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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2)

도시 탈출을 꿈꾸는 내 마음을 아는듯 잠시 후 헤드라이트를 밝힌 열차가 역 구내로 진입하며 조금 속도를 늦추는듯했습니다.

그러나, 열차가 속도를 늦춘건 역구내인데다 심한 커브길이었을 뿐이라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휴일을 맞아 승객을 가득 태운 열차는 초라한 간이역을 무심코 지나쳐 멀어져갑니다.

흑석리역을 떠나 다시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렇게 휴일날은 차를 놔두고 버스를 이용하는 가벼운 여행의 재미도 솔솔하더군요.
약 5분남짓 후 가수원역 앞에서 버스를 내렸습니다. 호남선 하행선의 첫번째 역인 가수원역도 역시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조용했습니다.

이곳 가수원역은 하루에 기차가 두번 쉽니다. 상,하행이 각 1회씩 쉬니까 흑석리역보다 정차 횟수가 적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가수원역을 간이역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수원역은 역무원이 9명인 보통역이라고합니다.
기차가 서는 횟수는 하루 두번(상,하행 각 1회)이지만 대전광역시 외곽에서 연료공급을 담당하는 화물역으로서 역할이 중요하다는군요.

역 구내 플랫폼에서 바라본 흑석리 쪽 모습입니다.
가수원역(佳水院驛)이라는 이름은 가수원동에 있기에 지은 것이며, 가수원이라는 이름은
옛날 공적인 업무를 띠고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등 공무여행자에게 숙식편의를
제공하던 공공여관인 원(院)이, 냇물이 아름다운 곳에 있다하여 가수원(佳水院)이라 했다.
1912.2.20 역원배치간이역으로 영업개시한 이래 1937.2.16 보통역으로 승격했으며,
1976.6.23 역사신축착공하고 불과 석달 후인 1976.9.20 역사신축준공헸으나
1977.3.8 호남선 복선공사 준공에 따라 역사를 이전했습니다.

비록 승객 숫자는 적을지언정 고객에 대한 서비스 준비는 충실한 것 같습니다.
소파, 그리고 겨울철 추위를 대비한 난로와 수십권의 책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가수원역 옆의 육교 위에 올라서니 역 뒤편을 흐르는 갑천 너머 멀리로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가 보입니다.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온지 14년이지만 가수원역에 온 것도 처음이고, 이곳 육교에서 내가 사는 아파트를 보는 것도 처음입니다.
그래서, 14년만에 처음으로 갑천을 걸어서 건너 집으로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갑천을 가로지르는 얕은 다리를 건너며 청둥오리의 비상을 목격했습니다.
거의 물 위를 낮게 나르는 청둥오리가 이렇게 높이 나는건 처음 보는일입니다.

갑천 다리를 건너기 전 바라본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의 모습을 보니,
내가 사는 곳의 자연환경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가 가장자리로 얇은 살얼음이 언 차가운 갑천에는 겨울 철새인 청둥오리의 낙원이었습니다.
청둥오리가 이렇게 많이 산다는 것은 흐르는 물이 비교적 깨끗하다는걸 나타내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