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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섬


2009년 6월14일 오전 8시43분.
오래 전 대학시절인 1971년 처음 방문한 선유도.
지난해 6월28일 여름비를 맞으며 마비막으로 방문했던 선유도
첫번째 방문 때는 군산항에서 2시간여가 걸려 도착했던 선유도에
지난해에는 군산 신항만에서 출발하는 배로 40분이 걸렸던곳.

이제 그 먼 섬에 20분이면 갈 수 있는 신시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곳 신시도는 선유도 및 이제는 다리로 이어진 무녀도,장자도가 속한
고군산군도의 24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수년전까지만해도 군산에서 20여 km떨어진 이곳을 오려면 1일1왕복하는
배를 이용하던 것이 이제 새만금 방조제 덕분에 자동차로 20여분이면 도착한다.

인공으로 축조한 방조제 덕분에 갯벌의 흙이 섞이지 않은 아침 바다가
마치 동해나 남해 바다를 연상시킬 정도로 푸르다.



오전 8시58분.
신시도 선착장을 떠난지 불과 10여분이 지났는데 벌써 저 앞에
선유도를 대표하는 망주봉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수일 전 일기예보에서 초속 6~7m의 풍속 예보에 잠시나마 걱정했던 것이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



오전 9시11분.
선유도 남쪽 선유봉 동쪽 들머리에 자리잡은 아담한 옥돌 해수욕장에서
동행한 산악회 회원들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마치 유리처럼 매끄럽고 앙증맞게 생긴 옥돌에 엉덩이를 걸치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마시는 이 시간이 어쩌면 꿀맛 같기도하다.
10~20톤 정도의 작은 낚싯배를 대여한 때문에 한 번에 80여명의 인원이
모두 타지 못하고 몇차례에 걸쳐 수송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오전 10시21분.
이곳 선유도의 유명한 봉우리 3개(망주봉,대장봉,선유봉)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선유봉을 먼저 오르기로 하고 산행을 시작한지 20분.
해발 100m가 조금 넘는 바위산이건만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맞닿은 수평선은 온몸에 흐른 땀을 순식간에 날려 버린다.



북동쪽으로는 이곳 선유도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백사장 끝부분에 오후에 오를 망주봉이 보인다.
지난 1970년대까지만해도 이곳 선유도 해수욕장은 서해안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이었던 이유를 알만한 아름다운 풍광이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는 해수욕장 한켠 갯벌에서는
여름철 바다 여행에서 얻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인 조개잡이에 여념이 없다.



북서쪽으로는 잠시 후 이곳 선유봉 다음으로 찾을 대장봉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붉은색의 장자대교와 흰색의 대장교의 색깔이 짙푸른 바다 색깔과
어울려 오묘함의 극치를 이룬다.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이다.



오전 11시.
대장도 한복판에 우뚝 솟은 대장봉에 가기 위해서는 장자도를 거쳐야한다.
선유봉을 내려와 장자도로 가는 길이 268m의 장자대교를 건넌 후
다시 길이 30m의 아담한 다리를 건너야 대장도로 가게 된다.

장자대교 초입에서 바라본 0.34평방킬로미터의 아주 조그만 섬인 대장도 마을은
마치 한폭의 그림과 같이 평화로운 정경이다.



오전 11시17분.
대장봉으로 향하는 대장도 포구 앞의 방파제 위를 자전거가 줄지어 달린다.
멀리 건너편 망주봉과 어울릴만한 한폭의 그림이 되리라는 생각에
20~30M를 뛰어가 순간을 잡았다.
100% 만족은 못하지만 그럴듯한 그림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진다.



오전 11시24분.
대장봉으로 오르는 암벽 초입에 자리 잡은 유명한 할매바위의 모습이다.
옆 공터에 썩어가는 목조 폐가와 어울리면 한밤중에는 공포영화를 찍어도 될듯 싶다.
이 할매바위에도 어김없이 전해 오는 전설이 있다.
남편의 과거급제를 15년간 기다린 아내 앞에 소실을 데리고 나타난 바람쟁이
남편 이야기다.
기어다닐 기운만 있어도 여자를 탐하게 남자를 만들어 놓은 조물주의 잘못이 아닐까?



할매바위 주위 바위 위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은
선유도와 장자도를 잇는 장자대교, 그리고 자그마한 어촌인 장자도의 모습이다.
만약 그 할매바위 전설이 사실이라면 15년간 바라 본 이 풍광이
저 세상에서도 선연히 떠오를 것 같다. 남편을 기다리며..
그러나, 나는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광에 감동하여
꿈속에서도 떠오를듯하다. 만약 내가 매일 꿈을 잘 꾸는 사람이라면.


오전 11시 42분.
해발 143m 대장봉에서 내려다 보는 남서쪽 바다의 풍광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이곳에서 하루밤을 유하며
저 멀리 자그마한 무인도 사이로 내려 앉을
서해 바다의 낙조를 가슴 속에 오래오래 새겨두도픈 심정이다.



남동쪽으로는 조금전 거쳐 온 장자대교와 손바닥만한 장자도
그리고 그림처럼 자전거가 내달리던 방파제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늘이 더 맑은 날이면 멀리 새만금방조제도 보일듯하다.



오후 1시10분.
대장봉 부근에서 점심 식사와 휴식을 끝낸 후
오늘 여정의 마지막 코스인 망주봉을 오르기 위해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들어선다.

깨끗한 모래 위에 여기저기 쓰인 낙서가 유난히 눈에 띈다.
하트를 크게 그리고 그 안에 이름을 써 놓았다.
젊은 시절 이런 여유로운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바쁜 삶을 살았던
당시의 우리네 삶이 아쉽게 여겨진다.



오후 1시26분.
뜨거운 햇살 아래 모래사장을 15분 여를 걷는 일이 꽤 힘에 부칠 때쯤
눈 앞에 망주봉이 우람한 자태를 드러낸다.

마치 걸리버여행기에 나오는 거인이 밀가루 반죽을 두어개
반죽판 위에 집어던진듯한 모습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이 바위도 아마 풍화작용으로 인해 고운 모래로 변하고 말리라.



해발 152m 망주봉 정상에는 대여섯명의 사람이 보인다.
저 위에 올라서서 사방을 바라보는 그내들이 부럽다.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진다.


망주봉을 오르기 위해 길목인 신기리로 향하는 바닷가 갯벌 위에
목선이 하나 모래턱을 의지해 가쁜 숨을 몰아 쉬는듯하다.
페인트가 심하게 벗겨지고 녹물이 흐른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버려진 배인듯하다.
힘든 노동을 할만한 젊은이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 농어촌의
현실을 반영하는듯하여 조금은 씁쓸하다.



물이 빠진 갯벌에 그려진 작은 s자 모양을 보며
2년전 겨울 전남 순천만 갯벌에서 물빠진 갯벌의 s자 모양을
일몰과 함께 담으려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몇시간씩 굶으며 기다리다
배고픔에 못이겨 가끔 지나는 관광객들에게 과자나 사탕을 구걸하던
기억이 떠올라 쓴웃음이 나온다. 과욕은 금물임을 잊지 말자.



오후1시58분.
최근 잇따른 추락사고로 인해 등반이 금지된 망주봉을 오르기 위해 입구까지
갔으나 경찰관의 제지로 인해 입구에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돌아서는 길목에 핀 이 선인장 꽃 때문에 아름다운 여인의
부드럽고 예쁜 섬섬옥수를 한동안 만지는 행운도 누렸다.
선인장 꽃을 따다 잔 가시가 손가락에 박힌 여인의 손에서 가시를 빼 준다는 핑계로...
어쨌든 고마운 선인장이다..



오후 2시 31분.
망주봉에 오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하고 아침에 도착한 선착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경찰관의 눈길을 피해 무리하게 망주봉을 오를 수도 있었겠지만
무슨 일에나 무리수를 두면 꼭 화가 따르는 법이니..
고운 모래가 만들어 놓은 드넓은 백사장, 푸른 바다,
그리고 파란 하늘의 흰구름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 본다.



오르지 못하고 지나쳐온 망주봉을 바라보니 더 진한 아쉬움이 전해온다.
십 수년전 낚시에 몰두에 정신없이 낚시터를 헤매던 시절에
잡다 놓친 물고기가 더 크게 느껴졌던 것처럼
지난해 6월28일 비가 많이 내린 관계로 망주봉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보다
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조만간 다시 방문해 저기 보이는 망주봉을 단숨에 오르리라 다짐한다.



오후3시12분.
아침에 도착한 옥돌해수욕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침의 그 바다는 변함이 없이 나를 기다려준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의 마음과 달리 변함없이 듬직한 바다.
다만 아침과는 달리 햇살의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다.



오후 4시57분.
바닷가 횟집에서 동행한 산악회원들과 생선회와 소주 한 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푼 후
하루동안 나를 품어 주었던 선유도를 떠난다.
"배 따나갈 때는 울지를 말아!"라는 유행가 가사가 아니더라도
항상 배를 타고 떠나며 선미에 만들어지는 하얀 포말을 보면 누구나 감상에 젖는듯하다.
담배를 피는 이들은 이때 어김없이 담배를 빼어 문다..



오후 5시6분.
대장봉 초입에 송곳처럼 솟은 할매마위가 빠른 속도로 멀어져간다.
이제 수년 후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되고 신시도와 무녀도 사이에
계획대로 다리가 이어지면 그 때는 자동차를 타고 선유도까지 오게된다고 한다.
시간은 조금 벌겠지만 배를 탔을 때 느끼는 그런 설레는 마음은 느끼지 못할 것 같아
조금 아쉬운 감이 든다.
푸른 바다와 선미의 흰 포말을 바라보며 휴일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