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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마지막날 한낮 산책길


며칠간 중요한 문제를 처리하는라 점심시간에도 짬을 내기가 힘들어 사무실에만 붙어있다보니
스스로 나태해지는 느낌이 들기에 조금 늦은 점심 식사후 지난 여름 이후 거의 매일 다니던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지난 여름 푸르름 속에서 벌과 나비를 만나며 걷던 이 길도 이제는 스산한 초겨울 바람과 함께 생기를 잃어갑니다.


여름동안 푸르름을 뽐내던 나뭇잎과 온갖 풀들도 모두 그 빛을 잃은 채이지만 그나마 띄엄 띄엄 무리지어 모여 있는 갈대 군락만이 싸늘한 초겨울 바람을 막아 줍니다.


화려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희색의 갈대 꽃이지만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또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이 거의 말라 바닥히 훤히 보이는 천변에서 먹이를 찾는 왜가리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외로워 보임은 나 자신의 지나치게 주관적인 느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지만 서로 웃으며 가벼운 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것. 그건 바로 자연을 가까이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겠지요. 멀어져가는 뒷모습이 정겨워 보입니다.


초겨울 한낮 도심지 한복판을 지나는 작은 천변 풍경은 마치 조용한 시골에 와 있는듯한 아늑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자고 초라한 개천이지만 겨울 햇살을 받으며 서있는 백조의 자태는 계절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항상 우아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우아함이 비록 챠이코프스키라는 만난적도 없는 한 러시아인 때문일지라도 말입니다.


서로 종족은 다르지만 새들은 이렇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건만 왜 우리 인간들은 그러지를 못할까요? 멀리 중동지방이나, 아프리카는 그렇다치고, 22만 평방키로미터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조차 날만 새면, 아니 날밤을 새워가며 헐뜯는 모양새를 보면 안타깝기만합니다. 어서 빨리 19일간의 못돼먹은 여정이 끝나버렸으면 는 바램뿐입니다.


지난 여름과 가을을 지나는 동안 점심 시간이면 심심치 않게 지나다니던 인근 사람들의 발길도 뜸한 징검다리.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깊어지면 실낱같은 저 물줄기도 얼어붙어 흐름을 멈출 때도 있겠지요.


지난해 새로 쌓아 올린 석축과 돌계단이 여름철 뜨거운 태양열과 가을철 시원한 바람을 이겨내며 이제는 제법 운치있는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이곳을 지금처럼 깨끗하고 정감있는 곳으로 계속 유지시킬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 같습니다.


따뜻한 햇볕을 쬐며 물가에서 모이를 쪼던 비둘기 떼들이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라 집단으로 군무를 시작합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바퀴,두바퀴 ..자꾸 맴을 돕니다.


갑작스런 비둘기 떼의 집단 군무에 초겨울 쌀쌀한 날씨 속에서 발걸음을 재촉하던 길손들도 흔히 접하기 어려운 장관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구경하는 모습도 보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