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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길 걷기. 그 세번째(동강-수철)


2009년 6월13일 오전 9시5분
지난 5월5일, 그리고 10일 두차례에 걸쳐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의
아름다운 지리산길을 다녀온 후 최근 개통된 40여km의 지리산길
추가분중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에서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로 이어지는
약 12km의 지리산길 걷기에 나섰다.

평촌(坪村), 점촌(店村), 기암(機岩)등 3개마을로 구성된 동강리 농로를
엄천강을 끼고 걷는 풍광이 무척이나 수려한 길이다.



대부분의 논에 모내기가 끝나고 어린 모들이 뜨거운 6웧 햇살 아래
진녹색으로 빛난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자급자족해야할
우리의 주식인 쌀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52가구 117명이 살고 있는 이곳 동강은 남쪽으로 산청군 금서면과 접한 엄천강이 있으며
주 소득원은 쌀이며 그 다음으로 밤,곶감,양파.고사리 등 산나물이 주산물이다.
마을 남쪽 산이 험준하여 곰이 골짜기로 떨어져 죽었다는 곰골이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느 새미자골,
작은 차돌이 많아 사람이 다니기 어렵다는 차독배기 골짜기도 있다.



오전 9시40분.
농로에 이어 콘크리트 포장된 시골길을 따라 쉬엄쉬엄 걷기를 40여분.
행정구역상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에 소재한 삼청함양사건추모공원 앞을 지난다.

산청함양사건이란 6.25동란 중이던 1951년 2월6일,7일 이틀간 국군의 공비 토벌작전중
산청군 금서면 주민 330여명과 함양군 휴천면 및 유림면 주민 370여명이 억울하게
희생된 사건이다.
그들이 희생된지 50년이 흐른 지난 2001년에야 이 추모공원의 기공식을 가진바 있다.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기리며 다시는 동족을 살해하는 비극적 전쟁이 재발않기를 바란다.



오전 9시59분.
추모공원이 있는 방곡마을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선다.
동의보감의 고장이라 자랑하는 이곳 산청군 금서면 주위의 산길은
해발923m의 왕산과 해발 848m의 필봉산 자락의 정기 때문인지
참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이 피톤치드를 진하게 내뿜고
각종 산나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토질이 무척 비옥한 육산이다.



오전 10시53분.
녹음 우거진 산길을 땀을 쏟으며 걷기를 근 한 시간 남짓.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경인 상사폭포에 도착해 30여분간
땀을 식히며 준비해 간 김밥으로 이른 점심을 마쳤다.



어느 곳을 가든 그럴듯한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곳에는 의례 있게 마련인
전설이 이곳 상사폭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사모하던 여인을 못잊어 상사병으로 죽은 남자.
그리고 상사폭포는 죽은 여인이 변한 바위로,
상사계곡은 남자가 여인을 못잊어 화려한 계곡으로 변했다는 그런 류의 전설이다.
지난 가을부터 이어지는 심한 가뭄으로 수량이 부족해 폭포의 장관을
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여름철 비가 많이 내린 후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곳이다.



오전 11시33분
상사폭포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한 후 발걸음은 무척 가벼워졌다.
산허리를 따라 걷는 길에는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끝없이 이어진다.
이제 해발 고도도 400m를 넘어 500m에 육박한다.
사유지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대나무로 길을 만들어둔 아름다운 산길을 지난다.
지난 5월 다녀온 지리산길 중 벽송사 구간 일부 사유지가 땅 주인과의
교섭이 잘 되지 않아 현재 폐쇄상태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후여서인지
산을 사랑하는 나 같은 이들에게 사유지를 제공해준 땅 주인의 마음이
아름다운 이 산길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하게 여겨진다.



오전 11시 59분.
왕산과 왕등재 사이의 고개인 쌍재를 지나 고동재로 향한다.
쌍재에는 옛날 산골집 한 채가 있다.
이곳 일대 수만평의 땅을 일구고 있는 '공수' 석재규님 집이다.
원래 이곳에는 15가구의 농가가 살았다고 한다. 모두 대처 등지로 떠나갔는데,
몇 해 전 부산에서 살고 있던 공수님이 옛집으로 다시 귀농을 했다.
최근 네티즌들로부터 수많은 격려를 받고 있는 이들 부부에게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전나무향을 맡으며 발걸음을 내딛는다.



낮12시28분.
오늘 지리산길 걷기 여정 중 가장 높은 곳인 해발 580여m정도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이다.
북서쪽으로 아침에 출발한 동강마을과 2시간반 전 지나온 방곡마을과
그 옆의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72748㎡(약22,000평) 의 부지에 마련된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은
지난 2001년 12월 13일 착공하여 2004년 10월 17일 준공되었다.

위령탑, 그리고 희생된 양민 705명의 합동묘역이 보이고
맨 뒤에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위패봉안각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산청 읍내가 멀리 보인다.
경상남도의 서북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합천군 의령군에,
서쪽은 함양군과 하동군에, 남쪽은 진주시에, 북쪽은 거창군에 인접한
인구 35,000 여명인 산청군. 지리산 자락의 고만고만한 산들에
둘러싸인 모습이 너무 아늑하게 여겨진다.



300m망원으로 당겨 보니 산청 읍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황매산에서 발원한 양천강과 지리산에서 발원한 덕천강과 나중에 합류하여
진주 남강을 이루는 물 맑은 경호강이 읍내를 관통하고 있다.
산등성이마다 활짝 핀 밤꽃 향이 수 km 떨어진 이곳까지 전해 오는듯하다.



오후 1시19분
쌍재에서부터 1시간 이상을 남으로 향하던 산길이 끝나면서 고동재에 다다른 후 임도를 만나면서
막바지 지리산 길은 동으로 방향을 튼다. 밤꽃 향기가 코 끝을 강하게 자극한다.

앞서 거론한 1951년 2월6,7일 양일간의 산청,함양 사건의 중요 기폭제가 된 사건이
이곳 고동재에서 발발했음을 상기하게된다.
1950년 11월 29일 남원의 사단본부 참모회의에 참석하려고 지리산의 고동재를 넘던
미 군사 고문단의 리 대령, 장교 2명, 사병 28명이 적에게 공격당하여 사망하였으며,
이런 일을 당한 11사단 9연대는 공비들에 대한 더욱 강한 적개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고동재를 지나 수철리로 향하는 인도 가에는 온통 밤나무뿐인 듯 여겨진다.
너무나 진한 밤나무 향기에 취할 정도이다.
밤꽃은 한 그루에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는데 이 중 수꽃에서 짙은 향내가 난다.
게다가 밤꽃 향이 남자의 정액 냄새와 비슷해 “남성”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예로부터 부녀자들은 밤꽃 필 때 외출을 삼가고 과부는 더욱 근신하도록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문득 세계적인 거장 ‘고흐’의 작품인 “개화한 밤나무가지(Blossoming Chestnut Branches : 1980)" 가
지난 2008년 2월10일 스위스의 ‘에밀 뷔릴르’ 박물관에서 무장강도들에게
탈취 당했다가 9일 후 인근주차장에서 발견되었던 사건이 머리에 떠오른다.



오후 1시43분.
이곳 산청군도 지난 5월 걸었던 함양군과 마찬가지로 지리산 자락이어서인지
다랭이논이 많이 보인다.
일반인들에게는 경남 남해 가천마을의 다랭이논이 널리 알려져있지만
규모나 물량면에서는 지리산 자락인 함양,산청쪽이 남해의 그것을 능가한다.

좀 늦은 모내기를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농부의 움직임이 한편으로는 경건하게까지
느껴짐은 식량 중에서도 으뜸인 우리의 주식이 쌀이기 때문일게다.



오후1시51분.
눈앞에 오늘 여정의 종착점인 수철리 마을이 보인다.
수철리는 지형적으로는 지리산 북동쪽 자락에 위치하여 대부분 산지와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다.
가야 왕국이 마지막으로 쇠를 구웠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이곳.
옛날에 무쇠로 솥이나 농기구를 만들던 점이 있었으므로 무쇠점 또는 수철동이라 하였다.

이곳 수철리의 특산품은 생청[生淸] 이다. 생청이란 토종꿀을 내리는 방법 중 불길에 대지 않고 뜬 꿀을 이름이다.
약 5시간에 걸친 걸음으로 온몸은 땀으로 젖고 다리는 피로하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때보다
상쾌한 주말 여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