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일요일 오전 10시 1분.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로 애절하게 시작되는 송창식의 노래 때문에라도 선운사를 한 번 가겠다는 생각만으로
지난 가을과 동백꽃이 피는 겨울을 그냥 흘려 보낸 후 인적 드문 여름비 오는 날의 선운사를 향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선운사 입구 주차장에 주차한 후 나무향을 맡으며 걷기 시작할 때부터
내 기대대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전 10시 32분.
장마철인데다 서해쪽으로 접근하는 태풍의 간접영향까지 더해져서인지 생각보다 심한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일주문을 지나 계곡 옆 길을 따라 걷는동안 작은 건물 처마 밑에서 쉬어 가기를 몇 차례.
10분 이내면 될 거리를 30여분이상 걸려 천왕문 앞에 도착했을 때도 비는 세차게 내린다.
황토를 바른 돌담과 멀리 도솔산 자락에 짙게 낀 안개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천왕문 처마 밑에서 굵은 빗줄기 속에 자리잡은 선운사 경내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은 더욱 차분해 진다.
석탑을 앞에 두고 자리 잡은 만세루에 가려 보이지 않는 대웅전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이곳 선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의 본사이며
《선운사사적기(禪雲寺寺蹟記)》에 따르면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하였으며,
그후 폐사가 되어 1기(基)의 석탑만 남아 있던 것을 1354년(공민왕 3)에 효정선사(孝正禪師)가 중수하였다.
1472년(조선 성종 3) 부터 10여 년 간 극유(克乳)가 성종의 숙부 덕원군(德源君)의 후원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는데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본당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창건 당시는 89개의 암자와 189채의 건물, 그리고 수도를 위한 24개소의 굴이 있던 대가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전 10시 50분.
세차게 퍼붓던 빗줄기가 가늘어지며 언제 비가 내렸나 싶게 하늘의 구름이 걷히며 파란 하늘이 상쾌함을 안겨 준다.
파란 하늘을 보고 놀랜듯이 산허리를 휘감았던 두터운 안개들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처마밑에서 세찬 빗줄기를 피하던 행락객들도 하나둘씩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웅전에서는 오늘 법회가 열리는 관계로 수많은 스님들이 운집해 있다.
1963년 보물 제290호 로 지정된 이곳 선운사 대웅전은 신라 진흥왕 때 세운 것으로 전한다.
지금 있는 이 건물은 조선 성종 3년(1472)에 다시 지은 것이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 광해군 5년(16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만든 기둥위의 장식구조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옆면에는 높은 기둥 두 개를 세워 간단히 처리하였다.
전체적으로 기둥 옆면 사이의 간격이 넓고 건물의 앞뒤 너비는 좁아 옆으로 길면서도 안정된 외형을 지니고 있다.
법회에 참석한 스님들의 신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다.
고무신이 절반 쯤 되지만 캐주얼 구두, 장화, 나X키 운동화 등 다양한 모습이다.
물론 대웅전 옆 마당을 가득 채운 스님들이 타고 온 차량들도 대형 SUV차량에서부터 대형 승용차,중형 승용차가 주종이다.
요즘 국내 서민 경기가 최악의 상태라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불경기를 체감할 수 없는게 조금 아쉬눈 대목으로 여겨진다.
관음전 옆에서 바라본 이곳 선운사 경내의 모습은 너무나 안정감 있게 느껴진다.
전북유형문화재 제29호인 육층석탑을 앞에 둔 대웅전의 맞은 편에 만세루가 자리 잡고 있으며
대웅전 우측에 나란히 자리한 영산전, 그리고 영산전과 대각을 이루며 자리한 명부전
그리고 그 뒤의 야산 자락에 걸린 옅은 안개. 모든게 너무나 잘 조화된 정제된 아름다움을 느낀다.
오전 11시 12분.
선운사 경내의 각 전각의 배치가 너무 조화롭고 아름다워 넋을 잃고 오랫동안 그 분위기에 심취할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다. 아마도 비 내리는 날 선운사를 찾은 덕분이 아닐까 한다.
아무리 조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이라도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소란스럽게 오가는 곳이라면 아마도
그런 편안한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이 없으리라.
명부전과 영산전을 품에 안은 산 허리의 엷은 안개의 신비로움을 느끼며 이제 선운사 경내를 벗어난다.
천왕문을 나서 일주문으로 향하는 길의 옆으로는 맑은 물이 조용히 흐른다.
울창한 숲 그늘속에서 줄기에 이끼 낀 고목은 시원한 느낌을 더해준다.
잠시 비가 그친 수면 위로 엷은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세찬 비가 내린 후의 공기가 여름 날씨 답지 않게 상쾌하다.
산 속 맑은 공기를 피부로 느끼며 동시에 눈으로는 조용히 흘러 내리는 맑은 물을 벗 삼아 걷는 숲길 산책.
아마 신선들도 이 보다 더 상쾌한 기분은 느끼지 못하리라.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와 쉬새없이 들리는 매미 소리에 취해 물가 벤치에 앉아 아침 일찍 집을 나선 후 처음으로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논어(論語)》의 한 대목인 요산요수[樂山樂水]가 머리 속으로 떠 오른다.
《논어》의 〈옹야(雍也)〉에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라는 구절이 있다.
오전 11시 53분
불과 두 시간 여전에는 장대같이 퍼붓는 빗속을 걸어 지났던 일주문 앞에 당도하니 하늘색이 마치 가을 하늘을 연상하게 한다.
사찰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일주문(一柱門)을 지나며 부처님을 향한 진리는 하나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새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마호메트 등 성인들의 가르침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과 진배 없음을 느낀다.
낮 12시 4분
입구 주차장에 거의 도착한 시점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여름 비는 소 잔등을 가른다"는 우리 옛 속담이 생각난다.
여름 소나기는 매우 국지성이 강하므로 소의 잔등도 비 맞는 부분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정도라는 뜻이다.
속담이야 어찌됐든 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비 내리는 풍경 또한 느낌이 나쁘지는 않다.
몇몇 커플들이 디카로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을 피해 비 내리는 연못을 한장 담고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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