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30일 일요일 오전 10시5분.
새벽부터 가을을 재촉하는 빗줄기가 줄기차게 내리는 중
아침 8시 대전을 출발하여 충남 태안군 태안읍을 향한지 두 시간 남짓.
휴식을 겸해 잠시 머문 충남 서산군 해미면의 해미읍성 .
1491년(성종 22년)에 서해안 방어의 임무를 위해 축조되었던 곳.
옛 영화를 잃고 쇠락해 가던 이곳이 500년이 지난 후
이제 제 모습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엿보인다.
2만여평에 달하는 넓은 성내를 빗줄기가 촉촉히 적셔준다.
오전 11시2분.
빗줄기는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태안읍에 자리한
태안체육관 앞에서 우비 등으로 우중 산행 준비 후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들머리에서 오래 전 우리 선조들이 흉년이 들면 비늘줄기와 어린 잎을
엿처럼 오랫동안 조려서 먹었던 구황식물(救荒植物)의 하나이던 무릇이
함초롬히 온 몸으로 비를 맞은 채 나를 반긴다.
이 무릇은 뿌리를 구충제로 사용하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야자고, 천산 등으로도 불리운다.
오전 11시6분.
오늘 이곳 태안군 태안읍의 백화산 산행은 산행이라기보다는
동네 뒷산 산책에 가까운 편이다.
다만 가는 여름이 아쉬워 사방으로 바다 조망을 할 수 있는 이곳을
둘러본 후 안면도 최남단의 바람아래해수욕장에 들러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여름의 끝을 놓아주려 함이었다.
그러나, 동네 뒷산쯤으로 여겼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처럼 멋진 암석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지난 봄 다녀온 서산 팔봉산의 줄기와 연결된 산이라는
얘기가 허언이 아님을 실감한다.
해발 100m도 채 못되는 곳이건만 이처럼 기기묘묘한 암석들이
연이어 눈 앞에 펼쳐진다.
오전 11시11분.
줄기차게 이어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한 편으로는 비닐로 보호한 카메라 렌즈를 분주히 닦으며
하는 산행은 무척 조심스럽다.
멀리 북서쪽으로 백화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바위 능선으로 이어진 산세를 보니
산 전체가 흰 돌(白石)로 덮여있어 그 모양이 괴이하여,
봄이면 마치 부용화(芙蓉花) 같기도 하고,
또한 가을이면 돌 꽃이 활짝 핀 것 같아 이름이
백화산(白華山) 으로 붙었다는 얘기가 실감이 난다.
흙길이 거의 없이 이와같은 바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산은 참 보기 드문 경우이다.
이처럼 야트막한 산 거의 전체가 암반이다보니
소나무 외의 활엽수는 자라기가 어려운 여건이다.
남쪽으로는 태안읍이 내려다 보인다.
이 백화산은 서울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조선조(朝鮮朝)500년간
태안에서 과거(科擧)에 급제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백화산이 만약 흑화산(黑華山)으로 변모할 때는
이 태안에서 문만무천(文萬武千)이 난다고 전하여 내려왔다한다.
다행히도 일제말엽(日帝 末葉)에 들어와 소나무가 울창해져 산을 덮었으므로
태안 사람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한다.
그러나 해방과 더불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도벌과 남벌로 인하여 흑화산이
다시 백화산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태안에서는 출세한 사람이 없다는
자조섞인 태안 사람들의 말들이 전해 지기도 한다.
오전 11시30분.
산행이 어어진 30분 동안 지나친 특별한 모양의 바위만도
십여개가 넘는다.
만약 이 산이 여타 유명산처럼 많은 산행객들이 탐방하는 곳이라면
아마도 각각의 바위마다 멋진 이름이 붙여져 있을듯하다.
이 두개의 바위 중 왼쪽 바위 하단부에 '흔들바위'라고
씌어진 금속 부조물을 붙여 놓았다.
이첨 바위에 인공적인 금속 부조물로 이름표를 붙인 것 또한
여타 산에서는 보지 못한 특이한 경우이다.
이처럼 흙길을 밟고 지난는 곳이 나타나면 반가운 곳이 이곳 백화산이다.
그러나, 흙이 거의 없는 바위산이다보니
활엽수로 우거진 울창한 나무 숲은 보기 힘들고
거의가 소나무들이다.
오전 11시35분.
해발 200m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이와 같은
거대한 암반들이 연이어 앞길을 막는다.
계속 내리는 비를 머금은 바위들이 미끄러운 곳도 자주 만난다.
동네 뒷산이라고만 여기며 방심하다가는 사고 나기가 십상이다.
구름이 낮게 깔린데다 계속 내리는 비 때문인지
해발 100여 m 정도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허리에도
운무가 멋진 경치를 연이어 만들어낸다.
옅은 운무에 휩싸인 늦여름 한낮의 농촌 풍경이
무척 아늑하게 여겨진다.
이제 막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벼 이삭들이
물기를 머금으니 더욱 싱그러워 보인다.
오전 11시48분.
정상 바로 아래 고려 충렬왕 13년(1286년)에 돌로 쌓은 성터가 있고.
그 옆에 자리 잡은 큰 암반에 쌍귀대(雙鬼臺)라고 새겨져 있는데,
나의 지식이 짧아서인지 유래,용도 등에 대해서는 들은바 없고,
문헌에서도 보지 못했다.
조만간 풀어야할 숙제로 남긴다.
오전 11시50분.
산행 시작 50분만에 오른 정상에서 우비 차림의 산행객들은
사방이 탁 트인 조망에 감탄한다.
다만 꾸준히 내리는 비와 함께 몰려든 짙은 운무로 인해
멀리 바다를 직접 조망하지 못함을 아쉬워할 뿐이다.
멀리 가로림만 쪽으로도 시야가 흐리다.
산허리를 돌아드는 운무가 빠른 속도로 형체를 바꾼다.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짙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올 것 같다.
정상 표지석에 해발 284m로 새겨져 있다.
남해안의 작은 섬을 제외하면 해발 284m에서 사방을 조망하면서
북쪽, 동쪽,서쪽 모두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을듯하다.
낮 12시6분.
거대한 암반 위에 홀로 선 정상 표지석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빗방울로 얼룩진 카메라 렌즈를 계속 닦아가며 사진을 찍기가 무척 번거롭다.
날씨만 좋다면 좀 더 오랜 시간 머물다 가고픈 멋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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