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3일 오전 11시4분
지리산(智異山)·월출산(月出山)·내장산(內藏山)·내변산(內邊山)과 함께
호남지방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전남 장흥의 천관산 산행을 위해
전남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에 자리한 천관산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해
산행준비를 한다.
전날 밤 늦게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는 그칠줄을 모른다.
짙은 안개가 산 아래까지 휘감아 돌기 시작한다.
오전 11시8분
천관산을 오르는 여러 산행로 중 좌측 봉황봉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를 택해 임도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길 양쪽으로는 이곳이 우리나라 최대의 동백군락지 중 한곳임을 과시하듯
온통 사람 키보다 조금 큰 동백나무가 숲을 이룬다,
철 늦은 동백꽃이 봄비를 맞아 더욱 붉게 빛난다.
철 지난 매실나무 몇그루에도 매화꽃이 만개하여
흰 꽃의 찬란함과 함께 진한 꽃향기를 풍긴다.
오전 11시16분
임도를 벗어나 겨우내 말라버린 계곡을 가로질러
본격적인 산행길로 접어든다.
띄엄띄엄 눈에 띄는 키 작은 진달래 가지에도
한둘씩 성글기는 하지만 분홍색 꽃망을이 맺히기 시작한다.
오전 11시21분
콘크리트 포장의 임도를 벗어나며 시작된 산길은
무척 가파르다.
더구나 밤새 내린 봄비에 젖은데다 지금도 꾸준히 내리는
비에 젖은 오르막 경사길이 무척 미끄럽다.
힘이 두 배는 드는듯 싶다.
오전 11시34분
남향하여 진행되는 산길의 우측 나무숲 사이로
금수굴쪽으로 이어지는 계곡과 그 멀리 천관사능선쪽이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촉촉하게 감싸 온다.
오전 11시47분
30여분간 이어지던 미끄러운 오르막 산길이
이제는 가느다란 통나무를 보폭만큼씩 가로질러 놓은
계단길이 이어진다.
길 양편으로 노란 꽃을 피우는 예쁜 꽃길이 이어진다.
꽃 이름을 도통 알 수가 없다.
월요일 아침 출근 후 천관산도립공원으로 전화하여
꽃 이름을 알아줄 것을 부탁한 연후에 이름을 알았다.
주로 지리산 부근에서 많이 자라며 송광납판화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 꽃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히어리(Korean winter hazel)"이다.
오전 11시58분
급경사 오르막이 끝나며 경사 완만한 능선길이 시작되는곳
처음 만난 멋진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바위의 이름은 '문바위'이다.
낮 12시4분
급경사 오르막을 오를 때보다 산행 시간이 더 느려진다.
짙은 안개속에 파묻힌 기암괴석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기에
이런 멋진 풍광을 가슴에 새기자니 걸음이 자연 느려질 수 밖에 없으리라.
비록 짙은 안개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바위들이지만
각양각색의 기묘한 바위들의 형상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산행길은
숨가쁜 가슴의 요동과 다리 근육의 피곤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위의 기묘한 바위를 뒷면에서 바라보면 이런 모습이다.
불현듯 몽환적인 분위기의 짙은 안개속에서 멋진 신들이 모여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Ambrosia)를 먹으며
그들의 음료인 넥타르(nectar)를 마시고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누군가 엄청난 괴력을 가진 자가
옮겨다 놓은듯도 싶은 바윗돌이 포개진 곳.
멋진 자태의 소나무 가지를 붙잡고 바위 벼랑 끝으로 나가 주위를 살펴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불과 10m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뿐이다.
이곳 천관산에는 이처럼 탑 모양으로 기둥을 이룬 바위들이 유난히 많다.
더구나 수직방향은 물론 수평 방향으로도 갈라져 있는 바위들이다.
이와같은 기둥 모양의 바위 기둥을 지형학 용어로는 '토르(tor)",
이를 우리말로는 '돌탑' 또는 '돌알바위'라 부른다.
낮 12시12분
마치 인위적으로 꾸며 놓은듯한 멋진 바위 앞에서 잠시 멈춘다.
등산지도를 살펴보니 '봉황봉'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세찬 바람이라도 몰아치면 바위기둥 위의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아래로 굴러 떨어질듯 위태로워 보인다.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누가 그랬던가?
이곳 천관산의 바위봉우리가 720여개에 달한다고,
그래서 720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했던가?
수많은 산행객들이 저마다 간직한 갖가지 소원을 빌며
정성스레 올려 둔 작은 돌이 빈틈없이 쌓인 이 바위의 이름은
'등잔바위'이다.
마치 세찬 바람에 꺼질듯 위태로운 등잔처럼
빈틈없이 올려 놓은 작은 돌들 또한 세찬 바람에 떨어질듯 아슬아슬하다.
지척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짙어진 안개속을 걷다보면
눈 앞에 이와같은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갑자기 나타나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꾸준히 내리는 가느다란 빗방울과 짙은 안개 속에서
카메라와 렌즈를 계속 수건으로 닦아 가며 셔터를 누르는 고행의 연속이다.
거추장스런 등산 자켓을 벗어부치고 반팔 차림으로 이어가는 산행길.
반팔 티셔츠마저 물기를 잔뜩 머금어 축축하다.
낮 12시21분.
기묘한 형상의 바위 앞에서 잠시 휴식을 위하며 물 한 모금을 마신다.
이 바위의 이름은 '양근암(陽根岩)'이다.
높이 4.5m 정도의 남성 성기를 닮은 이 돌은 서쪽으로 800여m 정도 떨어진 곳의
여성 성기를 닮은 금수굴(金水窟)과 서로 마주 보고 있다 한다.
낮 12시25분
여러개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뒤엉켜 올라 앉은 바위 옆으로 길은 이어진다.
마치 쏟아져 내릴듯한 자태로 얺혀있는 이 바위의 이름이
'고래바위'라는데,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아마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어느 지점에서인가
누군가의 눈에는 고래처럼 보였나보다.
멋진 바위를 구경하랴, 또 물기에 젖은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스레 밟으랴,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카메라와 렌즈를
연신 수건으로 닦으랴 이래저래 분주하다.
앞 부분이 소나무에 가려 있던 위 사진을 옆면에서 바라보면
이런 모습이다.
이 바위의 이름은 '할미바위'이다.
주름이 심하게 진 형상 때문일까?
위 바위를 뒷면에서 바라보면
이런 모습이다.
대자연이 빚어 놓은 멋진 예술품이다.
낮 12시27분
인적이 드문 비 내리는 오늘의 천관산 산행에서
산행객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이 바위의 이름은 '정원석(庭園石)'.
마치 대저택의 정원에 예쁘게 꾸며 놓은 돌 모양이다.
삼삼오오 모여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다.
분명 인공적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참으로 기묘한 형상이다.
이 정원석은 이곳 천관산의 명물 중 하나이다.
여기서 사진을 찍어야만 천관산을 다녀간 증표가 될듯 싶다.
낮 12시35분
정원석을 지나면서부터 한동안 완만한 경사의 억새 군락이 이어진다.
이곳 천관산의 가을 억새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가시거리가 10m도 채 되지 않는 짙은 안개가 한스러울 뿐이다.
낮 12시 54분
이곳 천관산 최고봉인 해발 723m 연대봉에 자리한 봉화대에 도착했다.
약 8백여년 전인 고려 의종 때 이곳에 처음으로 봉화대를 설치했던 이후부터
이 봉우리의 이름이 '연대봉'이 되었다.
지금의 이 봉화대는 지난 1986년에 복원한 것이다.
이 연대봉을 한자로 표기할 때 대부분의 문헌에는
'煙臺峯'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봉수대 바로 아래의 천관산 정상석에는
'烟臺峯' 으로, 그리고 이 복원된 봉화대의 석재 현판에는 '烟台峰'이라고
제각각 표기되어 있다.
어쨌든 '烟台峰'의 "台"는 원래 우리 말 표기상 '클 태'의 의미이므로
잘못된듯 싶다.
천관산 정상석 앞에서 기념촬영 후
서쪽 방향인 환희대 쪽으로 방향을 잡아 하산을 시작한다.
바람은 무척 차다.
마치 봄에서 금방 겨울로 변한듯 하다.
오후 1시19분
마치 겨울이 다시 찾아온듯 싶을 정도로 바람이 찬
정상부를 벗어나 바람을 막아주는 억새숲에서
대전에서부터 같은 버스로 동행한 일행들과 모여 앉아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하산길을 이어간다.
짙은 안개는 걷힐줄을 모른다.
날씨가 좋았으면 이 지점에서 뒤돌아 볼 때
이와같은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을텐데....
오후 1시26분
억새군락으로 이어지던 길이 끝나며 다시 기묘한 형상의
멋진 바위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이 바위의 이름은 '책바위'이다.
인적 없는 산속에서 책과 씨름하던
이름 없는 어느 선비나 신선이 보던 책을 덮어 올려둔듯도 하다.
오후 1시31분
해발 720m 대장봉(大藏峯) 정상부를 차지하는
이 바위의 이름은 '환희대(歡喜臺)'이다.
환희대 앞 안내 간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다.
"책바위가 네모나게 깎아져 서로 겹쳐 있어서 만권의 책이
쌓아진 것 같다는 대장봉(大藏峯) 정상에 있는 평평한
석대(石臺)이니 이 산에 오르는 자는 누구나 이곳에서
성취감과 큰 기쁨을 맛보게 되리라."
주위를 둘러 보아도 온통 짙은 안개뿐이다.
날씨가 좋았으면 이곳에서 이 사진에서와 같은
장관을 경험할 수 있었으리라.
오후 1시36분
환희대를 지나며 진행 방향이 북쪽으로 바뀐 하산길이다.
다시 멋진 바위들을 만나는 길이 이어진다.
이 바위는 얼핏 보면 함상궂은 산적 두목의
잔뜩 찌푸린 얼굴을 마주 대하는듯 느껴진다.
산적두목같은 바위를 지나니
바위 한 쪽에 고깔을 뒤집어 세운듯한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뛰 노는 어린이집의 한 모퉁이를 연상시키는
형상의 바위가 나타난다.
그리고 중간 부분에 안개 속에 희미한 윤곽이 보인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이곳 천관산의
대표적인 바위 봉우리중 하나인 천주봉(天主峯)의 모습이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보인다.
천주(天柱)를 깎아 기둥으로 만들어 구름 속으로
꽂아 세운 것 같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곳 천관산의 이름 유래 또한 정상부 부근의 수십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는 것이 마치 천자(天子)의 면류관과 같아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오후 1시41분
구정봉 옆으로 이어지는 우회로를 따라 하산길을 이어가며
위를 바라보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천주봉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후 1시51분
연이어지는 바위 능선길이지만
간혹 이와같은 안개비로 물기를 잔뜩 머금은 산죽길도 나타난다.
옷자락을 스치는 댓잎의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금강굴 입구에 마련된 제단에는
누군가가 찾아와 치성을 드리고 간 흔적이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고 미신이라며 못마땅해 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천차만별일테니 어떤이에게는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으리라.
큰 짐승은 새끼를 낳으며 둥지를 트기에도 어려울듯한 작은 굴인 금강굴.
그 앞에 거대한 넙적바위가 비스듬히 세워져 앞을 가로막고 있다.
신라 김유신(金庾信)과 사랑한 천관녀(天官女)가 숨어 살았었다하여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기도 하는 이곳 천관산.
혹시 천관녀도 잠시 머물렀던 곳은 아닐까?
오후 2시1분
안개 자욱한 노승봉을 뒤로하고 하산길을 이어간다.
날씨만 좋았다면 저 노승봉 뒷편으로
구정봉,천주봉이 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암릉의 장관을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난다.
만약 날씨가 좋았다면 이곳에서도
지금 이 사진에서처럼 노승봉 뒤쪽에 구정봉이 보이고
저 멀리 천주봉의 모습이 펼쳐지는 장관을 접할 수 있었으련만...
안개 자욱한 바윗길은 계속 이어진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바윗길을 따르는 하산길은
내리막 경사길인지라 더욱 조심스럽다.
자칫 실족이라도 하게되면 찾을 길이 없게 마련이다.
오후 2시10분
거의 암반으로 이루어진 바윗길 중간중간
이와같은 산죽군락으로 뒤덮인 운치있는 길도 이어진다.
안개 속에 묻힌 길을 지나노라면 으시시한 기분마저 든다.
삼국유사의 내용 중 '만파식적(萬波息笛)'에 대한 얘기가 떠오른다.
섬의 대나무를 잘라 만든 피리 소리는 휘몰아치는 파도를 잠재웠었다.
오후 2시12분
암반으로 이루어진 바위 길이 거의 끝나는 지점인 선인봉 부근에서
이와같은 거대한 자연이 만든 조형물을 만난다.
어쩌면 천관산 천자의 명을 받고 산을 지키는
선인(仙人)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오후 3시17분
암반지대가 끝나며 오랫동안 이어지는 하산길은
경시가 가파른 흙길이어서 물기를 머금은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한발한발 내딛느라 시간이 무척 걸렸다.
장천재 앞 도화교를 지나며 산길이 끝나고
오전에 산행을 시작한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에 다시 들어선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인 이 '장천재(長川齋)' 는
조선 중종 때 강릉참봉 위보현이 장천동에 어머니를 위해 묘각을 짓고
장천암의 승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 한다.
현재는 장흥위씨 방촌계파의 제각으로서 이용되고 있다.
장천재 앞 도화교 입구의 큰 소나무가
고색창연한 건물을 지키는 수호신인양 우뚝 서 있다.
장흥군 보호수로 지정된 이 소나무는 높이 20m로 600년 이상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 때 이곳에 건물을 지을 때부터 자라던 천연수라고 전해진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도로변 나무숲에서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진달래가 드문드문 눈에 띈다.
봄비에 젖은 우리 민족의 정과 한을 담은 진달래.
그 꽃잎 하나를 따서 입 안에 넣고 가볍게 씹어도 본다.
먹을 수 없는 철쭉과 달리 참꽃이라 부르기도 하는 진달래는
먹어도 되는 꽃이다.
사랑의 희열,신념,청렴,절제 등의 꽃말을 지닌 진달래꽃은
소월의 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오랜 옛적부터
우리 민족의 애(哀)와 한(恨)을 담고 있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꽃이다.
오후3시33분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며 봄비에 곁들인 짙은 안개속에서 이어진
4시간 반 가량의 산행을 마치고 귀가 길에 오른다.
새빨간 동백꽃과 흰 목련. 그리고 자목련의 색깔이 빗물에 젖어
각기 그 색깔을 뽐낸다.
흰 꽃이 피는 목련은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제주도가 원산인데 비해
자주빛을 띄는 자목련(紫木蓮)은 중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지도상에 청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이날 산행 경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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