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2일 토요일 오전 10시 44분.
아침 7시반경 대전을 출발하여 전남 보성군 웅치면 용추계곡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40분경.
우리나라 최대의 철쭉군락지로 알려진 일림산 정상을 향해 용추제를 지난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사격선수들이 베이징의 고온다습한 기후를 대비해
적응훈련을 한 전북사격장이 위치한 전북 임실군의 거대한 댐인 용추제에 비교하면
비록 초라한 규모이긴 하나 이 저수지의 이름도 어엿한 용추제이다.
상상의 동물인 용(龍)을 유난히 좋아하는 배달민족의 후예다운 이름이다.
오전 11시3분.
임도를 20여분 걸어온 후 일림산의 철쭉을 제대로 보기 위해 골치 방향으로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산행 들머리에 이처럼 편백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노송나무라고도 하는 편백나무는 높이 40m, 지름 2m에 리를 정도로 크게 자라는 나무로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조림수로 많이 쓰는 편이다.
흔히 일본말인 '히노끼'라고 많이 쓰는 나무로 향이 좋아 침대등 생활 주변 가구로 많이 사용된다.
오전11시36분.
산행을 주차장에 도착하여 발걸음을 시작한지 1시간 남짓.
해발 400m를 넘어 500고지에 육박하면서 등산로 주변으로 만개한 철쭉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1시간 전까지 하늘의 절반이 파란색이었으나 이제는 북쪽에서만
파란 하늘이 일부 보일 정도로 구름이 짙어진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낮12시 8분.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등산로 주변의 철쭉도 점점 많이 눈에 띈다.
휴일 낮 오랜 인생길을 같이 해 온 중년 부부의 산길 동행은 언제 보아도
정겹고 행복해 보인다.
내 손에 무거운 카메라가 들려 있지 않다면 나도 지금 아내와 동행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낮12시16분.
작은 일림산이라 불리는 627봉이 저만치 보인다.
다행히도 일주일전까지도 봉오리만 맺혔던 철쭉이 만개한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일림산 정상에 핀 철쭉을 제대로 보리라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레인다.
낮12시23분.
작은 일림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온통 철쭉꽃이 터널을 이룬다.
이곳 일림산 철쭉의 특징은 키가 어른키 정도로 크고
해풍을 맞고 자라 색깔이 선명하다는 것인데 그 말이 조금도 틀린데가 없는 것 같다.
627봉에서 분홍빛 철쭉 너머로 바라 보이는 득량만과 보성만 바다를 함께
조망하고픈 마음으로 올라왔으나 아쉽게도 몰려오는 비구름과 안개로 인해
시계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조금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다.
북쪽으로 불과 10여분 거리인 해발 664m 일림산 정상도 옅은 구름이 시야를 가린다.
그러나, 구름 사이로도 진한 분홍으로 활짝핀 철쭉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짙은 안개를 보니 장흥군에서는 상제의 황제 셋이 모여 놀았다 하여 삼비산이라고 부른다는
얘기가 실감이 난다.
삼비산이란 다름 아닌 황비가 내려왔다 하여 천비산(天妃山),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물에서 황비가 놀았다 하여 천비산(泉妃山),
안개가 자욱하다 하여 현무산(玄霧山) 등으로도 불리던 것을 이름이다.
낮12시 28분.
일림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으로 접어들자 잠시 안개가 바람에 씻기며
정상 부위의 만개한 철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미 정상에 올라 있는 수많은 산행객들은 철쭉꽃의 붉은 기운에
휩싸여 넋을 놓은듯 느껴진다.
일림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사면이 온통 진홍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햇빛이 비치는 맑은 날이었다면 찬란하게 빛이 날 수도 있으련만 날씨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이곳 일림산 철쭉군락지는
북서쪽 제암산(779),사자산(666)으로 연결되는 12.4km의 국내 최대 규모이며
특히 그 중에소도 이곳 일림산 주위의 철쭉군락지는 규모가 100만평으로
국내 최대 규모라 한다.
낮12시44분.
계속 뜸만 들이던 진한 구름이 빗방을을 조금씩 떨어뜨리기 시작하더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여유있게 철쭉 속에 묻혀 잠시의 행복을 맛보던 산행객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진다. 서둘어 하산을 시작한다.
비는 내리지만 그 비를 아랑곳 추억만들기에 여념없는 용감한 이들도 간혹 눈에 띈다.
어쩌다 철쭉 꽃에 파묻혀 코 끝을 꽃에 파묻어 보는 이들도 있다.
허나 아쉽게도 철쭉 꽃에는 향기가 거의 없다.
그래서 향기가 없는 대신 거대한 군락을 이룬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하는지도 모르겠다.
내리는 비로 인해 짙은 안개까지 끼는 일림산을 떠날 수밖에 없다.
전남 보성군 웅치면 용반리, 대산리 와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
그리고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 일대에 걸쳐 있는 호남정맥 중 가장 남쪽의
일림산은 그동안 장흥군에서 주장하는 삼비산이라는 명칭과
보성군에서 주장하는 일림산이라는 명칭이 통일이 안되어 혼선을 빚었으나
근래에 국립지리원에서 일림산(日林山)이라는 공식 명칭을 확정했다는 소식이다.
비 맞은 철쪽, 물방울 맺힌 철쭉 꽃이 유난히 예뻐 보인다.
마치 갓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내 아내의 30여년 전 신혼 때의 생얼을 보는듯 하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라 하여 '참꽃'이라 하지만,
철쭉은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 하며,
산에서 나는 산철쭉은 '수달래', 물가에서 피는 것은 '물철쭉'이라 한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에서는 철쭉꽃 축제라 부르지 않고 수달래 축제라 부른다.
오후 2시 18분.
장흥군에서는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물에서 황비가 놀았다 하여 천비산(泉妃山)이라
부른다는 이름에 걸맞게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가진 이곳 일림산.
하산길 계곡의 작은 폭포를 20초간의 장노출로 카메라에 담았다.
녹색 이끼 낀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속에서 황비가 놀았음직한 신비감이 든다.
오후3시13분.
산행이 끝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오전에 지났던 용추제를 지난다.
잠시 비가 멈춘 후 바람기 없는 잔잔한 수면 위에 평온이 함께 얹힌듯 하다.
오후 3시 16분.
힘든 산행에 옷이 비에 젖어 피로가 배가되는 비 오는 날의 산행이지만
산행객들의 발걸음이 오히려 경쾌해 보이는건 진홍빛으로 물든
철쭉의 장관을 눈에 오래오래 담아 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철쭉의 환상적 아름다움에 취해 행복한 마음으로 주말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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