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동에 14년 째 살면서도 우리나라 최초의 단군사당이 가까이 있다는걸 모르고 지낸 나의 무지를 탓하며 2007년 12월 23일 낮 대전 서구 정림동 52번지 매봉산 아래에 위치한 단군사당을 찾았다.
정향 조병호 선생이 1993년 민족의 얼을 드높이는 교육을 위하여 단군사당을 대전대학교에 기증하였고, 대전대학교는 선생의 뜻에 따라 민족사 고취를 위한 현장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단제의 기일(忌日)인 음력3월15일에 어천제(御天祭)를 봉행하고
우리나라의 개국일인 음력 10월 3일에는 개천제(開天祭)를 봉행하고 있다.
단군사당으로 통하는 첫번째 문인 만덕문(萬德門)이다. 전국 각지에 있는 성전마다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2개의 문을 통해야 본당으로 들 수 있는 형식은 유사하다고 한다. 문 입구 양쪽에는 단군사당을 지키는 용두가 형상화되어 있다.
단군사당 좌측에 별채로 지어진 정림장(靜林莊)은 관리인이 거주하는 곳이다.
만덕문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단정(檀井)이라 이름한 우물이 자리하고 있다. 아마 제를 올리기 전 이곳 단정에서 맑고 깨끗한 정안수를 떠 올리기 위한 정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단정이 있는 마당을 지나 돌계단 위에 자리 잡은 두 번 째 문을 지나야 단묘에 도달할 수 있다.
단군사당은 1958년 정향(靜香) 조병호(趙柄鎬) 선생이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 남선리 석가골(신도안, 현재의 논산시 두마면)에 처음 건립하였다.
그후 1984년 그곳에 군사시설이 들어섬에 따라 정림동 52번지 매봉산 아래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있다.
단군사당에는 단제(檀帝/檀君)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사당 뒤편으로는 삼신(三神 : 桓因, 桓雄, 桓儉)의 석상이 봉안되어 있다.
사당 뒤로 돌아가 보니 환인, 환웅, 단군의 석상이 자리하고 있다.비석에는...
일대주신환인지위 (一大主伸桓因之位), 그리고 신시씨 환웅왕지위 (神市氏桓雄王之位)라고 씌어 있다.
근래 들어 일부 몰지각한 사이비 기독교인들이 전국 각지의 단군상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져 뜻있는 이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이러한 단군사당이 "대종교( 大倧敎 )"란은 종교단체와 관련이 있음을 기화로 '우상숭배'라는 말과 연관시켜 해석하려는듯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 대다수의 문화재가 불교의 사찰과 관련 있음을 비추어 볼 때 단군상 훼손은 한마디로 범죄행위임이 명백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종교는 단군(檀君)을 교조로 하여 민족 고유의 하느님을 신앙하는 종교임은 부인하지 않겠다.
1909년 나철(羅喆)이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 이후 700년간 단절되었던 국조 단군을 숭앙하는 단군교를 창시한 것이 시작이다.
그 후 일제는 1915년 10월 총독부령 제83호 '종교통제안'을 만들어 대종교를 종교단체로 가장한 항일독립운동단체라고 불법화시켜 버렸다.
나찰의 사망 후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교통계승을 사양한 서일(徐一)은 김좌진 등과 중광단(重光團)이라는 대종교 교도 중심의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고,
3·1운동 직후에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暑)라는 독립군 부대를 편성해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 주위에서는 간혹 단군신화에서 얘기하는 곰과 호랑이의 마늘 먹기, 그리고 곰이 인간으로의 환생한 웅녀와의 혼인 등을 비웃으며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에서 말하는 곰과 호랑이가 단군이 단군조선을 건국한 시기인 신석기시대에서 금속기시대로의 전이 시기에는
부족이 집단을 이루고 살았던 시기이며, 그 시기에는 부복의 이름으로 맹수의 이름을 붙인 경우가 잇음을 왜 모르는지?
즉, 주위에 이웃한 부족중 호족(虎:호랑이 族), 웅족(熊:곰 族) 집안 처녀들과 혼담이 오가다 웅족(熊族) 집안 처녀와 혼인을 한 것이다.
또한 신석기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토기를 사용하고, 정착생활을 하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게 된다.
일종의 촌락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인간생활에 이렇게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에 이를 신석기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원 전 8000년경에 세계 최초로 중동지방에서 신석기혁명이 나타나게 되고, 이후 이러한 변화는 세계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기원 전 3000년 에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 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
인더스 강 유역의 인도 문명 , 황허 강 유역의 중국을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기원전 2333년의 단군조선은 부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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