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26일 일요일 낮 12시11분.
휴일 아침 8시 대전을 떠난 산악회 버스가 간간히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을 달려
호남고속도로와 서해안 고속도로를 거치고 진도대교를 지나 이곳 전남 진도군 의신면
첨찰산 기슭 쌍계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낮 12시경.
쉴새없이 도착하는 산행객들을 토해낸 버스가 주차장에 채 자리 잡기도 전에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쌍계사 일주문을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낮12시 15분.
일주문 현판과 흡사한 현판을 붙여 놓은 천왕문을 지나 쌍계사 경내로 들어서니
번잡함을 우려하던 나의 기우가 헛된 것임을 느끼며 마음이 차분해 진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작은 암자에서나 느낄 정도로 인적이 거의 없이 조용하다.
조용하고 차분한 여정을 즐기는 내 마음을 그 많은 성급한 산행객들이 읽은 것일까?
쌍계사는 거들떠 보지도 않은채 무엇에 쫓기듯 산속으로 급급히 뛰다시피 사라진 그들이 고마울 뿐이다.
조용히 신록으로 물들어 가는 사찰 경내의 분위기를 맘껏 즐긴다.
전남 해남 두륜산 자락에 위치한 대흥사 [大興寺]의 말사인 이곳 쌍계사[雙溪寺]는
857년(신라 문성왕 19년)에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고 전해 진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대웅전의 소담스러움이 너무나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특히 최근 들어 대부분의 사찰들이 대웅전을 볼성 사납게 크고 화려하게 만드는 풍조가 있는고로
대웅전 건물은 대부분 팔작지붕이고 간혹 우진각 지붕이 있으나
이처럼 간소한 맞배지붕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찰들이 돈 맛을 들여 염불에는 관심없고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낮12시35분.
쌍계사를 나와 본격적으로 해발 485m인 첨찰산 정상을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이처럼 맑게 흘러 내리는 계곡 물소리가 정상 부근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점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조금 전 들렀던 쌍계사[雙溪寺]라는 이름이 쌍계사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계곡 물이 흐른다 하여붙여진 것임을 실감케 한다.
더구나 엊그제 비가 내린 덕분에 이처럼 맑은 계곡물의 흐름과 오케스트라의 명연주를 능가하는
시원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행복까지 얻은듯하여 발걸음이 너무나 가볍다.
계곡 옆을 따라 이어진 산길은 이처럼 낙엽이 겹겹이 쌓여 운치를 더해준다.
또한 유난히 많은 동백나무숲이 이처럼 터널을 이루어 삭막한 내 정서를 시인의 마음으로 이끌어 준다.
간혹 바닥에 떨어져 시들어가는 선홍빛 동백꽃을 보며
내년 이른 봄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다짐하며 걸음을 이어간다.
우거진 동백나무에 가려 햇빛을 제대로 못받은 때문인지 진하게 이끼가 낀 바위 사이를 맑은 물이 힘차게 흐른다.
큰 바위의 도움으로 물의 흐름을 4초간의 노출로 잡아 보았다.
나무에서 떨어진 선홍빛 동백꽃들과 진한 이끼로 덮인 바위들에게는 긴 시간이지만 흐르는 물은 촌음을 다툰다.
이런 여유를 갖지 못한채 쏜살같이 이 길을 지나친 대부분의 성미 급한 산행객들이 측은하게 여겨진다.
진한 숲의 냄새,그리고 아름다운 음악같은 물소리를 천천히 음미하지 못하고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산길을 오르기만 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렇게 여유없는 산행을 하려거든 시간과 값비싼 교통비 낭비하지 말고,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100m 달리기 하듯 냅다 뛴 후 집구석으로 들어가 들어 누워 있으라고..
오후 1시36분.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남짓만에 해발 485m 첨찰산 정상에 올랐다.
남동쪽 능선을 따라 멀리 해안선 쪽을 바라보니
마치 지리산 노고단에서 운해로 덮인 산 아래를 내려다 보던 느낌이 온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짙은 구름이 덮인 찌뿌둥한 날씨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색다른 맛이다.
정상에 있던 조선시대에 설치했던 옛 봉수대 자리는 작은 돌로 탑처럼 쌓아 놓았다.
멀리 동쪽으로 보이는 구조물은 진도 기상대의 모습이다.
지붕 위의 둥그런 원형 구조물인 기상레이더를 보며 기상 관측 요원은
진도 주위 바다와 섬들의 현재 기상 상태를 레이다로 관찰하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멀리 울돌목 쪽을 바라 보니 해남군 문내면과 진도군 군내면 사이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으로 유명한
울돌목을 가로 지르는 한국 최초의 사장교(斜張橋)인 진도대교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날씨가 맑았으면 지난 1984년 10월에 완공된 길이 484 m인 진도대교의
높이 각각 69 m인 강철교탑(鋼鐵橋塔)의 붉은색 장관이 뚜렷이 보였으리라.
북동쪽 바다에도 짙은 구름과 옅은 안개로 인해 시야가 흐리다.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큰 섬인 진도 주변의 아름다운 해안선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진한 아쉬움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오후 1시44분.
높이 485m로 진도에서 제일 높은 바위산인 첨찰산을 떠나 하산 준비를 한다.
첨찰산이란 이름은 뽀족할 첨(尖), 살필 팔(察)이란 한자어에서 보듯
뾰족한 산 정상에서 주위를 살핀다는 뜻인만큼 백제시대에는 주위에 산성을 쌓았고,
조선시대에는 봉수대를 만들었으니 지형을 제대로 이용한 셈이라 하겠다.
오후 2시23분.
진도아리랑비가 있는 쪽으로 하산하는 길도 쌍계사 좌측으로 오르던 길과 다름 없이
산길이 끝나는 곳까지 이와같은 시원한 계곡물이 이어진다.
쌍계사라는 이름이 명불허전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고 얼굴을 씻자니 차가운 물이 폐부를 서늘하게 한다.
인적없는 산속에서 홀로 가지에 앉은 새 한마리를 발견하고
300mm 망원으로 당겨 보았다.
새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나 자신이지만 나뭇가지를 움켜잡기 쉬운
발가락 모습과 뽀족한 부리 모습으로 보아서는 세계적으로 210여 종류가 있다는
딱따구리과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동백나무와 단풍나무가 유난히 많은 이곳 첨찰산 산길을 여유롭게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친구지간인듯한 저 분들의 모습이 무척 편안해 보인다.
다른 많은 산행객들도 이들처럼 여유로운 산행을 하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그리고, 산행이 끝난 후 집결지에서 각 산악회마다 경쟁적으로 산행객들에게 제공하는
이른바 뒷풀이라는 명목의 김치찌개 한 그릇을 빨리 얻어 먹기 위해 산행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오후 2시 54분.
산길을 벗어나 2차선 아스팔트 도로에 들어서면 바로 만나는 진도아리랑비의 모습이다.
이 비는 1994년 진도군 임회면에서 석재를 채취한 후 1995년 8월15일에 이곳에 건립한 것이다.
아리 아리랑 서리 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나도 모르게 비문의 가사를 흥얼거리며 운림산방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오후 3시 15분.
운림산방 [雲林山房] 경내에 있는 운림지 앞에서 잠시 휴식을 위한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小痴 許鍊)이 1856년 9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에 내려와 초가를 짓고 이름은 운림각이라고 하고 거실은 묵의헌이라 불렀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철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이름지었다 한다.
연못 한 가운데의 백일홍은 소치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며 배용준 주연의 영화 '스캔들'에서
조선시대 상류층의 놀이문화를 보여주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뒷편의 첨찰산과 온통 잔디로 뒤덮인 정원, 온갖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운림산방 경내 모습이다.
소치 선생 사망 후 아들 허형이 운림산방을 떠나면서 매각되어 거의 폐허가 되었던 이곳.
그후 소치 선생의 손자인 허형의 아들 허윤대가 운림산방을 다시 사들였고
1982년 허형의 하들 허건이 운림산방을 예전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한다.
다시는 위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 행선지인 진도 신비의 바닷길로 떠나기 위해
첨찰산과 운림산방에서의 오전 일정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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