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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의 숨결이 깃든 포항 운제산



2009년 5월3일 일요일 오전 8시48분.
토요일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채 그치지 않은 일요일 아침 대전을 떠나
운제산이 있는 포항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멈춘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

바람도 구름도 쉬어간다는 추풍령. 먼 산허리에 걸린 구름이 걷혀간다.
비 맞은 생쥐 꼴로 산행을 해야할지도 모른다는 기우를 떨쳐 버린다.



낮12시3분.
신라의 고승 혜공스님, 원효대사, 자장율사가 수도했다고 전해 지는 1400년 고찰 오어사(吾魚寺)에 도착했다.
신라 26대 진평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이곳 오어사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 진다.

《삼국유사(三國遺事)》 "2혜동진(二惠同塵)"조와 《삼국사기(三國史記)》 "전"〉
조에 이 절의 이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할 때 개천의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희롱하였다.
그리고는 법력(法力)으로 물고기를 생환하도록 시합을 하였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살지 못하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쳤다 한다.
그때 그 고기가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하여 '나 오(吾),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라 하였다고 한다.

원래의 절 이름은 항사사(恒沙寺)였다고 하는데, 현재 이곳 오어사 입구 동네 이름이 항사리이다.



낮12시14분.
오어사를 둘러 본 후 오어사 앞 주차장 한 켠의 돌계단을 통해 산행 들머리가 시작된다.

운제산(雲梯山 482m)이라는 이름은 은 원효대사가 원효암과 자장암을 명명하고 수도 포교할 때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암자가 기암절벽에 있어서 내왕이 어려워
구름다리로 서로 오가고 했다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며,
신라 제2대 남해왕비 운제부인의 성모단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낮12시19분.
가파른 오르막을 잠시 숨가쁘게 오르면 깎아 지른 절벽 한 켠에 자장암이 나타난다.

이 자장암은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법당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위 위에 건립돼 밑에서 올려다보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1998년에는 진신사리를 봉안해 세운 '세존진신보탑'이 있어 최근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자장장 경내는 산행이 끝나고 하산시 둘러 보기로 하고 본격적인 산길로 이어지는 운제선원쪽으로
임도를 따라 발길을 재촉한다.



오후 1시17분.
산행이 시작된지 한 시간이 좀 지나니 아무리 얕은 산이라도 산은 산인지라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러나 신록으로 물들어 가는 싱싱한 나뭇잎들 사이에 이처럼 고개를 내미는
원색의 꽃을 대하면 마음 속은 시원해지는 것이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맞는 큰 즐거움이다.



오후 1시 26분.
이곳 운제산 정상석과 전망대가 있는 정상을 비껴 헬기장으로 먼저 발길을 돌렸다.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햇살을 가려 주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오는 쾌적한 곳이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 식사와 함께 얘기 꽃을 피운다.
휴일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는 우리네 서민들의 정겨운 모습은 내 얼굴을 미소 띄게 하기에 충분하다.



남쪽으로 바라 보이는 야트막한 산들의 능선이 아름답다.
우측에 보이는 산 정상에 올라 앉은 대왕바위(大王岩)다.
산 봉우리 위에 저처럼 큰 바위가 올라 앉은 모습은 남해안의
작은 섬에서나 볼 수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북서쪽으로는 잠시 후 들릴 정상에 자리 잡은 전망대 지붕이 보인다.
대부분의 산에는 정상 조금 아래 전망이 좋은 곳에 전망대를 만드는데
이처럼 산 정상부에 전망대가 가장 높이 솟은 모습도 유별나다.

점심은 산행시마다 준비하는 김밥을 하산하면서 천천히 먹기로 하고
대왕바위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오후 1시36분.

혹자는 운제산의 정상을 이 대왕바위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뒷편에 해발 471m로 표시된 작은 표지석이 있다.
높이 10m, 둘레 약 30m인 이 대왕바위 바위가 거의 없는 흙산의 꼭대기에
우뚝 쌓아 올려 영일만을 굽어보는 유별난 자태로 우뚝 서 있다.

옛날에는 바위 틈에서 샘물이 솟았다고 하며
한발이 극심할 때는 이 대왕바위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리고 했다는 전설이 전해 오기도 한다.



오후 1시 51분.
운제산 정상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이다. 모 대기업체에서 마련한 것이라는 안내문이 있다.
이곳 또한 특이하게도 2층으로된 전망대 1층 내부 중앙에 '운제산 482m'라는 정상석이 서 있다.

산행 중 스치는 많은 이들이 '팔각정'이라고 했지만,
모임 지붕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정자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육각정'이다.



북동쪽으로는 가까이 철강공단과 그 너머로 포스코가 자리 잡은 영일만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우리나라 근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이름인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이 철강공단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로 인한 환경 파괴는 되돌릴 수 없는 큰 재앙의 하나인 것 같다.

어쨌든 경제 발전과 환경보호는 우리가 항상 맞게 되는 정답이 없는 딜레마의 하나인 것 같다.



북서쪽으로 뻗어있는 산 줄기 능선은 아마도 경주 쪽의 토함산(745m),
그리고 황룡사지가 자리한 664봉과 시루봉(503.4m)을 연결하는 능선인듯하다.

흐린 날씨로 인해 시계가 확보되지 못해 산 허리를 둘러 싸며 피어 있는
철쭉의 색깔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오후 2시 49분
하산길 운제선원 부근의 임도 주변 나무에는 석가 탄신일이었던 어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 운제산은 우리나라의 귀신 잡는 해병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산이다.

2대1이 넘는 경쟁 속에 지원제로 선발하는 대한민국 해병대 신병 교육이 실시 되는 곳이 이곳이다.
완전군장을 갖추고 운제산 정상인 천자봉까지 약 24㎞를 행군해 올라가는 등 무시무시한
해병 훈련이 6주에 걸쳐 펼쳐진다.
이를 통해 신병들은 끈끈한 전우애와 ‘해병 혼(魂)’을 쌓게 되는 것이다.



오후 2시59분.
산행 초입에 옆으로 스쳐 지났던 자장암을 찬찬히 여유있게 살펴 본다.
어느 관광홍보 책자에 소개된 이 자장암의 소개 글을 보자면 아래와 같다.

"까마득 절벽 끄트머리에 세운 자장암은 밑에서 올려다보면 한 마리 학처럼 수려하고
올라서 내려다보는 오어사와 오어지의 경치도 빼어난, 참으로 절경의 암자다.
절벽 끝에 아슬아슬 솟은 바위에 올라서서 오어사를 굽어보고 멀리 오를 정상과
대왕바위가 올려다보이는 자장암의 절경에는 누구든지 탄복을 금하지 못한다."

그러나, 짙은 녹음으로 위 글에 기술된 세부 내용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으나
신록 우거진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은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오후 3시 19분.
차량 탑승을 위해 오어사를 떠나 원효대사(元曉大師)와 혜공선사(惠空禪師)의 이름에서 따온
원효교와 혜공교를 건너 오어지(吾魚池) 옆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걷는다.

앞 부분 오어사 유래에서 나온 그 고기를 놔준 곳이 이 오어지(吾魚池)라고 한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이 1264년에 오어사에 머문 적이 있었으므로
당시까지 전해오는 이야기를 채록하였던 모양이다.
만수 면적이 12만평에 달한다는 오어지의 아름다움이 가뭄으로 인해 퇴색된듯해 아쉽기만 하다.



오후4시36분.
귀가 길 잠시 들린 포항 죽도시장 옆 바닷가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든다.
봄부터 가을까지 휴일 오후면 관광버스를 타고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평소 모습과 달리 유난히 조용하다. 아마도 봄꽃 축제장으로 몰려간 듯도 하다.


지난 1950년대에 갈대밭이 무성한 포항 내항의 늪지대에 노점상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으며,
1971년 11월 포항죽도시장의 개설허가가 이루어진 이곳.
부지면적 약 14만 8,760㎡, 점포수 약 1,200개에 달하는 포항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이다.
과거의 죽도시장은 경북 동해안 및 강원도 일대의 농수산물 집결지인 동시에 유통의 요충지였으나
근래 들어서는 200여 개의 횟집이 밀집되어 있는 회센터 골목과 수협위판장, 건어물거리 등의 어시장 구역만이
활기를 띈다.



오후 5시41분.
송도해수욕장의 얼마 남지 않은 백사장으로 밀려드는 흰 파도를 바라보며
포항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귀가길에 오른다.

20여년 전 포항 송도해수욕장은 포항 주위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찾는 유명한 해수욕장이었다.
그 당시 홍보 문구에는 이처럼 기록되어 있다.
"너비 70 m. 길이 3 km. 물이 맑고 모래가 고우며 경사가 매우 완만하여 해수욕장으로서 유리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1914년 이후 방풍림으로 조성된 측백나무 ·해송 등의 울창한 숲이 배후에 펼쳐져 있으며, 수온(水溫)도 적당하다."

그러나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공단이 들어서면서
이제는 맑은 물과 고운 모래는 거의 형체가 남아 있지 않다.
십 수년 전부터 관계당국에서 씻겨 내려가 없어지는 모래들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나 효과가 없었던듯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를 송도해수욕장을 뒤로하며 마음 한 구석에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