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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을 거쳐 춘향의 체취가 느껴지는 구룡계곡으로

2012년 8월12일 일요일 오전 10시29분<br>
지리산 둘레길 일부 구간을 거쳐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구룡계곡으로 이어지는 산행을 위해
전북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에서 첫 걸음을 시작한다.
이곳은 최근 전 22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개통된  총 거리 274km에 달하는
지리산 둘레길 중 제 1구간 시작점이기도 하다.




산행객이 아닌 지리산 둘레길을 가볍게 걷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이 더 많은 곳이건만
찜통 더위에 이어진 전국적인 비 예보 때문인지 인파로 붐비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곳 남원(南原)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도 으뜸가는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이름을 얻은 연유 또한 1,400여년 전 통일 신라 초기부터
남쪽 지방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라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모내기철의 극심한 가뭄은 물론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듯 퍼붓던 여름 장마에 이어
마치 용광로의 쇳물처럼 온 천지를 태워버릴듯 들끓던 폭염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난
우리 국민의 생명줄인 벼가 탐스럽게 익어간다.

세계적 추세인 자유무역 협정이 지구상 모든 국가 사이에 남김 없이 체결 되더라도
우리의 주식인 쌀의 자급자족만은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꼭 지켜야 할
우리 민족의 최우선 과제임을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할 때인듯 싶다.




바라 보기만해도 배 부름을 느끼는 논둑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이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을 가로 지르는 징검다리 위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한다.

주천면이라는 동네 이름을 예전에는 '주례(周禮)"로 부른적이 있다 한다.
동네 사람들이 주역을 많이 읽어(周) 예의 바른 생활(禮)을 했기 때문이라는데,
그 후 마을 주위로 맑은 물(川)이 흐르는 이유로 '주천'으로 바뀌었다 한다.




오전 10시37분
'비부정(沸釜亭)'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색창연한 음식점 앞을 지나며 지리산 둘레길은 이어진다.
'끓을 비(沸)' 에 '가마솥 부(釜)' 를 썼으니 예전의 음식점 치고는 괜찮은 편이었을듯 하다.
끼니 때마다 밥  그릇 옆에 국이 나와야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네 음식문화를 가늠해 볼 때 가마솥에서 펄펄 끓고 있는 구수한 국 한 그릇 이상으로
구미를 돋우는 우리 음식이 달리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전 10시45분
내송마을 와등 삼거리를 지난다. 이제 1km 남짓 걸어왔음에도
습도가 높은 여름 날씨는 온몸을 땀으로 흥건히 적셔 놓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길섶에 몇 그루 서 있는 키 작은 밤나무 가지마다 탐스럽게 달린
싱싱한 밤송이가 잠시나마 더위를 가시게 한다.




밤나무 몇 그루를 지나치며 이번에는 크기가 작아 앙증스럽게까지 여겨지는 야생화의 하나인
닭의 장풀이 온통 무리를 지어 피어난다.

한국·일본·중국·우수리강(江) 유역·사할린·북아메리카 등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는 1년생 풀인 이 야생화는
봄에 어린 잎을 식용함은 물론 한방에서는 잎을 압척초(鴨衫草)라는 약재로 쓴다.
열을 내리는 효과가 크고 이뇨 작용을 하며 당뇨병에도 쓴다.
생잎의 즙을 화상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 넓지 않은 고구마밭 한 켠에서는 수줍은듯 살며시 고개를 내 민 고구마 꽃이 몇 송이 피어 있다.
동행한 일행들 중 대다수가 고구마 꽃을 처음 보는듯 아이들 마냥 즐거워 한다.

춘원 이광수가 '백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꽃'이라 칭했을 정도로 옛부터 길조로 여겨왔던 고구마 꽃.
중남미가 원산인 고구마가 온대지방인 우리나라에서 피는 경우는 과거에는 극히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수년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고구마꽃이 핀 사례가 무수히 전해지고 있다.




오전 10시 57분
이곳 지리산 둘레길 1구간을 탐방하는 이들이 거의 반드시 쉬어간다고 알려진
'개미정지'에서 우리 일행도 예외없이 비교적 긴 휴식을 취한다.
여기서 '정지'라 함은 피곤한 길손이 쉬어가는 장소를 말함인데,
앞에 붙은 '개미'는 이곳 내송마을에서 태어난 조경남 장군:1570년(선조 3) ~ 1641년(인조 19):과 연관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운봉 황산에서 구례로 넘어가는 구룡치에서 왜군과 대적 중 피로에 지쳐 졸고 있을 때
개미가 발 뒷꿈치를 물어 잠이 깬 덕분에 왜군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한다.




개미정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 나무 숲 아래에서 가녀린듯 분홍빛을 머금은 어여쁜 야생화를 만난다.
이후 오후 산행이 끝날 때까지 수시로 눈에 띌 정도로 많이 피어있던 이 꽃의 이름은 "꽃며느리밥풀"이다.

시어머니에게 구박받으며 쌀밥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죽은 불쌍한 며느리의 무덤 위로 피어난 꽃.
이 애처로운 야생화는 분홍 빛 입술에 흰 밥알 두 알을 물고 피어난다.
이 땅의 모든 시어머니들은 대오각성하여 "꽃며느리밥풀"은 물론
"며느리밑씻개"라는 요상한 이름의 야생화에게도 이름을 바꿀 명분을 제공하기 바란다.




오전 11시10분
개미정지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일행들은 다시 완만한 오르막 경사의 소나무숲길을 따라 걸음을 이어간다.
비록 습한 날씨로 인해 많은 땀을 흘리기는 하지만
나무숲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듬뿍 받아들이며 걷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숲길이다.
우리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뿜는 나무는 편백나무이며
그 다음으로 전나무, 소나무 등의 침엽수들이 우리 몸에 가장 좋다고 한다.




소나무 숲 아래에서는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도 그 이름이 등장하는
'마타리'가 화사하게 피어난다.
꽃말이 '무한한 사랑'인 이 꽃처럼 '소나기'의 그 소년은 아마도
소녀를 무한정 사랑했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 원산인 이 야생화는 똥과 오줌의 고어(古語)인 ‘말’에 ‘다리’를 합쳐서
똥 냄새가 나는 다리 긴 풀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졌다는 얘기도 있는데
뿌리에서 장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해서 패장(敗醬→깨트릴 패, 젓갈 장)이라고도 불린다.




새벽녘에 잠시 뿌린 빗물을 잔뜩 머금은 '으아리'도 그 흰빛을 더하며 예쁜 자태를 뽐낸다.
우리나라 원산인 이 야생화는 덩굴식물로 고려 때의 이두명칭은 거의채(車衣菜)였는데
'동의보감'등 옛 문헌에는 '술위나물뿌리' , '어사리' 등으로 나오는바
'으아리'라는 이름은 '어사리'에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혈압,혈당을 내려주는 효과 외에도 간염,관절염 등 약효가 뛰어난 약용식물로 알려져 있다.




오전 11시29분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이 경과하자 많은 이들이 땀과 피로에 기진맥진이다.
간혹 '지리산 둘레길'이라는 명칭에서 우리가 평소 다니는 길로 생각했던 이들에게는 큰 고통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점의 해발고도가 150m 정도인데 반해 지금 향하고 있는 구룡치의 해발고도는 525m 이니
이처럼 급경사 오르막길이 연이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급경사 오르막길 옆 나무 그늘 아래에는 산수국 몇송이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타이완 등지에 분포하는 이 꽃은 요즈음은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가장자리에 핀 희고 예쁜 꽃은 중성화로 씨를 맺지 못하며 벌,나비를 유혹하는 일을 하고,
중앙부의 양성화가 열매를 맺는 특이한 꽃이다.
이런 류의 꽃 중 잘 알려진 꽃에는 백당나무 꽃도 있다.




남쪽으로 급경사 사면을 이루는 숲길을 지난다.
햇빛이 잘 드는 남쪽으로 가지를 뻗으며 자란 소나무들이 눈을 즐겁게한다.
다른 식물들에게 해로운 독성을 내뿜어 주위에 키 작은 나무나 풀이 잘 자라지 못하게 하는 소나무.
누군가는 이처럼 포용력이 없는고로 소나무가 '사군자'에 끼지 못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지리산의 비옥한 토지는 소나무 바로 밑에 자라는 작은 잡풀들에도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한다.




낮 12시29분
해발고도 500m 가까운 지점에서 남서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사방으로 부드럽고 낮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싼듯한 아담한 주천면 마을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아담한 농촌 마을을 바라볼 때면 항상 떠오르는 느낌은
따뜻한 어머니의 품 속이다.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낮 12시48분
산행 경험이 많지 않은 몇몇 일행들과 보조를 맞추느라 당초 예상시간보다 늦어지긴했으나
오늘 산행 구간의 가장 높은 지점인 해발고도 525m 지점의 구룡치에 도착했다.
옛적부터 남해안 바닷가의 해산물이나 소금 등 물품을 남원장으로 팔러 다니던 장사꾼들이
달콤한 휴식을 취하던 곳이 이곳 구룡치이다.




나무로 만든 구룡치 이정목의 해발고도 표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유난히 숫자 9를 좋아한 우리 조상들. 9마리 용이 계곡의 9개 못에서 승천했다하여 이름 붙여진
구룡치(九龍峙)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곳곳의 산지에 산재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고개를 뜻하는 "치(峙)" 라는 단어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원래 순 우리말로 고개를 뜻하는 단어는 "티"이다.
일례로 많은 지방에 "말티고개" , '불티고개" 등의 명칭이 지금도 쓰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를 강제 점거한 일본인들은 "티"를 표기할 한자어가 없음을 기화로
자기네가 쓰는 한자어인 "치(峙)"로 우리나라 곳곳의 지명을 바꾸어 버렸다.
일제의 잔재인 이 "치(峙)"를 하나하나 "티"로 고쳐 나가는 것도 오늘을 사는 우리 국민들의 의무가 아닐까 한다.




오후 1시27분
구룡치의 나무숲 그늘에서 점심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걸음을 옮긴다.
오전에는 오르막 경사를 오르느라 무척 힘들었지만 이제부터는 완만한 내리막 경사길인데다
산길 또한 걷기 편한 오솔길이다. 몸과 마음이 두루 편안해짐을 느낀다.




오후 1시42분
소나무 두 그루가 진한 사랑을 나누듯 엉켜 있는 연리지(連理枝) 앞을 지나며 오솔길은 이어진다.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 희귀한 현상의 이 연리지는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진한 것을 비유하며 예전에는 효성이 지극한 부모와 자식을 비유하기도 하였다.




오후 2시
오솔길 옆에 자리 잡은 작은 연못가를 지난다.
지난달 다녀온 강원도 양양의 '소똥령숲길' 구간에서는 이런 연못 가에
"멧돼지 물 먹는 자리"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으며,
수년 전 다녀온 지리산 둘레길 일부 구간의 등구재(登龜재)를 넘어 창원 마을로 향하는 길 숲 속의
이보다 조금 큰 연못에는 "동물들의 오아시스"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원래는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인간들이 만든 저수지였을 터인데
이제는 야생동물들이 물을 마시고 목욕도 하는 또 다른 생명의 옹달샘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공생하는 현장이다.




오후 2시3분
'사무락다무락'이라는 이정목이 서 있는 돌탑 앞에서는 추억남기기를 위한 셧터 소리를 귓전으로 들으며
잠시 걸음을 멈춘다.
사무락이라 함은 "사망(事望)". 즉,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한다는 의미이며
다무락이라 함은 담벼락을 뜻하는 남원 사투리이니
'사무락다무락'은 지나는 길손들이 자신들의 소원을 빌며 돌을 올려 놓아 쌓이게 된 돌탑을 말함이다.




오후 2시24분
지리산 둘레길 1구간 탐방객을 위한 쉼터 중 하나인 회덕마을 쉼터에는 매점이 자리잡고 있다.
더위와 피로에 지친 일행들은 너도나도 각종 음료수를 하나씩 집어 들고 목을 축인다.
이곳에서 지리산둘레길 탐방객들은 동쪽으로 계속 발걸음을 이어 운봉 쪽을 향하게 되고
구룡계곡으로 향할 우리 일행들은 서쪽으로 방향을 180도 틀어
구룡계곡을 따라 산행길을 이어가게 된다.




오후 3시6분
회덕마을 쉼터를 떠난 직후부터 퍼붓기 시작한 소나기가 20분 이상 이어지며 온몸은 빗물로 흠뻑 젖었다.
3시간 이상 손에 들고 다니던 카메라를 비닐로 꼼꼼히 싸서 배낭에 단단히 갈무리 한 후
방수팩에 담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산행길을 이어간다.
이제부터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미끄러운 바윗길인지라 한 손에 우산을 받쳐 든 일부 산행객들의 안전이 우려된다.




오후 3시19분
이곳 구룡계곡의 경치 좋은 곳을 골라 이름 붙인 구룡9곡 중 제9곡인 구룡폭포의 물줄기는
내리는 소나기 덕분에 무척 세차게 흐른다. 바위를 때리며 흰 포말을 만드는 소리 또한 우렁차다.




빗물에 젖어 미끄러운 목재 계단을 따라 조심스레 올라간 구룡폭포 상단부의 물줄기 또한 무척 세차게 흐른다.
난간에 기대에 세차게 흘러 내리는 폭포를 바라보며 이번 여름 가마솥 더위에 찌든
몸과 마음의 때를 씻어낸다. 흐르는 물줄기가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전망대 뒷편 큰 암반에는 형제 지간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의 이름과 함께
"방장제1동천"이란 글귀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대부분의 탐방객들은 이 글귀를 그냥 생각없이 지나쳐 버린다.

"지리산(智異山)"이란 이름은 어리석은 사람도 산에 들어왔다 나가면 지혜롭게(智) 달라진다고(異)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과거에는 백두산이 흘러내리다 멈춘 산이라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 불리기도 했고,
또 다른 이름으로는 중국의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에 대비되는 산이라 하여
방장산이라 불리기도 했었던 산이라는 것을 알고 지나갔으면 싶다.




오후 3시24분
빗줄기가 점점 세차게 변한다.
세찬 계곡물이 흐르는 위를 지나는 출렁다리가 위태로워 보인다.
스마트폰의 방수팩 위로 흐르는 빗물이 사진으로도 선연히 나타날 정도의 세찬 빗줄기가 이어진다.




오후 3시36분
구룡폭포를 지난 후 다시 오르막 바윗길을 오르면 위엄있게 생긴 장군바위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는 서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구룡계곡의 장관을 볼 수 있지만
세찬 빗줄기와 안개로 인해 오늘은 멋진 경치를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장군바위 아래쪽의 구룡구곡 중 하나인 비폭동을 이루는 물줄기의 윗부분이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다.
바위 봉우리인 반월봉에서 비폭동으로 흘러 내리는 물줄기가 바위 위에 흰 줄을 그어낸다.




오후 3시46분
이곳 구룡계곡의 제7곡인 '비폭동(飛瀑洞)'에 도착하니 세차게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춘다.
아름다운 경치를 온 몸으로 느낀다.
반월봉에서 흘러 내린 계곡 물이 이곳 폭포에서 떨어지며
아름다운 물보라(泡沫:포말)가 생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는듯 하다하여 얻은 이름이다.
이곳 비폭동의 모습은 맑은 날이나 비가 내릴 때나 눈으로 보이는 풍경에 큰 차이가 없음이 특이한 점이다.




오후 3시51분
맑은 날이었으면 이곳에서 물놀이로 더위를 식히며 한동안 머물렀겠지만
잠시 멈춘 소나기가 언제 또 세차게 퍼 부을지 알 수 없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자리를 뜬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하산길은 흐르는 물소리를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바위에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흰 포말을 눈으로 즐기는 시간이다.

水滴穿石(수적천석/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 이어가야만 성공할 수 있음을
3.2초의 카메라 셔터 노출로 찍은 저 비단결처럼 곱게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배운다.




오후 4시15분
제5곡인 유선대(遊仙臺)앞 물가에서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신선놀음을 해 본다.
오전 10시 반 산행을 시작하며 땀에 절은 옷에 세찬 소나기를 연이어 맞았으니
소금기 배인 옷에 몰꼴은 흡사 물에 빠진 생쥐 꼴인데 시원한 계곡물에 온몸을 담그니 천당이 따로 없다.
마음 속으로는 몇 번씩이고 신선이 되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반복을 홀로 이어본다.




오후 4시21분
다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행복했던 신선놀음은 더 이상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룬채 다시 온 몸으로 세찬 소나기를 맞으며 하산길을 재촉한다.




오후 4시33분
이곳 구룡계곡의 제9곡인 구룡폭포에서 1.95km 거리인 이 지점에 놓인 저 다리의 이름은 '사랑의다리'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좀 생뚱맞은 느낌이다. 이제 정령치,성삼재로 향하는 737번 지방도로와 연결되는
구룡계곡 시작 지점인 60번 지방도로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800~900m 정도이다.
일행 중 부부가 동행한 커플이 몇 커플 있기에 그들을 사랑의다리 위에 세워 놓고 멋진 포즈로
셧터를 눌러볼까도 했으나, 심술궂은 날씨는 이 순간 앞을 분간 못할 정도의 세찬 빗줄기를 퍼붓는다.
빗물이 스마트폰 렌즈의 시야를 가로막는다.




사랑의다리를 지난지 얼마 후 짙은 나무숲이 세찬 빗줄기를 조금은 막아주는 숲속에서 반가운 야생화를 만난다.
여인의 복수, 장대한 아름다움 등의 꽃말을 지닌 여름 야생화인 '천남성'은 특이하게도
비록 여러해살이이긴 하지만 풀이면서도 암,수 딴그루의 식물이다.
이 사진의 천남성은 암포기이며 가을이 되면 열매가 붉은색으로 익는다.
천남성의 수포기의 경우는 보라색의 꽃밥만 달릴 뿐이다.




오후 4시45분
'챙이소(서암)'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바로 이곳이 구룡계곡의 제4곡인 '서암'이다.
빠른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챙이'처럼 생겨서이고
또한, 중이 꿇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바위라해서 '서암'이라고도 불리운다.
하지만 안목 낮은 내 눈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 여기서 "챙이"란 '키의' 이 지방 사투리인데,
'키'는 수확한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를 말함이다.




잠시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 비닐로 단단히 갈무리한 카메라를 꺼낸다.
챙이소 앞의 너른 바위에 걸터 앉아 쉴새없이 만들어지는 흰 포말을 바라보며
세찬 자연의 소리를 귓속으로 담는다.
비록 흰 포말을 일으키는 세찬 물줄기이지만 2.5초간의 포말을 하나로 이으면 이처럼 비단결로 변한다.
모든 사물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님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오후 4시50분
'구시소'라는 안내간판이 붙어 있는 곳에 도착해 잠시 멈춘다.
떨어지는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마치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유처럼 생겼다하여 이 지방 사투리인 '구시'를 써서 '구시소'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한다.
아마 이곳도 폭우로 인한 홍수 등으로 과거의 모습은 크게 변했으리라.




오후 4시56분
구룡계곡 입구임을 알리는 안내석이 세워져 있는 60번 지방도에 도착하며
6시간 넘게 이어진 산행길은 끝이 난다. 이제 빗줄기도 거의 멈추었다.




오후 4시59분
일행들이 한데 모여 보리 비빔밥으로 허기를 떼우게 될 식당으로 향하는 길
'용호서원'앞에서 잠시 음료수 한잔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

이 용호서원(龍湖書院)은 1927년에 설립된 남원 주천면 일대의 유림서원으로 알려져 있다.
400여년 전부터 이어 온 남원 원동향약계라는 선비들의 모임이 근원이 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조 명종 10년 광주의 선비 박광옥(朴光玉)이 서장관 신분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중국의 주자와 여대균의 영정을 들여 와서 남원부 풍천 노씨의 집에 봉안해 오던 것을
부근 고종 23년 용호사에 보관케 되었고,
이후 몇 차례 떠돌던 주자영정이 이곳 용호서원에도 머문 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주천면 호경리에 어진가에 보관되어 있다는 얘기는 들은바 있다.




육각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육모정(六茅亭)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정자는
1572년(선조 5) 남원도호부 관내에서 만들어져 현재까지 유지·계승되고 있는
원동향약(源洞鄕約,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46호) 관련 유적으로,
향약계원들이 모임을 하던 곳이다.
1961년 수재 때문에 유실되었다가 1997년 복원되었다 한다.




육모정 바로 아래 계곡의 물 깊은 곳을 용소라 부르며
그곳이 이곳 구룡계곡의 제2곡이라는 애기는 들은바 있기에
육모정에 올라 난간 아래 계곡을 배려다 보았지만 분명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본 후 육모정을 떠난다.




오후 5시 6분
육모정 맞은 편에 자리한 춘향묘 입구이다.
이 춘향묘 [春香墓]는 1962년 현 위치에서
'성옥녀지묘'라 새겨진 지석(誌石)이 발견되어 묘역을 단장하였다고 전해지며,
1995년 정비작업을 하여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
춘향이 실존인물이 아닌 만큼 이 무덤은 시신이 있는 진짜 무덤은 아니다.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긴 시간동안 육모정에 씌여있는
춘향찬가를 읊조려 본다

춘향찬가(春香讚歌)

南原(남원) 골 늘 푸르른
貞烈(정렬)이 여기 있네
萬人(만인)들 가슴마다
사랑을 새겨두고
그 날의 그리던 情(정)을
靑山(청산)속에 엮는가

六芽亭(육모정) 맑은 여울
龍湖洞(용호동) 홀로 누워
桂觀(계관)의 廣寒戀情(광한연정)
아련히 되새길 때
이 밤도 달과 별들은
御史出頭(어사출두) 알리리

東軒(동헌)의 十杖守節(십장수절)
그 丹心(단심) 다진 婦道(부도)
두고 온 李花春風(이화춘풍)
千世(천세)의 香薰(향훈)으로
오늘도 임의 모습이
烏鵲橋(오작교)에 이르네





오후 5시15분
이끼가 잔뜩 낀 어느 집 담장 너머로 주황빛 능소화 한 송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중국이 원산지인 능소화 꽃은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부 지방 이남의 절에서 관상용으로 많이 심어 왔다.

그러나, 이 능소화 꽃의 경우 꽃가루의 미세 구조가
갈퀴와 낚시 바늘을 합쳐 놓은 듯한 형태를 하고 있어서
일단 피부에 닿으면 잘 떨어지지 않고 염증을 일으키기 쉬운데,
특히 눈은 점액이 있고 습기가 있어서 일단 부착이 되게 되면
비비는 행동에 의해 자꾸 점막 안으로 침투하여 심한 염증을 유발하고,
심지어는 백내장 등 합병증에 이르기도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오후 5시22분
주위의 호수 경치가 아름다워 '호경(湖景)'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마을 표지석 부근에 도착하여
7시간 여 전에 시작한 발걸음을 멈춘다.
소나기가 멈춘 후 야트막한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옅은 안개가 정감을 느끼게 한다.
오전의 더위에 이어 오후에는 세찬 소나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이어진 산행길.
비 개인 후의 시원한 산골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며 행복했던 휴일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지도상에서 적색 실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날 산행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