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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골미(岩骨美)가 빼어난 도명산,낙영산 산행기

2011년 2월6일 일요일 오전 9시42분
설날 연휴 마지막 날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의 공림사 입구 주차장에서
간소한 시산제를 지낸 후 산행을 시작한다.
북쪽으로 마치 병풍처럼 펼쳐 있는 낙영산의 풍경이 장관이다.

오전 9시45분
천년 고찰 공림사 입구에는 낙영산을 소개하는 안내 표지석이 서 있다.
공림사는 오후에 낙영산을 거쳐 하산하며 둘러보기로 하고
낙영산과 그 북쪽의 화양계곡 사이에 자리한 도명산을 향해
좌측 산행로로 접어든다. 이곳의 해발 고도는 대략 260m정도.
도명산까지의 거리는 대략 2.7km 정도이다.

오전 9시55분
설날 연휴가 시작되며 예년보다 포근한 날씨가 이어진 때문이지
남쪽으로 햇빛을 받는 산행로의 눈이 거의 녹아
마치 늦가을 산행시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비록 급경사 오르막은 아니지만 완만한 경사면을 오르다보니
몸에 땀이 조금씩 솟아 나기 시작한다.

비록 예년에 비해 포근한 날씨라고는 하지만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7~8도이고 낮기온이 영하 1도 안팎인지라
햇빛을 많이 받지 못하는 땅은 잔설이 남아있어 조심스러운 산행길이다.

오전 10시28분
산행들머리 부근인 공림사에서 1.3km 지나온 지점인
안부사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북쪽으로 1.4km 떨어진
도명산을 향해 산행길을 이어간다.
좌측 방향인 서쪽으로는 쌀개봉(652m), 조봉산(680m).
우측 방향인 동쪽으로는 낙영산(684m), 무영봉(740m)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인
안부사거리의 해발 고도는 대략 550m 남짓된다.

이곳부터는 햇빛을 받지 못한 산행로가 한겨울을 연상시키는 눈길이다.
등산화에 아이젠을 단단히 부착한 후 걸음을 옮긴다.

휴식을 취하기 전 안부사거리까지 올랐던 계곡의 이름은 섬목골이었고,
지금 도명산까지 이어지는 계곡의 이름은 도명골이다.

저 계곡을 덮은 눈이 모두 녹아내린 연후에
그 밑에 얼어붙은 도명골의 물이 다시 경쾌한 소리로 흘러 내리려면
아마도 우수,경칩이 모두 지난 후인 3월 초순은 되어야 하리라.
산골의 겨울은 유난히 길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린다.

오전 10시36분
해발고도 400m 정도되는 지점
눈 쌓인 산허리를 돌아서자 멀리 눈 앞으로
도명산이 성큼 다가온다.
이제 첫번째 목표인 도명산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1km 정도이다.

오전 10시47분
봄,가을 산행시 저 암반을 올라 산행길을 이어가는 묘미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마음 같아서는 저 암반을 타고 올라 산행길을 이어가고 싶지만
속리산국립공원 구역인 이곳을 관장하는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설치한
통행금지 표지판,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잔설과 암반 틈에 얼어붙은 얼음 때문에
안전을 위해 우회하여 산행길을 이어간다.

오전 10시51분
도명산 정상을 500m 정도 남겨둔 지점부터 급경사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온통 크고 작은 바위로 이루어진 험한 산길.
바위 틈에는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
주위 산행객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오전 11시1분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느라 가빠진 숨을 돌리기 위해
전망 좋은 바위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동쪽 방향으로 멋진 장관이 연출된다.
정면으로 보이는 바위 투성이의 길게 이어지는
산 능선은 유격장능선이라 불리는 공수부대 훈련장으로 알려져 있다.
출입금지 구역인 바위 능선 너머로 멀리 가령산 능선이 보인다.

유격장능선 앞에 길게 누운 멋진 바위를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지도상에는 '긴바위'라고 표기되어 있기도 하지만
산꾼들 사이에서는 기차바위로 통하는 멋진 바위.
그 위에 줄지어 늘어선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이 놀랍다.

오전 11시15분
전망 좋은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한 후
도명산 정상까지 남은 300m 구간의 급경사길을 오른다.
산행객의 안전을 위해 대부분 구간에 철제 계단이 설치된 곳.
산행객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철계단을 오르느라 무척 힘이 든다.

오전 11시23분
힘겹게 철계단을 오르면서도 이처럼 멋진 풍광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고사목과 흰 눈이 쌓인 바위 틈으로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낙영산 봉우리 우측 너머로 속리산 서북 능선인
묘봉,상학봉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암반 사이 비좁은 틈에 셀 수 없이 많은 잔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싱싱하게 자라는 모습 또한 경이롭다.
해발고도 600m를 넘는 곳에 자리한 암반에 뿌리를 내린 저 소나무는
생육에 절대적인 수분을 어디서 공급받아 저토록 싱싱한 생명의 빛을 발하는지??

오전 11시26분
도명산 정상에 올라 남쪽으로 눈을 돌린다.
비록 바람은 잔잔하지만 피부에 느껴지는 공기가 무척 차다.
사진 중앙에 낙영산이 보이고 그 바로 뒤에 해발 602m의 남산.
사진 우측으로는 낙영산과 능선이 이어진 코뿔소 바위와 그 뒤로 해발 691m의 덕가산이 보인다.
낙영산 봉우리 뒤쪽 멀리로는 속리산 서북능선상의
묘봉(해발 874m)과 상학봉(해발 861m) 도 눈에 들어온다.

오전 11시28분
독특한 형상의 바위로 이루어진 도명산 정상을 떠난다.
비록 해발고도는 643m에 불과하지만 최근 다녀온 소백산,태백산,
마천봉,덕유산 등 해발 1,400m를 훨씬 넘는 높은 산들의
정상 부위보다 훨씬 멋들어진 곳이다.

누군가 이곳 도명산[道明山]을 '밝은 깨달음을 얻는 산'이라
일컷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제 이해가 간다.

오전 11시39분
도명산 정상 바로 아래에 이처럼 거대한 바위가 하나 있고
뒷편인 남쪽에 넓은 공터가 마련되어 있다.
암반 북쪽 사면의 얼음은 영하의 날씨에 전혀 녹아 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바위 뒷편 바람을 막아주는 편안한 곳에서
같은 차량에 동승한 일행들과 한동안 점심을 곁들인 휴식을 취한다.
차량 이동 시간이 두시간 남짓한 가까운 곳으로 온 산행은
몸과 마음에 한결 여유로움을 준다.

낮 12시15분
뱃속을 든든히 채우고 휴식을 취한 후의 발걸음에는 힘이 넘친다.
얼마 남지 않은 겨울 눈산행의 맛을 즐기며 다음 행선지인
낙영산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무척 가볍게 느껴진다.

오후 1시
2시간 반 전에 휴식을 취했던 곳인 공림사까지 1.3km지점인
안부사거리에서 낙영산을 향해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능선길을 오른다.
이곳 도명산,낙영산 산행길에 자주 만나는 멋진 소나무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이와같은 적송을 만나면 자연 걸음을 멈추게 된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줄기가 붉은색인 적송(赤松)은
웬지 친근감을 준다.

오후 1시9분
낙영산 정상석 앞에서 잠시 멈춘다.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도명산 정상은 조망이 뛰어난데 반해
해발 684m인 이곳 낙영산 정상은 주위를 둘러싼 나무숲에 가려 조망은 좋지 못하다.

원래는 현재의 낙영산 정상과 안부를 사이에 두고 건너다보이는
742m봉인 백악산 쪽 동봉을 낙영산이라 했으나
지금은 공림사 뒷산이자 화강암 슬랩이 잘 발달해 있고,
노송과 어우러진 산세가 호방한 이곳 684m봉을 낙영산이라 부르고,
742m봉은 무영봉(無影峰)이라 부르고 있다.

낙영산[落影山]이란 뜻은 산의 그림자가 비추다. 혹은 그림자가 떨어지다라는 뜻인데,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때 당나라 황제 고조(高祖)가
세수를 하려고 물을 받은 대야를 들여다보니 천하절경의 산 그림자가 비치는 것이었다.
그 후 한 도승이 나타나서 알려줘 드디어 그 산을 찾아 산의 이름을
‘낙영산(落影山)’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공림사 사적비」에는
'신라 진평왕 44년(622) 중국 낙양 땅 위에 한 줄기 상서로운 빛이 비추었는데...'
로 시작되는 조금 다른 내용이 적혀 있다.

오후 1시12분
낙영산 정상을 떠나 공림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구간에는
수많은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이 바위를 처음 본 순간 '코끼리"를 연상했다.
머리 뒤의 뾰족한 부분만 없으면 눈까지 선명하고
긴 코가 뚜렷한 코끼리의 형상이다.

그러나 바위 뒷편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도상에는 이 부근에 토끼바위와 거북바위가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던
품위 있게 가지를 뻗은 노송과 어울려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 멋진 바위 옆 낭떠러지 쪽인 님쪽으로 장관이 펼쳐진다.
아마도 이곳 낙영산을 소개할 때
"암골미(岩骨美)"가 뛰어나다고 하는 표현이 이 모습을 두고 하는 것이리라.
공림사가 자리한 사담리 뒤의 남산과
그 너머 속리산 북쪽 마을인 경북 상주시 화북면의
산골 마을을 둘러싼 산줄기들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오후 1시20분
연이어 나타나는 멋진 바위.
첫 눈에 목을 조금 빼고 기어가는 '거북'을 떠올리게 한다.
마침 지도를 보니 지도에도 '거북바위'라는 표기가
이 부근에 씌여있다.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하며 천하절경 화양동계곡 남쪽에 위치한
낙영산,도명산은 동고서저(東高西低)의 경동지괴(傾動地塊)로서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구성된 소백산맥 줄기이다.
그래서인지 온통 기묘한 바위틈을 지난다.

조금 전 첫 눈에 거북을 연상시키던 바위를 뒷편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전해 온다.
주위의 누군가가 낙타바위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보니 그렇게도 보인다.
허나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라 눈으로 보고 즐거우면 되는것을..

똑같은 바위라도 가까이서 보는 것과
멀리서 보는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멋드러진 자태의 적송, 그리고 고사목과 어우러진 바위.
절벽가에서 멋진 풍광을 사진으로 담고 걸음을 옮기는 산행객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오싹해진다.

눈에 띄는 또 다른 멋진 바위 모습이다.
누군가 문바위라고 기억을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사람 키 4배 정도되는 높이의 멋진 바위를 감상하는 것을 끝으로
다시 하산길에 나선다.
아마 부근의 모든 바위를 하나 하나 살피다보면 날 새는줄 몰랐으리라.

오후 1시35분
공림사로 향하는 본격적인 하산길
가파른 내리막 능선에서 뒤돌아보니 나무숲 사이로 멋진 바위 한쌍이 보인다.
지도상에는 저 부근에 '형제바위'라고 표기되어 있다.
오랜 세월 풍상에 시달리며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아마도 저 형제는 이승에서 무척 우애가 깊었을 것 같다.

오후 1시40분
급경사 내리막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거대한 암반을 만난다.
지도에는 '대슬랩'이라 표기되어 있다.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 했으니 슬랩지대를 만난 핑계로
널찍한 바위에 주저 앉아 잠시 조망을 즐긴다.
20여분 전에 바라본 같은 방향이지만
눈 덮인 산에 둘러싸인 공림사 주변의 사담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망원렌즈로 가까이 당겨 보니
산행이 끝나고 들러보기로 예정한 공림사 경내 풍경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다가 온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천 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꽤 웅장한 모습이다.

안전한 산행을 위해 산행로를 찾으며 사방을 둘러보니
우측 계곡을 가운데 두고 맞은편의 암벽의 모습도 장관이다.
'슬랩 [slab]' 이란 평평하고 매끄러운 넓은 바위를 가리키는 등산 용어이다.
손으로 잡을만한 마땅한 홀드(hold)가 없으므로 슬랩을 등반할 때는
등산화(릿지화 등) 밑창으로 마찰을 얻고 손바닥이나 손을 밀착시키며 균형을 유지해야한다.

그러나, 경험이 많지 않은 경우 금물이다.
다행히 암릉 사이의 좁은 구간에 밧줄이 두어군데 설치되어 있어
밧줄을 이용하여 하산을 계속한다.

암릉 구간을 지나 밧줄이 걸쳐있는 윗쪽을 바라보니 아찔하다.
산행 경험이 적은 초보자나 힘이 약한 노약자는 반드시
경험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 구간이다.
그래서인지 산을 좋아하는 산꾼들은 약자를 돕는 일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오후 1시58분
마치 진흙으로 수많은 돌기를 빚어놓은듯한 기묘한 암반옆을 지나며
오전에 산행들머리의 낙영산 안내문에 적혀있던 글귀가 떠오른다.

“낙영산은 산 전체가 깨끗하고 묘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웅장하게 골을 형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관이 매우 뛰어난 곳이다.
특히 바위틈에서 자생하고 있는 소나무와 들꽃과 들풀은
뛰어난 생명력과 더불어 이곳의 경지를 아름답게 만든다...."

오후 2시16분
산행이 끝나고 공림사 뒷뜰의 부도탑 앞에서 특별한 나무를 만난다.
나무 아래에 작고 검은 비석이 만들어져 있다.
사람 이름 석자와 1987.xx.xx.~2010.5.16. 이라 새겨져 있다.
자연 친화적 장례방식이라하여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수목장의 현장이다.
23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친 알지 못하는 분의 명복을 빈다.

한 때 공림사(空林寺)로 표기했었다고 하는 공림사(公林寺) 경내로 들어 선다.
서기 873년 신라 경문왕 때 자정국사(慈淨國師)가 창건한 유서 깊은 천년 고찰이다.
자정선사께서는 이곳에 암자를 짓고 참선하던 바,
경문왕은 자정선사의 법력이 뛰어남과 그 인물됨을 알고
국사의 호칭과 함께 공림사의 사명을 지어 액자를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태종 때 자복사(資福寺)를 정할 때 공림사가 자복사가 될 정도의 규모로
조선 중기에는 법주사보다도 사세가 흥했다고 하나 지금은 법주사의 말사인 이곳.
비록 대부분의 전각은 최근에 재건된 절이긴 하지만 절 뒤의 낙영산처럼 깨끗하게 정돈 돼 있어서,
천년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풍경이 단아하며,
국보도 보물도 없는 절이지만 꾸미지 않은 소박함을 느끼게 한다.
(*자복사란 국가에 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국가지정 사찰을 말한다.)

오후 2시26분
공림사 경내에서 자라고 있는 괴산군 보호수인 천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뒤로하고
공림사 경내를 벗어난다.
높이 12m, 둘레 8m에 달하는 거대한 느티나무이다.
지난 1982년 보호수로 지정 당시 수령이 990년이라 했으니
그로부터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은 나이가 천년이 넘었음을 알 수 있다.

오후 2시30분
귀가 차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공림사 앞쪽 작은 연못에 자리한 '두꺼비바위'가 보인다.
두꺼비바위에 얽힌 얘기,
그리고 이곳 마을 이름인 "사담마을"에 대한 얘기를 떠올리며 휴일 일정을 마감한다.

마을 이름에다 모래와 연못을 뜻하는 "사담(沙潭)"이라는 한자를 쓰게 된 연유는 이렇다
이 마을에서 북으로 마주보는 낙영산이
'용(또는 뱀)'이 마을을 공격하는 산세이기 때문에 용이나 뱀이 싫어하는
모래와 연못을 마을 이름에 썼다는 것이며
또 뱀의 천적에 가까운 두꺼비를 닮은 바위가 공림사와 낙영산을 향해 달려드는 자태로 자리한 것도
마을과 공림사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