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비금도(飛禽島) : 새의 날개짓을 닮은 섬



2009년 4월12일(일) 오전 6시39분.
새벽3시 대전을 출발 "산사랑2002(http://cafe.daum.net/sansarang2002)"회원들과 함께 새벽을
달려 목포항에 도착한 때가 좀 못된 시간 .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을 추스르기를 40여분.

1397년(태조 6년) 목포진을 설치하고, 1439년(세종 21년)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어
연안의 12개 도서를 관리한 역사를 지닌 1897년 개항한 목포항을 떠날 채비를 한다.



오전 7시 43분.
비금도행 카페리에 몸을 실은 지 40분 이상 지났지만
바다 위에 짙게 깔린 아침 안개는 좀처럼 걷힐 줄을 모른다.

유인도 72개, 무인도 932개. 총 1004개의 섬으로만 이루어진 전라남도 신안군.
그래서 "천사의 섬"이라는 캐치프레이즈 [catchphrase] 로 관광객 유치에
매진하는 신안군의 진면목인 아름다운 섬 들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이어진다.



오전 8시 17분
출항한지 한 시간 이상되어 승객들이 지루함을 느낄 즈음 카페리호가 부두에 정박을 위해
속도를 줄이자 성미 급한 일부 승객들은 비금도에 도착한줄 알고 배낭을 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은 안좌도이다. 비금도까지는 아직 한 시간 이상을 더 가야한다.

마늘,복분자,함초가 많이 생산되며
게르마늄과 미네랄이 다량 함유된 "섬마을 웰빙쌀"로 잘 알려진 안좌도이다.
본래는 안창도와 기좌도 두 섬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연륙되어
두 섬의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서 안좌도로 부르게 되었다.
우리의 목적지인 비금도와 도초도를 잇는 연도교인 '서남문대교' 와 모양이 흡사한
저 다리는 안좌도와 그 북쪽의 팔금도를 잇는 연도교인 '안좌팔금연도교'이다.



오전8시 52분
안좌도와 팔금도를 지나 비금도에 가까워지면서 짙은 해무가 걷혀간다.
우리나라의 8,000여개 섬 중 1/8에 상당하는 1,004 개의 섬이 몰려 있는
신안군 다도해의 비경이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극심한 조수간만차이로 인해 갯벌의 흙빛이 섞여 누렇게 보인다하여
황해로도 불리는 서해 바다이지만 서해 바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바다 색깔도 비교적 쪽빛에 가까워 진다.



오전 9시 21분.
비금도의 선착장 중 하나인 가산 선착장에 십여명의 승객을 내려 놓은 후
서쪽으로 계속 나가는 뱃전에서 바라보니 오늘 산행 예정지 중 하나인 그림산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아직 도착까지 20여분 남았지만 승객들의 몸놀림이 바빠진다.
우리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기질이 한동안 외국인들의 비판에 직면한 일도 있지만
급변하는 현대인의 삶과는 코드가 맞는 면도 적잖은 것 같다.

일례로 미국계 경제 전문 통신사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Pesec)은 4월13일자 칼럼에서
예상외로 빠른 한국 경기 회복 조짐에 대해
"보다 안정된 세계 경제의 전령사(a harbinger of a more stable world economy)"라고 평가했다.



오전 9시 36분.
비금도의 또 하나의 선착장인 수대선착장에 도착했다.
서남문대교 건너편에 보이는 섬은 초목이 무성하여 도초(島草)라는 이름을 얻게된 섬인 도초도이다.

도초도는 지주들의 수탈에 항거해 1925년 10월7일 농민들이 도초도 소작쟁의를 일으켜
34일간 투쟁한 역사적인 섬이다.
도초도는 또 1801년(순조 1년) 신유사옥(辛酉邪獄:천주교 박해사건)때
정약전(다산 정약용의 둘 째 형으로 자산어보의 저자)의 귀양지이며
또한 1873년 고종에게 대원군에 대한 상소를 올렸던 최익현선생이 귀양살이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오전 9시 53분.
선착장에서 20여분 거리인 등산로 입구까지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는 동안 잔등에 땀이 솟기 시작한다.
갯벌을 막아 농토로 만든 간척지에는 하얀 소금기가 가득하다.

길가의 유채꽃과 눈 앞에 보이는 그림산의 남쪽 능선을 바라보며 기운을 얻은 다리에 힘이 주어 진다.



오전 10시 25분.
본격적 산행을 시작한지 30여분. 많은 이들이 얼굴에 흘러 내리는 땀을 닦기 시작한다.
아마도 섬 산행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들은 해발 200여 미터에 불과한 산이 뭐가 힘드냐는
무지한 입놀림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육지의 산들에 비해 섬에 있는 산들은 바위가 많고 경사가 급한 악산이 많다.
육지의 산에 비해 몇배 더 힘이 들다. 그러나 힘이 든 만큼 역으로 사방에 펼쳐지는 풍광은 장관을 이룬다.



“산세가 그림처럼 아름답다”하여 이름 붙여진 해발 226m 그림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남쪽 경관이다.
바둑판처럼 펼쳐진 염전과 물빠진 갯벌, 그리고 멀리 다도해의 섬들도 보인다.

우리나라 전체의 염전면적은 4,648 ha로 신안군의 염전 면적은 전체의 52%에 육박하는 2,406 ha이다.
또한 비금도 염전면적은 427ha(약 1,300,000평)로 우리나라 전체의 약 9%에 달하는 면적이다.

참고로 현재 국내의 연간 소금 사용량은 약2,900,000톤(식용555,000톤 공업용2,350,000톤)으로
국내생산 296,000톤 수입약 2,600,000톤이며 수입량 중 최대는 호주산으로 약 1,300,000톤에 달한다.



그림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지나야하는 한반도 형상을 닮은 바위이다.
한반도와 비슷한 모양인 것을 오래 전 동네의 뜻있는 분들이 조금 더 다듬어 놓은 것이라 한다.

산행을 위해 밟고 지나가야 하는 곳이지만 과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잔존한 우리의
아픈 현실에 대해 생각하며 고민하는 마음으로 지나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림산에서 남동쪽으로 내려다 보면 염전 외에도 마을과 가까운 곳 간척지에 곰초라 불리는 시금치 재배가 활발하다.
비금도에 시금치가 들어온 것은 1958년경 비금면 죽림리 최남산씨가 재배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서부 일원에서 주로 재배하였으나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섬 전역으로 재배지역이 확대되었다.
해풍 등 기후여건이 적합하며 개펄의 흙으로 객토한 조건이 시금치 재배에 알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금도 시금치는 전국 생산량의 30 - 40% 를 차지 한다.



그림산에서 비금도 최고봉인 선왕산으로 가는 안부(산의 능선이 낮아져 말안장처럼 잘록하게 들어간 부분)
능선을 따라 가는길에는 '죽치우실'도 지나게 된다.

'우실'이란 다도해의 생활문화가 담긴 돌담을 일컫는다.
남향에 위치한 마을의 뒤편에서 산을 타고 내려온 골바람을 막아 물질적으로 농작물을 보호하기도 하고,
온갖 재액과 역신을 막는 정신적 역할도 담당한다.
따라서 '죽치우실'이란 '죽치'마을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 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낮 12시 47분
해발 256m선왕산 정상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좌측으로 우세도, 원평해수욕장,
그리고 3기의 풍력발전기가 우뚝 서 있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이 보인다.

선왕산(仙王山)이라는 산 이름은 고운 최치원선생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얘기인즉슨
고운 최치원이 12세때 당나라로 가면서 식수가 떨어져 비금도에 들렀다 한다.
그리고 주민들의 청에 의해 가뭄 해소를 위해 최치원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낸 후 비가 쏟아진다.
이로 인해 산 이름이 선왕(仙王)이 되었다. 선왕이란 신선중에서도 왕신선을 뜻하는 말이다.



선왕산을 떠나 하산을 시작하며 뒤돌아보니 선왕산 정상 좌측으로 보이는 그림산이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다.

이곳이 강이 아닌 바닷가 임에도 그림같은 산세를 보니 추구집 중의 몇 귀절이
생뚱맞게도 머리에 떠 오른다. 어쨌거나 강이든 바다이든 다 같은 물의 자식들인 것을..


高山白雲起 높은 산에는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南原芳草綠 남쪽 언덕에는 향기로운 풀들이 푸르도다.
長嘯依風磴 긴 휘파람 불며 돌다리 바람 끝에 기대어 서니,
山靑江自流 산은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도다.



오후 1시 1분.
내촌마을 쪽으로 하산하는 길. 산행 종료 시점에서 하누넘해수욕장이 비교적 또렷이 보인다.
하누넘이란 바다에 서면 "하늘과 넘실대는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름이 붙은 이곳.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라 한다.

바보 제조기이며 치매환자의 비율이 여자가 남자보다 높은건 오로지 바보제조기인
TV드라마를 우리 여인네들이 많이 보기 때문이라는 주관적 생각으로 똘똘 뭉친 나 자신.
하누넘해수욕장을 하트해변으로 바꿔 부르는 세태를 보며 TV드라마의 완전 폐지 내지는
과감한 축소를 다시 한번 염원한다.



오후 3시 54분.
오후 2시경 처음 도착한 수대선착장에 도착하여 30여명의 산사랑2002 회원들과
간재미 회와 곁들인 소주 몇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푼 후에 3시 40분경 목포로 돌아가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자그마한 비금도에 6시간을 머문 탓인지 서남문대교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서남문대교는 우리나라 서남단(흑산도, 홍도)에서 들어오는 관문의 교량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비금도와 도초도를 연결하는 연도교로서 연장 937m로 1996년 8월 29일 준공하였다.

두달 일찍 찾아온 이상기후로 인해 도시민들은 무더위를 느낄 시간이지만 바닷바람이
너무나 상쾌하게 뺨을 간지른다.
선미 난간에서 정담을 나누는 저 여인네들의 마음속에도 오늘의 비금도 산행이 오랫동안
망막에 각인되고 가슴 한곳에 자리 잡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치 내가 그러하듯이..



오후 5시
출항한지 1시간 20분이 경과되어 내가 탄 배가 안좌팔금연도교 부근을 지날 무렵
2시간 반 이상에서 3시간 가까이 걸리는 내가 탄 배에 비해 3배 정도 빠른 50분에
목포-비금도간을 오가는 쾌속선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러나, 갑판에 나오지도 못한채 객실에 갇혀서 가야하는 저 쾌속선을 탄다면
바닷바람과 함께 다도해의 비경을 몸으로 느끼는 참된 여행이 어려우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항상 바쁜 일상을 보내는 "빨리빨리"의 선두주자인 우리나라 국민들도 휴일 하루만은
느림의 미학을 실천에 옮겨 봤으면 좋겠다.
작년 가을 전남 담양 창평면에서 '슬로시티축제'에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느림의 미학은 그것만이 아니다. 경주에서 토끼를 이긴 거북이를 비롯하여
최근 각광을 받는 슬로우푸드,태극권, 걷기 운동,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 등등..



오후 6시20분.
목포항 내해에 들어서자 유달산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이제 10여분 후면 오늘의 일정이 끝난다.
피곤한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니 소금기가 얼굴 하나 가득하다.

1907년 인천 주안에서 처음 시작하여 1946년 비금도의 '구림염전'으로 성공의 발판을 이뤄
지난 1955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소금의 자급자족을 실현했던 천일염이 과거의 영광을 찾았으면 싶다.

고대 로마는 병사들에게 임금을 소금으로 주었다. 그 소금 돈(salary)이 바로 현재 샐러리맨의 어원이다.
이처럼 중요한 소금 중 으뜸인 천일염.
"바다-저수지-제1증발지-제2증발지-결정지(채렴)-소금창고(포장)'이라는 6단계 공정을 거치는 천일염.
다행히 지난 2008년 3월28일부터 염관리법이 개정되면서 그동안 광물로 분류되어 식용이 불법이던 천일염이
이제 식품으로 당당히 자리 매김했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휴일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