의 물가에 홀로 선 두루미의 모습에서도 죽을으로 이르는 쓸쓸한 느낌이 묻어납니다. 수많은 장의차의 오르내림을 기억하는 두루미도 자신의 장래에 어김없이 찾아올 죽음에 대한 채비를 하고 있는듯이 보이는건 쓸쓸한 가을 아침에 내 마음이 가라앉은 탓일지도 모릅니다.


화장장으로 올라가는 길 옆의 작은 계곡에 흐르는 물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집니다. 그 차갑고 숙연한 느낌 때문인지 무거운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장시간 노출을 준 사진이지만 흔들리지 않은 것 같군요. 인적 없는 아침 숲속의 으시시함이 내 마음속에까지 스며든 탓일지도 모릅니다.


화장장 정문 앞에 핀 이름 모르꽃에서도 차갑고 무거운 기운만 느껴집니다. 밤새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채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는 20대 초반쯤의 젊은 여인을 처음 본 순간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건만 ....


그날 낮. 무겁게 드리운 구름 사이로 내리 비치는 햇살이 그나마 내 마음을 조금은 밝게 만들어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