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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산`이라는 이름을 빼앗긴 유명산 산행기

2011년 2월26일 토요일 오전 10시32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에 위치한
유명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 도착하여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북향한 산자락에는 지난 겨울 내린 눈이 남은채 마치 한겨울을 연상케 한다.

새벽잠에서 깨어나 부리나케 대전역으로 달려나가
KTX편으로 서울역에 도착하여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사당역에서 오늘 산행을 같이 할 일행들과 합류하여
이곳까지 오느라 피곤했던 몸이 파란 하늘을 바라보니
찌뿌듯하던 몸이 일순간 날아갈듯 가벼워진다.

오전 10시46분
산행을 시작한지 10여분 남짓 지나는 동안 이어지는
얼어붙은 좌측의 개울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음의 두께가 더 두꺼워지는듯 하다.
우수가 지난지 1주일이 지났건만 해발고도 300m를 훌쩍 넘는
경기도의 산골은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듯 싶다.

오전 10시52분
유명산 정상까지 오르는 최단거리인 북능을 따라
남쪽을 향해 오르는 길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다.
정상까지 2km를 채 못 남긴 지점부터 한동안
낙엽송 군락이 이어진다.
햇빛을 조금이나마 받는 곳은 눈이 녹아 맨땅이 드러나지만
산등성이에 가린 계곡은 겨우내 쌓인 잔설이 남아 있다.

오전 11시22분
해발 500여m 지점까지도 낙엽송을 주로 한 참나무 등
키 큰 활엽수 군락이 계속 이어진다.
이곳 가평 지방의 아침 기온이 영하 6도 가까이까지 떨어진
추운 아침이었지만 해가 떠오르며 온도가 급격히 오른데다
오르막을 오르다보니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등산자켓을 벗고 반팔 티 차림으로 산행길을 이어가지만
온몸에 기분 좋을 정도의 옅은 땀이 솟는다.

오전 11시35분
정상까지 900m 정도 남긴 지점부터 한동안
잣나무 숲이 이어진다.
잣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그래서 영어로 Korean Pine(한국 소나무)이라 하며, 학명도 Pinus koraiensis이다.
잎이 둘,셋씩 붙은 소나무와 달리
다섯 잎이 한 묶음으로 붙어 있어서 오엽송(五葉松)이라 부르기도 하는 잣나무.

꽃이 피고 열매가 익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리는 잣나무는
가평군 전체 산림 면적의 30%에서 자라며
국내 잣 생산량의 60%가 가평군에서 산출된다.

오전 11시52분
해발고도 600m를 넘어서 700m에 가까운 지점부터
눈 녹은 물이 다시 얼어붙은 미끄러운 빙판길이 오랫동안 이어진다.
매년 11월부터 3월까지 반드시 배낭속에 넣고 다니는 아이젠을 꺼내는 것이 귀찮아
나무 둥치에 의지하며 오르막을 오르던 중
빙판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산행객 몇몇을 목격한 후
아이젠을 등산화에 단단히 부착한 후 미끄러운 오르막 빙판길을 오른다.

낮 12시19분
해발고도 800m에 육박한 지점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꽤 두텁게 쌓여 있다.
지난 겨울 주말마다 눈산행을 다닌 나에게는 이정도 눈은
별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눈산행 경험이 거의 없는 일행들 몇몇에게 눈밭에 묻힌듯한 느낌의
사진을 몇장 찍어 준다.
이른 봄 산행은 겨울 눈산행의 묘미까지 느끼게 해 준다.

낮 12시 34분
유명산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본다.
동쪽 방향으로 해발 826m인 어비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멀리 해발 1,157m인 용문산 정상의 철탑들도 자그맣게 보인다.

과거 군마(軍馬) 훈련장으로 사용했다해서 "마유산(馬遊山)"이라는 이름을 얻었음을
정상부에 드넓게 펼쳐진 평원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빼앗긴 이름인 "마유산(馬遊山)"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지 못한채
엉뚱한 이름인 '유명산'이라고 표기된 정상석 앞에서 분노를 느낀다.

지난 1973년 3월 국내 모 일간신문사의 후원으로 산행에 나섰던
일행 3명이 이곳에 올라 산 이름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여
대원중 한 사람인 당시 27세였던 '진유명(陳有明)'이라는 여성의 이름을 따
산 이름을 지었다 한다.

대부분의 산 정상석을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들어 세운데 반해
이곳은 산림청에서 만들었음에도
'대동여지도','산경표' 등에도 버젓이 "마유산"으로 기재된 것을
무시하는 관계 공무원들이 과연 국가의 녹을 먹는
국민의 공복일 수 있는 것인가?

정상부와 이어진 남쪽으로도 넓은 평지가 이어지고
임도를 따라 차량이 올라올 수 있는 흰 눈이 덮인 저곳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만들어져 있으며
동호인들이 주말을 맞아 여가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띈다.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400여m 떨어진 곳에서 정상부를 바라본다.
말발굽소리를 힘차게 울리며 콧김을 내뿜는 군마들이
뛰어다니며 훈련을 할만큼 드넓은 초원이 펼져져 있다.

40년 가까이 빼앗긴 이름 "마유산(馬遊山)"을 되찾기를 바라며
멋진 가지를 펼친 큰 소나무 아래로 이동하여 '시산제' 준비를 한다.

오후 1시14분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펼쳐놓고 동행한 일행들은 앞으로 1년간
산행의 안전을 산신령께 비는 시간을 가진다.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갓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로 이어지는
고(故) 노산 이은상 선생이 만드신
"산악인의 맹세"를 한 목소리로 열창한다.

오후 2시50분
시산제를 끝낸 후 삼삼오오 모여 앉아 여유있는 점심식사까지 끝낸 후
동쪽의 용문산을 바라보며 하산 길에 나선다.
오전에 산을 오를 때는 능선을 따라 오르는 비교적 경사가 급한 길이었지만
하산길은 능선길 동쪽의 '입구지계곡'을 따르는 길이다.
비록 거리는 4.1km정도로 올랐던 길의 2배가 넘는 거리이지만
마당소,용소,박쥐소 등 경관이 뛰어난 계곡을 따르는 멋진 하산길이 되리라.

6~7km 정도 떨어진 양평군 용문면의 용문산 정상부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공군기지 레이다 시설, 방송국 중계탑,군청,경찰서,소방서 등 기관의
철탑,중계탑 등이 어지러이 서 있는 정상부는 수십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수년 전부터 개방이 되어 산행객들에게 정상을 밟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곳이다.

오후 2시55분
오전에 산에 오를 때와는 달리 2배가 넘는 거리의 하산길이다보니
완만한 경사길의 여유로움을 즐긴다.
비록 지난 늦가을 피었던 꽃은 다 떨어지고 볏짚과 흡사한 가느다란 줄기만 남은 상태이지만
억새군락 사이를 지나노라면 서정적인 정취도 물씬 풍겨나는 곳이다.

오후 3시36분
40여분 이상 이어지던 숲길이 끝나고 계곡 가를 따라 이어지는 너덜길로 들어섰다.
혹은 날카롭고 혹은 둥그스럼한 크고 작은 돌더미를 밟으며 지나는 길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두껍게 얼어붙은 계곡 아래로 흐르는 눈 녹은 물 소리가
비교적 크고 우렁차게 들리는 경쾌한 하산길이다.

오후 3시53분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까지 2.8km 정도 남긴 지점에서
깊고 작은 연못가를 지난다.
안내판에는 '마당소'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소(沼)"라 함은 호수보다는 앝으나 늘 맑은 물이 고여 있는 곳을 말한다.

'유명계곡 [有名溪谷]'이라고도 부르는 이 '입구지계곡'은
크고 작은 소(沼)들이 연이어 있는데,
규모는 작지만 소금강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가을철 붉은 단풍이 게곡 물에 비치는 아름다운 경관은
유명농계(有名弄溪)라 하여 가평팔경(加平八景) 가운데 제8경으로 꼽는다.

얼음 밑으로 봄을 알리는 물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리는
하산길 곳곳에는 이와같은 멋진 바위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오전 산에 오를 때의 밋밋한 육산의 분위기가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길은 전혀 다른 절경이다.

계곡 건너편 산등성이에도 온갖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오전에 산의 북쪽 능선을 따라 오르며 볼품 없는 경치에 실망했던
일행들의 입에서도 연이어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곳 유명산 자연휴양림이 우리나라 자연휴양림 중 가장 먼저 생긴 곳이며
매년 50여만명이 이곳을 찾는 이유를 알듯하다.

오후 4시20분
주차장까지 2km남짓 남겨둔 지점에서 "용소(龍沼)"옆을 지난다.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계곡들 중 '용소'라는 이름의 "소(沼)"를
갖지 않은 계곡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이곳도 예외없이 옛날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두꺼운 얼음 사이로 보이는 물빛이 유난히 맑은 곳이다.

온통 암반 투성이인 용소 옆을 지나는 산행로에는
이처럼 철제 난간을 설치해 놓았다.
이 용소는 용이 승천했다는 이유 외에도
주위의 암반들이 용을 닮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오후 4시31분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하산길은 이와같은 철제 다리를 여러개 건너야 하는
비교적 긴 하산길이다.
햇빛이 비치지 않는 좁은 빙판길에서는 한동안 아이젠을 착용하고도
조심스럽게 발을 떼어야하는 빙판길이었다.

마지막 철제 다리를 건너 평탄하고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이제 아이젠을 등산화에서 떼어 조심스레 갈무리한 후 배낭에 챙겨 넣는다.

오후 4시57분
이제 주차장까지 남은 거리는 200여m 남짓.
이 길은 이곳 유명산자연휴양림 내의 자연산책로로 연결된 길이다.
크게 힘 들지 않고 편안하게 이어진 시산제를 겸한 주말산행을
상쾌한 마음으로 마감한다.

다음에 이곳을 찾을 때는 '유명산'이라는 이름 대신
40년 가까이 빼앗긴 이름인 "마유산(馬遊山)"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