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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800리 옛길 걷기-제2구간(3)



2009년 5월5일 오후2시33분.

흔히 보기 어려운 완전 자연 벌집이다.
벌집에는 곰팡이, 바이러스, 세균이 침투할 수 없다고 한다.
이유는 "자연의 페니실린"이라고 불리는 프로폴리스라는 치유 물질 때문이다.
벌들은 이 프로폴리스를 벌집으로 물어와 타액과 효소를 결합하여
벌집 입구와 바깥벽에 발라 벌집 내부를 언제나 무균 상태로 유지한다고 한다.



오후 2시43분.
송대마을을 떠나 서쪽을 향하던 인도가 방향을 틀어 북향하다가 다시 북동쪽으로
비스듬히 방향을 틀면서 멀리 북서쪽 눈 아래에 엄천강을 가로지르는 용유교가 보인다.
용유교 우측에 용유담이 있다.
용유담 맑은 물에는 등에 무늬가 있는 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그 무늬가 마치 스님의 가사와 같다 하여 '가사어'라고 불리었다 한다.
이는 지리산 계곡에서만 사는 물고기이다.
그리고 가사어는 지리산 계곡에서만 사는 물고기라고 한다.



오후 2시52분.
딱딱하던 콘크리트 포장의 임도가 끝나고 잠시 흙길이 이어진다.
간혹 잡초들이 엉킨 흙길을 밟으니 발걸음이 편한 것은 물론 기분도 한결 나아진다.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건강하다는 말이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오후2시55분.
입구에 돌로 만들어 세운 표지판 글귀가 단군민족일체화(檀君民族一體化)인 것을 보니
아마도 대종교와 관련된 시설인듯하다. 그렇다면 최종 목적지 세동마을과 인접한
마적동에 다다른 것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송수익선생'이 왜놈들을 상대로 싸우며 대종교에 귀의한 것을
떠 올리며 걸음을 재촉한다.



오후3시
길 옆에 세워진 '소나무 쉼터'라는 안내판을 보고 가던 길을 벗어나 걸음을 옮겨보니
수백년 이상 된듯한 큰 소나무와 절벽 끝에 자리잡은 큰 바위가 피로에 지친 길손들의
발걸음을 멈춘다. 지나가는 산행객들은 한번씩 쉬었다가는 분위기이다.



더위를 말끔히 식혀주는 바람이 너무나 상쾌함을 주는 곳이다.
멀리 용유교도 한눈에 들어온다.
아마 오래 전 옛날에는 이곳이 신선들의 바둑터로 곧잘 이용했으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오래 머물렀다 가고 싶은 곳이다.



오후3시52분.
오늘의 최종 목적지이자 지리산길 2구간의 종점인 세동마을로 들어섰다.
지리산 자락의 산골마을 답지 않게 수십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을이다.
많았다던 억새로 지붕을 얹은 샛집도 닥나무도 거의 남아있지 않고,
대문도 담도 없이 모두가 한 가족이었던 그 옛날 지리산 산촌마을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집집마다 담과 대문이 있는 것을 보면 해발 200m가 조금 넘는 이 산골마을도
흘러가는 세월을 비껴 갈 수는 없는 모양이다.



비록 유수같이 흐르는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지만
흔적은 남아있게 마련.
자연석을 날라다 진흙을 바르지 않고 건식으로 쌓아올린 축대와
그 축대를 따뜻이 보듬듯 타고 오르는 담쟁이 덩굴이 정겹게 느껴진다.



하루 두 세차례밖에 다니지 않는 마을버스지만 몇 안되는 승객을 위한 편의 시설,
그리고 남녀용 각 한칸씩으로 만들어 놓은 화장실과
화장실 지붕위에 설치된 두 개의 태양열 집열판에서 삶의 여유를 느낀다.



오후 4시 19분.
세동마을에서 귀가할 차량 탑승 시간이 한 시간 이상 남았기에
산해 초반 벽송사 못미쳐에서 잠시 스쳐 지났다가 소나무 쉼터에서 해후한
하루 전 서울을 떠나 나홀로 여행길에 오른 젊은 여성 배웅을 겸하여
엄천강변을 따라 인적이 거의 없는 마을길을 따라 상쾌한 강바람을 받으며
걸음을 이어간다.



오후 4시 27분.
엄천겅을 가로 지르는 저 다리를 건너야 함양이나 산청읍내로 가는 버스 길인
60번 지방도로에 들어서게 된다.
이곳은 2007년 여름 래프팅을 위해 찾았던 곳이다. 머잖아 여름이 다가오고
많은 비가 내리면 말라버린 이곳도 힘찬 여울을 가로지르는 계곡물이 넘실대리라.



오후 4시28분.
동행했던 길손을 배웅하고 나는 발길을 다시 돌린다.
남은 오늘 하루도 장시간 찻길에 시달리며 밤 늦게나 집에 도착할 저 길손의
무사 귀환을 빌어본다.
저 젊은이가 이번 여행에서 앞으로 더 오랜 기간을 살아야 할 인생에서
풍요한 수확을 거두었기를 바란다.



귀가차량을 타기 위해 세동마을로 되돌아 가는길 길섶에서 뱀을 만났다.
나도 놀랐지만 저 녀석도 무척 놀란 모양이다.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줄행랑을 놓는다.
미처 셔터를 누를 시간도 주지 않을 정도로.
가까스로 이 한장을 찍었지만 놀란 가슴 때문에 흔들린 사진이 되었다.



오후 4시48분.
지리산 옛길걷기 중 가장 자주 대하는 풍경이 이와같은 벌집들이다.
산새가 지저귀고, 발밑을 뱀이 스치고 지나가며
꿀벌들의 윙윙거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곳 지리산.
오래오래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며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