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암 입구 마애삼존불상이 자리한 전각 앞 큰 바위에는
이처럼 태을동천(太乙洞天)이라 새겨져 있다. 19세기 후반 김규황이라는 분이 쓴 글이다.
또한 태을암"이란 명칭은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원래 경상북도 의성현에 있던
국조(國祖)인 단군의 영정을 모신 태일전을 옮겨와 이곳에 봉안함으로써,
단군의 가호를 받아 민생 안정을 도모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실증(實證)된 것은 아니다.
낮 12시14분.
태을암의 대웅전을 뒤로하고 하산을 계속한다.
암자의 대웅전 치고는 지나치게 크고 화려하게 꾸민듯하다.
과연 작은 암자의 주불전을 이처럼 화려하게 팔작지붕의 거창한 건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이처럼 외양만 번지르르한 곳보다는
겉보기는 초라해도 마음이 큰 믿음을 더 원하실 것 같다.
매주 주말 산행에서 마주치는 달동네의 개똥보다 흔히 보는
마타리의 노란색이 빗물을 머금은 때문인지
유난히 밝고 환하게 보인다.
우중 산행의 좋은 점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낮 12시30분.
태안초등학교 교정이 내려다보이는 교장바위 위에서
태안읍을 내려다 본다.
교장바위는 일제강점기에 태안보통학교(현 태안초등학교) 교장을 지내며
조선 학생들을 위해 헌신한
일본인 "니까로 히따로"의 인품을 기리기 위해 학생들이
기념비를 세운적이 있고,
그 교장이 학생들과 소풍을 와서 같이 점심을 먹었던 자리라고 한다.
일본인답지 않은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모양이다.
낮 12시 40분.
훌륭한 일본인의 인품을 기리는 의미의 교장바위 조금 아래
이번에는 훙악한 왜놈을 상징하는 '태안지역동학전래비'를 지난다.
1894년 10월 28일 홍주전투에서 관군과 왜군 연합군에게 패배한다.
이 비 뒷편에는 "斥洋斥倭(척양척왜)"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오후2시9분.
백화산 산행을 마친 후 다음 목적지인 바람아래해수욕장에 당도했다.
이 바람아래해수욕장은 태안군 남쪽의 안면도에 위치한 곳으로
안면도 최남단인 태안군 고남면 영목항 조금 못미친 곳의 해수욕장으로
해수욕 시즌에도 비교적 한가하고 주위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해수욕객도 모두 떠난 여름의 막바지
마침 썰물 때라 물 빠진 갯벌 가장자리까지 나온 갈매기
내리는 비를 맞아 헝클어진 깃털로 몰골은 보발 것 없지만
먹이를 찾는 부리와 눈매는 날카롭기만하다.
양식장을 누비며 잔일을 도맡아하는 작은 동력선이
모래톱에 걸쳐 있고, 그 주위의 잡풀과 죽은 나뭇가지의
모습만으로도 철 지난 해수욕장 주변의 느낌이 전해진다.
이제 막 물이 빠지기 시작하는 모래 사장에는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살펴 보면 수많은 생물의 꿈틀거림이 보인다.
새끼 손톱만한 작은 게도 생존을 위한 치절한 몸놀림으로 바쁘다.
물 빠진 갯벌에서 조개를 잡는 사람들, 그리고 먹이를 찾는 갈매기.
3대 1의 경쟁이지만 한참을 바로 보니 갈매기의 수확량이
인간 3인의 협력보다 더 알차 보인다.
불과 보름전만 하더라도 뜨거운 태양 아래
수많은 젊음이 약동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을 저 넓은 모래 밭에서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곳에서
갈매기들은 오랜만에 여유로운 먹이 사냥을 즐긴다.
물 빠진 갯펄 한 쪽에서는 손에손에 삽과 맛소금을 들고
조개,맛조개 등 해산물을 잡기 위해 땀을 흘린다.
작은 구멍에 맛소금을 뿌리면 속살을 내미는 맛조개를 촬영하기 위한
기회를 찾았으나 좀체로 속살을 내미는 맛조개를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오후 4시4분.
썰물이 빠져나간 모래사장의 S자 물길을 뒤돌아보며
바람아래해수욕장을 떠난다.
8월의 마지막 일요일.
이제 비는 그쳤다.
여름의 끝을 놓고 귀가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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