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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800리 옛길 걷기-제2구간(2)



2009년 5월5일 낮 12시 43분.
해발 600m 를 넘기면서 산죽이 울창한 곳에 산죽비트 안내판이 있다.
당시 빨치산들은 토벌대의 추적을 피하면서 주로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이용한
비트를 만들어 숨어서 토벌대의 추적을 따돌리곤 했는데

당시 빨치산들은 바위,낙엽,굴 등을 이용한 비트 외에도
지리산 곳곳에 분포된 울창한 산죽 사이에 몸을 은신하여 추적을 피하는
산죽 비트도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해발 700m이상의 능선이 서에서 동으로 길게 이어진다.
소나무와 활엽수들이 교차하면서 끊임없이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이
이곳 지리산 능선의 특징이다.
어머니를 연상시킨다는 지리산의 따뜻한 가슴은 식물들에게도 온기가 전해지는듯하다.



낮12시47분.
벽송사를 출발한지 40여분이 지났으나 이제 겨우 700m남짓한 거리를 왔을 뿐이다.
물론 나 자신 시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경치를 음미하며 걸어온 탓도 있겠으나
그만큼 힘든 산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발 700m가 넘는 능선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한낮에 그리 쉬운일은 아닐테니까.

벽송사를 떠나 송대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의 어름터 부근까지는 소나무와 활엽수가
서로 교차하며 이와같은 나무로 만든 자연 터널을 만들어준다.
진한 송진 냄새와 활엽수의 어린 잎들이 내뿜는 신록의 풋풋한 풀 내음이 코 끝을 간지럽힌다.



오후 1시6분.
벽송사를 떠나며 계속 동쪽으로 이어지던 능선길이 송대마을로 향하는 내리막 길이 시작되면서
거의 정북향 방향으로 길이 이어진다.
산길 바닥만이 아니라 능선 사면을 따라 쌓여있는 수북한 낙엽이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걸어보라고 유혹하는듯하다.
능선 사면에 쌓인 수북한 낙엽을 보니 오래전 빨치산들이 은신처로 활용했다는
낙엽비트가 허언이 아님을 짐작하고도 남음직하다.



홀로 떨어진 소나무들은 기묘한 형상으로 우리 눈을 즐겁게하지만
재목감으로는 사용이 어렵다.
그러나 이처럼 밀식된 소나무들은 날씬한 몸매를 뽐내며 쭉쭉 뻗어있다.
멀리서 볼라치면 마치 1년에 1미터씩 성장한다는 메타세콰이어 나무를 연상시킨다.



오후 1시41분.
송대마을로 내려가는 비교적 경사가 급한 계곡길에는 물기조차 없이 바싹 말라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진 기나긴 가뭄의 실상을 느끼며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매주 산행시마다 대하는 1,000 미터 이하의 자그마한 산들의 경우
말라 죽은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이곳 지리산에서는 말라 죽은 나무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흔히 어머니에 비유하는 지리산의 포근한 가슴과 태아에게 편안함을 주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비옥한 토지를 가진 때문일 것이다.



오후2시1분.
해발 500m가 조금 넘는 곳에 자리한 송대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윗쪽에 '대한불교원효종 마당바위도량'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미륵암"이 있는 외에는 약 7가구의 화전민이 흩어져 살고 있는
말 그대로의 산골 마을이다.
한국전쟁 때에는 빨치산의 중요한 양식처이자, 은신처가 되었던 곳으로
좌우익의 피비린내나는 살육의 상처를 아직 완전히 떨치지 못한 마을이기도 하다.



반갑게도 인적이 전혀 느껴지지않는 마을 옆 계곡에서 물 소리가 들린다.
맑은 물이 조막만한 폭포를 이루며 떨어져 내린다.
온통 땀에 절어 소금기가 묻어나는 얼굴과 손을 씻는 행운을 누린다.
더운 날씨지만 얼굴에 닿는 차거운 물이 폐부까지 서늘하게 해 준다.



송대마을 뒤편 해발 710m정도의 능선 모습이다.
이곳 지리산길을 소개하는 글에는 한국전 당시 좌우익의 갈등 속에 깊게 난 상처를
보듬듯 이 마을 뒤편 능선에는 자연 와불이 누워 있다고 되어 있으나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나의 경륜이 부족하고 수양이 덜 된 탓으로 돌린다. 내 탓이오!



어머니의 품과 같은 지리산이어서인지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동식물이 자주 눈에 띈다.

흔히 도시에서 보는 개미보다 몸집이 훨씬 큰 검은 개미를 눈 깜짝할 새에
잡아 먹은 후 입맛을 다시는 이 곤충의 모습이 섬찟하다.
몸 색깔이 원색의 화려함으로 뒤덮인 것에서는 순진하고 어리숙한 남자를 꼬여내는
불여우 같은 화류계 여인이 연상되기도 한다.



오후 2시22분.
송대마을을 지나 마적동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세동마을 향하는 임도 아래 쪽에
견불사가 보인다.
뒤쪽 삼봉산의 길이 4km에 달하는 능선의 모습이 마치 누워있는 부처를 닮았다하여
견불동이란 이름을 얻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견불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10여년 전 절을 다시
세웠다한다.
그러나, 절 마당에 생뚱맞게 코끼리가 있는 점이나 견불사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니
온통 언론 보도내용들로 도배질을 해 놓은게 마음에 안든다.
나의 소박한 발걸음을 상혼이 물든 곳에 들이고 싶지는 않다.



오후2시30분.
송대마을에서부터는 산길이 끝나고 콘크리트로 포장된 완만한 내리막 경사의
임도가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사방이 하늘과 맞닿은 산봉우리와 능선들로 이어지는지라 눈이 즐겁다.
신록의 푸르름과 진한 산 냄새를 맡으며 걷는 걸음은 가뿐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